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3. 목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복음선포 (마르 16,15-20)

2015. 12. 3. 오후 4: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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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3. 목요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복음선포 (마르 16,15-20)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은 1506년 스페인의 바스크 지방 하비에르 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다가 만난 이냐시오 성인의 영향으로 수도 서원을 하였다. 1537년 사제가 된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예수회 첫 번째 회원으로 자선 사업에 헌신하였다. 그 뒤 그는 인도와 일본에서 열정적인 선교로 많은 이를 교회로 이끌었다. 중국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향하던 프란치스코 하비에르는 1552년 12월 중국 땅이 바라보이는 산첸 섬에서 선종하였다.
1662년에 시성된 그는 흔히 바오로 사도에 버금가는 위대한 선교사로 불린다. 수많은 위험과 역경을 딛고 먼 거리를 여행하며 선교에 헌신하였기 때문이다. 1927년 비오 11세 교황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을 아기 예수의 데레사(소화 데레사) 성녀와 함께 ‘선교의 수호자’로 선포하였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가 살아갈 땅을 유산으로 주셨는데, 사제직을 수행하는 레위인들은 유산으로 받을 땅이 없었다. 주님께서 그들의 상속 재산이시기 때문이다.(신명기 10,8-9)
그 무렵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8 “주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따로 가려내셔서, 주님의 계약 궤를 나르게 하시고, 주님 앞에 서서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9 그 때문에 레위인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그 대신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자신이 해야 할 몫임을 안다. 복음 선포는 삯을 받으려고 하는 일이 아니라, 사도로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코린1서  9,16-19.22-23)
형제 여러분, 16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 17 내가 내 자유의사로 이 일을 한다면 나는 삯을 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는 수 없이 한다면 나에게 직무가 맡겨진 것입니다.
18 그렇다면 내가 받는 삯은 무엇입니까? 내가 복음을 선포하면서 그것에 따른 나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하는 것입니다.
19 나는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22 약한 이들을 얻으려고 약한 이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23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다음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맡기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는 곳마다 그들과 함께 일하신다.(마르코 16,15-20)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한 제자에게 나타나시어 15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16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
17 믿는 이들에게는 이러한 표징들이 따를 것이다. 곧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 새로운 언어들을 말하며, 18 손으로 뱀을 집어 들고 독을 마셔도 아무런 해도 입지 않으며, 또 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
19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20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 대축일 제1독서 (신명10,8-9)


"주님께서는 레위 지파를 따로 가려내셔서, 주님의 계약궤를 나르게 하시고  주님 앞에 서서 당신을 섬기며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그 때문에 레위인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그 대신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 (8~9)

'따로 가려내셔서'로 번역된 '히브띨'(hibdil)'나누다'는 뜻의 '빠달'(badal) 사역형으로서 '나누다', '구별하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별한다는 것죄악된 것이나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분리시켜 거룩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이때 구별의 주체는 바로 거룩하신 하느님이시다.

레위 지파는 바로 거룩하신 하느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직접 구별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룩한 하느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더욱 거룩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레위 지파는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따로 성별(聖別)된 자인데, '따로 가려내셔서'라고 번역된 '히브띨'동사 뒤에는 세 개의 부정사 연계형이 따라와서, 레위 자손을 하느님께서 구별하시는  목적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 첫번째 목적은 본문에 나오는 '라세트'(laseth)이다. '라세트' '~을 위하여'(for)란 뜻의 전치사 '레'(le)'들어 올리다','운반하다'란 뜻의 '나사'(nasah)동사의 부정사 연계형이 합해진 전치사구이다. 

새 성경에는 '라세트' '나르게 하시고' 번역되었는데,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나르기 위하여','들어올리기 위하여'이다. 

'만남의 천막'(성막) 기구 가운데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계약궤' 운반 책임은 특별히 레위 족속 중 크핫 자손에게 맡겨졌다(민수3,31). 

'주님 앞에 서서 당신을 섬기며' 레위인을 하느님께서 구별하신 두번째 목적이다.  여기서 '앞에 서서'라고 번역된 '라아모드 리프네'(laamod liphne)에서  '라아모드''~하기 위하여'(for)란 뜻의 전치사 '레'(le)'서다'는 뜻의 '아마드'부정사 연계형'아모드'가 결합하여 '서기 위하여'란 뜻이 있다. 

그리고 '라프네''얼굴'을 뜻하는 '파님'(phanim)의 연계형전치사 '레'(le)가 결합한 형태로 '~앞에'란 의미이다. 

따라서 '라아모드 리프네'(laamod liphne)는  문자적으로 '앞에 서기 위하여'이나 '~앞에 서다'는 뜻이며 히브리어의 관용적 표현으로서, '시중들다','봉사하다'란 뜻이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레샤르토'(leshartho)'샤라트'(sharath)동사는 강조형으로만 쓰이는 동사로서, 앞에 나오는 '아마드'(amad)와 마찬가지로 '봉사하다' 의미를 지니는데, 특히 성직의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런 의미를 살려서 본문을 번역하면, '그(주님)를 섬기는 성직의 일로 인해 주님 앞에 서서 봉사하기 위하여'이다. 

여기서 유사한 의미를 갖는 '아마드' '샤라트'란 동사가 함께 사용된 것은, 세속적인 일을 포기하고 주님만을 섬기는 레위인의 직무가 매우 소중함을 강조하기 위해서이다.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을 하게 하셨는데, 그것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레위인을 구별하신 세번째 이유가 본문에 나온다.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리고 이날까지(오늘날까지) 당신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려고'이다. 즉 이들에게는 축복을 간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그러나 이 직무는 사제직에 있는 레위인에게만 한정되었으며 (신명21,5; 레위9,22; 민수6,23) 일반 레위인들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레위인들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9ㄱ) '몫'(분깃)에 해당하는 '헬레크'(hellek) '나누다', '분배하다'란 뜻의 동사 '할라크'(hallak)에서 파생한 명사로서, 이스라엘 지파들과 관련해서 사용될 때는 주로 '땅'을 가리킨다(신명12,12; 14,27.29; 18,1; 여호14,4; 18,7).

또한 '상속재산'(가업)에 해당하는 '나할라'(nahalla)'수여하다'란 뜻을  가진 '나할'(nahal)을 그 어원으로 가지며, '소유'란 뜻을 지닌다. 이 어원을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나할라''선물'이란 뉘앙스를 가진다.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가나안 땅은 그들 자신의 공로 때문에 주어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다.


2015년 12월 3일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 대축일


<복음 선포, 선교>  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내리신 마지막 명령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는 신앙인이라면,
온 세상에 가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충실하게 실행해야 합니다.
 


1) 이 말씀에서 '너희'는 '모든 신앙인'입니다.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모든 신앙인의 사명입니다.
사도들과 성직자들과 선교사들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하겠지." 라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교회의 일'이면서 동시에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스테파노 순교 후에 각지로 흩어진 신자들은 숨어 있기만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능동적으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날부터 예루살렘 교회는 큰 박해를 받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 말고는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 한편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1-4)."
 


2) 복음 선포는 '항상, 지금' 해야 하는 일입니다.
나중에 해도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티모 4,2)."
복음을 선포하지 않아도 되는 때란 없습니다.
하느님 나라가 완성될 때까지 꾸준히 해야 하고, '지금' 해야 합니다.
 


3) 복음은 '온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전해 주어야 합니다.
"누구에게는 복음을 전해 주고, 누구에게는 전해 주지 않고"를
마음대로 미리 정할 수는 없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부해서 구원을 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거부한 사람의 책임인데,
처음부터 그것을 예상하고 아예 전해 주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의 잘못입니다.
 


4) 복음은 우리가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되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부자가 될 수 있다." 같은 말은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속의 부귀영화와 성공과 출세를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1,15)."였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
라는 소식이었습니다(사도 2,14-36).
이 두 가지 복음을 하나로 합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가 됩니다.
여기서 '믿으면'이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면"입니다.
 


5) 복음은 구원의 기쁜 소식이기 때문에 '믿음과 기쁨으로' 전해야 합니다.
자기의 '믿음'과 '기쁨'을 이웃과 나누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믿음'을 '말'로 고백하는 일과 '삶'으로 증언하는 일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삶'이 그렇지 않다면, 믿는다는 말은 거짓말이 됩니다.
또 '기쁨'을 말로 표현하는 일과 '삶'으로 기쁨을 드러내는 일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실제로, 진심으로, 기쁨 가득한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6) 복음을 선포하는 일은 예수님의 명령이지만,
명령이라서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은 아닙니다.
복음 선포는 내가 기뻐서 하는 일입니다.
너무 기뻐서, 그래서 그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고, 내가 원해서 하는 일입니다.
 


안드레아 사도가 한 일이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묵은 다음에 안드레아는 베드로에게 가서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라고 말합니다(요한 1,41).
그리고 베드로를 예수님께 데리고 갑니다(요한 1,42).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시키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분명히 안드레아 자신이 너무 기뻐서 형에게 가서 '자랑'을 한 것이고,
'기쁨'을 나누려고 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도 좋은 예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많은 대화를 나눈 그 여인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요한 4,25-26).
아마도 그 여인은 몹시 기뻤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마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자기의 믿음을 전합니다(요한 4,28).
 


7)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마태 18,14).
그리고 하느님 안에서 모든 사람은 가족이고 '한 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만 가족이고 '한 몸'인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한 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이 됩니다.
한 몸의 지체인 내가 다른 지체에게 복음을 전해 주는 일이니,
결국 내가 나에게 하는 일이고, 내가 나를 위해서 하는 일입니다.
('너'를 살리는 일은 곧 '나'를 살리는 일입니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기 때문입니다.)
 


'한 몸'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
원래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실은 자기 자신의 구원을 위한 일이 됩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마태 10,32)."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안다고 증언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 일은,
우리를 안다는(우리가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예수님의 증언을(보증을)
미리 확보해 놓는 일이 됩니다.


 

여러 나라에 선교사로 파견되어 사시는 분들이 미지의 세계에서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의 신앙을 더 분명하게 의식하고 생활하게 된다고 고백합니다. 누가 보아도 그가 선교사임을 드러내는 표지는 언행일치, 곧 그가 하는 행동이 그가 전하는 복음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생각하고 판단하다가 말씀을 선포하는 순간에만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레위인들은 다른 지파들처럼 땅을 유산으로 차지하지 않음으로써 주님께서 그들의 전부임을 드러내었고, 바오로 사도는 복음을 위해서 자유인이면서도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뒤를 이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무수한 선교사들도 같은 이유로 자기들의 나라와 가족과 가진 것 모두를 버리고 낯선 땅에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봉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례력으로 다른 나라에서는 기념일로 지내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축일을 우리나라에서 대축일로 지내는 것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선교 지역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신자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소수의 신자들입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주님의 마지막 말씀에 따라 교회의 선교 사명을 인식하며, 우리의 삶으로 복음의 빛과 기쁨을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선교사로서 주님의 뜻을 끝까지 따른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기도는 우리를 숙연하게 합니다. “주님, 저는 여기 있나이다. 당신은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원하시는 곳이면 어디에나 저를 보내 주십시오. 인도까지라도”(『성무일도』 독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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