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 21,1-4)

2015. 11. 23. 오전 6:06:04

글자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 21,1-4)

가난한 과부의 헌금 성화



제1독서

 연중 마지막 주간인 이번 주에는 다니엘 예언서를 묵상한다. 바빌론에 유배 간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은, 왕궁에서 바빌론 임금을 모시며 살게 되었지만, 한결같이 율법에 충실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누구보다 뛰어난 지혜를 내려 주셨다.(다니엘 1,1-6.8-20)
1 유다 임금 여호야킴의 통치 제삼년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가 쳐들어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2 주님께서는 유다 임금 여호야킴과 하느님의 집 기물 가운데 일부를 그의 손에 넘기셨다. 네부카드네자르는 그들을 신아르 땅, 자기 신의 집으로 끌고 갔다. 그리고 기물들은 자기 신의 보물 창고에 넣었다.
3 그러고 나서 임금은 내시장 아스프나즈에게 분부하여,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왕족과 귀족 몇 사람을 데려오게 하였다. 4 그들은 아무런 흠도 없이 잘생기고, 온갖 지혜를 갖추고 지식을 쌓아 이해력을 지녔을뿐더러, 왕궁에서 임금을 모실 능력이 있으며, 칼데아 문학과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5 임금은 그들이 날마다 먹을 궁중 음식과 술을 정해 주었다. 그렇게 세 해 동안 교육을 받은 뒤에 임금을 섬기게 하였다.
6 그들 가운데 유다의 자손으로는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가 있었다. 8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자기가 더럽혀지지 않게 해 달라고 내시장에게 간청하였다.
9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다. 10 내시장이 다니엘에게 말하였다.
“나는 내 주군이신 임금님이 두렵다. 그분께서 너희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정하셨는데, 너희 얼굴이 너희 또래의 젊은이들보다 못한 것을 보시게 되면, 너희 때문에 임금님 앞에서 내 머리가 위태로워진다.”
11 그래서 다니엘이 감독관에게 청하였다. 그는 내시장이 다니엘과 하난야와 미사엘과 아자르야를 맡긴 사람이었다.
12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13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14 감독관은 그 말대로 열흘 동안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15 열흘이 지나고 나서 보니, 그들이 궁중 음식을 먹는 어느 젊은이보다 용모가 더 좋고 살도 더 올라 있었다. 16 그래서 감독관은 그들이 먹어야 하는 음식과 술을 치우고 줄곧 채소만 주었다.
17 이 네 젊은이에게 하느님께서는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다.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되었다.
18 젊은이들을 데려오도록 임금이 정한 때가 되자, 내시장은 그들을 네부카드네자르 앞으로 데려갔다.
19 임금이 그들과 이야기를 하여 보니, 그 모든 젊은이 가운데에서 다니엘, 하난야, 미사엘, 아자르야만 한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그들이 임금을 모시게 되었다.
20 그들에게 지혜나 예지에 관하여 어떠한 것을 물어보아도, 그들이 온 나라의 어느 요술사나 주술사보다 열 배나 더 낫다는 것을 임금은 알게 되었다.

화답송

다니 3,52.53.54.55.56
◎ 세세 대대에 찬송과 영광을 받으소서.
○ 주님,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
○ 영광스럽고 거룩하신 당신 이름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영광의 성전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거룩한 어좌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커룹 위에 앉으시어 깊은 곳을 살피시는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 하늘의 궁창에서 당신은 찬미받으소서. ◎

복음

성전에서 부자들은 헌금함에 많은 예물을 넣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동전 두 닢을 넣은 과부가 그 누구보다도 많이 넣은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적지만 그녀가 가진 것을 모두 봉헌하였기 때문이다.(루카21,1-4)
그때에 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2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제34주간 월요일 제1독서 (다니1,1-6.8-20)

"부디 이 종들을 열흘 동안만 시험해 보십시오.  저희에게 채소를 주어 먹게 하시고 또 물만 마시게 해 주십시오. (12)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13)

다니엘은 자신을 감독하는 자에게 진지하게 한 가지 제안을 한다. 그것은 특정한 기간을 정해서 임금의 진수성찬을 먹지 않는 자신과 이를 먹는 다른 친구들을 비교해 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열흘 동안'에 해당하는 '야밈 아사라'(yamim asarah)문자 그대로 10일을 의미한다.

다니엘서 1장 14절과 15절에 열흘 동안 시험했다는 사실이 부가적으로 진술되고 있다. 열흘은 동료들과 다른 음식을 먹고 얼굴빛을 통해 그 결과를 드러내기에 충분한 기간이다. 

그러나 고기와 기름진 음식을 먹는 자들보다 채소와 물만을 먹으면서 얼굴빛이 더 좋아지기를 바란다는 것은 비상식적인 일이다. 하지만 다니엘은 그 결과에 대해 전적으로 주권자이신 주 하느님께 온전히 맡기고 그런 제안을 했을 것이다. 여기서 다니엘의 신앙이 얼마나 확고했는지가 드러난다. 

'시험해'에 해당하는 '나쓰'(nas)'시험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나싸'(nasa ;test,prove)의 강조 능동 명령형이다. 

여기서는 윗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하는 뉘앙스가 아니라 뒤에 이어지는 불변사 '나'(na; please)와 더불어 문장을 구성하여 '시험해 보십시오', '시험하실 것을 부탁드립니다'라는 정중한 청원의 의미가 된다. 

말하자면, 특정 기간동안 특정한 대상에게만 시범적으로 어떤 특별한 조치를 취하여 그 조치에 따른 결과를 조사해 본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데 사용되었다. 

'채식을 주어 먹게 하시오' '채식'에 해당하는 '핫제로임'(hazeroim)의 원형 '제로아으'(zeroah)씨를 뿌리는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 '자라으'(zarah)에서 유래한 단어로서 씨를 뿌려 싹을 내는 것, 또한 씨를 맺는 곡물 종류를 나타낸다. 

따라서 이것은 야채(vegetable)만을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육식과 생선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곡식류 및 그 곡식으로 만들어진 빵과 과일류까지 다 포함한다. 이 단어가 여기서는 복수형으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이것이 입증된다.

 이어서 다니엘은 포도주 대신에 물을 줄 것을 청원한다. 다니엘서 1장 8절에서도 지적한 것처럼이교도의 제사와 관련되었을 수도 있으며, 방탕한 생활을 지양하고, 경건하고 거룩한 삶을 영위하게 위해 율법이 금하지 않은 술까지도 거부하며 오로지 물만을 마시기를 원했을 수도 있다. 

'그런 뒤에 궁중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과 저희의 용모를 비교해 보시고' (13) 다니엘은 자신이 시험을 요청한 사안에 대해 자신감있는 태도로 말한다. 다니엘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역사하심을 통해 놀라운 일을 기대하고 있다. 

그는 진수성찬과 포도주를 먹지 않고 채식과 곡식 위주의 식사를 하는 자신과 자기 친구들의 얼굴빛과 건강 상태가 다른 동료들의 그것보다 훨씬 더 좋을 것임을 확신한다. 

여기서 '비교해 보시고'에 해당하는 '웨예라우'(weyerau)'마르예'(marye; '얼굴')의 어원이기도 한 동사 '라아'(raah; '보다')의 수동태 3인칭 복수'(젊은이들의 용모와 저희들의 용모가) 보일 것입니다'라는 의미이다.

즉 얼굴빛과 건강 상태는 감독관이 면밀히 살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확연하게 드러날 정도로 분명하다는 것이다. 다니엘서의 이러한 자신감은 주 하느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 종들을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다니엘은 자신의 신앙적 신념대로 행한 후에 나타나는 결과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바빌론 감독관의 결정에 맡겼다. 여기서 '하십시오'에 해당하는 '아세'(aseh; deal,treat)는  번역 그대로 행하라는 의미인데, 문맥에서는 '처분하십시오'라는 뜻이 들어있다.

이러한 처분은 음식에 관한 결정권뿐 아니라 다니엘과 그 동료들에 대한 징계도 포함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다니엘의 자신들에 대한 처분에 대한 의탁 역시 하느님께 대한 확신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되지않아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자신들의 신앙의 정절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볼 수도 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것을 주저하지 않고 헌금한 과부의 믿음을 높이 칭찬하셨습니다. 그 당시 렙톤은 하루 품삯인 한 데나리온의 144분의 1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추진하다 보면 렙톤 두 닢을 내놓는 사람보다는 한 데나리온을 내놓는 사람이 훨씬 더 도움이 되지요. 설령 과부가 가진 것 모두인 렙톤 두 닢을 내놓았고, 한 데나리온 내놓은 사람은 그가 가진 많은 재산에서 아주 적은 부분만 내놓은 것이라 하더라도 효과 면에서는 후자가 훨씬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이 사실이지요.
물론 이것은 돈의 문제만은 아니며, 시간과 능력과 사랑과 인내 등 여러 면에서도 적용되는 현실입니다. 적은 능력을 다 바치려고 애쓰는 사람보다는 뛰어난 능력의 절반만이라도 내어 주는 사람을 더 먼저 찾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쩔 수 없이 그렇게 결과를 따질 수밖에 없다면, 적어도 그러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부끄러워해야 할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서나 다른 이들에 대해서나 그가 얼마만큼의 효과를 낼 수 있는가를 그 사람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삼는 것은 분명 예수님의 시각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이 세상의 논리와 셈법을 따라가고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 충성을 다하려고 선조들의 신앙을 목숨을 걸고 지키는 다니엘과 그의 동료 세 젊은이에게, 그리고 당신을 철저하게 믿고 신뢰하여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가진 것 모두를 봉헌한 이 가난한 과부에게 이제는 하느님께서 응답하실 차례입니다!   
   


[Band. 이명현상] 고난주간 묵상 - 과부의 두 렙돈

<가난한 과부의 헌금> 송영진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시고 이르셨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루카 21,1-4)."


우리는 사람들이 바치는 헌금의 액수만 볼 때가 많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과 정성을 보십니다.
부자들은 많은 돈을 바쳤고, 과부는 동전 두 닢만 바쳤지만,
마음과 정성을 보면,
부자들은 아주 조금 바친 것이고,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바쳤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비율'을 말씀하셨다고 오해하면 안 됩니다.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이라는 말과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라는 말은,
겉으로만 보면,
가지고 있는 돈과 바치는 돈 사이의 비율을 말씀하신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만일에 예수님께서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라면,
헌금의 액수만 보고 판단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풍족한'이라는 말은, 마음이 재물 쪽에 더 가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부자들이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만 하느님께 바쳤다는 말은,
'마음의 일부만' 하느님께 바쳤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재산의 일부만 바쳤다고 그들을 비난하신 것은 아닙니다.)


또 '빈곤한(가난한, 궁핍한)'이라는 말은,
마음이 재물에서 떠나서 하느님께로만 향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하느님께 바쳤다는 말은,
온 마음을 다 하느님께 바쳤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전 재산을 바쳤다고 그 과부를 칭찬하신 것은 아닙니다.)


복음 말씀에는 예수님께서 그 과부가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바쳤기 때문에
칭찬하신 것처럼 표현되어 있지만,
그것은 표현이 그렇게 된 것일 뿐이고,
실제로는 온 마음과 정성을 다 바쳤기 때문에 칭찬하신 것입니다.
마음과 정성을 헌금의 액수로 판단할 수 없는 것처럼,
가지고 있는 돈과 바치는 돈 사이의 비율로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숫자로는 계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에 그 가난한 과부가 가지고 있던 동전 두 닢 가운데 한 닢만 바쳤다고 해도,
온 마음과 정성을 바친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부자들 가운데 어떤 이가 진심으로 온 마음과 정성을 바쳤다면,

그가 재산의 일부만 바쳤다고 해도 예수님께서는 그를 칭찬하셨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자들이 전 재산을 다 바쳤다고 해도,
그게 자기 과시를 목적으로 한 일이었다면, 또 바친 다음에 생색을 내고 자랑했다면,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꾸짖으셨을 것입니다.
(만일에 어떤 가난한 과부가 순전히 칭찬을 받을 욕심만으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바쳤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를 꾸짖으셨을 것입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과부는 칭찬을 받으려는 욕심도 없었을 것이고,
자기가 칭찬을 받을 줄은 전혀 몰랐을 것입니다.)


"그래도 '비율'이 중요하다. 마음과 정성은 '비율'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또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보고 판단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만일에 그 과부가 동전 두 닢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한 닢도 바치지 않고,
그냥 기도만 하고 갔다면?
한 닢이라도 바쳤어야 했다고 과부를 비난할 것인가?
왜 그랬는지 그 마음과 사정과 형편을 헤아리는 것이 먼저 할 일이 아닌가?
그런 경우에도 예수님께서는 그 과부의 마음을 먼저 보셨을 것이고,
칭찬을 하시든지 꾸짖으시든지 그것은 나중에 하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과 정성'을 '사랑'으로 바꿔서 생각해도 됩니다.
복음 말씀에 나오는 부자들은 하느님을 적게 사랑한 사람들이고,
가난한 과부는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한 사람입니다.
가지고 있던 돈의 일부만 바쳤느냐, 전부 바쳤느냐? 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
전부 바쳤어도 위선일 수 있고, 일부만 바쳤어도 사랑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
이 말은 "전 재산을 바친다고 해도, 또 목숨까지 바친다고 해도,
사랑으로 한 일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에서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공동번역)." 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연상되는데,
이 말씀은 앞에 "사랑하기 때문에" 라는 말을 넣어서 생각해야 할 말씀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다."


순교자 스테파노는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배반자 유다는 목숨을 버렸습니다.
그는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내는 돈이라면 바치는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버리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그 돈을 넣는 헌금함은 '헌금함'이 아니라 '쓰레기통'이 될 수도 있습니다.

~~~~~~~~~~~~~~~~~~~~~~~~~~~~~~~~~~~~~~~~~~~~~~

<매일미사책 ‘오늘의 묵상’에서는,  가진 것 모두를 봉헌한 가난한 과부에게 이제는 하느님께서 응답하실 차례라는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하느님은 이미 우리에게 넘치도록 풍성한 사랑과 은총을 주신 분입니다.  언제나 항상, 봉헌이란 하느님의 응답을 기대하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 우리가 응답하는 행위입니다. (언제나 항상,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가난한 과부의 봉헌은 하느님의 응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받은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복음 (루카21,1-4)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4) 

예루살렘 성전은 이방인의 뜰, 여인의 뜰, 이스라엘의 뜰, 사제들의 뜰 이렇게 네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이방인의 뜰성전의 마당으로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를 하실 때 장사치들과 환전상들을 몰아내셨던 곳으로 이방인들도 들어올 수 있었던 곳이고, 여인의 뜰성전에 들어가기 전의 홀에 해당하는 곳으로 성전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여인들의 장소이며, 이스라엘의 뜰은 성전 안의 회중석에 해당하는 이스라엘의 남자들만들어갈 수 있는 곳이며, 사제들의 뜰성전 안의 제단에 해당하는 사제들만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이들 성전의 네 지역에서 헌금함 바로 여인의 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시다가 갑자기 헌금하는 가난한 과부가 당신의 시야에 들어와 보시게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는 13개의 나팔 모양을 한 헌금함이 있었으며, 각각의  용도와 지향이 그 위에 기록되어 있다. 13개의 헌금함 중에 한 개는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으는 헌금함이었다. 아마도 빈곤한 과부는 일반인들을 위한 자발적인 기부금을 모으는 헌금함에 렙톤 두 닢을 넣었다고 본다.

여기서 '빈곤한'으로 번역한 '페니크란'(penichran; poor)의 원형 '페니크로스'(penichros)극도로 가난한 상태를 나타내는 형용사이며, 당시 '과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경제적 활동이 극히 제한을 받았던 가장 가난한 계층의 사람으로서 늘 구제의 대상이 된 신분이었다. 그리고 '두 렙톤'으로 번역된 '렙타 뒤오'(lepta dyo; two mites)에서 '렙톤'유대 화폐의 최소 단위로서 로마 화폐 과드란스의 2분의 1에 해당한다(마르12,42).

한 렙톤당시 노동자들의 하루 품삯이었던 데나리온의 128분의 1에 해당된다. 그리고 당시의 성전 규정상 한 렙톤을 헌금하는 것은 금지되었기에, 두 렙톤은 당시 헌금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액수의 헌금이었다.

이것은 여기에 등장하는 빈곤한 과부가 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이었는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적 통찰력으로 두 렙톤이  그 과부의 생활비 전부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음을 아셨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21장 4절에서 그 과부가 가장 많은 헌금을 했다고 판정하신 이유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신다.  예수님께서 판정을 내리는 두 대상의 형편과 관련된 두 단어가 나온다.  

하나는 '풍족한'으로 번역된 '페릿슈온토스'(perisseuontos; abundance; wealth)이고, 다른 하나는 '궁핍한'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토스'(hysterematos; penuary; poverty)이다.

'페릿슈온토스'(perisseuntos)의 원형 '페릿슈오'(perisseuo)'양과 수를 초과하다'(exceed)는 뜻으로 어떤 것이 풍부하여 흘러 넘치는 상태를 가리키는 단어이다.

말하자면 부자들의 경제적인 상태가 흘러 넘칠 정도로 풍부했다는 것을 표현하는 단어이다. 그들은 이렇게 흘러 넘치는 재물 중에 일부를 하느님께 바쳤다.  이것과 대조를 이루는 '궁핍한'으로 번역된 '휘스테레마토스'의 원형 '휘스테레마'(hysterema)'부족', '모자람'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물질이 부족해 기본적인 필요조차 채우지 못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말하자면 과부의 철저하게 빈곤한 삶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단어이다. 모든 것이 부족한 과부는 너무나 빈곤한 가운데 헌금을 바쳤는데, 그것은 과부의 생활비 전부였다.

여기서 '생활비'로 번역된 '비온'(bion)의 원형 '비오스'(bios)'삶', '생명' 자체를 가리키거나, 또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자원'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 과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질마저 모두 바쳤고, 이것은 그녀의 생명을 바치는 것과 같음을 가리킨다.

이렇게 과부는 양적인 면에서 부자의 헌금에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은 금액을 하느님께 바쳤지만, 그것의 가치는 절대적 양의 개념에 있어서 흘런 넘치는 부자의 헌금보다 더 귀한 것을 바치는 자들의 마음과 태도로 평가되어야 한다.

인간의 겉이 아니라 속 마음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부자한테는 있으나마나한 헌금과, 과부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헌금의 가치를 절대적 양의 개념으로 평가하지 않으시고, 그 바치는 자의 마음을 기준으로 평가하신 것이다.


가난한 과부의 헌금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루카 21,3)

한해를 마무리하고 정리해야 하는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맘 때가 되면 올 한 해를 잘 살았다는 기쁨보다는
또 이렇게밖에 못살았다는 죄스러움이 먼저 우리를 서슬프게 만듭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산다고 살았는데 먹고 사는데 바쁘다보니
또 경제여건도 좋지 않다보니
하느님과 이웃에게 눈을 돌릴 마음의 여유를 많이 가질 수가 없었겠지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하느님과 교회와 성직자들을 위해 작은 정성을 봉헌했고 기도도 올렸었지요.
그리고 이웃을 위해 부끄러울 정도의 작은 나눔도 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보다는 더 잘 하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더 사랑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죄를 범하고 살아왔다는 것이 내내 맘에 걸리지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부자의 헌금보다
우리같이 보잘것 없는 과부의 헌금을 더 높게 평가하십니다.

그러니 너무 서글퍼하지 말고 우리의 쥐꼬리만한 정성도
크게 치하하시는 주님의 너그러우심에 우리를 내맡기며 감사드립시다.
그리고 내년에는
좀더 열심히 해보겠노라고 다짐하는 오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말씀묵상

목록 전체보기 →
[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박해 예고 (루카 21,12-19)15.11.25조회 46[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성전의 파괴 예고 (루카 21,5-11)15.11.24조회 46[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 21,1-4)15.11.23조회 46[연중 제33주간 토요일]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15.11.21조회 52[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전 정화 (루카 19,45-48)15.11.20조회 46[연중 제33주간 목요일]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 (루카 19,41-44)15.11.19조회 46[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 (루카 19,11ㄴ-28)15.11.18조회 47[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 19,1-10)15.11.17조회 109[연중 제33주간 월요일]예리코 소경치유 (루카 18,35-43)15.11.16조회 73[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기도 (루카 18,1-8)15.11.14조회 144[연중 제32주간 금요일]재림<再臨 >(루카 17,26-37)15.11.13조회 129[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15.11.12조회 47[연중 제32주간 수요일]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15.11.11조회 48[연중 제32주간 화요일]해야 할 일 (루카 17,7-10)15.11.10조회 285(2015. 11. 9. 월)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15.11.09조회 351[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루카 16,9ㄴ-15)15.11.07조회 115[연중 제31주간 금요일]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8)15.11.06조회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