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헬렛(독서묵상)

2015. 10. 24. 오후 5:3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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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헬렛(독서묵상)

연중 제25주간 목요일 제1독서(코헬렛1,2~11)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2)

코헬렛은 질고에 휩싸인 인간의 구원이라는 성경 본래의 근본 주제를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와 그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설파한 책이다. 본서에는 인생의 허무그 극복에 대한 문제가 크게는 세 부분에서 거론되고 있다.  본문 부분인 1장 12절에서 12장 7절은 이러한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네 가지 주제로 다룬다. 그리고 이러한 본론 부분의 전후에 서론(1장 1절~11절)결론(12장 8~14절)부분이 있다.

코헬렛 1장 1절은 표제로서 '다윗의 아들로서 예루살렘의 임금인 코헬렛의 말이다'라고 시작한다. 원문은 이러한 표제가 '코헬렛(코헬레트)의 말'(The Words of Preacher)번역된 '띠브레 코헬레트'(dibre qohelleth)로 시작된다. 

구약 성경의 각권의 이름은 때때로 첫 부분에 나오는 단어로 정해지는데, 본서도 그렇다. 즉 히브리어 성경의 본서 제목이 '코헬렛'(코헬레트) 이다. 본서의 영역본 이름인 'Ecclesiates'70인역(LXX; 구약 성경의 희랍어 번역본)에서 사용한 본서의 제목인 '엑클레시아스테스'(ekklesiastes)에서 나온 것인데, 이 역시  본문에서 '설교자'(전도자)에 해당하는 '코헬렛'(코헬레트)의 번역이다.

'엑클레시아스테스''모임'(히브2,12),'집회'(사도19,32)라는 뜻을 가진 '엑클레시아'(ekkleisia)에서 유래하였다.  '코헬렛'(코헬레트)'설교자'라는 의미로 수정되는 '엑클레시아스테스'로 번역한 것은 각각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희랍어의 어원으로 볼 때 합당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허무로다. 허무!' (habel haballim; '하벨 하발림') '코헬렛이 말한다' 라는 문장 앞에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허무로다. 허무'를 서두에 배치하여 강조하는 것은 '허무로다'에 해당하는 '하벨'(habel)의 원형인 '헤벨'(hebel)이 나타내는 개념을 강렬하게 표현하고자 함이다.  '헤벨'(hebel)은 본래 '증기'(vapor),'호흡'(breath)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유래하여 '실체가 없는', '덧없음', '허무함', '아무런 결과를 낳지 못함' 등을 표현하는 단어로, 인간 존재의 헛됨과 인생의 무상함(욥기7,16),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의 소원을 들어주지 못하는 우상의 무능함과 무익함(신명32,36; 1열왕16,13)등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희랍어 70인역(LXX)에서는 '허무'(vanity)를 의미하는 '마타이오테스'(mataiotes)로, 라틴어 Vulgata에서는 '바니타스'(vanitas)로 번역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영역본들은 이것을 'vanity'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부조리', '불합리함'을 표함하여 인간의 삶의 총체적 허무기술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본절(2절)에는 '헤벨'(hebel)을 원형으로 하는 단어가 단수로 세 번, 복수로 두 번, 도합 다섯 번 사용되었다. 

본문의 '허무로다'에 해당하는 '하벨' '헤벨'의 연계형이고, '허무'에 해당하는 '하발림''헤벨'의 복수형이다. 따라서 본문을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헛된 것들 중의 헛된 것' (vanity of vanities)이 된다. 이러한 구조는 히브리어에 있어서 최상급을 나타내는 표현이다. 

창세기 9장 25절에서 '종들의 종'으로 번역된 '에베드 아바딤'(ebed abadim)'가장 천한 종'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과 마찬가지로, 본문은 최상급의 표현으로 상대적인 허무나 헛됨이 아닌 절대적 의미에서의 허무와 헛됨을 표현하고 있다. 

태양 아래 살아가는 모든 인생들이 직면하고 있는 바, 어떤 방법으로도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허무와 헛됨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생의 본질적 허무함에 대한 진술과 고백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도 반복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역경 속에 있었던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며, "저는 싫습니다. 제가 영원히 살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저를 내버려 두십시오. 제가 살 날은 한낱 입김일 뿐 입니다" (욥기7,16) 라고 절규했다. 바로 이 욥의 고백에서 '입김'에 해당하는 단어가 '헤벨'(hebel)이다.

또한 다윗은 범죄로 인한 하느님의 징계로 그 모든 영화로움을 잃게 되는 모든 인간의 궁극적 형편을 묘사하며, "당신께서는 죗값으로 인간을 벌하시어 좀 벌레처럼 그의 보배를 사그라뜨리시니 사람은 모두 한낱 입김일 따름입니다"(시편39,12) 라고 고백하고 있다. 여기서 사용된 '입김일 따름입니다'로 번역된 표현 역시 '헤벨'(hebel)이다. 

이외에도 성경 여러 곳에서 인생 자체를 숨결보다 가벼운 것으로(시편62,10), 지나가는 그림자와 같은 것으로(시편144,4), 잠깐 나타났나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안개)(야고4,14)로 묘사하며 그 허무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상에서 욥이 고백한 인생에 대한 비관적 선언이 견딜 수 없는 고통에서 유래한 것이라면, 다윗의 고백은 범죄하는 인간의 실존을 직시하고 그 허무함과 무의미함 등을 절감한 이후 내뱉은 고백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백된 '헤벨'(hebel) 인생의 허무함에 대한 토로어떤 면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러나 본문에서 드러나는 설교자의 진술은 인생의 모든 것들을 누린 자에게서 나온다는 점에서 더욱 더 절망적인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인생의 모든 쾌락과 즐거움, 그리고 모든 부귀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을 정리하며 얻은 체험적 결론이기에, 본문의 진술은 더욱 더 충격적이며 어떤 인간도 이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이것은 단순한 염세주의나 비관론자의 푸념으로 매도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하지 못한 것들을 지향하는 인간의 온갖 자의적 수고와 하느님을 떠나 궁극적인 삶의 목적과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인생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직시한 것에 따른 것이다. 결국 하느님 안에서의 신앙을 가진 자에게만 인생이 참된 의미를 가진다는 긍정적 결론을 위한 신앙적 실존에 근거한 방법론적 (기술적) 염세주의라 할 수 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habel haballim hakkol habel; '하벨 하발림 학콜 하벨') '허무로다. 허무'에 해당하는 '하벨 하발림'(habel haballim)본절 서두에 이미 기술되었으나 후반절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문장 서두에 언급된 표현이 다시 반복되어 인간의 삶의 헛됨을 보다 강렬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모든 것이 허무로다'로 번역된 '학콜 하벨'(hakkol habel)을 덧붙여 태양 아래 모든 것이 헛됨을 더욱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 '모든 것이'에 해당하는 '학콜'(hakkol)'모든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 명사 '콜'(kol)과 정관사 '하'(ha)가 결합된 형태이다. 따라서 '학콜 하벨''그 모든 것이 헛되도다'(the whole is vanity)로 번역될 수 있다. 

본절에서 '학콜 하벨' 선행하여 '헤벨'(habel)을 원형으로 하는 단어가 네 번 사용되었다. 이 네 개의 단어는 동일한 형태로 두 개의 어구를 형성하여 감탄의 의미 전달한다. 그런데 태양 아래 인간의 삶의 헛됨을 탄식하는 이 표현에는 주어가 생략되어 있다. 

그리고 이에 이어지는 본문의 '학콜 하벨'에서 비로소 구체적인 주어를 등장시키고 있는데, 바로 '그 모든 것'이다.  여기서 '그 모든 것'이란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결국 세상과 인생 의미한다. 

결국 솔로몬은 단수, 복수로 제시된 허무에 해당하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여 진한 탄식을 내뱉은 후에 마지막 부분에서 '모든 것'을 주어로 제시함으로써, 일말의 희망을 바라는 독자들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있다. 

이것은 이 세상에서 도무지 아무런 희망과 참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인간의 비극적 실존을 강렬하게 부각시켜 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1장 3절에 그 허무의 범위를 '태양 아래에서'제시하듯, '그 모든 것'의 영역에는 하느님과, 하느님과 궁극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 대상이 제외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제25주간 금요일 제1독서(코헬렛3,1~11)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1~2)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에 대하여 문제를 제기하고, 태양 위의 하느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한 허무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코헬렛서는 네 가지 설교로 이루어져 있다. 그 가운데 제1설교인 1장 12절~3장 22절은,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를 제시하는 1장 12절~2장 23절과 극복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2장 24절~3장 22절로 나누어진다. 

코헬렛서 3장 1절이하 15절까지는 허무의 극복 가능성을 제시하는 부분의 두번째 단락으로서 태양 위에 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의지함으로써, 태양 아래 인생의 절대 허무가 극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코헬렛서 3장 1절 이하 15절까지는 인생의 허무를 극복할 수 있는 신본주의적 가능성에 대해 언급한 2장 24절~26절 부분과 내용면에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코헬렛서 2장 24절에서 "자기의 노고로 먹고 마시며 스스로 행복을 느끼는 것보다 인간에게 더 좋은 것은 없다. 이 또한 하느님의 손에서 오는 것임을 나는 보았다" 라고 하면서 인간의 즐거움이 하느님의 손에서 나오는 선물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본 단락에서는 모든 일에 때와 시기가 있고, 하느님께서 때를 따라 아름답게 지으시고 인간에게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말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주신 영원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하느님의 섭리를 받아들이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인생의 절대 허무를 극복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그 중에서 코헬렛서 3장 1절이하 8절에서 설교자는 먼저 반복과 열거를 통하여 모든 것의 기한과 목적이 이루어지는 때를 정하신 하느님의 섭리를 예증한다. 그리고 서두에 나오는 3장 1절은 2~8절에 전개된 인간의 만사가 정해진 때가 있음을 다루는 반어법의 대구 구문들의 서론적 성격을 갖는다.

원문은 '모든 것에는'(to everything)에 해당하는 '락콜'(lakkol)로 시작된다. 본서에 91회나 사용된 이 용어는 하느님의 창조 세계의 모든 일을 가리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지만, 이어지는 2~9절 내용과 관련지어 볼 때, 인간사에서 하느님의 뜻과 섭리 아래서 일어나는 모든 일, 총체적인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2~8절에 나오는 일곱 구절로 된 14쌍의 구체적인 진술 사람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모든 것을 묘사한 것으로 '락콜'(lakkol)이란 한 단어로 표현된다.  

또한 설교가는 '모든 것에는'라는 말을 앞세움으로써 삶의 모든 영역을 하느님께서 주관하고 계심을 강조적으로 드러낸다.   이것은 피조물로서의 겸손과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무한한 신뢰나타내는 표현이다. 그리고 이어 나오는 단어는 '시기가 있고 ~(이룰) 때가 있다'에 해당하는 '제만 웨에트'(zeman weeth)이다. 이것은 삶의 모든 양상이 시간과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으며, 하느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시간 속에서 이루어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시기'(기한)란 의미로 사용된 '제만'(zeman; season)이나 '때'란 의미로 사용된 '에트'(eth; time)는 모두 '시간','기회'를 표현하는 동의적 표현이다. 여기서 전자는 '기한'의 의미가 강하고, 후자는 '시점'의 의미가 강한 단어로 볼 수 있으며, 성경에서 두 단어의 연결이 흔히 나타난다(다니7,12; 사도1,7; 1테살5,1).

희랍어 구약 성경인 70인역(LXX)에서는 전자를 '크로노스'(chronos)번역하고, 후자를 '카이로스'(kairos)로 번역하였다. 이것은 전자일반적인 기한을 말하는 것으로 보고, 후자특별한 사건이 일어나는 경험적인 어떤 순간을  말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시는 때에는 그 섭리를 성취시키기 위한 시간의 질서가 있음을 드러내는 용어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설교가는 어떤 특정한 시점으로서의 '때'모든 일(목적)을 이루시는 것과 관련시킨다. 여기서 '일에는'에 해당하는 '헤페츠'(hephets; purpose)'모든'이란 의미의 '콜'(kol)과 함께 사용되어 '이루어지면 즐겁겠다고 여겨지는 모든 소원'이란 의미를 전달한다. 

특히 설교가는 하느님의 허락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사실과 더불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정해진 때가 있음을 말하기 위하여 '헤페츠'(hephets)와 더불어 '콜'(kol)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일들과 모든 소원들이 하느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사실을 보다 확실하게 보여주기 위하여 설교가는 3장 2~8절에서 이 모든 것에 포함되는 일들을 일일이 열거하고 있다.

그 모든 일들이 각각 이루어지는 때는 하느님만이 아신다. 다만 사람은 하느님께서 정해 놓으신 때에 그 정해 놓으신 사건을 경험하게 될 뿐이다. 이처럼 사람은 현재만을 보고 알게 되므로, 자기 운명을 미리 알고자 하거나 거기서 탈출하려는 노력 따위는 허무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2) 앞선 3장 1절에서 설교가는 하느님 섭리의 엄정성을 제시한 바 있다. 이제 3장 2절이하 8절에서 설교가는 7의 배수인 14쌍의 각각 반대되는 일들을 대조시킴으로써 인간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한 하느님의 완전하신 섭리를 부각시킨다. 

여기서 일곱의 배수가 사용된 것은 의도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히브리인들이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기간과도 관련되는 일곱총체성이나 완전함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을 지닌다(레위16,15.19; 즈카4,10). 

그리고 '둘'법정에서 증언을 확증하는 증인의 숫자이기도 하며, 사실이 확정적임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수이기도 하다(탈출31,18; 신명17,6). 여기서는 모든 일이 확정적으로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 있음을 보다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이러한 반복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설교가는 여기서 이 세상과 인간의 삶의 다양한 측면들을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씩 짝을 지어 제시하면서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섭리에 달려 있다는 보편적인 진리를 전하고 있다.



토요일  제1독서(코헬렛11,9~12,8)


"젊은이야, 네 젊은 시절에 즐기고, 젊음의 날에 네 마음이 너를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  그리고 네 마음이 원하는 길을 걷고, 네 눈이 이끄는 대로 가거라. 다만 이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께서 너를 심판으로 부르심을 알아라." (9) 

코헬렛서 11장 9절부터 12장 7절까지 이어지는 말씀은 태양 아래 세상의 절대 허무와 태양 위 하느님과의 관계를 통한 허무 극복의 가능성을 깨달은 자가 취할 최선의 인생의 자세를 지적하는 제4가르침 중 마지막 단락이다. 

여기서는 유한한 인생의 근본 생활 자세로 하느님의 심판을 전제로 하여 희락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는 내용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특히 이 부분은 인생의 황금기요 꽃과 같은 시기를 살아가는 젊은이(청년)들을 교훈의 일차 대상으로 하고 있다. 

먼저 솔로몬은 젊은이들이 살아가는 현실, 곧 젊음의 날을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을 권한다. 여기서 '즐기고'에 해당하는 '세마흐'(semah)'사마흐'(samah)명령형이다. 강조적 의미를 지닌 직접 명령형을 이용해서 젊은 시절을 즐길 것을 권하는 것이다. 

아울러 '기쁘게 하도록 하여라'에 해당하는 '위티베카'(witibeka)접속사 '와우'(wau)'좋다','기뻐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야타브'(yatab)사역 미완료형이 결합된 형태로서 간접 명령의 의미를 나타내는 동사 사용되었다. 

코헬렛 11장 9절 전반절이 젊은이로 하여금 주어진 젊음의 시절을 즐기라는 피상적인 명령이었다면, 중반절은 보다 구체적인 명령이라고 할 수 있다.  네 마음이 원하는 대로, 네 눈이 원하는 대로 살라는 것이다. 

여기서 '걷고' '가거라'에 해당하는 '웨할레크'(wehallek; and walk)의 동사 '할라크'(hallak)'마음'에 해당하는 '레브'(leb)'눈'에 해당하는 '아인'(ain)동일하게 사용되었는데, 부정적인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 

코헬렛서 저자가 반복적인 쾌락 추구, 즉 심판을 자초하는 쾌락을 추구할 것을 권면하는 단호한 풍자법을 사용하여 이것을 역설적으로 금하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래서 구약 성경 희랍어 역본(LXX)은 이러한 의미를 감안하여 본문을 '네 마음이 책망할 것이 없는 길로 행하고,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지 말라'는 뜻으로 번역하였다. 마침내 후반절은 전반절과 중반절의 진의가 무엇인지를 규명해 주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코헬렛 저자가 젊은이들을 향해 인생의 황금기인 자신들의 때를 즐거워하며 기뻐하고, 마음에 원하고 눈에 보이는 대로 할 것을 권하였다. 그러나 그와 같은 즐거움, 원하는 길과 눈으로 보이는 것들은 모두 하느님의 심판에 대한 지식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심판'에 해당하는 '빰미쉬파트'(bamishiphat)는 전치사 '뻬'(be)정관사 '하'(ha), 그리고 '정의' 내지는 '심판'을 의미하는 명사 '미쉬파트'(mishiphat)가 결합된 것이다.

여기서 사용된 '미쉬파트'(mishiphat)를 부정적이거나 소극적인 의미로만 보면 안된다. 죄악에 대한 형벌의 측면에서 '심판'이란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하느님의 공의(公義) 구현의 측면과 선(善)한 삶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도리어 상급을 주는 적극적인 의미도 함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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