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4주간 토요일]깨어 기도하여라 (루카 21,34-36)
천사는 다니엘에게 그가 본 환시를 설명해 준다. 물에서 올라온 네 짐승은 네 나라의 임금이며, 마지막 짐승의 작은 뿔은 지금 이스라엘을 박해하고 있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를 뜻한다. 그들의 나라가 무너진 다음, 하느님의 백성이 나라와 통치권을 물려받을 것인데,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될 것이다.(다니 7,15-27)
15 나 다니엘은 정신이 산란해졌다. 머릿속에 떠오른 그 환시들이 나를 놀라게 하였다. 16 그래서 나는 그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 하나에게 다가가서, 이 모든 일에 관한 진실을 물었다. 그러자 그가 그 뜻을 나에게 알려 주겠다고 말하였다.
17 “그 거대한 네 마리 짐승은 이 세상에 일어날 네 임금이다. 1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이 그 나라를 이어받아 영원히, 영원무궁히 차지할 것이다.”
19 나는 다른 모든 짐승과 달리 몹시 끔찍하게 생겼고, 쇠 이빨과 청동 발톱을 가졌으며,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는 네 번째 짐승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20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있던 열 개의 뿔과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에 관한 진실도 알고 싶었다. 그 다른 뿔 앞에서 뿔 세 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른 뿔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더 커 보였다. 21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22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된 것이다.
23 그 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네 번째 짐승은 이 세상에 생겨날 네 번째 나라이다. 그 어느 나라와도 다른 이 나라는 온 세상을 집어삼키고 짓밟으며 으스러뜨리리라. 24 뿔 열 개는 이 나라에서 일어날 열 임금이다. 그들 다음으로 또 다른 임금이 일어날 터인데 앞의 임금들과 다른 이 임금은 그 가운데에서 세 임금을 쓰러뜨리리라. 25 그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 년, 이 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
26 그러나 법정이 열리고 그는 통치권을 빼앗겨 완전히 패망하고 멸망하리라. 27 나라와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
다니 3,82.83.84.85.86.87
◎ 영원히 찬송하고 찬양하여라.
○ 사람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이스라엘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주님의 사제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주님의 종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의인들의 마음과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 거룩한 이들과 마음이 가난한 이들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에 대비하라고 말씀하신다. 다시 오시는 주님 앞에 설 수 있으려면, 늘 깨어 기도해야 한다.(루카 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35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36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제34주간 토요일 제1독서 (다니7,15-27)
"나는 다른 모든 짐승과 달리 몹시 끔찍하게 생겼고, 쇠이발과 청동 발톱을 가졌으며, 먹이를 먹고 으스러뜨리며 남은 것은 발로 짓밟는 네 번째 짐승에 관한 진실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짐승의 머리에 있던 열 개의 뿔과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에 관한 진실도 알고 싶었다. 그 다른 뿔 앞에서 뿔 세개가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그 다른 뿔은 눈을 가지고 있었고 입도 있어서 거만하게 떠들어 대고 있었으며, 다른 것들보다 더 커 보였다. 내가 보니 그 뿔은 거룩한 백성과 전쟁을 벌여 그들을 압도하고 있었다."(19-21)
어제도 주해했지만, 끔찍하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네 번째 짐승은 알렉산드로스(기원전323년 33세의 한창 나이에 갑자기 열병으로 죽음)가 창건한 그리스 제국이다. 이 짐승에 달린 뿔 열개는 알렉산드로스 제국을 이어받아 다스리던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열 임금을 말한다. 그리고 나중에 올라온 또 다른 뿔(열한 번째 뿔)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를 가리킨다. 이 열한 번째 뿔은 세개의 뿔, 즉 데메트리오스와 그의 동기 또 다는 안티오코스, 그리고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6세(필로메트로)를 제거한다.
뿔은 공격이나 방어를 위한 힘을 암시하는데, 뿔들은 공격이나 방어를 위해 힘을 가질 필요가 있는 왕에 대한 상징이다. 열은 표준적인 순환수이며, 여기서는 충만을 암시한다.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가장 높으신 분을 거슬러 떠들어 대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마저 바꾸려고 하리라. 그들은 일년, 이년, 반년 동안 그의 손에 넘겨지리라."(25)는 천사의 예언대로, 기원전 168-165년, 삼 년 반 동안 유다인들을 철권통치를 통해 박해하였다.
다니엘서 8장 14절에는 이 박해가 아침과 저녁이 2300번 바뀌어야 끝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날수로 따지면 1150일이다. 이 기간이 12장 11절에는 1290일, 12장 12절에서는 1335일로 되어 있다. 삼년 반이란 기간은 신약성경에도 언급된다(묵시11,2에는 42개월; 루카 4,25; 야고5,17).
천사가 다니엘이 본 환시를 설명해 주는데, 네 마리 짐승으로 표현되는 세상의 악과 권세는 하느님의 통치가 시작되면서 무너지고, 그 나라는 하느님께 충실한 거룩한 이들에게 넘겨져 그들의 차지가 된다.
"마침내 연로하신 분께서 오셨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권리가 되돌려졌다. 이 거룩한 백성이 나라를 차지할 때가 온 것이다."(22)
"그러나 법정이 열리고 그는 통치권과 온 천하 나라들의 위력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 주어지리라. 그들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가 되고, 모든 통치자가 그들을 섬기고 복종하리라."(26)
구원은 위로부터, 성부 하느님의 옥좌로 부터 나와 사람의 아들(人子)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지는 것이며, 모든 영광은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7장 22절과 26절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구원의 신비체인 교회를 암시하고 있다.
오늘로서 교회 달력이 한 해를 마감한다. 오늘 저녁부터 새해인 대림 제1주일이 시작된다. 옷깃을 여미며, 새 마음 새 뜻으로 새롭게 시작되는 새해를 잘 맞이하자. 자비로우신 주님께서는 365일이란 하얀 도화지를 또 주셨다.
제34주간 토요일 복음 (루카21,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34~36)
루카 복음 21장 34~36절은 올리브산 설교의 마지막 부분으로서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군중들에게 종말의 시기에 준수해야 할 실제적 행동 지침을 제시하신 내용이다.
루카 복음 21장 34절의 '조심하여'에 해당하는 '프로세케테'(prosechete; be careful)의 원형 '프로세코'(prosecho)는 '자신에게 주의하다', '스스로 조심하다'는 뜻이다. 루카 복음사가는 주로 경계의 교훈의 문맥에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루카12,1; 17,3).
그리고 이 단어의 뉘앙스는 단순한 경계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자신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진지하게 점검하면서 자신에게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뜻이다.
예수님께서는 가까이 온 종말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성도들이 조심해야 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인데, 이 세 가지 사항을 조심하지 않으면 마음이 물러지고 둔해지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방탕'으로 번역된 '크라이팔레'(kraipale; dissipaton; surfeiting)는 '머리가 이리저리 뒤흔들리다'는 뜻으로 라틴어로는 '크라풀라'(crapula)로 번역된다. '크라풀라'는 포도주를 지나치게 마심으로써 일어나는 현기증과 두통을 가리킨다.
그리고 '만취'로 번역된 '메테'(methe; drunkenness)는 '너무나 많은 술에 만취된 상태'를 가리킨다.
따라서 '방탕'과 '만취'는 성령에 충만된 상태와 대조적으로 세상의 쾌락과 관심에 취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징한다.
또한 '일상의 근심'으로 번역된 '메림나이스'(merimnais; the anxieties of life)의 원형 '메림나'(merimna)는 어원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리다'는 뜻으로서, 여러 가지 생각으로 마음이 나뉘어져 '근심'과 '걱정'이 가득 찬 상태를 가리킨다. 즉 마음이 세상의 염려와 근심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마음이 물러진 상태라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물러지는'으로 번역된 '바레토신'(barethosin; be weighed down; be overcharged)의 원형 '바뤼노'(baryno)는 무거운 것으로 '내리 누르다'는 뜻으로 영적으로 민감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즉 하느님의 뜻이 분명하게 보이지만, 자신의 관심과 쾌락이 하느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을 누르고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루카 복음 21장 34절의 '덫처럼'(원문에는 35절)에서 '덫'으로 번역된 '파기스'(pagis; a snare)는 문자적으로 '함정','올가미'와 같은 뜻이지만, 비유적으로는 '예기치 못한 갑작스러운 위험'을 나타낸다(로마11,9; 시편68,23).
이것은 갑작스럽게 온 심판을 말하는데, 평상시 동물들이 잘 다니는 길에 놓여진 덫이 어느 순간 갑자기 피할 수 없는 위험으로 닥치듯이, 일상의 삶 속에 갑자기 찾아오는 재난, 곧 마지막 심판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러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와 의무가 루카 복음 21장 36절에 나온다.
첫째는 깨어 있는 삶인데, 여기서 '깨어'로 번역된 '아그륍네이테' (agrypneite; watch)의 원형 '아그륍네오'(agrypneo)는 단순히 잠을 자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노력의 결과로서 잠에 들지 않는 것(전쟁터에서 보초를 서듯)을 말한다.
둘째는 늘 기도하는 삶인데, 이것은 기도가 삶의 일부가 되어 늘 기도하며 사탄의 유혹과 대적하고, 늘 하느님과 친교하는 것을 말한다.
<깨어 있어라.>송영진 모세 신부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34-36)."
'방탕과 만취'는 그
자체로도 죄가 되지만, 더 큰 죄를 짓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니 '방탕과 만취'에 빠지지 않도록 평소에 늘 조심해야
합니다.
'일상의 근심'은 죄는 아닙니다.
걱정거리가 있으니까 걱정하는 것을 죄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걱정만 하다가
믿음을 잃어버리거나 신앙생활을 소홀히 한다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일상의 근심'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1-33)."
'다른 민족들', 즉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들은
세속의 일만 생각하고, 그것만 걱정합니다.
만일에 신앙인이 세속의 일을 걱정하면서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을 안 믿는 사람과 다르지 않게 됩니다.
신앙인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먼저 찾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일을
'먼저' 찾으라는 말씀이
세속의 일은 아예 찾지 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일을 먼저 할 것인가, 기도를 먼저 할 것인가? 라고
묻는다면,
대답은 당연히 '기도를 먼저'인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일을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먼저'
한 다음에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라는 말씀은, 우리가 아무 일도 안 해도 하느님께서 다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을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분 곁에 있을 때,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거듭 지시하였습니다.
...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시하고 권고합니다.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2테살
3,10-12)."
'일상의 근심'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살아가면서 인생의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다(루카 8,14)."
'인생의 걱정'에 숨이 막힌다는 말과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진다는 말은,
같은 상황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 말은 믿음 없이 걱정만 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리킵니다.
살면서 걱정거리가 전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근심 걱정에 사로잡혔을 때,
첫 번째로 할 일은 '기도'입니다.
기도를 했다면(하고
있다면) 믿어야 하고,
믿음 속에서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그런데 주일에도 쉬지
못하고, 먹고살기 위해서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고 싶어도 힘이 없어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입니다.
누구든지 주일 하루는 노동을 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은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더욱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하고, 정치인을 잘 뽑아야 하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종말과 심판이 갑자기 닥치긴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덫'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덫'이 안 될 수도 있음을 나타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 평소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에게는
종말과 심판이 마치 지뢰를 밟은 것과 같은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준비가 잘 되어 있는 사람들, 평소에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 사람들에게는
그날은 '기쁨의 잔칫날'이 될 것입니다.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인류 전체를 가리킵니다.
종교와 신앙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말의 심판을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할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하느님이고, 심판은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일입니다.
종말과 심판은 그리스도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이유만으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도 안 믿는 사람들과 똑같이 심판대에 서게 될 것입니다.
교황이든지 성직자든지
평신도든지 똑같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은
심판 때에 구원을 선고받을 수 있는 자격을 뜻합니다.
선고는 심판관이신 하느님(예수님)께서 내리시겠지만,
자격은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갖추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깨어
기도하여라." 라고 권고하십니다.
심판 때에 구원을 선고받으려면, 언제나 항상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동안 안 했다면
지금부터라도...)
여기서 '늘'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신앙인은 성당에서만 신앙인인 것이 아니라,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술집에서도 신앙인입니다.
기도할
때에만 신앙인인 것이 아니라,
밥 먹을 때에도, 잠잘 때에도, 공부할 때에도,
일할 때에도, 놀 때에도, 목욕을 할 때에도
신앙인입니다.
한 주간 동안 다니엘서를 묵상하였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는 다니엘서가 어떤 시대를 배경으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축제일과 법을 바꾸려고 한 폭군은 마카베오기에서도 소개된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였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짓밟았고 유다교를 박해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억눌렀습니다. 박해받는 이스라엘에게는 그의 힘이 너무 막강했으며, 온 세상이 모두 그의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다니엘서는 그의 통치가 영원하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이전에도 이미 여러 왕국들이 일어서고 또 무너졌지요. 물에서 올라오던 네 마리 짐승은 그 왕국들, 메디아, 페르시아, 그리스, 바빌론을 대표합니다. 이 세상의 패권은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계속 넘어가기 마련이지요. 이 세상에는 악이 만연하게 되는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에게서 그 악은 절정에 달합니다.
더할 수 없을 만큼 이 세상이 악하게 되었을 때 다니엘서는, 그의 통치도 끝나리라고 선언합니다. 이 세상에 대한 통치권이 하느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악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그의 손에서 통치권을 빼앗으시어 당신의 백성으로 영원한 나라를 이룩하실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나라를 지배하심을 살아 있는 자들이 알게 하려는 것”(4,14)입니다. “가장 높으신 분께서 인간들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이에게 그 나라를 주신다.”(4,29)는 것이지요.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카 21, 36). 기도와 깨어 있음은 하나이며 같은 것입니다. 기도를 중지하는 것은 도둑이 들어오도록 대문을 열어 두는 것과도 같습니다. 기도하며 깨어 있는 것, 이것이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