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3주간 토요일]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

2015. 11. 21. 오전 5: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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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3주간 토요일]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리는 날이다.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바쳤다고 전해 온다. 이날은 본디 6세기 중엽 예루살렘에 세워진 성모 성당의 봉헌을 기념하는 날이었으나,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선포하였다.

제1독서

바빌론 유배는 끝났지만 이스라엘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데, 즈카르야 예언자는 지친 그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하면서, 주님께서 예루살렘을 다시 찾아 주시고 당신 백성 한가운데에 머무시리라고 선포한다.(즈카 2,14-17)
14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5 그날에 많은 민족이 주님과 결합하여,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그때에 너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되리라. 16 주님께서는 이 거룩한 땅에서 유다를 당신 몫으로 삼으시고, 예루살렘을 다시 선택하시리라. 17 모든 인간은 주님 앞에서 조용히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한 처소에서 일어나셨다.

화답송

루카 1,46ㄴ-47.48-49.50-51.52-53.54-55
◎ 영원하신 성부의 아드님을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는 복되시다!
○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고, 내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내 마음 기뻐 뛰노네. ◎
○ 그분은 비천한 당신 종을 굽어보셨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복되다 하리라. 전능하신 분이 나에게 큰일을 하셨으니, 그 이름은 거룩하신 분이시다. ◎
○ 그분 자비는 세세 대대로, 그분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미치리라. 그분은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네. ◎
○ 권세 있는 자를 자리에서 내치시고, 비천한 이를 들어 올리셨네. 굶주린 이를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고, 부유한 자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네. ◎
○ 당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돌보셨으니,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그분의 자비 영원하리라. ◎

복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참된 가족이 누구인지를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그분의 형제이며 어머니이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신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제자이며 가족이시다.(마태 12,46-50)
그때에 46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47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48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49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오늘의 묵상

성모님과 관련된 축일이나 기념일에서 오늘 말씀은 상당히 자주 발견되는데, 여러 가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인 것도 사실입니다. 가족을 소홀히 하는 듯한 예수님의 태도를 불편해하기도 하고, 가족을 떠나는 예수님의 결연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성모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셨으므로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틀림없습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하고 말씀하실 때에, 성모님께서는 이미 예수님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의 조건을 채우셨습니다. 인간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해도,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달으셨을 때에는 남김없이 그대로 받아들이셨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성모님을 공경하는 이유도, 단순히 계보상으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셨다는 사실보다는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여 그 뜻이 실현될 수 있게 하셨다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둡니다. 이로써 성모님께서는 예수님의 첫 제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께도, 성모님께서 당신을 낳아 주신 어머니라는 사실보다는 그분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셨다는 사실이 더 우선이었지요.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은 성모님의 뒤를 이어 모두 예수님의 가족이 됩니다. 어머니를 홀대하시는 듯한 태도를 취하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가 되는 길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제1독서 (즈카2,14-17)


"딸 시온아,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주님의 말씀이다." (10)

즈카리야서 2장 10절 이하 13절에서는 주님께서 선민과 함께 할 것과 선민과 예루살렘의 회복 및 주님께서 임재할 것이 예언된다. 

그 가운데 서두에 나오는 10절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징계가 다 끝나고, 그들과 하느님이 원래 처음 맺었던 계약의 상태로 되돌아 갈 것을 암시하는 예언이다.

여기서 '시온의 딸' 번역된 '치욘 빠트'(tsiyon bath; O Daughter of Zion)구약의 관점에서는 예루살렘 성읍의 거주민들 지칭하고, 신약의 관점에서는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한다. 

많은 주석가들은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전해 준 메시지 안에(루카 1,28.30. 31~33.49. 54~55) 선민이 바빌론 유배로부터 귀환한 후에 예언자 즈카리야(즈카 2,14-15; 9,9-10), 스바니아(스바 3,14-17), 요엘(요엘 2,21-27)이 '시온의 딸'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게 선포한 신탁이 반영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런 사건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도시('시온의 딸'이라 불리우는 도시)는 약속의 땅에 거주하는 온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기뻐하라는 초대 받는다. 그토록 기뻐해야 하는 동기는 유배의 어두운 시기 가 지난 후, 하느님께서 재건된 성전 안, 성도 한 가운데에 거처하러 다시 오신다는 사실에 있다. 두려움에 떨 이유가 전혀 없다. 실제로 주님께서 그들의 왕이고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실제로 마리아'시온의 딸' 묘사하려 하였다. 복음사가의 눈에 동정녀 마리아는 자신의 인격안에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백성을 종합한다. 온 이스라엘이 동정녀 마리아안에 총괄된다. 동정녀 마리아야말로 이스라엘을 가장 훌륭하게 나타낸다. 나자렛의 마리아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에게 하신 약속들을 앞서 실현하셨다(루카1,49ㄱ.54-55참조).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이유 접속사 '키'(ki; for)로 시작하는 본문은 왜 시온의 딸이 노래하고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새 성경에 단순히 '정녕 내가' 번역된 '힌니'(hinni)는 문자적으로 '보라 내가'라는 의미이며, 이 예언을 읽는 독자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며 관심을 집중시키기 위한 표현이다. 장차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들에게 오셔서 그들 가운데에 머무를 것이다.

'머무르리라'에 해당하는 '웨샤카느티'(weshakanthi; I will dwell)의 원형 '샤칸'(shakan)어원상 여행자가 장막을 쳐서 머무는 행위를 의미하는 단어이다(창세9,27; 탈출25,8; 여호18,1). 본문에서 이 단어는 단지 얼마 동안 임시적으로 머문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장막을 치시고,그들과 함께 거처할 것임을 나타낸다. 

희랍어 구약 성경 번역본인 70인역(LXX)에서 이 단어는 '카타스케노소'(kataskenoso)로 번역되었는데, 이것은 장차 종말의 날에 도래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주 하느님께서 친히 장막을 치시고, 그의 구원받은 백성들과 거처하실 것을 예언하는 묵시록 21장 3절의 내용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본문의 예언이 종말론적 성취를 지향하고 있음 암시한다.

<그때에 나는 어좌에서 울려오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보라,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가운데에 있다. 하느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거처하시고,   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다. 하느님 친히 그들의 하느님으로서 그들과 함께 계시고~" >(묵시21,3)

한편 하느님께서 당신백성과 함께 거처하신다는 표현 애초에 히브리 민족을 계약의 백성으로 삼으실 때 베푸셨던 계약의 본질적인 내용이기도 하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셔서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고,그들은 주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 계약의 기본 내용이었다(탈출6,7; 레위 26,12).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효력을 결코 중단하거나 계약을 폐기하시는 법이 없다. 비록 바빌론에 의한 멸망과 성전의 파괴로 인해 그 계약의 중단되는 듯이 보였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다시 고향의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고,성전 역시 재건하게 하셨다.

그리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근거로 세워진 교회를 통해 계약의 백성의 흐름이 계속 이어지게 하셨다.

또한 하느님께서는 당신 계약의 백성들 가운데에 친히 임재하셔서 그들 가운데 장막을 치시고, 그들과 함께 머무를 것이다. 이러한 계약은 궁극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다. 성모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실 때 가득했던 그 성령의 감도로 어린 시절부터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원래 자식이 없었는데, 자식을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하느님께서 점지해 주시면, 다시 바치겠다는 약속을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가 지키신 것이다. 세살이 되던 해에 성모님을 성전에 바쳤는데, 성모님께서는 그날 주님께서 주신 모든 것을 다시 자발적으로 되돌려 드리며 평생 동정 서약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참 가족> 송영진 모세 신부


어떤 이가 예수님께 가족들이 왔다고 전하자(마태 12,46-47),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라고 물으십니다(마태 12,48). 이 말씀을 겉으로만 보면, "그들은 내 가족이 아니다." 라는 말씀으로 오해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이 하느님의 참 가족이 되는가?" 라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가족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하느님의 참 가족'에 대해서 가르치려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9ㄴ-50)."

'이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신자들)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신앙인입니다.

'하느님(예수님)의 참 가족'이 되려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충실하게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성모님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 가운데 첫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또 성모님은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가장 먼저 믿으신 분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일을 가장 완전하게 실행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성모님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에서도 첫 자리에 계신 분입니다. 성모님이야말로 육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참으로 예수님의 어머니이신 분이고, 예수님의 가족이신 분입니다.


1)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예수님)의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그런데 '믿음'과 '실행'이 분리될 수 있을까? 야고보서 저자는 실천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야고 2,14-26).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닙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는 않고 말로만 믿는다고 말하는 것은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믿는다면 당연히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게 됩니다.)


2) 예수님을 안 믿지만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그 실행이 참된 것이라면, 예수님을 안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 가지는 않겠지만, 하느님 나라에 바로 들어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 나라이기 때문에 그 나라에 들어가려면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다르고 신앙이 다른 사람들은, 또는 종교와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을 못 받는다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몰랐더라도 하느님의 뜻에 맞게, 착하게 산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어떤 식으로든'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3) 가족은 '식사 공동체'입니다. 밥을 '함께' 먹는다는 것도 중요하고, '나누어' 먹는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먹는 일'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따라서 '함께 나누어' 먹는다는 것은 생명을 나누는 것입니다.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는 것이 가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마태 26,23)." 유다는 예수님과 함께 빵을 나누어 먹은 사람입니다. 그의 배반은 식사 공동체, 즉 가족에 대한 배반입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만 살겠다고 가족을 버린 것과 같은 일입니다.


4) 가족은 '운명 공동체'입니다. ('식사 공동체' 라는 말은 '먹는 일'에 초점을 맞춘 표현이고, '운명 공동체' 라는 말은 인생 전체를 생각하는 표현입니다. 사실상 뜻으로는 같은 말인데, 범위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룻기'에서 아들들을 잃은 나오미가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말했을 때, '룻'이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님을 두고 돌아가라고 저를 다그치지 마십시오. 어머님 가시는 곳으로 저도 가고, 어머님 머무시는 곳에 저도 머물렵니다. 어머님의 겨레가 저의 겨레요, 어머님의 하느님이 제 하느님이십니다. 어머님께서 숨을 거두시는 곳에서 저도 죽어 거기에 묻히렵니다. 주님께 맹세하건대 오직 죽음만이 저와 어머님 사이를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룻 1,16-17)." 바로 이것이 가족입니다.

룻은 죽음만이 자기와 시어머니를 갈라놓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 세상에서 가족이 모두 흩어지고 갈라져서 남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족은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공동체이기 때문에(마태 19,6) 하느님만이 갈라놓을 수 있습니다. 죽음도 가족을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족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 나라에서 가족과 함께 영원한 생명과 행복과 평화를 누리기를 희망하는 사람이고,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5) 가족은 '한 몸'입니다. 가족의 아픔은 나의 아픔이고, 가족의 영광은 나의 영광입니다(1코린 12,26).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루카 15,3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복음 (마태12,46-50)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50)

여기서 '실행하는 사람이'로 번역된 '포이에세 ~ 아우토스'(poiese ~autos; dose~the same)'실행하면, 바로 그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바로 그 당사자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주고 있다.

'포이에세'(poiese)의 원형 '포이에오'(poieo) 어떠한 일을 적극적으로 행하거나 존재하는 물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인데, 여기서는 '내 아버지의 뜻'목적어로 취하고 있기 때문에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또한 여기서 '포이에오'(poieo)'~하는 자는 누구든지'를 뜻하는 '호스티스 안'(hostis an; whoever)과 함께 가정법으로 쓰여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기만 하면 누구든지'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영적 가족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바로 그 조건이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드러낸다. 하지만, 본 문맥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실행한 것은 그저 예수님의 말씀을 긍정하면서 묵묵히 듣고 있는 것뿐이었다.

이것은 하느님의 뜻을 적극적으로 실행하는 것에는 눈에 보이는 행위 뿐만 아니라,눈에 띄지 않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결단을 내리는 마음을 가지는 것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이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을 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자녀로 삼도록 해 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이 성령의 힘으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몸소,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임을  우리의 영에게 증언해 주십니다.' (로마8,14~16)

 

2015년 9월22일 (연중 제25주간 화요일) 예수님의 참가족

<딸 시온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라. 정녕 내가 이제 가서 네 한가운데에 머무르리라.> (즈카 2,14)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있으면 기쁘고 즐거우세요?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늘 나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겠지요?
그런 사람이 많이 있을수록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겠지요?
여러분이 그런 사람이기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다른 누구에게
함께하고 싶은 사람, 생각만 해도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길 소망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어떤 사람보다도 더 나를 사랑하고 나와 함께하고 싶어하는 분이
여러분을 찾아 가겠다네요.
그분이 나와 함께 머무르고 싶다네요.
그분이 누구시냐구요? 바로 하느님이시랍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오늘 얼마나 기쁘고 즐거우실까요?
오늘 여러분과 함께 머무르고자 오시는 그분을 기꺼이 환대하고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무조건 기쁘고 즐거운 날 되십시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참된 가족  반영억라파엘 신부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며 잘났건 못났건, 경건한 사람이건 죄인이건 상관없이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입을 수 있고 하느님의 백성이 될 수 있음을 선언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현하기위한 예수님의 행동은 오해를 사기도 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생겨났습니다.  가족과 친지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미쳤다는 소문이 들리자 그를 붙잡으려 나서기도 하였습니다(마르3,21).

예수님께서 의인과 죄인,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거나 거부하지 않으시고 그들과 함께 섞이고 어울렸기 때문입니다. 열린 마음으로 모두를 받아들이신 예수님의 마음이 우리 안에서도 살아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을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고 반문하시며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들이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은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족에 대한 기준입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형성되는 새로운 가족은 더 이상 혈연관계에 기반을 두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데에 기반을 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족 공동체를 형성하고 결속시키는 데 초석이 되는 것은 혈연, 학연, 지연이나 좋은 감정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의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할 때 비로소 그분의 참다운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마태10,37).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으려면 그분의 뜻을 행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성모님의 삶을 보면 성모님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전하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1,38).하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는 믿음을 지닌 복된 분으로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족에 속하십니다.

비록 예수님과 혈연관계에 있지 않더라도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면 누구든지 그분의 가족이 됩니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해를 형님으로 달을 누님으로 고백했습니다. 해와 달은 생겨난 뒤로 하느님을 거역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면 예수님의 참된 가족이 됩니다. 믿음으로 형성되는 새 가족의 품위를 지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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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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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성전의 파괴 예고 (루카 21,5-11)15.11.24조회 46[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 21,1-4)15.11.23조회 46[연중 제33주간 토요일]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15.11.21조회 52[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전 정화 (루카 19,45-48)15.11.20조회 45[연중 제33주간 목요일]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 (루카 19,41-44)15.11.19조회 46[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 (루카 19,11ㄴ-28)15.11.18조회 47[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 19,1-10)15.11.17조회 108[연중 제33주간 월요일]예리코 소경치유 (루카 18,35-43)15.11.16조회 72[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기도 (루카 18,1-8)15.11.14조회 143[연중 제32주간 금요일]재림<再臨 >(루카 17,26-37)15.11.13조회 129[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15.11.12조회 46[연중 제32주간 수요일]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15.11.11조회 47[연중 제32주간 화요일]해야 할 일 (루카 17,7-10)15.11.10조회 285(2015. 11. 9. 월)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15.11.09조회 351[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루카 16,9ㄴ-15)15.11.07조회 115[연중 제31주간 금요일]약은 집사의 비유 (루카 16,1-8)15.11.06조회 48[연중 제31주간 목요일]되찾은 양의 비유 (루카15,1-10)15.11.05조회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