[대림 제3주간 월요일]예수님의 권한 (마태 21,23-27)

2015. 12. 14. 오후 7: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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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간 월요일]예수님의 권한 (마태 21,23-27)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십자가의 요한 성인은 1542년 스페인 아빌라의 폰티베로스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극심한 가난을 체험한 그는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 생활을 하다가 사제가 되었다. 이후 요한은 ‘아빌라의 성녀’로 잘 알려진 예수의 데레사 성녀와 함께 가르멜 수도회의 개혁을 추진하는 가운데 영성 생활의 스승 역할을 하였다. 1591년 세상을 떠난 그는 1726년에 시성되었고, 1926년에는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다. 교회의 위대한 신비가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쓴 가르멜의 산길, 어둔 밤, 영혼의 노래 등은 영성 신학의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말씀의 초대]

모압 임금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발라암을 불러 온다. 그러나 발라암은 하느님께서 자기에게 명하시는 대로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내리며, 먼 훗날에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을 것을 내다본다. 발라암의 이 예언은 메시아를 예고하는 것으로 이해된다.(민수. 24,2-7.15-17)
그 무렵 2 발라암은 눈을 들어 지파별로 자리 잡은 이스라엘을 보았다. 그때에 하느님의 영이 그에게 내렸다. 3 그리하여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4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5 야곱아, 너의 천막들이, 이스라엘아, 너의 거처가 어찌 그리 좋으냐! 6 골짜기처럼 뻗어 있고, 강가의 동산 같구나. 주님께서 심으신 침향나무 같고, 물가의 향백나무 같구나. 7 그의 물통에서는 물이 넘치고, 그의 씨는 물을 흠뻑 먹으리라. 그들의 임금은 아각보다 뛰어나고, 그들의 왕국은 위세를 떨치리라.”
다시 15 그는 신탁을 선포하였다.
“브오르의 아들 발라암의 말이다. 열린 눈을 가진 사람의 말이며, 16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지식을 아는 이의 말이다. 전능하신 분의 환시를 보고 쓰러지지만, 눈은 뜨이게 된다.
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예수님의 권한~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예수님께서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를 물으신다. 그들이 대답을 회피하자, 예수님께서도 당신의 권한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밝히지 않으신다.(마태 21,23-27)
23 예수님께서 성전에 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24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 묻겠다. 너희가 나에게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해 주겠다.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그들은 저희끼리 의논하였다.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26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 27 그래서 그들이 예수님께 “모르겠소.”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제1독서(민수기 24,2-7.15-17)

"나는 한 모습을 본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나는 그를 바라본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그는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17) 

'나는 그를 바라본다'에서 '그'는 곧 야곱에게서 나온 한 별이며,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난 왕홀이다.  즉 임금 중의 임금이신 메시야를 발라암이 지금 보고, 또 자세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아니다.~ 그러나 가깝지는 않다' 

'지금'으로 번역된 '앗타'(atha) '이제'(now)라는 뜻의 부사로 현재 시간을 의미하는 말이고, '가깝지는'에 해당하는 '카로브'(qarob; near)는 말 그대로 가까운 미래의 시간을 나타내는 말이다. 

본문은 신, 구약에 나타난 '계시(예언)의 시간성'이란 주제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탁월한 표현이다. 구약의 모든 예언자들과 신약의 사도들을 통해 보여준 예언 뿐만 아니라 신약 시대의 예수님의 예언들에까지도 모두 적용되는 '성취의 시간성'이라는 측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예언이나 계시는 지금 당장 성취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또 당대의 역사 안에서 실현될 것 같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즉 그 성취의 시간이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 뿐이다.

'별 하나'

별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게는 숭배의 대상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구약에서 여기처럼 '별'에 해당하는 '코카브'(kokab; a star)단수로 쓰일 때에는 '임금'(왕)을 상징했음이 분명하다(이사14,12; 다니8,10). 더욱이 여기서는 뒤에 나오는 '왕홀'과 평행적인 대구를 이루기 때문에 여기서 '별''임금'을 상징함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신약과 연결시켜 생각해 볼 때, 이 별은 단순한 한 나라의 임금이 아니라 온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만왕의 왕 메시야임을 알 수 있다(마태2,2; 묵시22,16).

'야곱에게서 ~솟고'

'솟고'로 번역된 '따라크'(darak) '밟다'(신명1,36), '(활을)당기다' (1역대5,18)라는 뜻으로 크게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지는 동사이다. 하지만 '(활을)당기다'는 뜻과 같이 '밟는다'는 것도 곧 '소유'(신명11,24), '정복'(판관20,43), '통치'(신명33,29)라는 이면적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따라크'의 기본 개념은 '전쟁'과 연결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원문은 '별 하나'(한 별)가 마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행진하듯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적인 묘사이기는 하지만, 별이 땅을 밟고 전진하는 것은 매우 신비롭고 기이한 모습이다. 이것은 물리적인 육적인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발라암은 환시 중에 환히 빛나는 별 하나가 악한 적들을 섬멸하기 위해 야곱의 진영 가운데서 행진하여 나오는 모습을 본 것이다. 이 예언은 하느님을 적대하는 악한 세력과 싸워 이긴 임금, 곧 메시야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왕홀'로 번역된 '셰베트'(shebet)는 원래 '막대기'(레위27,32), '지팡이'(판관5,14)를 뜻하는 말이었으나, 그 의미가 발전하여 '지파'(창세49,28)를 뜻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여기서는 특히 임금의 지위를 나타내는 지팡이 '왕홀'을 의미한다. 

이것은 분명 과거 야곱의 유다에 대한 예언에 나타난 '홀'과 연관되어 있으며 (창세49,10), 본문과 대구를 이루는 '별'과 관계되어 메시야의 왕권을  상징하는 것이 분명하다(시편45,7; 아모스1,5.8). 

한편 '일어난다'에 해당하는 '웨캄'(weqam) 기본형 '쿰'(qum)은 특별히 발라암의 이야기 가운데서 암사자의 '일어남'('쿰'; qum)을 묘사할 때도 쓰인 동사이다(민수23,24). 즉 이 단어는 암사자가 사냥감을 공격할 때 일어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는데, 이런 의미가 여기서도 그대로 전달되고 있다. 

말하자면, 별 하나가 악한 세력과의 전쟁을 위해 행진하여 나오고, 홀이 '일어나'(쿰) 그 세력을 치려는 모습을 발라암이 환시 중에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별과 홀에 의해 모암, 에돔, 아말렉 등의 나라와 아시리아까지 멸망하게 될 것임이 이어지는 예언에서 밝혀지고 있다. 

'모압의 관자놀이를, 셋의 모든 자손의 정수리를 부수리라' 

여기서 '모압'은 단순히 당시에 있었던 근동의 한 나라 '모압'만을 말하지 않는다. 실제로 '모압'이라는 나라의 멸망과 '별' '왕홀'로 상징된 메시야의 출현과는 실제 역사 안에서 특별한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것은 단지 한 민족을 말한다기보다는 모압으로 대표되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백성을 적대하는 세상의 세력의 멸망에 대한 예언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셋'은 노아의 셋째 아들인 '셋'('셰트'; sett; 창세4,25)이 아니고, 노아의 셋째 아들과는 다른 사람으로서 모압 족속의 기원과 깊은 연관을 지닌 인물이거나 부족으로 보고 있다.


오늘의 묵상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향해 갑니다. 요르단 동쪽을 점령하고, 아직 그 지역에 머물고 있을 때, 모압 임금 발락은 발라암을 불러 복채를 주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발라암은 발락이 금과 은을 준다 하여도 “하느님께서 저의 입에 넣어 주시는 말씀밖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민수 22,38)라고 말하며 거절합니다. 하느님께서도 발라암의 나귀와 천사를 통해서 그가 모압으로 가는 길을 막으려고 하셨지만, 결국 그는 발락에게 갑니다.
그곳에서부터 멀찍이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발라암은 네 번에 걸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매번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다그치지만, 발라암은 하느님께서 축복하시는 이스라엘의 미래를 선포할 뿐입니다. 오늘의 제1독서는 그 마지막 신탁에서 나온 부분이며, 이 말씀이 속해 있는 민수기 22―24장의 발라암의 신탁은 눈에 띄지는 않지만, 중요한 본문으로 다루어집니다.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 고대 근동에서 ‘별’은 신과 임금의 표징이었습니다. 여기서 신탁은 모압을 정복한 다윗을 가리키는 것 같으나, 다윗을 통하여 모압의 오랜 적대국으로 머무르게 될 그의 왕조 전체는 물론, 메시아까지 암시하는데, 이어지는 신탁에서 왕홀이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통치하는 임금의 왕홀로 소개되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교회는 이 구절을 강력하고 영화로운 임금, 곧 메시아가 야곱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예고로 이해합니다. “별 하나”라는 말에서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베들레헴을 비추던 별이 생각나지요. 성탄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가깝지는 않다.”고 말한 발라암의 예언은 오랫동안 그 성취를 기다려 왔는데, 이제 그 때가 오고 있습니다. 성탄 열흘 전, 멀리서 왔던 동방 박사들은 이미 길을 떠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분을 경배하려고 이제 우리도 떠날 채비를 갖추어야 하겠습니다.


정답인 예수님의 무응답(無應答)

<예수님>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계실 때 사제들과 원로들이 와서,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이오? 그리고 누가 당신에게 이런 권한을 주었소?" 라고 묻습니다(마태 21,23).


여기서 '이런 일'이라는 말은, 좁은 뜻으로는 예수님의 '성전 정화'(마태 21,12-13)와 성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는 일을 가리키고, 넓은 뜻으로는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가리킵니다. 지금 사제들과 원로들의 질문은, "당신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인가? 그렇다면 그것을 증명해 보아라."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마태 21,25)" 라는 질문으로 답변을 대신하십니다. 이 질문은 답변을 회피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라, 요한의 일과 당신의 일은 같은 일이고, 모두 하늘에서 온 일이라는(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또 "요한이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 때에는 가만히 있다가 왜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시비를 거느냐?" 라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사제들과 원로들은 "'하늘에서 왔다.'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 하고 우리에게 말할 것이오. 그렇다고 '사람에게서 왔다.' 하자니 군중이 두렵소. 그들이 모두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니 말이오(마태 21,25-26)." 라고 말하면서 자기들끼리 의논합니다. 이 말을 보면, 그들은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예언자라는 것을 안 믿었습니다. (못 믿은 것이 아니라 안 믿었습니다.)


그들이 안 믿으면서도 세례자 요한을 내버려 둔 것은 아마도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한이 말한 회개나 심판에 대한 무관심.) 그 무관심은 사실상 '하느님의 뜻'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들이 하느님의 뜻에 맞게 살고 있는지 반성해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또 세례자 요한의 활동이 자기들의 기득권에 별로 위협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시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광야와 요르단 강에서만 활동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 근처에도 안 갔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의 사제들과 원로들은 요한이 하는 일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제들과 원로들이 하고 싶은 말은 "사람에게서 왔다."입니다. 그러나 군중 때문에 그 말을 하지 못합니다. "군중이 두렵소." 라는 말은 백성의 여론이 두렵다는 뜻이 아니라,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는 사람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자기들에게 돌을 던지지나 않을까 두렵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은 그들이 하느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세속적인 기득권을 잃는 것만을 두려워했음을 나타냅니다.
(그들에게는 "혹시라도 요한이 진짜로 하느님의 예언자였던 것은 아닌가? 우리가 죄를 지은 것은 아닌가?" 같은 두려움이 하나도 없습니다.)


사제들과 원로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한 뒤에 모르겠다고 대답합니다(마태 21,27). 모르겠다는 그들의 말은, 지금 이 상황에서는 "관심 없다." 라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례자 요한이 한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다고 말한 것이지만, 사실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해서 관심 없다는 말이 되어버립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권한이 하늘에서 왔는지 사람에게서 왔는지에 대해서도 관심 갖지 않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와서 권한을 물은 것은, 정말로 하늘에서 온 권한인지를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되는지, 아니면 무시해도 되는지를 알고 싶어서였을 것입니다. (권한이 어디에서 왔든지 간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되면 예수님의 일을 막고, 위협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무시하고.)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죽였는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 자기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요한 11,47-53).


사제들과 원로들이 '모르겠다.'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는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태 21,27)."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권한이 하늘에서 왔다는 것을 증명하셔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자들입니다.
(원래 그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니까. 그들의 관심사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이익뿐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들은 "보여 주어도 보지 않고, 들려주어도 듣지 않는 자들"입니다. 따라서 '말하지 않겠다.' 라는 예수님 말씀은, "내가 말해도 너희는 듣지 않을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요한복음에도 "내가 (메시아라고) 이미 말하였는데도 너희는 믿지 않는다(요한 10,25)."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예수님이, 또 그리스도교가 자기에게 세속적인 이익을 주는지, 아닌지를 따져보고, 이익을 준다고 판단해서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랬다가 기대한 것만큼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미련 없이 떠나거나 박해자로 변해 버립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랬더라도 나중에 진실한 신앙인이 되는 경우도 있긴 합니다.)
우리는 그처럼 세속적인 이익만 바라는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르는데,사실 기복신앙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곧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우리의 신앙은 어떤가? 를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주시기를 바라고 있는가? (예수님께 무엇을 달라고 청하고 있는가?)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복음(마태 21,23-27)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온 것이냐?  하늘에서냐, 아니면 사람에게서냐?" (25)

'어디에서'라고 번역된 '포텐'(pothen; where)'기원', '원인'을 물어보는 의문사이기에, 본문은 세례자 요한의 권한(권세)이 어디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여기서 '하늘'로 번역된 '우라누'(uranu; heaven)'우라노스'(uranos)의 탈격으로서 '하늘로부터'라는 기원을 나타낸다. 유대인들은 '하느님'이라는 명칭을 거룩하다고 생각하여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도 '하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요한의 세례'하느님으로부터 기원되었다는 것을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다. 

또한 '사람'으로 번역된 '안트로폰'(anthropon; men) 역시 '안트로포스' (anthropos)의 탈격으로서 기원 및 출처를 나타낸다. 여기서 '사람''하느님'과 반대되는 개념으로서 불완전하고 거짓된 계시를 나타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의 권한의 출처에 대해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반문한 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적 입장 표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요한의 세례의 출처가 하늘이라고 하면, 하느님께서 보내신 자를  질시하여 결국 죽게 하였다는 점에서 곤경에 빠지게 되고, 출처가 사람이라고 하면, 세례자 요한을 예언자로 여겼던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틀려서 반발을 사게 되는 곤경에 빠지게 된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질문으로써 그들의 위선과 간교하고 사악함을 드러내시고자 하신 것이다. 또한 이 질문은 통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권한을 입증하려고 하셨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을 하느님께로 보내신 예언자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널리 인정받던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 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메시야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 (요한1,32~36).

예수님께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 당신의 권위의 출처와 관련해서 질문해오자, 오히려 요한의 세례의 출처에 대한 역질문을 던지심으로써, 자신이 세례자 요한의 참된 증거에 근거한 메시야임을 증명하려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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