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2주간 금요일]먹보요 술꾼 (마태 11,16-19)

2015. 12. 12. 오전 8: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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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2주간 금요일]먹보요 술꾼 (마태 11,16-19)

예수는 먹보에 술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시며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바른길을 가르치셨고 그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계명을 알려 주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길을 따르지 않아 하느님께서는 다시 멸망이라는 고통을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셔야 했다(제1독서 이사야서 48,17-19).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군중을 안타까워하신다. 그들은 세례자 요한도 거부하고 이제 예수님도 거부한다. 그들에게 받아들이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마태오 복음11,16-19).      




대림 제2주간 금요일 제1독서 (이사48,17-19)

"아, 네가 내 계명들에 주의를 기울였다면,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렸을 것을"  (18) 

이사야서 48장 18절과 19절은 주님을 떠나 징계를 받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안타까운 심정이 토로된다. 하느님께서는 궁극적으로 당신 백성이 번성하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명령과 규정을 주심으로서 옳은 길을 걷도록 인도하셨지만, 그들은 오히려 하느님의 명령 듣기를 싫어하였다. 

본문의 서두에 나오는 '루'(lu)가정법을 이끄는 접속사로서 '~했더라면' 이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하느님의 안타까운 심경을 반영한다(민수20,3; 22,29; 여호7,7; 판관8,29). 새 성경은 이러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하여 '아~'로 시작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축복의 근원이신 하느님, 그들의 삶을 복되게 하시는 하느님의 명령(신명10,13)을 경청했더라면, 그들의 삶은 이러한 고통이 없었을 것이고, 평화롭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으므로, 축복이 아닌 스스로가 자초한 고통스러운 징계를 받아야만 했던 것이다.  

'너의 평화가 강물처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풍성한 평화를 경험하는 삶을 살게 된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그 심령과 삶에 놓인 무거운 짐을 대신 지고서(시편68,20) 자유를 누리며 살도록 이끄시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너의 평화'에 해당하는 '셸로메카'(shellomeka)원형 '샬롬'(shallom)단순히 전쟁이나 불화, 분쟁이 없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측면에서도 부족함이 없는 온전한 상태(well-being)를 나타낸다.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인생 최대의 축복으로 여긴 것이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이 평화를 강물에 비유한다. 이것은 생명을 공급하는 풍성한 소출을 맺게하는 물이 풍성한 강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자는 넘치는 삶,  풍족하고 풍성한 삶을 살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축복'너의 의로움이 바다 물결처럼' 넘실거린다는 것이다. 

여기서 제시되는 '의로움'은 앞에 제시된 '평화'와 더불어 주님의 통치의 성격과 관련된다(이사32,17). 사실 의로움은 평화를 초래하는 원천이다. 

여기서 '의로움'(정의)에 해당하는 '체다카'(tsedakah)하느님의 백성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올바른 삶의 태도, 의롭고 정직한 행위를 의미한다. 

이것은 단지 법적으로 의로움을 구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의로움을 누릴 수 없는 약한 자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자비와 연민을 베푸는 삶으로까지 확대된 표현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다 물결 같다는 표현은 그러한 삶이 끊임없이 계속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비유이다. 바다 물결은 그 흐름이 끊이지 않고, 한 파장이 다른 파장으로 연결되면서 계속된다.

하느님의 백성이 그의 명령을 겸손한 마음으로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산다면, 그들의 삶에서는 마치 바다 물결같이 의로운 행위, 자비로운 행위가 끊임없이 계속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삶은 그와 그가 속한 공동체로 하여금 하느님의 자비와 연민을 힘입게 하며, 그야말로 '샬롬'(shallom), 완전한 평화를 누리는 형통한 삶, 부족함이 없는 삶의 자리로 이끌어 세울 것이다.  

"네 후손들이 모래처럼,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많았을 것을,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19) 

'네 몸의 소생들이 모래알처럼' 이란 표현은 주님의 명령을 듣고 순종하는 삶창세기 15장 5절과 22장 19절 있는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의 축복을 성취하는 첩경이 된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그러나 선민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는 이와 정반대의 결과 저주스러운 일이 이루어졌을 뿐이다. 북부 이스라엘 앗시리아에 의해서 멸망당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흩어졌으며, 남부 유다 바빌로니아에 정복당하면서도 동일한 결과가 일어났던 것이다. 

또한 하느님의 언약을 받은 다윗 왕가는 무너졌으며, 왕의 자손들 역시 포로로 끌려가고 말았다. 민족 자체가 멸절된 것은 아니었지만, 민족의 수효는 급감하고 말았다. 

고대 세계에서는 자손이 번성하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큰 축복으로 여겨졌었다. 이스라엘은 범죄함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언약된 번성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고 불순종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쇠퇴와 멸망의 길을 걷고 만다.  

'그들의 이름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도 없어지지도 않았을 것을' 

본문은 완료 시제가 아닌 미완료 시제로 되어 있다. 이것은 이사야서 48장 18절과 19절 상반절이 완료 시제로 되어 있는 것과 다르다. 

따라서 본문은 이스라엘 자손의 이름이 이미 끊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서 주님의 계명과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그렇게 되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낸다.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이름'은 하느님의 명칭 정도로 여겨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그 이름을 지닌 대상의 존재와 성품, 사명과 활동 등을 함축한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이름이 하느님 대전에서 끊어진다는 것은 그들에 대해 하느님께서 더 이상 어떤 기대도 하지 않으시며,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정체성과, 사제들의 나라(탈출19,5.6)로 삼으시고 축복의 통로로 삼으신 거룩한 직책을 박탈하신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이 하느님의 명령에 주의하였더라면 이같은 영예로운 이름, 그 안에 함축된 복된 직책과 임무들을 잃지 않았을 것이며 더 나아가 하느님의 축복을 누리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명령을 업신여김으로써 그 모든 축복에서 멀어지고, 심지어 바빌론에 의해 패망을 당하여 결국 그들이 지닌 거룩한 이름과 정체성까지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 것이다.


 09.18.수.'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회개> 송영진 모세 신부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마태 11,16-17)"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도 받아들이지 않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꾸짖으시는 말씀입니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선포한 회개가 아닌 다른 회개를 원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이 아닌 다른 복음을 원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다 싫고, 살던 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마태 11,18-19)."


사람들은 세례자 요한의 엄격한 극기 고행을 보면서
정상이 아니라고, 즉 미쳤다고 비웃었습니다.
그리고 "미친 사람이 한 말이니 그의 회개 선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어울리시는 모습을 보면서
시정잡배 같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면서 "죄인들과 어울리는 죄인이 한 말이니 그의 복음 선포를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회개하라는 요한의 말은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복음은 술 취한 사람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1) 세례자 요한은,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루카 3,11.13.14)."
라는 말을 했습니다.
말로만 회개하지 말고 행동으로 실천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말을 실제로 실천하는 것을 싫어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과 이기심 때문에...)
그래서 그런 말을 하는 요한을 싫어했을 것이고,
요한이 말하는 회개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도
처음에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였으니(마태 4,17),
예수님도 처음부터 회개를 강조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싫어한 것도 사실은 회개하기가 싫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회개가 싫으니까 예수님도 복음도 다 싫었을 것이고...
그러다가 하느님 나라, 영원한 생명, 구원에 관한 말씀을 흘려들었을 것이고.


2)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도,
자기가 한 일들이 죄라는 것도 인정하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는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위선자들...
그런 사람들은 회개하라는 말을 듣는 것 자체를 싫어합니다.
자기는 당연히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니,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하여라." 라는 말이
자기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3) 오늘날에는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는 것도,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한다는 것도
받아들일 수 없다." 라고 말하면서 고해성사를 부정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해성사는 사람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는 일이 아닙니다.
고해 사제는 사람의 죄를 자기 마음대로 용서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용서를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입니다.


또 "고해성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이 베풀어진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느님도, 예수님도 안 믿는 사람이라면 성사의 은총도 안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도 믿고 예수님도 믿는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면서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사를 안 믿는다면, 또 성사의 은총을 안 믿는다면,
그것은 하느님과 예수님을 안 믿는 것과 같습니다.


4) 성체성사의 경우에도 비슷합니다.
"빵이 성체로 변화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비유 말씀일 뿐이지
실제로 빵이 당신의 몸으로 변화된다는 뜻이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면 예수님의 말씀도 믿어야 합니다.
만일에 예수님의 말씀을 안 믿는다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라는 말씀은,
세례자 요한의 일과 예수님의 일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말을 반박하신 말씀입니다.
'지혜가 옳다는 것은'이라는 말은,
"하느님께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을 보내셔서 하신 일이 옳다는 것은"

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언자이고,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또 세례자 요한이 한 일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모두
하느님의 일이라는 것도 나타냅니다.
'지혜가 이룬 일'이라는 말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서 구원을 받게 된 일"이라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보고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우리는 요한이 선포한 대로 회개해야 하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지 않더라도,
우리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삶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과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생각과 말 때문에 흔들리지 말고...)

(신앙생활은 다수결로 정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또 구원의 진리는 여론 조사로 결정하는 이론이 아닙니다.)


 

2009/9/16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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