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수종병자 치유 (루카 14,1-6)

2015. 10. 30. 오전 1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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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수종병자 치유 (루카 14,1-6) [테마묵상(다해) 10-10-29] - 치유받은 수종병자의 기도

로마서 9―11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구원 역사 안에서 이스라엘과 관련된 하느님의 계획을 언급한다. 그는 동포인 이스라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께서 자기들이 기다려 온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그들을 보며 안타까워한다. 사실 예수님께서도 육으로는 이스라엘 조상들에게서 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로마 9,1-5)
형제 여러분, 1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2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3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4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 영광, 여러 계약, 율법, 예배, 여러 약속이 그들에게 주어졌습니다. 5 그들은 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으로는 바로 그들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계시는 하느님으로서 영원히 찬미받으실 분이십니다. 아멘.

시편 147(146-147),12-13.14-15.19-20ㄱㄴ(◎ 12ㄱ)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루살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시온아, 네 하느님을 찬양하여라. 그분은 네 성문의 빗장을 튼튼하게 하시고, 네 안에 사는 아들들에게 복을 내리신다. ◎
○ 주님은 네 강토에 평화를 주시고, 기름진 밀로 너를 배불리신다. 당신 말씀 세상에 보내시니, 그 말씀 빠르게도 달려가네. ◎
○ 주님은 당신 말씀 야곱에게, 규칙과 계명 이스라엘에게 알리신다. 어느 민족에게 이같이 하셨던가? 그들은 계명을 알지 못하네. ◎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바리사이의 집에서 수종을 앓는 병자를 고쳐 주신다. 생명을 아끼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이기에 안식일 규정이 이를 가로막지는 못한다.(루카14,1-6)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2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3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5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6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

물에 빠진 생명을 건져 내려는 인간의 타고난 연민을 과연 무엇이 막을 수 있을까요?
우물에 빠진 사람은 물론이고 물에 빠진 소라도 끌어내는 것은 계명을 거론하기 전에 사람이라면 당연히 저절로 하게 되는 행동이기에, 물에 빠진 생명을 살려 내야 하는지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것입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한지 아닌지 물으시는 예수님의 질문에 바리사이들이 대답하지 못하는 것도, 바로 그들 스스로도 당연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그들은 안식일 계명을 내세우며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의 본성을 억누르려 합니다.
바리사이들이 그렇게까지 안식일 계명을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이 계명을 지킴으로써 어떤 가치를 수호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계명을 준수함으로써 돈독한 신앙을 드러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계명을 지키려고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것을 금한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방식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양들이 생명을 얻고 또 얻어 넘치도록 얻게 하려고”(요한 10,10) 오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사랑하는 마음과 노력을 막지 말라고 가르치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이러한 모습으로 대표되는 이스라엘의 태도 때문일까요? 이스라엘은 하느님께 선택과 약속을 받은 백성이지만, 이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실현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동족 이스라엘을 향해 바리사이 출신 바오로는,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하고 자신의 안타까운 마음을 고백합니다.      

<수종을 앓는 이를 안식일에 고치시다.>  송영진 모세 신부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마침 그분 앞에 수종을 앓는 사람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다음,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그들은 이 말씀에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였다.(루카 14,2-6)>

이 이야기는 지난 10월 26일의 복음 말씀이었던, 루카복음 13장 10절-17절, '등 굽은 여자를 안식일에 고쳐 주시다.'와 거의 같습니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셨다는 점이 같고, '안식일일지라도' 병자를 고쳐 주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이 같습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라는 질문의 정답은 "합당하다."입니다. 그러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침묵을 지킨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모습은 합당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지만 말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침묵에는 '적대감'이 들어 있습니다.

등 굽은 여자를 고쳐 주신 이야기를 보면, 회당장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일하는 날이 엿새나 있습니다. 그러니 그 엿새 동안에 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안식일에는 안 됩니다(루카 13,14)."  (그 회당장은 예수님께 직접 말하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했습니다.)

회당장의 말은, "안식일은 일하는 날이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에는 절대로, 무조건, 어떤 '일'도 하면 안 된다는 것이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확고부동한 '신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병자를 고쳐 주는 것을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병자 치료를 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그들도 목숨이 위험한 응급 환자의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안식일에도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된 '수종을 앓는 이'는 응급 환자가 아닙니다. ('등 굽은 여자'도 응급 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은 "응급 환자가 아니더라도 병자의 병을 고쳐 주는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요일과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이다."입니다. 여기서 '안식일일지라도' 라는 말은 "안식일이든지 아니든지 간에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이든지 아니든지 항상 해야 하는 일입니다.)

안식일 율법에 관한 논쟁을 읽을 때마다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렇게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히게 되었을까?

어떻든 당시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은 목숨보다 더 중요한, 지상 최고의 '이데올로기'였습니다.(안식일뿐만 아니라 '할례'도 그런 이데올로기였습니다.) 그들은 그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하느님도, 하느님의 뜻도, 계명과 율법의 근본정신도 다 잊어버렸습니다. 그냥 자기들끼리 그렇게 살았다면 그들만의 문제로 그쳤을 텐데, 백성들에게 자기들의 사상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자기들의 이데올로기를 지키기 위해서 하느님을 죽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볼 때가 있습니다. 이념과 사상에 사로잡혀서 정말로 중요한 시민의 인권, 자유, 정의, 행복 등을 모두 무시하거나 짓밟는 일이 자주 생긴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념과 사상을 민주주의보다, 또 헌법보다 더 위에 모시고 사는 자들, 그런 자들은 현대판 바리사이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의 그리스도교에는 그런 모습이 없을까? 많습니다. 지난 8월 20일의 매일미사 책에 있는 '오늘의 묵상'이 좋은 예입니다. 그 글을 보면, 판관 입타가 잘못된 서원을 하는 바람에 딸을 죽인 일에 대해서 "한 번 주님께 서원한 것은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설명해 놓았는데, 이것은, 잘못되고 무효인 서원이라도 한 번 서원을 했다면, 그것을 깨면 안 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힌 어리석은 설명이고, 이것도 일종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모습입니다.

(판관 입타의 서원은 그 자체로 무효이고, 또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고 남의 목숨을 해쳤다는 점에서
살인죄를 지은 일이기도 합니다. 입타가 함부로 서원한 일 자체도 죄가 되고, 그것을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셨다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한 것도 죄가 되고, 잘못된 서원을 지키려고 죄 없는 딸을 죽인 것도 죄가 됩니다. 그는 이중 삼중으로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도 입타가 서원을 충실하게 지켰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죽인 바리사이들과 다를 것이 없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다른 예를 들면, 순종이 있습니다. '순종'은 신앙인의 성덕이고 미덕입니다. (우리는 성모님의 순종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순종만 강조하면서, 장상이 잘못된 지시를 하더라도 일단 복종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도 바리사이들 같은 자들입니다. 만일에 장상이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거스르는 잘못된 지시를 한다면, 그것을 거부하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순종이라는 덕이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더 위에 있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복음 (루카14,1-6)


예수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하고 물으셨다.  (3) 

루카 복음 14장 2절에 나오는 수종을 앓는 사람을 예수님께서 치유하시기 전에,미리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의 그릇된 생각을 지적하신다. '수종을 앓는'으로 번역된 '휘드로피코스'(hydropikos; which had the dropsy)'물'을 가리키는 '휘도르'(hydor)에서 유래한 의학 용어이다. 

이 병은 신체의 여러 부위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으로서 당시에는 불치병이었다. 유대인들은 이 병이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저주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겼다. 또한 이 병은 만성적 질병으로 취급되었는데, 바리사이들의 전통에 의하면 당장 위급한 병이 아닌 이런 만성 질병을 안식일에 고쳐 주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되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수종을 앓는 사람을 안식일에 고쳐 주려는 당신을 책잡으려는 그들의 음모를 아시고, 반론 양식의 질문을 던지신다. 여기서 '합당하냐'로 번역된 '엑세스틴'(eksestin; Is it lawful)의 원형 '엑세스티'(eksesti)'합법적이다', '타당하다'는 뜻이다.

특히 이 구절에서 이 동사는 단지 이성적인 타당성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합당한 것을 가리킨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는 지금 율법 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율법에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당시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그들이 인위적으로 만든 39개 항목에 달하는 안식일 금지 규정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생명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은 불법으로 규정하였다. 

처음에는 안식일을 보다 거룩하게 지키려는 의도로 금지 규정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형식만을 강조하는 이 규정들이 사람들을 속박하는 결과를 낳았다. 실제로 모세 오경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었고, 이것은 그들의 잘못된 전통일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율법의 기준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루카 복음 14장 5절에서 보여지고 있는 대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그들의 경험으로나 이성적으로도 타당한 것임을 논증하고 계신다. 

그러나 경험적 논증에 앞서서 루카 복음 14장 3절에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것이 율법적으로는 옳은 것임을 분명히 밝혀서 하느님 말씀에 대한 우선적인 태도를 보여 주고, 동시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율법에 대한 왜곡을 지적하신 것이다. 

특히 루카 복음 14장 5절의 원문에서 강조점'안식일'이 아니라 '바로', '곧', '당장'이라는 긴급한 시점을 가리키는 '유테오스'(eutheos; immediately; straitway)에 있다는 사실은, 지금 곤경에 처한 사람을 구해내는 일이 '안식일'이라는 시점에 상관없이 당장에 해야 할 급박한 일임을 드러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한번도 안식일에 대한 율법 규정을 부정하시거나 고의로 어기신 적이 없으시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는 일이 율법에 근거하여 안식일의 정신을 적극적으로 구현하시는 일임을 밝히신 것이다. 

사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이라는 신적 권위를 가지고, 안식일에 대한 왜곡된 관습을 바로 잡으려 하신 것이다.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제1독서 (로마9,1-5)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나의 양심도 성령 안에서 증언해 줍니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육으로는 내 혈족인 동포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기라도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로마9,1-3)

사도 바오로는 로마서 9장 1-3절에서 자신의 민족이 구원받을 수만 있다면, 자신은 예수님께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천국의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빠지게 될지라도 자기 민족이 구원받기를 절규한다.

사도 바오로의 고통은 사랑하는 자기 민족을 위하여 일할 수 없다는데 있다. 그는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오로의 간절한 꿈은 "민족 구원"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생각은 사도 바오로와는 전혀 달랐다. 하느님은 사도 바오로에게 이방인들을 위해 살라고 명령했다.

사실 은총 안의 삶이란, 내가 원하는 삶을 살지 않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사는 것 말한다.


<그것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내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 9,2)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온 밤에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무수한 어깨들 사이에서, 무수한 눈길의 번득임 사이에서
더욱더 가슴 저미는 고독을 안고
시간의 변두리로 밀려나면 비로소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수많은 사람 사이를 지나고 수많은 사람을 사랑해버린 다음
비로소 만나야 할 사람. 비로소 사랑해야 할 사람
이 긴 기다림은 무엇인가.

바람 같은 목마름을 안고 모든 사람과 헤어진 다음
모든 사랑이 끝난 다음 비로소 사랑하고 싶은 사람이여

이 어쩔수 없는 그리움이여.

문병란 시인의 '호수'라는  시입니다.

사도 바오로처럼 열정적으로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했던 이도
집에 돌아와 혼자가 되면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이 마음 한구석을 채우곤 했답니다.

여러분도 그러신가요?
결국 인간은 일이나 교제 등을 통해
자신의 고독함을 잊으려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은 홀로일 수밖에 없나 봅니다.

복음의 기쁜 소식을 이방인들에게는 열심히 전하고
또 그들로부터 감사의 인사도 많이 받지만
그럴수록 내 가족, 내 동포에게는 복음이 꿰뚫고 들어가지 못함이 늘 가슴아픈 일이지요.

바깥 사람들과 친교와 기쁨을 나눌수록
가까운 가족들과 친구, 친지들과는 마음껏 사랑하고 기쁨을 나눌 수 없다면
내 마음 한켠은 언제나 슬픔과 아픔이 있을 수밖에 없답니다.

네. 오늘은

나의 내면 깊숙히 슬픔과 아픔으로 남아있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그 사랑을 온전히 나누지 못하는 이를 위해 기도합시다.

내가 해줄 수 없는 위로와 축복을 주님께서 해 주시도록
맡겨드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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