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3주간 수요일] 오실 분 (루카 7,18ㄴ-23)

2015. 12. 15. 오후 7: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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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간 수요일] 오실 분  (루카 7,18ㄴ-23)

성탄절[특집]

이사야 예언서 제2부에서는 하느님이 한 분뿐이시라는 점이 매우 강조된다. 바빌론에 유배 간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는 것은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도, 이방 신들도 아니라 오직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구원과 의로움을 이루어 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제1독서).

예수님의 오심을 선포했던 세례자 요한은 감옥에서 제자들을 보내어, 예수님이 메시아이신지 확인하려 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행적을 증거로 제시하신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와 치유 이적들은 그분이 누구신지를 보여 준다(복음).      

성탄절과 눈풍경 일러스트

 대림 제3주간 수요일 제1독서(이사야 45,6ㄴ-8.18.21ㅁ-25)

오늘 독서는 제2 이사야서 또는 '위로의 책'으로 불리는 40-55장 중의 말씀이다. 특별히 오늘 말씀에서 흐르는 사상은 유일신 사상이다. 

"내가 주님이고 다른 이가 없다." (I am the Lord, there is no other.)(6)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7ㄷ) "내가 주님이다. 다른 이가 없다." (18ㅁ) "나 주님이 아니냐? 나 밖에는 다른 신이 없다.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 나 말고는 아무도 없다." (21) "땅끝들아, 모두 나에게 돌아와 구원을 받아라.  나는 하느님, 다른 이가 없다." (22) 

이사야서는 구약의 어느 예언서보다도 유일신 사상을 강조한다. 하느님 홀로 위대하시고 거룩하시기 때문에 다른 신들을 섬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유일신 사상은 특히 이사야서 후반부에서 두드러진다. 이스라엘의 가장 큰 죄악은 유일하고 거룩하신 하느님을 저버리고 헛것들을 섬긴 어리석은 소행이다. 

"나는 빛을 만드는 이요, 어둠을 창조하는 이다.  나는 행복을 주는 이요, 불행을 일으키는 이다.  나 주님이 이 모든 것을 이룬다." (6) 

바빌론(페르시아)의 종교는 빛과 어둠을 적대적인 것으로 취급하지만, 주님은 그 모두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런 상태들에 대한 주권적 통치에 있어서, 이원론을 극복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사야 예언서 후반부는 바빌론 유배와 유배 이후의 상황을 언급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군대와 왕들을 이용해서 해방을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스라엘의 불신앙과 거만, 고집불통과 우상 숭배는 이제 자신들을 지배하고 있는 바빌론의 이방 왕인 고레스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이 내려 오도록 종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통치하고 있는 이방 왕의 말은 듣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주님은 당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움직이시기 위해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이방 왕을 들어 쓰셔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꼼짝달싹 못하게 하신다. 

8절의 "의로움"은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들을 이루시는 방법을 선택하시는 주님의 주권적 정의라는 표현으로써 이스라엘이 아닌 페르시아 왕을 선택하는 주님의 선택의 합법성을 의미하는 말이다. 

이러한 사상이 21절의 "의롭고 구원을 베푸는 하느님"에게도 그대로 통용되고 적용되고 있다. 주님은 자신이 유일하신 하느님, 미래를 정확하게 예언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시고, 자신의 목적을 위해 고레스를 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신다. 이 선택이 의롭고 적법한지는 이스라엘을 위해 성취하실  구원을 통해서 나타날 것이다.

주님은 역사적인 세력들을 지배하시는 의로우신 주인일뿐 아니라 구원자이시기도 하다. 23-24ㄱ 에서 고레스는 페르시아의 관할로 주장되는 영토에서 모든 자에게 충성이 요구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고레스는 오직 주님을 통해 이 '의로움과 권능'이  자신에게 주어졌다고 고백한다. 

24ㄴ-25절에서 고레스와 이스라엘은 모두 대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보호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고레스와는 달리, 이스라엘은 주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축복들에 대해서, 정치.경제 면에서 고레스와의 관계를 초월하는 대접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있지 않을 때, 주님은 내 자신이 매여 있고 나를 지배하는  다른 상위 계층을 통해 역사하시며 나에게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만큼 내 자신이 회개하기를 원하시고, 주님의 주권적 통치를 받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그 주님의 통치는 '의로움과 구원'을 가져오는 무상의 선물이다.

주님은 나에게 있어 어떤 존재이며, 얼마만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사오 바오로처럼, "그리스도는 내 전부" 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자.


[성탄이미지] 성탄절이미지모음 2

<예수님> (루카 7,18ㄴ-23)  송영진 모세 신부


"요한은 자기 제자들 가운데에서 두 사람을 불러 주님께 보내며,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여쭙게 하였다(루카 7,18ㄴ-19)."


세례자 요한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분'이라는 것을 믿었고, 또 사람들에게 그렇게 예수님을 소개한 예언자입니다(요한 1,29-34). 그래서 지금 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라고 물었다는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1) 요한은 예수님을 믿었지만 요한의 제자들은 안 믿었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직접 보고 믿으라고 자기 제자들을 보낸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활동 초기에 예수님의 제자들과 요한의 제자들 사이에 시기, 질투, 갈등이 있었는데(요한 3,25-26), 예수님의 제자들은 요한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고,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안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랬다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직접 본 다음에는 예수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라는 말은 세례자 요한의 말이 아닌 것이 됩니다. 실제로는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실 분'이라는 말은 '메시아'를 뜻합니다.)


2) 세례자 요한이 생각한 메시아는 심판관이었는데(루카 3,17), 예수님께서 심판과 처벌은 안 하시고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만(사람들을 구원하는 일만) 하시니까, 그게 이해가 안 되어서 제자들을 보내서 물어보게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라는 질문은, "죄인들을 심판하고 처벌하는 일은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라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는 경우,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는 "죄인들을 심판하는 일은 메시아가 아닌 다른 분이 하시게 됩니까?"입니다.

이 해석의 경우, 요한은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서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지만(요한 1,33), 메시아께서 하실 일에 대해서는 분명한 계시를 받지 못한 것이 됩니다.


3) 루카복음에는 예수님께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시기 전에 세례자 요한이 감옥에 갇힌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루카 3,20), 예수님의 활동을 직접 보지 못한 요한이 제자들을 보내서 자기 대신에 보게 했을 것이라는 해석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일하시는 때가 지금입니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려야 합니까?" 라는 뜻이 됩니다.

(이 세 가지 해석 가운데 한 가지만을 선택하기는 어렵습니다. 어떻든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을 안 믿은 것은 아니고, 메시아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루카 7,22-23)."


이 말씀은 예수님의 활동을 요약한 것인데, 메시아 시대가 이미 시작되었음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메시아는 심판하고 처벌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병자들과 장애자들의 몸이 회복된 것은, 메시아는 잘못된 것들을 모두 바로잡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 것은, 메시아는 죽음을 물리치시는 분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는 말씀은, 메시아 시대를 갈망하던 사람들이 메시아를 만나게 되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음을 뜻합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라는 말씀은, "나를 믿는 사람은 복되다." 라는 뜻이고, 이 말은, 당신을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마르코복음에 있는, "믿고 세례를 받는 이는 구원을 받고 믿지 않는 자는 단죄를 받을 것이다(마르 16,16)."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세례자 요한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이 돌아간 뒤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루카 7,28)."라고 말씀하시는데,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을 오해하지 않도록 변호해 주시는 말씀으로 해석됩니다. 요한이 예수님을 의심해서 제자들을 보낸 것은 아니라고 변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를 바로 앞의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라는 말씀에 붙여서 읽는다면,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고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가 됩니다. 복음은(기쁜 소식은) 듣기만 해도 되는 소식이 아니라, 믿어야 하는 '말씀'이고, 삶으로 실천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날의 우리 입장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질문을 "다가오는 성탄절이 정말로 메시아의 탄생일입니까?"로 바꿔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성탄절은 옛날에 잠깐 활동하셨다가 떠나버린 분의 탄생만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라,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메시아의 현존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로 이어진 날, 땅에 있는 인간들이 하느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이 열린 날...그것을 믿고 그 길로 가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즉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어떻게 성탄절을 출하 할까?(3)

“하늘은 이슬비처럼 의인을 내려 다오.” 대림 시기의 전통적인 성가인 『가톨릭 성가』 94번의 첫 마디인데, 이 성가의 가사는 거의 이사야서의 구절들로 되어 있습니다.
오랜 기간 가뭄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저 하늘을 바라볼 따름입니다. 인간이 비를 내리게 할 수 없기에 그저 하늘에 매달립니다. “하늘은 이슬비처럼 의인을 내려 다오.”라는 기도는 그와 같은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구름이 의로움을 뿌리고 땅에서 구원이 피어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은,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이 세상에 의로움과 구원을 가져올 수 없다는 뼈저린 체험을 바탕으로 하는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간절히 기다렸던 분이 바로 예수님이신지 확인하려 합니다. 아마도 죽음을 앞에 둔 그가 자기 제자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목할 부분은 예수님께서 제시하시는 증거들입니다. 병자들이 치유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것, 곧 사람들이 구원을 체험하는 바로 그것이 그분이 메시아시라는 증거입니다. 이사야서의 말씀대로, 의로움과 구원은 오직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기다리는 자세는 단순히 기쁘고 즐거운 날이 아니라, 가난과 질병과 죽음에서 구원을 받는 날이기에 가뭄에 비를 기다리듯이 그렇게 간절한 마음이어야 할 것입니다.    
  

성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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