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성전의 파괴 예고 (루카 21,5-11)

2015. 11. 24. 오전 6:0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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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성전의 파괴 예고 (루카 21,5-11)


제1독서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는 꿈을 꾸고 마음이 불안해진다. 아무도 그 꿈을 풀이하지 못하지만, 다니엘은 하느님께서 주신 지혜로 그의 꿈을 알아맞히고 그 뜻을 풀이해 준다. 여러 제국들이 일어나고 무너지고 하겠지만, 마지막에는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것이다.(다니엘 2,31-45)
그 무렵 다니엘이 네부카드네자르에게 말하였다.
31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무엇인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큰 상이었습니다. 그 거대하고 더없이 번쩍이는 상이 임금님 앞에 서 있었는데, 그 모습이 무시무시하였습니다.
32 그 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청동이며, 33 아랫다리는 쇠이고, 발은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34 임금님께서 그것을 보고 계실 때,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떨어져 나와, 쇠와 진흙으로 된 그 상의 발을 쳐서 부수어 버렸습니다.
35 그러자 쇠, 진흙, 청동, 은, 금이 다 부서져서, 여름 타작마당의 겨처럼 되어 바람에 날려가 버리니, 그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상을 친 돌은 거대한 산이 되어 온 세상을 채웠습니다.
36 이것이 그 꿈입니다. 이제 그 뜻을 저희가 임금님께 아뢰겠습니다.
37 임금님, 임금님께서는 임금들의 임금이십니다. 하늘의 하느님께서 임금님께 나라와 권능과 권세와 영화를 주셨습니다. 38 또 사람과 들의 짐승과 하늘의 새를, 그들이 어디에서 살든 다 임금님 손에 넘기시어, 그들을 모두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임금님께서 바로 그 금으로 된 머리이십니다.
39 임금님 다음에는 임금님보다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청동으로 된 셋째 나라가 온 세상을 다스리게 됩니다. 40 그러고 나서 쇠처럼 강건한 넷째 나라가 생겨날 것입니다. 쇠가 모든 것을 부수고 깨뜨리듯이, 그렇게 으깨 버리는 쇠처럼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고 깨뜨릴 것입니다.
41 그런데 일부는 옹기장이의 진흙으로, 일부는 쇠로 된 발과 발가락들을 임금님께서 보셨듯이, 그것은 둘로 갈라진 나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쇠의 강한 면은 남아 있겠습니다.
42 그 발가락들이 일부는 쇠로, 일부는 진흙으로 된 것처럼, 그 나라도 한쪽은 강하고 다른 쪽은 깨지기가 쉬울 것입니다.
43 임금님께서 쇠와 옹기 진흙이 섞여 있는 것을 보셨듯이 그들은 혼인으로 맺어지기는 하지만, 쇠가 진흙과 섞여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처럼 서로 결합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44 이 임금들의 시대에 하늘의 하느님께서 한 나라를 세우실 터인데, 그 나라는 영원히 멸망하지 않고 그 왕권이 다른 민족에게 넘어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 나라는 앞의 모든 나라를 부수어 멸망시키고 영원히 서 있을 것입니다.
45 이는 아무도 돌을 떠내지 않았는데 돌 하나가 산에서 떨어져 나와, 쇠와 청동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수는 것을 임금님께서 보신 것과 같습니다. 위대하신 하느님께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임금님께 알려 주신 것입니다. 꿈은 확실하고 그 뜻은 틀림없습니다.”

화답송

다니 3,57.58.59.60.61
◎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 주님의 모든 업적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주님의 천사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온 하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하늘 위 모든 물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주님의 모든 군대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복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이 다 허물어질 때가 오리라고 예고하신다. 때가 가까웠다고 사람들이 말하더라도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 표징이 있을 것이다.(루카 21,5-11)
그때에 5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6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
7 그들이 예수님께 물었다. “스승님, 그러면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겠습니까? 또 그 일이 벌어지려고 할 때에 어떤 표징이 나타나겠습니까?”
8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9 그리고 너희는 전쟁과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마라.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10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과 민족이 맞서 일어나고 나라와 나라가 맞서 일어나며, 11 큰 지진이 발생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무서운 일들과 큰 표징들이 일어날 것이다.”



68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팔레스티나를 지배하던 묵시 문학의 역사관에 따르면, 역사의 종말이 다가올수록 가족과 사회와 국가, 자연계에 큰 혼란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러한 혼돈 상태의 수습은 하느님의 개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종말에 관한 루카의 견해는 사뭇 달랐습니다. 루카는 모세 오경과 예언서의 예언자들이 활동하던 시대와 세례자 요한이 활동하던 시대는 구원의 약속 기간으로서 일종의 준비 기간이고, 예수님께서 말씀과 업적으로 가르치신 기간은 구원이 실현된 시기로 보았습니다. 곧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때부터 가리옷 사람 유다가 배반하기까지의 기간은 사탄이 거세되고 구원이 성취된 시기로 보았고, 예수님의 부활 승천, 성령 강림 이후는 그분께서 이루신 구원을 온 세상에 선포하는 교회의 시기로 보았지요.
루카는 이 교회 시대가 끝난 다음에야 세상의 종말이 온다고 믿었는데, 그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그날은 도둑처럼 예기치 않은 때에 들이닥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과 성전 파괴는 역사의 비극일 뿐,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군가가 나타나서 자기가 그리스도라고 하더라도 속지 않도록 조심하고, 전쟁과 반란의 소문을 듣더라도 무서워하지 말며, 무서운 지진이 일어나고 기근과 전염병이 휩쓸더라도 이러한 것들은 하나의 전조일 뿐이니 당황하지 말고 사람의 아들에 대한 믿음에 충실하라고 권고하셨습니다.
아름답고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이 파멸되어 없어지듯이, 이 세상도 영원한 것이 아니며 언젠가는 우리도 그분의 날을 맞이해야 할 것이니 늘 깨어 준비하고 있어야 하겠습니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제1독서 (다니2,31-45)

"이것이 그 꿈입니다. 이제 그 뜻을 저희가 임금님께 아뢰겠습니다."  (36)

다니엘서 2장 31-35절은 다니엘이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이 밝히지 않았던 꿈의 내용을 정확하게 진술하였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다니엘서 2장 36-45절은 임금의 기이한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설을 보여준다. 다니엘은 꿈의 내용에 대해 다 말한 다음에 그 해석을 진술하는 단락의 서두에서 '이것이 그 꿈입니다' 라는 표현을 통해, 앞의 진술한 내용의 확실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 말을 들은 네부카드네자르는 다니엘의 말이 진실임을 인정했을 것이다.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은 다니엘이 결코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꿈의 내용을 정확하게 알았기 때문에, 그 해석 역시 정확하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서 '저희가 ~아뢰겠습니다'에 해당하는 '네마르'(nemar)'말하다', '진술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동사 '아마르'(amar)의 1인칭 복수 미완료 시제이다. 

새 성경은 '저희가'로 번역했는데, 본문의 주어는 1인칭 복수로서 '우리'(we)이다. 혹사는 이 1인칭 복수를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당시 그 세 친구들은 자신들의 집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본문의 1인칭 복수 주어는 다니엘과 그에게 꿈을 알게 하신 주 하느님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다니엘은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그 꿈의 내용을  계시하신 분이 주 하느님이심을 이미 확실히 말한 적이 있었기 때문에(다니2,28), 꿈의 해석 역시 자기 혼자만의 통찰력으로 제시할 수 없고, 하느님의 역사하심으로 가능하다는 사실을 암시하기위해 1인칭 복수 주어를 사용했다고 볼 수 있다.  다니엘은 여전히 겸손한 태도와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세를 잃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복음 (루카21,5-11)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들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곳이다." (5~6) 

마태오 복음 21장 5~19절은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종말의 여러 징조들, 그리고 대박해에 대한 성도의 자세에 관한 교훈이 들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에 대한 예언을 하신 후, 그 일이 언제 일어나는지 그 때를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하시고, 대신에 전쟁, 반란, 민족분쟁, 지진, 기근, 전염병, 천체의 큰 표징 등의 종말론적인 징조들 (Eschatological Signs)을 언급하신다. 

그 다음 예수님께서는 대박해를 겪어야 할 성도의 자세를 교훈하신다. 이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예언 성취의 시기를 알고 싶어하는 제자들에게 예언이 성취될 때에 가져야 할 바른 자세에로 관심의 방향을 전환시키신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와 더불어 종말의 징조들이 복합적으로 예언됨으로써, 대박해를 겪어야 할 자세에 대한 교훈은 당시 제자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종말의 시기를 살아갈 성도들에게도 확대되고 있다. 

마태오 복음 21장 5절~19절까지는 성주간의 올리브산 설교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마태오 복음 24장과 25장 및 마르코 복음 13장과 병행을 이루며, 예루살렘 성전 파괴 및 종말과 그리스도 재림에 관계된 예언들이 집중적으로 다루어지기 때문에 '소묵시록'(Little Apocalypse)이라는 별명이 불려지기도 한다. 

그중에 21장 5절과 6절은 올리브산 설교가 주어진 동기가 되는 예루살렘 성전 멸망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이 성전 멸망에 대한 예언은 일차적으로 A.D.70년에 발생할 예루살렘 멸망에 대한 예언이다.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사가는 이 예언을 성전 안에 계시다가 성전 밖으로 나오실 때 주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만(마태 24,1; 마르 13,1), 루카 복음사가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서 계속적으로 머무르시면서 주신 것처럼 묘사한다. 

루카 복음사가 성전에서 나갔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또한 몇몇 사람이 구체적으로 가리키며 질문한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성전 내부에서 자세하게 볼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할수 있다.

루카 복음사가가 이렇게 다르게 기록한 것은, 지금까지 성전 안에서 행해진 예수님의 여러 가르침들과 치열한 논쟁의 절정으로써 성전 멸망을 다룸으로써,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맞이할 최후의 심판을 보다 극적으로 묘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대교의 구심점이 되는 성전이 붕괴된다는 것동물의 희생을 통한 구약의 제사의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단 한 번 흘리신 십자가상 구속 성혈의 공로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뜻과 더불어,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가진 잘못된 신앙에 대한 심판적인 의미도 가진다. 그리고 루카 복음 사가는 장소적 이동보다는 등장 인물들의 시선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 시킴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강조한다.

진정으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성전의 화려한 외적인 아름다움과 같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신앙이 아니라, 가난한 과부의 두 렙톤과 같은 경건한 믿음을 소유한 자들의 진실된 신앙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

한편, 루카복음 21장 5절의 '아름다운 돌'로 변역된 '리토이스 칼로이스'(lithois kalois; beautiful stones)성전을 건축할 때 사용된 희고 큰 대리석을 말한다. 이 돌은 주로 성전의 기초와 기둥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자원 예물'로 번역된 '아나테마신'(anathemasin; gifts dedicated to God)원형 '아나테마'(anathema)'아나티테미'(anatithemi)에서 유래된 단어로서 '성전에 바쳐진 물건', '봉헌된 제물'을 가리킨다.

이 자원 예물들은 임금이나 지도층에 있는 부유한 사람들이 성전에 바친 물건으로서 성전을 장식하고 전시하는 데 사용된 물건이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이 아니라 영과 진리안에서 영이신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이었다(요한 4, 20~24).

루카 복음 21장 6절의 '때가 올 것이다'에 해당하는 '엘류손타이 헤메라이'(eleusontai hemerai; the days will come)에서 '때', '날'로 번역된 '헤메라이'(hemerai; the days; the time) 어떤 특정한 목적에 따라 예비된 날로서 바로 하느님의 진노가 현실 가운데 드러나는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

A.D. 70년 로마의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 티토(Titus)가 이끄는 부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성전이 화염에 휩싸여 전소될 때를, 40년 전에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예지 능력으로 미리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라는 표현은 철저한 파괴와 멸망에 대한 예언인데, 루가 복음 사가는 마태오나 마르코 복음 사가에 비해서 성전 파괴가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오해를 막기위해서 성전 파괴를 마지막 날들에 일어날 많은 종말적인 사건들 중 하나로만 기록한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 직후에,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 바로 이 세상의 종말이 있을 것으로 여기고,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것을 기다렸다.

루카 복음 사가이러한 당시 사람들의 상황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서 '예루살렘의 멸망'과 '사람의 아들'(인자;人子)의 도래를 분명하게 구분함으로써, 재림의 자연이 예수님의 예언과 결코 모순되지 않음을 밝히며, 또한 인내심으로 기다리라는 권고를 하고 있다(루카21,20~28).


마르코 제13장 1절-37절.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재난의 시작, 가장 큰 재난,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그 외.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송영진 모세 신부

몇몇 사람이 성전을 두고, 그것이 아름다운 돌과 자원 예물로 꾸며졌다고 이야기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저것들이,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때가 올 것이다."(루카 21,5-6)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면서 아름답다고 감탄하자,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이 '완전히' 파괴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고 다 허물진다는 것은 건물의 원래 모습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파괴된다는 뜻입니다.

성전 정화 때에 예수님께서는 "'나의 집은 기도의 집이 될 것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너희는 이곳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루카 19,46).
예루살렘 성전이 '기도의 집'으로서 제 역할을 잘하고 있었다면 파괴되지 않도록 하느님께서 지켜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강도들의 소굴'로 변해버렸기 때문에 하느님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파괴되었습니다. (실제로는 로마 군대가 파괴한 것이지만, 신앙의 관점에서는 하느님께서 파괴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때에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이 성전을 허물어라." 라는 말씀은, "'강도들의 소굴'로 변한 성전을 없애라." 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라는 말씀은, "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새로운 성전을 세우겠다." 라는 뜻입니다.

탐욕, 허례허식, 위선으로 가득 찬 성전은 없애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섬기고,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행하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 완전한 사랑을 실천해야 참된 성전이 됩니다.

그런데 사실 지상 세계의 성전은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 전까지의 한시적인 성전일 뿐입니다.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묵시 21,22)." 하느님 나라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있을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 전체가 성전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느라고 그렇게 애를 쓴 것도, 또 헤로데가 성전을 복구하는 일에 그렇게 공을 들인 것도 모두, 언젠가는 사라질 유한한 건물 때문에 헛심을 쓴 셈이 됩니다. 이 말은, 눈에 보이는 건물에만 신경을 쓸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살아계시는 하느님을 섬기는 일에 더 집중했어야 했다는 말입니다.

인간들이 눈에 보이는 업적을 쌓는 일에만 몰두하고 집착하는 것은 모두 다 어리석은 일입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영원한 것을 만들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허무한 바벨탑이 될 뿐입니다. 잠깐 동안 후손들이 기억해 주고 칭송을 해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뜻을 거스르는 일들은 전부 다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입니다. 건축물이든지 무엇이든지 간에~~ 영원하신 하느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것들만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께서 예고하신 대로 완전히 파괴되었고, 성전에서의 제사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그리스도교가 새로 생겼습니다. 그러면 지금 이 내용은 단순히 옛날 일에 대한 회상일 뿐인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고, 예언하신 대로 파괴되었고, 아직도 복구되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고...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냥 과거에 유대인들이 그랬었다고 비웃는 것으로 그치면 그만인가?

성경은 역사책이 아닙니다. 살아계시는 하느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하시는 살아 있는 말씀입니다. 11월 24일의 복음 말씀은, 오늘날의 우리에게 하시는 경고입니다. 따라서 예루살렘 성전 파괴 예언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무서운 예언이 됩니다. 만일에 지금의 그리스도교가 '강도들의 소굴'로 변한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파괴될 것이라는 예언이 되기 때문입니다.(파괴되는 것이 무서운 일이 아니라, 우리가 방심하고 자만하다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 무서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마태 5,20)." 이 말씀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아서 그것보다 더 의로워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처럼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들의 의로움은 진짜 의로움이 아니라 '위선'이었기 때문입니다(마태 6,1-4).

세례자 요한은 세례를 받으러 오는 군중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 그리고 '우리는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다.'는 말은 아예 혼잣말로라도 꺼내지 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하느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들을 만드실 수 있다(루카 3,8)."

회개하지 않는다면, 또 행동으로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은 돌들만큼의 가치도 없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지 않는다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교를 만드신 분이니 없애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태오복음 성서쓰기 24장 (성전의 파괴를 예고하시다 ~ ) 이스라엘의 예루살렘(Jerusalem)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내가 그리스도다.’, 또 ‘때가 가까웠다.’ 하고 말할 것이다.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 (루카 21,8)

연말이 다가오면 세말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세상 종말에 대해서
우리의 죽음 이후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게 됩니다.

사후세계는 이럴 것이라는둥
이런저런 기도를 바치고 이런저런 대비를 해야한다는둥
그날은 언제 올 것이고 우리는 어떻게 될 것이라는둥
상상같은 협박과 임박한 위기에 대한 강조로
우리의 약한 심성을  두렵게 만드는 사이비 종말론자들도 가끔은 보게 됩니다.

이미 예수님 시대와
이어지는 초대교회 시대에도 그런 사람들이 꽤 있었나 봅니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이 현혹되기도 하였구요.

그런 현상들을 보며 예수님께서는 단호하게 가르치십니다.
"다 헛소리다. 쓸데없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마라."

네 그렇습니다.
세상종말과 그날은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하실 일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하루하루 성실하게 살아가면 됩니다.
오늘 최선을 다해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간다면
내일 내가 잠에서 못 깨어나도 나는 하늘나라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자, 오늘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두려움없이
누군가의 그럴싸한 말에 현혹됨이 없이
그저 나에게 주어진 이 소중한 시간 기쁘고 행복하게 보냅시다.
예수님은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hic et nunc) 행복하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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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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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34주간 목요일] 人子재림의 날 (루카 21,20-28)15.11.26조회 385[연중 제34주간 수요일] 박해 예고 (루카 21,12-19)15.11.25조회 45[연중 제34주간 화요일] 성전의 파괴 예고 (루카 21,5-11)15.11.24조회 46[연중 제34주간 월요일] 가난한 과부의 헌금 (루카 21,1-4)15.11.23조회 46[연중 제33주간 토요일]예수님의 참 가족 (마태 12,46-50)15.11.21조회 51[연중 제33주간 금요일] 성전 정화 (루카 19,45-48)15.11.20조회 45[연중 제33주간 목요일]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 (루카 19,41-44)15.11.19조회 45[연중 제33주간 수요일] 미나의 비유 (루카 19,11ㄴ-28)15.11.18조회 46[연중 제33주간 화요일] 세관장 자케오 (루카 19,1-10)15.11.17조회 108[연중 제33주간 월요일]예리코 소경치유 (루카 18,35-43)15.11.16조회 72[연중 제32주간 토요일] 기도 (루카 18,1-8)15.11.14조회 143[연중 제32주간 금요일]재림<再臨 >(루카 17,26-37)15.11.13조회 129[연중 제32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나라 (루카 17,20-25)15.11.12조회 46[연중 제32주간 수요일]나병 환자 열 사람 (루카 17,11-19)15.11.11조회 47[연중 제32주간 화요일]해야 할 일 (루카 17,7-10)15.11.10조회 284(2015. 11. 9. 월)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요한 2,13-22)15.11.09조회 350[연중 제31주간 토요일] 두 주인 (루카 16,9ㄴ-15)15.11.07조회 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