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

2015. 11. 12. 오전 6:22:49

글자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

 

제1독서

지혜서 7ㅡ9장은 지혜에 대한 찬가이다. 지혜는 하느님으로부터 온다. 지혜가 곧 하느님은 아니지만, 지혜는 하느님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으로서 사람들을 하느님의 벗이 되고 예언자가 되게 한다.(지혜 7,22ㄴㅡ8,1)
22 지혜 안에 있는 정신은 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민첩하고 명료하고 청절하며, 분명하고 손상될 수 없으며 선을 사랑하고 예리하며, 23 자유롭고 자비롭고 인자하며, 항구하고 확고하고 평온하며, 전능하고 모든 것을 살핀다. 또 명석하고 깨끗하며 아주 섬세한 정신들을 모두 통찰한다. 24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5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6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 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7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8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9 지혜는 해보다 아름답고, 어떠한 별자리보다 빼어나며, 빛과 견주어 보아도 그보다 더 밝음을 알 수 있다. 30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8,1 지혜는 세상 끝에서 끝까지 힘차게 퍼져 가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화답송

시편 119(118),89.90.91.130.135.175(◎ 89ㄱ)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옵니다.
○ 주님, 당신 말씀은 영원하시고, 하늘에 든든히 세워졌나이다. ◎
○ 당신의 진실 대대로 이어지고, 당신이 세우신 땅 굳게 서 있나이다. ◎
○ 당신 법규대로 오늘까지 서 있나이다. 만물이 당신을 섬기나이다. ◎
○ 당신 말씀 밝히시면 그 빛으로, 미련한 이들을 깨우치나이다. ◎
○ 당신 얼굴 이 종에게 빛나게 하시고, 당신 법령을 저에게 가르쳐 주소서. ◎
○ 이 목숨 살려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당신 법규로 저를 도와주소서. ◎

복음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날짜와 장소를 규정할 수는 없다고 말씀하신다. 그날은 갑작스런 한순간에 세상 모든 곳에 오게 될 것이다. 또한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영광의 날에 앞서 그분의 수난과 죽음이 있어야 한다.(루카 17,20-25)
그때에 20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에게서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질문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날을 하루라도 보려고 갈망할 때가 오겠지만 보지 못할 것이다. 23 사람들이 너희에게 ‘보라, 저기에 계시다.’, 또는 ‘보라, 여기에 계시다.’ 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나서지도 말고 따라가지도 마라. 24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25 그러나 그는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

연중32주간목요일 제1독서 (지혜7,22ㄴ-8,1)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 (24) 지혜는 하느님 권능의 숨결이고, 전능하신 분의 영광의 순전한 발산이어서, 어떠한 오점도 그 안으로 기어들지 못한다.  (25) 지혜는 영원한 빛의 광채이고, 하느님께서 하시는 활동의 티없는 거울이며, 하느님 선하심의 모상이다. (26) 지혜는 혼자이면서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자신 안에 머무르면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며,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2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지혜와 함께 사는 사람만 사랑하신다.  (28) 밤은 빛을 밀어내지만,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30)

 지혜서 7장 22ㄴ절 - 8장 1절까지는 '지혜의 본성'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묘사된다. 첫째, 저자는 지혜서 7장 22ㄴ절-23절에서 지혜의 21가지 속성(명석하고 거룩하며 유일하고 다양하고 섬세하며 등등)을 밝히고, 이어서 지혜를 세상의 영혼(지혜1,7참조)동일시하여 "지혜는 어떠한 움직임보다 재빠르고(민첩하고), 그 순수함으로 모든 것을 통달하고 통찰한다"라고 한다.

그 다음 지혜서 7장 25-26절에서 저자는 '숨결', '발산', '광채', '거울', '모상'과 같은 용어들을 사용하여 지혜가 하느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표현한다. 그러고 나면 지혜서 7장 27-28절에서 "지혜는 대대로 거룩한 영혼들 안으로 들어가, 그들을 하느님의 벗과 예언자로 만든다" 라고 하면서 지혜가 사람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는 사실을 묘사한다.

그리고 지혜서 7장 29-8장1절에서 저자는 지혜가 지닌 우주적 차원을 다시 언급하면서 지혜는 해와 별과 빛보다 빼어나며 "만물을 훌륭히 통솔한다." 라고 지적한다. 또한 지혜에는 도덕적 차원도 있다. 그래서 "악은 지혜를 이겨 내지 못한다." 라고 말한다.

이러한 묘사들은 지혜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위해 실천적인 조언을 주는 것 이상으로 부각시키고, 지혜를 우주적, 역사적, 도덕적, 신학적 의미를 가진 인격체가 되게 한다.

지혜는 분명 이스라엘의 하느님 외에 다른 어떤 여신이 아니다. 저자는 유일신 사상을 믿는 유다인이다. 저자는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고 만물의 주님이시며, 유일하게 참된 하느님이시라고 믿는다.

지혜는 정의나 자비처럼 기껏해야 하느님의 속성이다. 하지만 지혜에는 그 이상의 무엇이 있는 것 같다. 지혜가 여성의 특성을 갖는 것은 단순히 '지혜'를 뜻하는 히브리어 '호크마'(hokma)그리스어 '소피아'(sophia) 명사의 성이 여성이라는 사실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다. 

물론 지혜는 여신 '이시스'(isis; 많은 학자들은 지혜서 7장 22-24절에서 이시스의 속성에 해당하는 것을 제시한다고 본다)나 다른 여성 신들을 가리키는 유다인들의 용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의인화된 지혜의 속성들을 예수님께 부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콜로1,15-20; 요한1,1-18; 히브1,1-4참조).


 

<하느님의 나라>송영진 모세 신부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질문하자(루카 17,20),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0-21)." (복음서에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은 것으로 되어 있지만, 아마도 '어떻게' 오느냐? 도 물었던 것 같습니다.) 

1) '언제' 오느냐는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와 있다."입니다.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때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이 선포는,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선포이고, 또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이 세상 근처 어디쯤에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태오복음서 저자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를 기록하면서 다음과 같은 이사야서의 구절을 인용했습니다. "어둠 속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고장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 빛이 떠올랐다(이사 9,1; 마태 4,16)." 죽음의 어둠 속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에게서 생명의 빛을 보게 되었을 때, 바로 그때가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 때입니다. 밤에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메시아 탄생이라는 기쁜 소식을 선포했을 때(루카 2,8-14), 그때 그 목자들은 어둠 속에서 주님의 빛을 보았습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가 시작된 때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또는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고했을 때입니다.

2) 하느님의 나라가 '어떻게' 오느냐는 질문은, 그 나라의 '완성'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는 질문일 수도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즉 "하느님의 나라는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완성되지 않는다."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어도 인간들이 그것을 모르고 있을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뒤의 24절에, "번개가 치면 하늘 이쪽 끝에서 하늘 저쪽 끝까지 비추는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날에 그러할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번개가 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의 나라가 완성되는 날이 오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모든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루카복음서 저자는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복음을 선포하실 때 이사야서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셨다고 기록했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 61,1-2; 루카 4,18-19)."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해방 선포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모든 사람이 참된 자유와 해방을 얻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복음을(해방을) 선포하셨어도 이 세상은 겉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하느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는 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 개인의 마음속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그 변화들이 모이고 합해져서 이 세상이 변화됩니다. '저절로 자라는 씨앗의 비유'(마르 4,26-29), '겨자씨의 비유'(루카 13,18-19), '누룩의 비유'(루카 13,20-21)' 등은 바로 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한 비유들입니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일어나고 있는 변화. 

3)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라는 말씀에는 그 나라가 이미 와 있다는 뜻도 들어 있고, 그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들과는 다른 나라라는 뜻도 들어 있고, 우리가 우리 가운데에서(이 세상에서) 그 나라가 완성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뜻도 들어 있습니다. 

(1) 하느님의 나라는, 정치인들이 정부를 만들고 법과 제도를 만들어서 다스리는 그런 나라가 아닙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통치권에 참여하는 나라입니다. 모두가 시민이고, 모두가 통치권자입니다. 그 나라에는 지배 계급도 피지배 계급도 없습니다. 상류층도 하류층도 없습니다. 부유층도 빈곤층도 없습니다. 묵시록에 "그들은 영원무궁토록 다스릴 것입니다(묵시 22,5)." 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그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2)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바치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기를, 또 '아버지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있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동시에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의 나라이기 때문에 하느님(예수님)과 함께 우리도 노력해서 건설해야 하고, 완성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와 평화의 완전한 실현을 위해서 일해야 하고,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서로가 서로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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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성 요사팟 주교 순교자 기념일 복음 (루카17,20-25)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20ㄴ~21)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때'에 대하여 질문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때에 대해서는 아무 대답을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한 대답을 하신다. 하느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해 모르고, 그 도래의 시기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인식을 잘못하고 있음을 먼저 가르쳐 주신다.여기서 '눈에 보이는 모습'에 해당하는 '파라테레세오스'(paratereseos; observation)의 원형 '파라테레시스'(parateresis)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 방법으로서의 '관찰'이라는 뜻이다. 특히 여기서는 표징들에 대한 관찰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 

바리사이들의 질문 속에는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 어떤 징조가 나타나지 않겠느냐?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대답하신다. 이것은 하느님의 나라가 인간이 가시적으로 어떤 표징들을 주의 깊게 관찰해 내어서 그 정확한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바리사이들을 포함한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께서 메시야를 통해 선민 이스라엘 가운데 가시적인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시고, 죽은 자들을 생명으로 다시 일으키시며, 새 하늘과 새 땅을 세우시는 지극히 복된 나라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으로 말미암아 이미 도래한 하느님의 나라유대인들이 흔히 생각하듯, 인간의 물리적 시각으로 확인되는 세상적인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여기서 미래에 당신의 재림을 통해 온전히 완성되어져 나타날 하느님의 나라를 부정하신 게 아니다. 다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도래로 이미 이 땅 가운데 영적인 하느님의 나라, 당신 안에서 하느님의 통치가 실현되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의 영적 무지와 하느님의 나라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지적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여기서 '가운데에'에 해당하는 '엔토스'(entos; in the midst of; among; within)'안에'(within)라고 번역하면, 하느님의 나라가 '개인의 내부에', '마음 안에'라는 뜻이 되고, '가운데에'라고 번역하면, '너희 가운데에' 혹은 '이 세상 가운데'라는 뜻이 된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바리사이들에게 말씀하셨을지라도, 당시 예수님 앞에는 함께 동행한 제자들도 있었기 때문에, 후자가 더 타당한 번역이라고 하겠다. 그리고 '있다'에 해당하는 '에스틴'(estin; is)은 원형 '에이미'(eimi)현재 시제이다. 이 시제는 하느님의 나라의 미래적 측면보다는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 즉 현존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인격과 그의 활동을 통해 현재 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구원과 통치를 인정하며,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는 이들 가운데 이미 임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바로 이 순간도 우리는 실제로 하느님의 나라를 체험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루카 17,21)

여러분은 하느님 나라를 어떻게 그려보고 계시나요?
내가 죽은 후에 성실하고 착하게 살았다면 약간의 연옥형벌을 거치고 나서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찬 멋지고 아름다운 그런 나라로 여기시겠지요?

네. 그렇게 되기를 저도 소망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하느님 나라가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하시네요.
이게 무슨 뜻일까요?

하느님 나라는 어떤 장소적인 개념이라기보다는 하느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이고
하느님이 계시는 나라란 의미입니다.
하느님은 예수님과 더불어'우리 가운데 계시게' 되었답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저 세상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미 '우리 가운데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하느님께서 내 안에 우리 가정 안에 우리 공동체 안에 함께 계심을 믿는다면
그곳에서 하느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체험함으로서
하느님 나라의 시작을 깊이 느끼는 하루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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