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8.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루카 1,26-38)

2015. 12. 7. 오후 6:50:07

글자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2015. 12. 8. 화)(루카 1,26-38)


 성모 마리아께서는 잉태되신 순간부터 원죄에 물들지 않으셨다는 믿음은 초대 교회 때부터 생겨났다. 이러한 믿음은 여러 차례의 성모님 발현으로 더욱 깊어졌다. 1854년 비오 9세 교황은 ‘성모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를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우리나라는 이미 1838년 교황청에 서한을 보내 조선교구의 수호자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로 정해 줄 것을 청하였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이러한 요청을 허락하면서 요셉 성인을 공동 수호자로 정하도록 하였다. 이에 따라 한국 천주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를 요셉 성인과 함께 공동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4월 12일 부활 제2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칙서 「자비의 얼굴」을 반포하며 자비의 특별 희년을 선포하였다. 이 희년은 오늘부터 내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로 이 기간에 교회는 하느님의 자비를 재발견하고 증언하는 소명을 수행한다.

복음

<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6-38
그때에 26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29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였다.
30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31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32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그분의 조상 다윗의 왕좌를 그분께 주시어, 33 그분께서 야곱 집안을 영원히 다스리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을 것이다.”
34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하자, 35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다. 그러므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36 네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그 늙은 나이에도 아들을 잉태하였다. 아이를 못낳는 여자라고 불리던 그가 임신한 지 여섯 달이 되었다. 37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38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


2015년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거룩하고 흠 없는> 송영진 모세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의 전체 설계도를 잘 모르고,
그 역사의 세부적인 과정도 잘 모르지만,
시작과 끝은 알고 있습니다.
 


"나는 너와 그 여자 사이에, 네 후손과 그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개심을 일으키리니,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창세 3,15)."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를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든 사탄에게 내리신 하느님의 저주인데,
메시아를 약속하신 첫 말씀이기 때문에
구원 역사의 시작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여자의 후손'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메시아께서 사탄의 세력을 쳐부수고 승리하실 것이라는 예언이고,
우리에게 구원을 약속하시는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은 너의 머리에 상처를 입히고, 너는 그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리라."
라는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서로 상처를 입히기만 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머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죽이는 것으로,
발꿈치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가벼운 부상만 입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말씀은 사탄과 그의 추종 세력의 멸망을 예언하시는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즉 메시아가 발꿈치에 상처를 입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에 대한 예언일 것입니다.
안 믿는 자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죽음만 보이겠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부활하셨습니다.
따라서 사탄은 예수님께 아무 해도 입히지 못했습니다.)
 


구원 역사의 끝은 묵시록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도성 안에는 하느님과 어린양의 어좌가 있어,
그분의 종들이 그분을 섬기며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마에는 그분의 이름이 적혀 있을 것입니다.
다시는 밤이 없고 등불도 햇빛도 필요 없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그들의 빛이 되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묵시 22,3-5)."
 


사탄을 저주하는 것으로 구원 역사가 시작되었고,
더 이상 하느님의 저주를 받는 것이 없는 상태로 그 역사가 마무리됩니다.
사탄의 세력이 모두 소멸된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햇빛이 필요 없다는 말은, 창조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하느님의 창조 사업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상태,
또 하느님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필요 없는 완전하고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창조 이전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우리가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이는 하느님의 그 좋으신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에페 1,4-5)."
 


하느님의 구원 역사는 메시아를 약속하실 때 시작되었지만,
하느님의 '좋으신 뜻'은 이미 창조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여기서 '좋으신'이라는 말에는 '기뻐하다.'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아서 종말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창조 이전부터 그 기쁨을 원하신 분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다는 바오로 사도의 말은,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았다는(버렸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에,
구원받을 사람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이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은 각자 스스로 노력해야 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를 바라시는데,
인간들 쪽에서 노력하지 않아서 구원받지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라는 말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라는 말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안에서, 또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베풀어지고, 하느님의 뜻이 실현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서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의 사랑과 뜻을 거부하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구원을 못 받게 될 것입니다.
 


성모님의 '원죄 없이 잉태되심'은
창조 이전의 순수하고 영원한 상태를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고,
종말의 하느님 나라에서 살게 될 사람들의
거룩하고 흠 없는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합니다.
또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신 분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이기도 합니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어머니로 선택되신 분이기 때문에 원죄 없이 잉태되셨습니다.)
 


'선택된' 것이 성모님의 의지로 이루어진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선택에 응답한 것은 성모님의 의지로 하신 일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그 응답을 충실하게 지키신 것도 성모님 자신이 스스로 하신 일입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에게 중요하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입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또 하느님의 사랑은 '강제'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것처럼 우리 쪽에서도 하느님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신앙인의 응답과 순종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붙잡혀서 끌려가는 나라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응답하고
그곳을 향해서 스스로 걸어가는 사람만이 들어가게 되는 나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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