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간 화요일]해야 할 일 (루카 17,7-10)
(성 대 레오 교황 학자 기념일)
레오 교황은 400년 무렵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440년 식스토 3세 교황의 뒤를 이은 그는 행정 능력이 뛰어났을 뿐 아니라 깊이 있는 설교로도 유명하였다. 레오 교황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일치와 정통 신앙을 수호하고자 이단을 물리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재임 중인 451년에 열린 칼케돈 공의회는 에우티게스, 네스토리우스 등의 이단을 단죄하고 정통 교회를 수호하였다. 461년에 선종한 레오 교황을 1754년 베네딕토 14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지혜서는 첫 부분에서 의인과 악인의 운명에 대해 말한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어 불멸을 지니고 있기에, 의인들이 고난 속에 현세의 삶을 마친다 하더라도 하느님의 손안에서 평화를 누린다.( 지혜2,23ㅡ3,9)
23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 24 그러나 악마의 시기로 세상에 죽음이 들어와, 죽음에 속한 자들은 그것을 맛보게 된다.3,1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2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3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4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5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6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7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 8 그들은 민족들을 통치하고 백성들을 지배할 것이며, 주님께서는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이다. 9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주님의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고,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

시편 34(33),2-3.16-17.18-19(◎ 2ㄱ)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라.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의 눈은 의인들을 굽어보시고, 그분의 귀는 그 부르짖음 들으신다.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
○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께서 분부하신 일을 했다면 대접을 받으려 하지 말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말하라고 말씀하신다. 종이 지시받은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루카 17,7-10)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8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일꾼과 종의 차이가 있다면, 일꾼은 일을 하고 그에 대한 품삯을 당연히 요구할 수 있지만, 종은 아무런 보수도 받지 않고 일해야 한다는 점이겠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 말씀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밭을 갈고 양을 치고 돌아왔다면, 그래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한 것이니 당연히 쓸모가 있는 종일 텐데 말입니다.
그래서 ‘쓸모없다’로 번역된 그리스 말 단어의 뜻을 찾아보니, 보탬이 되지 않고 이득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쓸모없다는 것과는 조금은 다를 수 있겠습니다. 제 귀가 소리를 듣고 제 눈이 앞을 본다면 귀와 눈은 그래도 쓸모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익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요. 당연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요?
하느님께서 각 개인에게 맡기신 사명이 있습니다. 그 몫에 따라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은 복음을 선포하고, 공동체를 위하여 봉사해야 할 사람은 봉사하지요. 그것이 바로 그가 “해야 할 일”이고,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칭찬받을 일도 아니며 공치사를 바랄 일도 아닙니다. 할 일을 다 했다면 그것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저 “쓸모없는 종”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부모가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겠지요.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맡기신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나를 있게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그 창조 목적을 위한 일이라면 그것은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느님도, 다른 누구도 그 일에 대해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서 언짢아할 일은 더욱 아닙니다. 종이 모든 것을 주인의 자비와 선처에 맡기듯이, 우리도 최선을 다한 다음 하느님의 자애에 맡겨 드려야 하겠습니다.
연중 제3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지혜2,23-3,9)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어, 어떠한 고통도 겪지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3,1-4)
지혜서 2장 21-24절은 불멸성의 중요성과 악인들의 그릇된 생각을 모두 강조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셨다(지혜2,23). 죽음이 세상에 들어온 것은 단지 악마의 시기 때문이다(창세 3장 참조).
불멸성 또는 하느님께 사는 영원한 생명은 "거룩한 삶에 대한 보상"이며, "흠없는 영혼들이 받을 상급" 이다(지혜2,22). 이것은 하느님께서 의인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악인은 이런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이제 지혜서 3장 1-12절까지는 의인의 운명과 악인의 운명 사이의 대조가 계속된다. 악인이 죽음을 인간 실존의 끝으로 상상한다 할지라도 "의인들의 영혼은 하느님의 손 안에 있다."(지혜3,1)는 확신에 근거한다.
사악한 물질주의자들은 의인이 고통, 죽음의 말로, 파멸과 징벌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의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지혜3,4). 의인들이 견뎌 내는 고통은 시험이었다(지혜3,5-6).
의인들은 죽은 뒤에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그들은 빛을 내고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지혜3,7). 그들은 하느님께서 지배하시는 영역에 들게 되고, 하느님의 진리를 깨닫고 하느님의 자비와 자비로운 돌보심을 받는다. 이런 묘사(다니엘12,1-3참조)는 불멸성의 특성이 선물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부활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준다.
마찬가지로 지혜서 3장 7절의 '찾아 오신다'는 단어는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거나 적어도 의인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결정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것을 뜻한다.
지혜서에서 계속 발전시키는 불사의 희망은 도덕적이고 신학적으로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것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에 목적과 방향을 준다. 하느님과 함께 사는 영원한 생명은 올바르게 산 데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무죄하게 고통받는 문제에 해결책을 제공한다.
하느님의 정의는 죽는 순간 그리고 최후의 심판 때까지 늦추어진다. 의인들이 현재 겪는 고통은 하느님께서 그들의 덕을 시험하시는 것이며 그들이 올바로 살도록 이끌어 주는 훈육의 원천이다.
루가복음사가
연중 제32주간 화요일복음 (루카17,7-10)
"이와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1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종의 위치에 두시면서 당신이 교훈하시고자 하는 핵심을 말씀하신다.종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했던 것처럼, 제자들도 그와 같이 한 후에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라고 예수님께서 명령하신다.
여기서 종은 루카 복음 17장 8절에 나오는 데로, 자신에게 맡겨진 바깥 일만을 끝마쳤다고 해서 휴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바깥 일은 바깥 일일 뿐이며 다시 집안에 들어와서는 집안일을 해야만 했던 노예였다.
특히 '허리에 띠를 매고'는 띠를 풀고 쉬는 상태와 반대되는 상황을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일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철저하고 겸손한 봉사와 전적인 헌신만이 제자들에게 요구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당시 사회 제도에서 가장 하부 구조를 차지했던 종의 비유를 들어 교훈하신 것이다. 본절인 루카 복음 17장 10절에서 종을 수식하는 '쓸모없는'에 해당하는 '아크레이오이'(achreioi; unworthy; unprofitable)는 '무익하고 가치없음'을 의미한다.
왜 이 종은 자신에 대해 '쓸모없는 종'이라고 일컫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라고 말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는 당신 구원 사업의 협력자들에게 겸손하고 당연한 자세로 하느님의 일을 할 것을 교훈하고, 또한 실제적인 삶에 있어서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하느님의 말씀에 대해 무조건적 순종이 따라야 함을 명확히 해 주시는 말씀이다. 하느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봉사와 헌신은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보답이요,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 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은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7-10)."
이 말씀에 나오는 주인은
참으로 인정 없고 차가운 사람입니다.
또 종은 참으로 고달프고 서러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 상황이라면, 종은
겸손해지기는커녕 주인에게서 달아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은,
하느님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신앙인들의
자세를 가르치기 위해서입니다. 하느님은 인정 없고 차가운 분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분입니다.
위의 말씀과 완전히 대조가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5-37)."
종이 주인을 위해서 고생하는데도 고마워하기는커녕 일을 더 시키는 주인의 모습과 주인인데도 종의 모습이 되어서 종에게 시중을 드는 주인의 모습은 완전히 극과 극으로 대조됩니다. 우리가 믿는 하느님(예수님)은 주님이신데도 우리를 위해서 종처럼 우리에게 시중을 드는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주인이 아니라 종에게 초점을 맞춰서 읽어야 합니다. 이 종은 주인을 사랑하고, 진심으로 주인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과 기쁨으로 일하기 때문입니다. 주인에게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바라지도 않습니다.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자랑하지도 않고, 생색내지도 않습니다.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라는 말씀은,
실제로는 주님이 우리에게 고마워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주님께 고마워하라고 요구하지 않는 것이
신앙인의 올바른 자세라는 뜻입니다.
"저희는(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라는 말은,
우리가 실제로 '쓸모없는 종'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또 자기가 한 일을 겸손하게 낮추는 신앙인의 모습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또 자기가 한 일을 훌륭한 업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쓸모없는 종'이라고
낮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으로만 "저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마음으로는 주님께서 인정해 주시기를,
또 고마워해 주시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텐데,
그 경우에 그 사람의 말은 거짓말이
되고, 그 사람은 위선자가 됩니다. (바리사이들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라는 말은,
맡겨진 임무이기 때문에 수행했을 뿐이라는 뜻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일이고, 자신이 기뻐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 일을 했다는 뜻입니다.
'해야 할 일'이라는 말을 '구원'의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시키시는 일들은 주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라, 사실은 인간 구원을 위한 일, 즉 우리를 위한 일입니다.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여러 가지 가르침들을 실천하는 것은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들'입니다. 내가 살자고 하는 일이니, 즉 내가 생명을 얻으려고 하는 일이니 누구에게 생색낼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시키시지 않아도 우리 쪽에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그런 일들을 제대로
한다고 해서
주님의 영광에 무엇이 더 보태지는 것도 아니고,
제대로 안 한다고 해서 주님의 영광에 손상이 가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완전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마태 5,48).
주님의 '완전함'은 무엇을 더 보태거나 뺄 필요가 없는, 그
자체로 완전한 '완전함'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충실하게 해서 구원을 받게 되면, 크게 기뻐하실 것이고, 크게 고마워하실 것입니다.
지금 이 내용을 '탈렌트의
비유'와 연결할 수도 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탈렌트는 원래 주인의 돈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일을 잘한 종들이 바친 탈렌트를
가져가지 않고 그냥 종들에게 주었고,
그리고 더 많은 일을 맡깁니다(마태 25,21.23).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일들을 제대로
하면 우리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고,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게 되고, 더 많은 일을 맡게 됩니다.
일을 제대로 안 하면, 가지고 있던
것마저 빼앗기고,
'바깥 어둠 속으로' 쫓겨날 것입니다(마태 25,30). 주님께는 아무런 손해가 없지만, 우리에게는 영원한 손해가
됩니다.
지금 이 내용을 아주 단순하게 "신앙생활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구를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가?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면서 "이게 다, 너 잘 되라고 하는 말이다." 라고 말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잔소리를 해도, 자녀들이 성실하게 공부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고마워하고 기뻐합니다.) 그처럼 예수님의 말씀들은 모두 다 우리 잘 되라고, 즉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시는 '사랑의 가르침'입니다. (복음 말씀에는 주인과 종의 관계로 표현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신 분입니다. 우리의 기쁨은 하느님의 기쁨이고, 하느님의 기쁨은 우리의 기쁨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루카 17,10)
가끔 내가 한 좋은 일을 알아주지 않을 때
괜히 속상합니다.
누군가를 열심히 사랑하였는데
그 사랑만큼 나에게 그 사랑이 돌아오지 않는다 생각될 때
참 많이 속상합니다.
장상이나 직장상사나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시킨 일을 했을 뿐인데
그에 상응하는 칭찬이 없다고 섭섭해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속상해하지 말고 섭섭해하지 말라시네요.
내가 좋아서 한 일이고
내가 좋아서 사랑한 것이고 내가 원해서 명을 따랐을 뿐인데
칭찬받으려고 한 일도 아니고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 것도 아니니...
내가 좋은 일을 하였으니 기쁘고
내가 더 사랑하였으니 더 기쁘고
내가 섬기는 사람의 부탁과 명을 들어주었으니 행복한 것 아닐까요?
더 큰 것을 기대하면 그게 욕심이고
내가 쌓은 공로와 사랑과 희생이 오히려 빛을 바래게 되지 않겠어요.
오늘 무조건 좋은 일 합시다.
무조건 내가 더 사랑합시다.
무조건 남의 부탁 들어줍시다.
그게 손해라구요?
아닙니다. 그게 진짜 축복이요
하느님 나라로 인도하는 비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