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0주간 토요일]끝자리 (루카 14,1.7-11)
이방인으로서 하느님의 백성이 된 우리는, 하느님께서 미리 뽑으신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물리치지 않으셨음을 알아야 한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다른 민족들에게 복음이 먼저 전해지게 되었지만, 언젠가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로마 11,1ㄴ-2ㄱ.11-12.25-29)
형제 여러분, 1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신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벤야민 지파 사람입니다. 2 하느님께서는 미리 뽑으신 당신의 백성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11 그러면 내가 묻습니다. 그들은 걸려 비틀거리다가 끝내 쓰러지고 말았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잘못으로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고, 그래서 그들이 다른 민족들을 시기하게 되었습니다. 12 그런데 그들의 잘못으로 세상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의 실패로 다른 민족들이 풍요로워졌다면, 그들이 모두 믿게 될 때에는 얼마나 더 풍요롭겠습니까? 25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신비를 알아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신비는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26 그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입니다. “시온에서 구원자가 오시어 야곱에게서 불경함을 치우시리라. 27 이것이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 그들과 맺어 줄 나의 계약이다.” 28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29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94(93),12와 13ㄴ.14-15.17-18(◎ 14ㄱ)
◎ 주님은 당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신다.
○ 주님, 행복하옵니다, 당신이 깨우쳐 주시고, 당신 법으로 가르치시는 사람! 불행의 날에도 평온을 주시나이다. ◎
○ 주님은 당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당신 소유를 저버리지 않으신다. 재판이 정의로 돌아오리니, 마음 바른 이 모두 그 뒤를 따르리라. ◎
○ 주님이 나를 돕지 않으셨다면, 내 영혼은 침묵의 땅속에 누웠으리라. “내 다리가 휘청거린다.” 생각하였을 때, 주님, 당신 자애로 저를 받쳐 주셨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받을 때에 스스로 윗자리에 앉지 말라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낮추는 이들을 들어 높이시고 자신을 높이는 이들을 낮추신다.(루카 14,1.7-11)
1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었다. 7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8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9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 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10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11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스스로 이스라엘 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바오로에게, 자기 동족이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현실은 “커다란 슬픔과 끊임없는 아픔”(로마 9,2)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가는 곳마다 언제나 가장 먼저 유다인들의 회당을 찾아가 복음을 전했지만,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기에 발길을 돌려 이방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여 이방인들이 유다인들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현실을 일깨워 준 다음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리기 어렵고 그분의 길은 얼마나 알아내기 어렵습니까?”(로마 11,33) 하고 말하면서 하느님의 놀라운 계획과 신비를 찬미하며 마무리합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아직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결국 다른 민족들이 구원을 얻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경이로운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바오로는, 이스라엘이 의로움을 추구하면서도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알지 못한 채 자기의 의로움을 내세우려고”(로마 10,3) 하였기에 결국 자기 행위의 의로움에 이르지 못하였고, 오히려 자기의 의로움을 추구하지 않던 이방인들이 먼저 믿음으로 의로움을 얻게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그런데 만일 하느님의 이러한 신비로운 계획 덕분에 하느님을 알게 된 우리가, 마치 우리 자신이 믿음이 더 깊고 지혜로워서 이스라엘보다 먼저 복음을 받아들인 것처럼 우쭐거린다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그 자리에서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초대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이, 무엇보다도 바오로 사도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게 해 주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에서도 예수님께서는 잔치에 초대받으면 낮은 자리를 선택하라는 가르침을 통하여 겸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아드님이 사람이 되셨다는 강생의 신비야말로 겸손의 결정적인 표현이고, 그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야말로 겸손의 극치입니다.
겸손은 사람을 위대하게 만드는 미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겸손한 사람을 좋아하며, 그러한 사람에게 기꺼이 마음의 문을 엽니다.
“주님, 제 마음은 오만하지 않고, 제 눈은 높지 않습니다”(시편 131,1).
<끝자리에 앉아라.> 송영진 모세 신부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루카 14,8-11)."
이 말씀은 '처세술'에 관한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겸손해져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혼인 잔치'는 하느님 나라의 잔치입니다. '스스로 윗자리에 앉는 사람'은, "나는 구원받은 사람이다." 라고 자기 마음대로 생각하는 교만한 위선자들을 뜻합니다. '스스로 끝자리에 앉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는 사람들, 또 겸손하게 회개하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에는 윗자리도 끝자리도 없습니다. 남들보다 더 높은 사람도 없고, 남들보다 더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스스로 윗자리에 앉았다가 끝자리로 물러앉게 되는 사람은(루카 14,9), 실제로는 교만과 위선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자기 스스로 끝자리에 앉았다가 윗자리로 올라앉게 되는 사람은(루카 14,10), 실제로는 겸손하게 회개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입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영광스럽게 되는 일입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라는 말씀은, "교만한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겸손하게 회개하는 사람만 그 나라에 들어간다." 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어린이에 관한 말씀과 같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한 가지,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거짓 겸손'입니다. 높여 주기를 바라면서 자기를 낮추는, 즉 속마음은 그게 아닌데 겉으로만 겸손한 척 하는 '거짓 겸손'은 하느님께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겸손한 모습이 진짜 겸손인지 거짓 겸손인지 알아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기에게 속을 때가 많습니다.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겸손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고, 자기의 겸손이 겸손이라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짜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가 교만하지 않은지 늘 반성하면서, 더욱 겸손해지려고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그래서 겸손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반대로, "나는 겸손한 사람이다."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사람, 자신이 겸손하게 행동한 것을 기억하고 의식하는 사람, 사람들에게 자기의 겸손을 내세우면서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하는 사람, 사람들이 자기의 겸손을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은 교만하고 어리석은 위선자입니다.
성경에 '세상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가 에티오피아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는데, 미르얌과 아론은 모세가 아내로 맞아들인 그 에티오피아 여자 때문에 모세를 비방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모세를 통해서만 말씀하셨느냐?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주님께서 이 말을 들으셨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은 매우 겸손하였다.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 12,1-3)."
미르얌은 모세의 친 누나였고, 아론은 모세의 친 형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느님께서 모세를 민족의 지도자로 뽑으셨다는 것을, 또 그에게 특별한 은총과 권한을 주셨다는 것을 시기 질투했습니다. 그들이 모세의 아내 때문에 모세를 비방했다는 것은, 모세를 깎아내리기 위해서 괜히 아내 문제를 가지고 시비를 걸었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도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라는 말은, 미르얌과 아론의 '교만'을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는 진노하시면서 미르얌과 아론을 엄하게 꾸짖으셨고 모세의 편을 들어주셨습니다(민수 12,6-9). 그리고 미르얌에게는 직접 벌을 내리셨습니다(민수 12,10). 이 일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라는 예수님 말씀의 실제 사례입니다. 미르얌과 아론은 스스로 자신들을 높이려고 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낮추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가 한 말은 "하느님, 제발 미르얌을 고쳐 주십시오."뿐입니다(민수 12,13). 모세는 미르얌과 아론의 비방과 비난에 대해서 아무런 반박도 변명도 하지 않고, 계속 침묵을 지켰습니다. 민수기 저자가 "모세는 매우 겸손하였다." 라고 기록했으니, 모세의 침묵은, 화가 나지만 속으로 삭이는 그런 침묵도 아니고, 나중에 두고 보자는 식의 침묵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만일에 그런 침묵이었다면,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또 그는 민족의 지도자로서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니, 그의 침묵은 힘이 없어서 억지로 참을 수밖에 없는 약자의 침묵도 아닙니다.)
아마도 모세는 자기의 부족한 점들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하면서, 또 미르얌과 아론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면서, 조용히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를 위해서 하느님께서 직접 나서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의 실제 사례가 됩니다.
제30주간 토요일 제1독서 (로마11,1ㄴ-2ㄱ.11-12.25-29)
로마서 9-11장은 구세사에서 이스라엘이 차지하는 위치와 역할을 심도있게 다루고 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계약과 율법을 통하여 당신의 구원 의지를 직접 전달하셨다(9,4-5). 이런 특전과 약속을 받은 유다인들이 왜 오늘날 구원의 길에서 멀어졌는가? 그것은 그들이 믿음이 아니라 행실로 의화의 길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선택은 그들의 의지나 노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자유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하느님이 주시는 구원 약속을 행실로 획득하려 하지 말고, 믿음으로 감사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의 구원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실현되었지만, 율법 준수를 통한 구원에 집착한 유다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다. 그러면 이스라엘의 실패를 보고, 이방인들이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선택과 실패, 그로 인한 이방인들의 선택과 혜택, 그리고 이스라엘이건 이방인들이건 믿음을 통한 의화의 필요성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바오로는 '야생 올리브의 접붙이기' 표상을 이용한다(11장).
하느님은 이스라엘이라는 올리브 나무를 심으셨다. 일부 가지가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자 그것을 잘라 내시고, 대신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를 접붙이신다. 그러나 접붙인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면, 그것도 잘려 나갈 것이다. 그리고 잘려나간 원 가지들이라도, 다시 믿음을 회복하면, 그것들을 다시 접붙일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으시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일부가 마음이 완고해진 상태는 다른 민족들의 수가 다 찰 때까지 이어지고, 그 다음에는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11,25ㄷ)
"그들은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이 잘되라고 하느님의 원수가 되었지만, 선택의 관점에서 보면, 조상들 덕분에 여전히 하느님께 사랑을 받는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1,28-29)
선민 이스라엘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의 복음이 이방인들에게 전해지게 되었는데, 이방인들이 구원의 복음을 믿어 축복과 혜택을 누리는 것을 보고, 마지막에 선민 이스라엘이 돌아와서 예수님을 영신적인 메시아와 구원자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신비적 계시를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것이다.
결코 철회될 수 없는 맏아들 이스라엘에 대한 선택과 은사와 소명을 묵상하면서, 우리도 주님께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하자.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네가 그렇게 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가서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치워 버리겠다."(묵시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