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31주간수요일]버림과 따름 (루카14,25-33)
이웃과의 관계에서, 모든 계명은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말씀으로 요약된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로마13,8-10)
형제 여러분, 8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9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시편 112(111),1ㄴㄷ-2.4-5.9(◎ 5ㄱ)
◎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는 이!
○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그의 후손은 땅에서 융성하고, 올곧은 세대는 복을 받으리라. ◎
○ 올곧은 이들에게는 어둠 속에서 빛이 솟으리라. 그 빛은 너그럽고 자비로우며 의롭다네. 잘되리라, 후하게 꾸어 주고, 자기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이! ◎
○ 가난한 이에게 넉넉히 나누어 주니, 그의 의로움은 길이 이어지고, 그의 뿔은 영광 속에 높이 들리리라. ◎
하느님 나라의 초대에 응하고자 여러 가지를 포기해야 하듯이, 예수님을 따르려면 부모 형제나 자기 자신마저 미워해야 한다. 제자가 되려는 사람은 제 십자가를 짊어져야 하므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서기 전에 먼저 그에 따르는 요구들을 헤아려야 하며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한다.(루카 14,25-33)
그때에 25 많은 군중이 예수님과 함께 길을 가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서 이르셨다. 26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7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8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29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30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 31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32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33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오늘의 묵상>
탑을 세우려면 분명 공사에 들어가는 경비가 있는데, 그것은 계산하지 않고 무턱대고 작업을 시작해서는 안 되겠지요. 전쟁을 할 때에도 병력을 먼저 헤아려 보고, 승산이 없으면 전투를 시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세리와 창녀와도 어울리시면서 율법 학자들이 배척하던 이들에게도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시고 그들을 받아 주시지만, 제자가 되어 당신을 따르겠다고 나서는 이들을 모두 받아 주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시자, 그는 따라나서지 못했고(루카 18,22-23 참조),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고 오겠다는 사람과,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는 이에게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 하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을 제자로 받아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결단은 물론 그분을 끝까지 따를 각오가 되어 있는지 깊은 성찰도 필요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주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해서는 안 되며, 세상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끊고, 주님께서 주시는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며 재산을 포기해야 합니다. 곧 우리 삶에서 하느님이 첫째가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주님을 따르는 데에도 계획이 꼭 필요합니다. 그분을 따르려고 세운 계획과 내린 결단은 무엇이며 이를 위하여 어떤 노력을 하고 계신지요? 구원이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동의와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13,8-10)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8)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3장 1-7절에서 하느님의 자녀라 할지라도,성도는 세상에서는 한 국가에 속한 국민이므로 세상 권위에 대한 의무를 다할 것을 권면했다.
이제 이어지는 로마서 13장 8-10절에서는 세상에서의 이웃에 대한 성도의 자세가 사랑에 근거해야 함을 교훈한다. 로마서 13장 8절의 상반절은 사랑의 빚 외에는 어떠한 의무도 해결하지 않고 남겨 두어서는 안됨을 권면한다.
사도 바오로는 앞의 6절과 7절에서 공공 부채라고 할 수 있는 세금 문제를 다루었고, 이어서 개인 부채에 관해 언급한다. '빚을 지지'로 번역된 '오페일레테'(opeillete)는 '빚지다', '의무가 있다'를 뜻하는 '오페일로'(opeillo)의 현재 시제 명령이다.
고대 희랍어 문헌에서 이 동사는 두 가지 의미로 쓰였다. 목적어를 수반하여 '빚지다'와 부정사를 수반하여 '은혜를 입다'가 그것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넓게 보면 금전적 채무 뿐만 아니라 개인이나 국가의 법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원문에는 '아무에게도'로 번역된 '메데니'(medeni)가 문두에 나와 강조되어 있다. 이것은 성도인 우리가 형제든지 이웃이든지 빚을 지는 것이 좋지 못함을 강조한다.
공공 부채인 세금이 연체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하고 재정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빚지지 않도록 노력하며, 무엇이든지 빚진 것은 빨리 갚아야 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이웃에게 진 빚은 빨리 갚지 않으면 불화와 긴장의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일은 사탄에게 훼방할 수 있는 좋은 빌미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로마서 13장 8절은 재정적 의미의 빚을 자제시키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보다 큰 강조점이 도덕적 채무의 허용에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사도 바오로는 도덕적 측면을 잘 보여주는 '사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다른 면에 있어서는 채무 관계가 없어야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은 도덕적 측면에서는 서로 베풀고 베풂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하고, 또한 그러한 삶을 살 수 밖에 없다는 강조적 표현을 하고 있다. 즉 사도 바오로는 빚을 지지 말도록 권하면서 '서로 사랑하는 것'에서만은 예외를 두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번역된 '토 알렐루스 아가판'(to allellus agapan)에서 '아가판'(agapan)은 '사랑하다'를 뜻하는 '아가파오'(agapao)의 부정사이며, 중성 관사 '토'(to)와 함께 쓰였다.
일찌기 Origenes는 '사랑의 빚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남아 있고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가 매일 주고 받는 영원한 것' 이라고 했다.
우리 중에 이 사랑의 채무를 완전히 변제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진행형이고 계속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도 바오로는 현재 부정사 '아가판'(agapan)을 통해 이같은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며 이것이 새 계명이라고 하셨다(요한13,34-35).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13장 8절에서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보여준다.
여기 '남을'로 번역된 '톤 헤테론'(ton heteron)은 나와 구별되는 이웃에 대해서만 쓸 수 있다. 그리스도의 법은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며(1코린10,24), 이웃을 위해 자신을 바치는 것은 율법을 완성하는 통로가 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으로 번역된 '호 아가톤'(ho agaton)은 '사랑하다'를 뜻하는 '아가파오'(agapao)에 관사를 가진 현재분사이므로, 진행 중의 동작을 나타낸다. 사랑하는 것은 과거나 미래 시제가 있어서는 안되고, 현재 시제가 될 때에만 가치가 있다.
사도 바오로가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그 사랑을 통해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것과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사랑한다면 그들 역시 율법을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교회나 사회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완전하게 결합시켜 줄 수 있는 재료는 사랑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가 한결같이 서로를 사랑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사랑하도록 힘써야 한다. 그리고 조건없이 사랑해야 한다.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복음 (루카14,25-33)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6~27)
루카 복음 14장 26절에서 '미워하지'에 해당하는 '미세이'(misei; hate)의 원형 '미세오'(miseo)는 단순히 '미워하다'(히브1,9)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여기에서 '미세오'라는 동사는 셈족어에서 자주 사용되는 과장법적 표현으로 쓰였고, 실제적으로는 '덜 사랑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마태6,24).
본절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37절에 나오는 '더 사랑하다'는 표현 속에서 그 어떤 대상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까 본절은 마태오 복음 사가의 표현과 관련지어 볼 때에도, 여기에 열거된 사람들을 실제로 미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보다 덜 사랑하라는 셈어적 표현인 것이다.
여기서 '미워하다'는 말이 가리키는 '덜 사랑하다'는 뜻은 상대적으로 가장 우선 순위에 놓아야 할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라는 것이다.말하자면, 모든 것에 우선하여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강조적 표현이다.
그러나 '마세오' 동사는 위의 의미 뿐만 아니라 '근본적 단절'이라는 뜻도 있기에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본절에 열거된 대상들과 단절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뜻도 들어 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무엇보다 우선하여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제자임을 강조하기 위하여, 오히려 예수님 외에 다른 모든 것을 '미워하라'는 셈어적 과장법을 사용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루카 복음 14장 27절은 26절에 이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갖추어야 할 두번째 조건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짊어지고'에 해당하는 '바스타제이'(bastazei; bear; carry)의 원형 '바스타조'(bastazo)는 '옮겨가다', '참다', '짐을 지다'는 뜻으로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의 고난의 모습을 다각도로 묘사한다.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마태오 복음 10장 38절에서는 '취하다'는 뜻의 '람바노'(lambano) 동사를 사용하고 있으며, 또한 루카 복음 14장 27절의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표현 대신에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그러니까 두 구절을 비교해 보면, 마태오 보다 루카 복음사가가 더욱 더 강한 어조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즉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고난이라도 감수해야 함을 당시 로마 세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이었던 십자가 처형까지 예를 들면서 강조하신 것이다.
<버림과 따름> 송영진 모세 신부
신앙생활과 가족에 대한 사랑이 충돌하는 것은, 또 신앙생활과 세속 생활이 충돌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무척 힘든 일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6)."
'누구든지' 라는 말은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은 '모든 신앙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나에게 오면서'는 '신앙생활을 하면서'입니다. '미워하지 않으면'은 '세속적이고 육적인 집착을 버리지 않으면'입니다.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이고,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받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가족이 어떤 죄를 지을 때,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가족이기 때문에) 그 죄를 옹호하거나, 죄를 함께 짓는다면, 그것은 가족에 대해서 세속적으로 집착하는 일이 됩니다. 그런 집착을 버리는 것이 바로 가족을 미워한다는 말의 참 뜻입니다.
가족은 하느님께서 주신 최고의 선물이고, 인생의 동반자입니다. 그러니 미워해도 안 되고, 버려도 안 됩니다. 끝까지, 즉 하느님 나라까지 함께 가야 합니다. 우리는 가족을 사랑해야 하고, 사랑하는 가족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을 막아야 하고, 가족과 함께 구원을 향해서 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 속에 있는, 가족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의 진짜 뜻은, "가족을 '참으로'(제대로) 사랑해야 한다."입니다.(예수님 말씀은 반어법을 사용하신 말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 목숨'이라는 말은, 세속적이고 육적인 목숨을 뜻하고, 넓은 뜻으로는 지상에서의 모든 '삶'을 뜻합니다. 그래서 자기 목숨을 미워한다는 말은, 세속의 인생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세속을 초월하는 신앙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세속 생활과 신앙생활을 갈등 없이 잘 조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만일에 세속 생활을 인생의 중심에 놓는다면, 그러면서 쉽게 할 수 있을 때에만 신앙생활을 한다면, 신앙생활은 취미생활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신앙생활을 인생의 중심에 놓는다면, 아마도 세속의 박해를 받거나 따돌림을 당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
"너희 가운데 누가 탑을 세우려고 하면, 공사를 마칠 만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앉아서 계산해 보지 않느냐? 그러지 않으면 기초만 놓은 채 마치지 못하여, 보는 이마다 그를 비웃기 시작하며, '저 사람은 세우는 일을 시작만 해 놓고 마치지는 못하였군.' 할 것이다(루카 14,28-30)."
이 말씀은 "하려면 제대로 하고, 하다가 그만 두려면 처음부터 하지 마라." 라는 뜻도 아니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자신이 없으면 아예 시작하지도 마라." 라는 뜻도 아닙니다. "가다가 중간에 멈추면 처음부터 가지 않은 것과 같다. 하느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갈 때까지 멈추지 말고 전력을 다해서 노력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들어가도 그만, 안 들어가도 그만인 나라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은 얻어도 그만, 얻지 못해도 그만인 생명이 아닙니다.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 완전히 들어가지 않고 근처 어디쯤에서 멈추면, 그것은 그냥 못 들어간 것이 될 뿐입니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면 '밖'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강조하시는 것은 "충분한 경비가 있는지 먼저 계산하여라."가 아니라, "어떻게든 공사를 마쳐야 한다."입니다.
신앙생활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어려운 일입니다. 재능이 많다고 해서, 여건과 환경이 좋다고 해서 신앙생활이 남들보다 더 쉬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또 하느님의 은총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신앙생활을 쉽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성모님이라고 해서 신앙생활이 남들보다 더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끝까지 전력을 다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말씀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바로 앞에 있는,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27)." 라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 자기에게 오는 그를 만 명으로 맞설 수 있는지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지 않겠느냐? 맞설 수 없겠으면, 그 임금이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평화 협정을 청할 것이다.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카 14,31-33)."
이 말씀은, "하느님께 맞서려고 하지 마라.하느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여라." 라는 뜻입니다. 무신론자들과 복음을 믿지 않는 자들과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모두 하느님께 맞서려고 하는 자들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과 맞서서 싸우면 백 퍼센트 멸망입니다. 그러니 믿고, 회개하고, 믿음을 실천하고, 구원을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아직 멀리 있을 때'는 '너무 늦기 전에'이고, 이 말은 '바로 지금'을 뜻합니다. 자기 소유를 다 버려야 한다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지상의 허무한 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형제 여러분,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로마 13,8)
여러분은 빚이 많나요?
집을 얻는다고, 자식들 교육시키고, 시집장가 보낸다고
이런저런 빚이 조금씩은 있겠지요?
자본주의 사회는 빚더미 사회입니다.
빚을 잘 활용할 줄 알아야 지혜롭게 살 수 있다네요.
국가도 빚쟁이, 기업들도 빚쟁이, 가정들도 빚쟁이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오늘 빚지지 말라고 하시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모르고 하는 말이니
빚 조금 있다고 너무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우리 모두가 사랑의 빚쟁이임을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것이 사랑의 빚 아닐까요?
그러니 우리는 영원한 사랑의 빚쟁이일 수밖에 없답니다.
오늘도 사랑의 빚을 지고
그 빚을 최선을 다해 갚아나가는 노력을 해야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우리가 나중에 하느님 앞에 셈바쳐야 할 것은
내가 갚아야 할 돈이 얼마냐가 아니라 내가 받은 사랑을
나는 얼마나 갚으려 노력했느냐가 아니겠습니까.
자, 오늘도 우리가 받은 사랑에 깊이 감사하며
나도 다른 사람에게 나의 작은 사랑을 나눔으로써
사랑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아 나가도록 합시다.
사랑의 빚은 일시불이 아니라 매일 죽을 때까지
장기저리로 갚아야하는 하느님 나라의 금융상품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