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1(1-6) 안병철 신부(가톨릭 대학 교수)

2015. 9. 17. 오전 9:34:45

글자

출애굽기 강해 1(1-6)안병철 신부(가톨릭 대학 교수)


출애굽기 강해
                안병철 신부(가톨릭 대학 교수)
출애굽기의 형성은 “모세오경”이라는 큰 테두리에서 연구되어야만 한다.


구약성서 구성사
Ⅰ. 구약성서 편집 단계

1. 제 1단계
이스라엘 문학의 시조단계로써 기원전 10-8세기에 이루어졌다. 남유다에는 야훼께 전승(J), 북이스라엘에는 엘로힘계 전승(E)이 현저하게 구분되어 보존 되어 있었던 것이다.

2. 제 2단계
북 이스라엘의 고유 전승인 엘로힘계 전승이 사마리아 멸망(722-721)과 함께 남 유다로 전래되어 야훼께 전승과 통합되는 단계로써 히즈키야 왕정(716-687) 후반기에 이루어졌다. 활발한 문학운동이 전개되나 양대전승 속에 동일한 사건이 등장하는 경우 엘로힘계 전승이 야훼계 전승에 유리하게 흡수되어 통합된 것으로 추측된다.

3. 제 3단계
622년경 예루살렘 성전에서 우연히 발견된 “율법서”를 중심으로 종교 쇄신 운동을 단행한 요시아시대(640-609)에 이루어진 단계로서 신명계 학파의 문학운동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신명기, 여호수아서, 판관기, 사무엘서, 열왕기와 같은 신명계 문헌들이 편집되기 시작한 시대이다. 이 문헌들 속에서 우리는 왕정 제도의 정당화를 위해 고심하는 한 학파의 모습을 읽어 볼 수 있다(D).

4. 제 4단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처절했던 시기였던 유배시대(597/587-538)가 이에 속한다. 최근까지 이 시대엔 문학운동이 거의 없었을 것이라 추측해 왔으나, 땅도 성전도 왕도 없는 상태에서, 더구나 그들의 하느님이 무기력하게까지 보이는 상황에서 유배민들에게 힘과 용기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정신문화운동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했던 시기로 보고 오히려 보다 더 많은 작품들이 이때 편집되었을 것으로 본다. 이 시대의 대표적 인물은 사제이며 예언자였던 에제키엘이었고 그의 업적 역시 지배적이었다. 특히 제관계 전승(P)이 이때 수집, 편집되기 시작했다.

5. 제 5단계
유배시대 이후를 말한다. 본격적인 제관계 시대가 전개된으로써 모세오경을 기점으로 전 구약성서가 서서히 그 모습을 갖추어 나가기 시작한다. 모세오경은 5세기, 예언서는 3세기, 기타 작품들은 1세기경 집대성되어 출판되기에 이른다.

Ⅱ. 구약성서 구성 순서

1. 모세오경(Torah)
모세오경이 유대인들의 율법서로 공인된 것은 페르샤 황제 아르닥싸사(Artaxerxes) 2세(404-359)치하이다. 하느님의 법을 가르치는 선비이며 사제였던 에즈라(Esdras)는 황제의 명을 받아(에즈 7,12-26) 유배생활에서 귀환한 유대인들과 본토에 계속 남아있던 유대인들을 위한 율법서 한 권을 편집하여 공포하기에 이르나 물론 그의 개인적 창작품은 아니었다. 오랜 세월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익히 알고 실천해 왔던 개별적인 율법서들의 총체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2. 예언서(Nebi'im)
토라보다는 훨씬 후대에 집대성 된다. 그 시기를 정확히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나 대략 기원전 3세기경으로 보고 있다. 예언서 안에 포함되어 있어야 할 다니엘서(2세기 중엽 저술됨)가 예언서 목록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또한 예언서는 담고 있는 역사적 사건의 시대순에 따라 전기 예언서(여호수아, 판관, 사무엘, 열왕기)와 후기 예언서(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 12소 예언서)로 대분된다. 이중 12소 예언서는 작품의 분량에 따른 명칭으로서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디야, 요나, 미가, 나훔, 하바꾹, 스바니야, 하깨, 즈가리야, 말라기서가 이에 속한다.

3. 그 밖의 저서들(Ketubim)
모세오경과 예언서에 포함되지 않은 그 밖의 저서들을 통칭해서 “끄뚜빔”이라 부른다. 시편, 지서(知書), 다니엘서가 여기에 포함되어 있다. 이 중 우선 다섯 개의 전례용 두루마리(Meggiloth)가 중요시 된다 : 전도서(초막절용), 아가(과월절용), 룻기(맥추절용), 애가(예루살렘 멸망 애도용), 에스델서(Purim제용), 기타 작품들은 보다 후기에 저술되어 1세기경 히브리어 성서가 완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70인역은 구약성서 각권 배열에 있어서 희브리어 성서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유대인들은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와 에즈라-느헤미야서를 한 권으로 취급하고 있으며, 12소 예언서 역시 같은 방법으로 취급하고 있어(구약)성서를 24권이라 말한다.

모세오경
Ⅰ. 개 관

<명 칭>
구약성서 첫 번째 다섯 권에 대한 명칭은 다양하다. 유대인들은 움직이는 율법이라는 의미의 “토라(Torah)”라 부르고 있으며, 이에 대한 제일 첫 성서적 증언이 집회서의 머리말이나(희랍어로 νομοs). 희랍어 역본인 70인역(Septuaginta)은 πεντα τευχοs(techos: 본래 “도구”라는 뜻이나 파피루스로된 두루마리를 넣어 두는 “상자”를 가리키기도 하고 후에는 “책”이라는 의미로 됨)의 합성어로서 다섯 권으로 된 책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명칭이 있으나 그 중 “모세의 율법”이라는 명칭이 자주 사용된다. 모세는 이스라엘 최대의 입법자였으며 하느님의 법(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해준 중재자 였기에 이와같은 명칭이 탄생된 것이다.
모세오경 각 권의 명칭에 있어서 유대인들은 각 권의 첫 단어 또는 구절을 따서 서명(書名)으로 사용하고 있다. 제 1권은 תꔝꚄꕲꔶ (bere'shit : 한 처음에), 제 2권은 תוֹמꚉ חꗦꔞꕳ(We'elleh shemot : 이름들은 다음과 같다), 제 3권은 אꖷꙓꗁꕲ(wayyiqra': 그분은 부르셨다), 제 4권은 דꔰꕈꖾꕲ(wayedabber: 그분은 말씀하셨다) 또는 (bemidbar : 광야에서) 그리고 제 5권은 ꔅꔝꕉꔯꕖꕢהꗦꔞ(‘elleh haddebarim: 말씀들은 דꔰꕎꗬꔶ 다음과 같다)이다. 그러나 70인역은 각권의 특수 내용에 따라 제 1권을 Τενεσις(Genesis : 창세기), 제 2권을 Εξοδος(Exodus : 출애굽기), 제 3권을 Λευιτικον(Lewitilon : 레위기), 제 4권을 Αριθμοι(Arithmoi : 민수기), 그리고 제 5권을 Δευτερονομιον(Deuteromion : 제 2의 율법)이라 부르며, 불가따(Vulgata)는 물론 현대어 번역본들 역시 이 서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점은 토라가 처음부터 이처럼 다섯권으로 나뉘어 집필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원래 한 권으로 되어 있었으나 보관상의 어려움으로 후에 부피에 따라, 한편으로는 내용을 존중하면서 인위적으로 구분되었을 것으로 본다. 만약 순수 내용에 따른 구분이었다면, 창세 1-11(세상과 인류의 기원), 창세 12-50(성조시대), 출애 1-18(에집트 탈출), 출애 19 - 레위 - 민수 10,10(시나이 사건), 민수 10-11 - 신명 34(시나이 출발에서 약속의 땅 도착직전 모세의 죽음까지) 이렇게 구분하는 것이 보다 논리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출애굽기는 오랜 역사의 산물이며 출애굽기를 형성하고 있는 요소들은 거의 600여년에 걸쳐 형성되었으므로 참으로 상이한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은 다양한 성격을 지니게 되는데 그 이유는 때때로 대화의 맥을 끊어 놓는 것 같은 4개의 율법과 더불어 이야기들이 번갈아 소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 과월절, azymes(무교절), 장자에 대한 율법(출애 12-13), 십계명(20장), 계약의 법전(20,22-23.33). 의식(儀式)법전(34,14-26).
그래서 출애굽기는 조각조각을 모아 놓은 것 같다. 여기서 우리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생각하게 되고 그것을 감상하는 법을 출애굽기를 읽는데 그대로 적용해야 할 것이다.

<구 조>
이제 출애굽기의 구조를 보면:
지형학적 내용에 근거하면 : - 에집트에서의 이스라엘 : 1-13,16
- 에집트에서부터 시나이까지 : 13,17-18,27
- 시나이에서 : 19-40
위의 도식보다는 E. Zenger의 도식이 더 논리적이고 바람직하므로 그것을 소개한다. 그가 제안하는 도식은 일곱부분으로 나뉘는데 중심부분을 축으로 세부분씩 구성되어 있다 : 세 부분은 (첫 번째 부분, 중심부분, 마지막 세 부분)“해방”, “계약”, “흠숭(경배)”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다.
도식을 보면 :
1. 예고된 해방(1-6,27)
에집트에서의 학대 : 모세의 출현
2. 지연된 해방(6,28-11)
에집트의 재앙 : 파라오의 거부
3. 실현된 해방(12-16)
마지막 재앙
12-13 : 과월절, 무교절, 장자에 대한 율법
출발 : 바다의 기적
   4. 시나이에서의 계약(17-24,11)
하느님과의 위대한 만남
20,1-17 : 십계명
20,22-23,33 : 계약의 법전
계약의 체결

5. 예고된 경배(24,12-31)
모세에게 계시된 성역의 계획(지성소)
6. 지연된 경배(32,24)
황금송아지의 위기 : 화해
7. 실현된 경배(35-40)
온 정성으로 건축되고 하느님의 현존으로 축성된 지성소

전체의 움직임은 의미론적인 “삽입”을 통해 두 개의 극단적인 내용을 연결시키고 있다. 두 경우 강도 높은 노동이 문제시 되고 있다. 처음에는 외국인 폭군에게 봉사하기 위해 강요된 종으로서의 노동이요, 끝부분에서는 그들을 해방시키시고 그들과 함께 거처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느님께 봉사하기 위해 자유로운 의지를 지닌 인간들로서의 노동이다.

이러한 도식 위에서 출애굽기의 내용을 살펴보자.

1. 예고된 해방 (1,1-6,27)
이 첫 번째 부분의 곧이어 구현될 하느님 계획의 굵은 선과 인물들을 부상시키고 있다. 편집자는 다양한 요소들을 여기에 배열했다. 요약하면, 서론을 형성하게 될 1,1-4.5b-7의 제관계 원천, 하느님께 호소하게 하는 억압에 대한 짧은 이야기(1,13-14). 그 이야기를 하느님께서 들으심(2,22b-25), 그리고 족보에 의해서 보관된 모세의 부르심이야기.
나머지는 다음에 소개할 야휘스트 핵심내용을 중심으로 다양한 시대로부터 첨가되고 다양한 요소들로 형성된 것이다 : 1,6-14 : 3,16이하 : 5,1-5
여기서 우리는 이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든 것이 제관계 이야기에서처럼 에집트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텍스트의 기나긴 역사는 분명 상당수의 내용이 통일성이 없고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하지만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텍스트는 순서가 맞지 않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편집자들이 승계해 편집하면서도 그들은 상당한 지혜를 갖고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료들을 배열했는데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 두 개의 명단을 본질적 내용으로 해서 구성된 틀 (1,1-7과 6,13-27)
- 이스라엘 사람들이 당하는 고통에 대한 묘사 (1,8-22)
- 모세에 관하여 집중적으로 전하는 긴 내용 (2,1-6,12)

1)명단으로 구성된 틀

1,1-7과 6,13에 나타난 두 요소들은 서로 상응하고 있다.
-1장 : 에집트로 내려간 이스라엘의 아들들.
-6장 :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의 아들들을 이끌어 내라는 분부를 내리신 것이다.

-1장 : 루우벤, 시므온, 레위로 시작되는 야곱의 열두 지파.
6장 : 처음 3명만 언급. 그러나 레위의 후손에 대한 언급을 하면서 모세와 아론에게까지 내려감.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는 민수기에서 찾아 볼수 있음.

-1장 : 창조 이야기(창세 1,28)에 나오는 용어를 똑같이 사용하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번성과 더불어 하느님의 축복이 가득한 분위기.
6장 :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을 테두리 지어주고 있는 모세와 아론(6,13과 6,26-27)의 선교에 집중된 하느님의 역사(歷史)하심.

2) 고통에 대한 묘사
1,1-7에서의 행복한 모습과 대조를 이루면서 1,8-22에서는 바다에 빠져 죽게되는 순간까지 에집트를 떠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게 될(14,28 ; 15,19) 혹독한 고통을 가하게 되는 이스라엘의 적인 파라오가 나타난다.
파라오의 행위는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
-놀라울 정도로 번성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적 증가에 제동을 걸기 위한 수단인 것처럼 소개된(1,10). 혹독한 노동의 강요, 노동현장 투입은 부인들과의 결별을 의미, 결국 출산의 기회를 막음.
-보다 근본적인 방식으로써 태어나는 남자 어린이를 모두 살해. 이것은 엄격하고도 지속적으로 실시됨. 이에 대해 이스라엘의 그 어떤 반대 반응에 대해서는 최후 명령이 떨어지는 전날에 많은 아이를 낳게 된다는 내용 이외에는 전혀 언급이 없다.(1,20).

3) 모세
2장 부터는 출애굽기 마지막 부분까지뿐만 아니라 모세오경 전반에 걸쳐서(그가 죽을 때까지: 신명 34장) 중요한 인물로 남아있게 될 모세를 중심으로 놀라운 이스라엘의 구원 역사가 시작된다.
대칭되는 모습으로 구성된 도식을 보면 행위의 장소들을 쉽게 간파할 수 있다 :
A. 에집트에서 2,1-15a
 B. 미디안 땅에서 2,15b-23
   C. 호렙에서 2,23-4,17
 B'.미디안 땅에로의 귀환과 새로운 출발. 4,18-26
A'. 에집트에서 4,27-6,12
모세에게 있어서 에집트는 출생과 유년기에서부터 귀환에 이르기가지 투쟁의 장소였다. 그러나 미디안은 평화와 환대와 가정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소였다. 호렙은 야훼와의 만남의 장소요 선교 파견의 장소였다.
C와 A'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므로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나머지 부분을 먼저 살펴보자.

A. 모세의 출현 (데뷰)
-고대의 유명한 인물의 경우와 비슷한 모습으로 모세의 유년기 이야기가 시작(2,1-10)된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남자아이를 다 죽이도록 명한 파라오의 딸에 의해 모세는 구원되어 2중적인 가족제도 속에서 자라게 된다. (생모가 유모가 되고 파라오의 딸에 의해 양자가 됨).
-자세한 더 이상의 설명없이 모세는 고통받는 형제들 곁에 나타나지만 그들에 의해 즉시 버림받고 파라오에 의해 경고를 받는다(2,11-15a).

이것은 그의 생애가 투쟁의 생애가 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는 모습이지만 현재로서는 도피의 동기가 된다.

B. 미디안 땅에서
우물가에서의 만남의 장면은(2,15b-17) 시뽀라와 결혼에 이르게 되면서(2,21-22) 널리 알려져 있는 주제에 합치하게 된다(창세 24,15-27 : 리브가, 창세 29,1-12) : 야곱).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모세가 에집트인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이다(2,19).

B'. 귀환
이 단계는 아들의 할례가 야훼께로부터 오는 죽음의 재난을 면하게 하기 위해 도입되고 있는 4,24-26의 이상야릇한 이야기로 특징지어지고 있다. 매우 원시적인 종교에서나 볼수 있는 신비스런 텍스트로써 상당수의 내용들이 분명하지가 않다. 그러나 편집자들이 이 내용을 삭제하지 않았다는 것은 의미가 있다. 지나가 버린 전승들을 간직한다는 것은 그전부터 살아온 길에 대해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이 모든 세대에 걸쳐 무섭고 이해할 수 없는 분으로 남아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C. 호렙에서의 만남
2,23-4,17의 내용은 분명 전혀 다른 중요성을 띄고 있다. 성서에 나오는 가장 놀라운 것 중의 하나이다. 이 부분을 세 단계로 구성할 수 있다.

① 서곡 (2,23-25)
에집트 왕의 죽음은 상황에 조금도 변화를 가져다 주지 못한 것 같다. 여기에 나타나는 새로운 요소는 이스라엘의 탄식을 들으시는 YHWH의 관심이다. 그것이 출애굽 전체를 이끌어가게 될 내용이다.

② 이야기의 요소 : 타는 떨기 (3,1-3)
양떼와 더불어 모세의 발걸음은 하느님의 산인 호렙에 이른다. 떨기의 표징을 보자. 불이 지니는 풍부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생명에 필요한 빛, 잡을 수 없는, 파괴하는 빛, 그러나 여기서 그 빛은 파괴하지 않는다.

③ 만남 자체 (3,4-4,17)
이 만남은 계속되는 대화처럼 그리고 YHWH의 독백처럼 소개된다. 모세는 거기서 YHWH에게 절대적인 우선권을 부여하면서 대화 상대자로 표출된다.

a - 대화와 행동 (3,4-6)
 b - YHWH의 독백 (3,7-10)
a'- 대화 (3,11-13)
 b'- YHWH의 독백 (3,14-22)
a''- 대화와 행동 (4,1-17)

a. 부르심, 응답, 존경의 행위, 야훼의 요구, 즉각적 행위(얼굴을 가림):
 모세는 맨발로 거룩하신 분의 현존앞에 서 있다.
b. 주님의 첫 번째 의사표시는 이스라엘의 고통에 관계되는 것이다.
 “나는 보았고, 들었고, 알았다. 내려가서, 빼 내어, 너를 보낸다.”
  당신 백성에 대한 THWH의 시선은 행동에로 옮겨져 모세를 선교에로 파견한다 : “가라!”
  종살이의 고통 앞에 풍요롭고 아름다운 그러나 이미 타민족에 의해 점령 된 땅이 언약으로 주어진다. 즉 행복과 투쟁이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된다.
a'. 모세는 두가지 반대 이유를 제시한다. 이런 형태는 성서 안에서 자주 볼 수 있다(예: 이사 6,5 ; 예레 1,6 ; 판관 6,15).
 두가지 반대 이유 : 능력이 없다.
                    자기를 파견하는 자의 이름을 모른다.
b'. 이제 THWH는 우선 이름에 대해서 융합하신다(3,14-15). 그리고나서 무엇이 이루어질 것인지를 예고하신다. 즉 장애가 있다 하더라도 선교는 성취될 것이다. 사실상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것이지만 모세는 우선 가서 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파라오에게 말해야만 할 것이다.
 이름에 대한 내용은 성서의 본질적인 텍스트들중의 하나이다. 거기서 세가지 요소를 구분할 수 있는데 :
 - 엘로히스트 전승의 테두리 속에서 이스라엘의 하느님은 당신의 고유한 이름을 알게 해 주신다 : THWH(야휘스트의 경우 이름은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 창세 4,26)
- 이 내용은 그 이름이 새로운 신(神)의 이름이 아니라 그분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곧 선조들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출애 2,24) 주장한다.
- 이 내용은 그 이름이 ἒϒω εἴμι라는 것과 동일시 한다.
a''. 만남의 마지막 단계는 전체가 대화로 되어 있다. 좀더 세분하면 :
- “그들은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4,1-9).
그러한 모세의 반대 대응에 대해서 YHWH는 세 가지 표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그에게 부여하신다 : 뱀이 된 지팡이(4,2-5), 손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문둥병(4,6-8), 피로 변한 물(4,9).
“믿다”라는 동사는 그 기적들 하나하나가 이루어질 때마다 다시 나타난다. 여기서 모세는 기적을 행하는 자로 표출된다.
- “저는 도무지 말재간이 없습니다”(4,10-16)
주님의 분노를 불러일으킬 위험을 무릎쓰고 모세는 선교사명을 거부한다. YHWH는 우선 당신의 현존으로 그를 안심시키고 그 다음은 그의 요청에 대해 아론을 대변자로 그에게 주신다. 이처럼 지원을 받은 모세의 역할은 YHWH의 말씀을 지니고 가는 것이다.
- “이 지팡이를 잡고 가거라”(4,17)
우리는 여기서 4,2-5의 지팡이와는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는, 하느님께서 주신 지팡이와 더불어 기적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이 두 개의 내용은 상이한 원천에서 온 것일 수 밖에 없다).

A'. 다시 에집트로 돌아온 모세 (4,27-6,12)
이 부분은 모세와 아론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이처럼 아론은 YHWH와 두 번에 걸쳐 만난 것으로 되어있다 :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과의 만남이 세 번 이루어 지는데 첫 번째 만남은 긍정적이고 나머지 두 번의 만남은 부정적이다. 이제 여기서 이루어지는 여섯 번에 걸친 만남의 내용을 요약해 보자.
① 원로들과의 첫 번째 접촉(4,29-31) : 예고된 기적들은 신앙과 경배를 야기 시킨다.
② 파라오의 궁에서(5,1-19) : 모세와 아론은 예고된 메시지를 전한다. 그러나 실패한다. 그것도 예고된대로 이다. 억압이 더욱 가증된다. 에집트 감옥과 이스라엘 감독을 내세워 더욱 혹사시킨다. 상황은 최악이다.
③ 감독들과 모세의 만남(5,20-21) : 감독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힌 모세는 YHWH께 심판관이 되어달라고 호소한다.
④ 주님 앞에서의 모세(5,22-6,8) : 3장에서 이미 소개된 모세의 부르심에 대한 제관계 이야기를 삽입하고 있는 긴 장면으로 되어있는 이 부분은 “나는 야훼다”(2.6.7.8)라는 주장으로 리듬화 되어있다. 6,2-8의 하느님의 담화문은 대칭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a - 나는 아브라함, 이사악, 야곱에게 드러냈다.(3절)
  b - 나는 너희를 에집트의 고역에서 건져낼 것이다.(6a절)
     c - 나는 너희를 구해낼 것이다.(6a절)
  b'- 나는 너희를 에집트의 고역에서 건져낼 것이다.(7절)
a'-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준 땅.(8절)
⑤ 백성에게로 다시 돌아옴(6,9) : 백성은 너무나 지쳐 그의 말을 듣지 않는다.
⑥ YHWH와의 마지막 대화(6,10-12) : 모세는 동족들에게서 버림을 받고 더 이상 파라오에게 대적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한다. “파라오가 어찌 제 말을 듣겠습니까?”
틀을 형성하는 마지막 부분인 6,13-27은 낙관론적인 어투를 지니고 있으나 YHWH와 모세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마지막 지점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다. 행동은 계속되는 부분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2. 지연된 해방 (6,28-11)
이 부분은 6,28-30과 11,9-10을 통해 의미있는 방식으로 틀이 짜여져 있다. 6,28-30은 첫 번째 부분을 끝맺음하는 6,12과 맥을 같이 한다 : “에집트 왕 파라오에게 전하여라... 그가 어찌 제 말을 듣겠습니까?” 다른 말로 하면 “비록 제가 행한 기적들이 에집트 땅에서 수없이 이루어졌지만 파라오는 제 말을 듣지않으려 합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이 텍스트의 핵심 부분은 9개의 재앙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1) YHWH의 개박 담화문(6,28-7,7)
이것은 파라오에게 행해야 할 선교 내용을 담고 있는 4,19-23에 연결된다.
4,14에서처럼 아론은 모세의 협력자로 주어진다.
4,16과 7,1의 형태를 비교해 보라.

2) 첫 번째 표징(7,8-13) : 재앙 씨리즈에 포함되지 않음.
파라오 궁에서 사적으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제한.
아론의 지팡이는 뱀으로가 아니라 소름이 끼치는 용으로 변했다. 그러나 에집트의 마술사도 똑같이 했다. 그러나 아론의 용이 그들을 집어 삼켰다. 그렇지만 파라오는 “마음이 굳어져”양보하지 않았다. 이런 모습이 앞으로의 이야기속에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게 될 도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3) 사실상 재앙 이야기들은 매 단계에서 상이한 중요성을 띄고 동일한 형태로 이루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능력있어 보이는 마술사들(7,22 ; 8,3)도 결국에는 존재 영역에 있어서는 양보하게 된다(8,14 ; 9,11). 더이상 어찌해 볼 수 없는 파라오는 결국 양보하게 되고 나아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는 듯 보인다(10,16). 그러나 그는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한다(10,24).
어떻든 이스라엘은 보호받고 있다. 그것은 그러한 사건들이 우연의 결과가 아니라 에집트에 대항해서 당신 백성을 건져내신 분께로부터 온 것이라는 표징이다. 이 표징은 바로 9,14과 10,2이 말하는 능력과 권세의 표징이다.

4) 마지막 에피소드 (11,1-8)
인간의 본질 문제가 재앙의 대상으로 취해지고 있다.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모두 거부하는 파라오의 굳어진 마음속에 본질적인 것이 자리하고 있으며 그결과 자기 백성 모두와 함께 끝까지 저항했던 것에 대한 댓가를 치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던져줄까? 전능하신 하느님 앞에서 끝까지 “나”라는 것을 내세워 버텨보려는 모습. 그 결과는 무엇일까?

3. 실현된 해방 (12-16)

이 부분은 결정적 사건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결정적 사건이란 억압자 파라오의 완전하고도 돌이킬 수 없는 실패 다시 돌아가지 않게 될 홍해사건에로 귀결되는 에집트로부터의 해방인 것이다. 이것이 14장에서 전해주는 내용이고 15장의 찬미가에서 14장의 내용을 다시 상기시켜주고 있다. 14장과 15장을 선행하는 이야기와 그 뒤를 이어 나오는 이야기들은 에집트를 떠나는 내용과 사막을 걸어가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가져다 주신 자유를 기념하게 될 과월절과 안식일 제정에 관해 매우 특별한 관점에서 참조하게 될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이 부분은 그래서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
- 과월절과 에집트로부터의 탈출(12-13장)
- 바다의 경이함(14,1-15,21)
- 사막에서의 삶의 시작과 안식일(15,22-16,36)

1) 과월절과 에집트로부터의 탈출 (12-13장)
어느정도 긴 분량을 할애해서 소개되고 있는 이 부분은 그 중심에 고유한 의미에서의 에집트로부터의 탈출에 관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는데(12,28-36,39). 이 이야기는 중요한 의식적(意識的) 요소들로 둘러싸여 있다(12,2-17과 12,40-13,16). 지형적인 지표들과 여정에 관한 요소들은 전체 내용 속에 삽입되어 있다.

A. 여정에 관한 표시사항
이에 관한 내용들은 에집트(12,1). 분명 과장한 숫자와 함께 수꼿으로 가는 길(12,37-38). 그리고 진을 쳐 막은 해안도로를 피해가고 있는데 대한 보다 상세한 세부 내용들(13,17-18,20)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에다가 요셉의 유해를 이관하는데 대한 언급(13,19)이 첨가되어 있는데 이것은 창세기(50,25)와 여호수아서(24,32) 사이를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YHWH 자신이 신비스러운 구름으로 백성의 발걸음을 인도하신(13,21-22). 출애굽 경로에 대해서는 지도를 참조하라.

B. 에집트로부터의 탈출 이에 대한 내용은 12,28-36.39에서 짤막하게 소개되는데. 이 내용은 우리에게 억압받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모든 것을 바꾸게 해주는 사건을 전해준다. 이번의 경우 “열번째 재앙”은 그 어떤 인간적 중재 없이 야훼 하느님 자신의 업적이다. 이 사건을 설명할 방도를 찾지는 말자.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의 손길이므로. 한밤중에 모세와 아론이 소환되고 에집트에서 떠나라는 명령이 파라오로부터 하달된다. “나를 위하여 복을 빌어다오”라고 말하는 파라오. 이말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불란서 공동번역이 주석하는 내용을 보자 : “나로 하여금 너희의 신(神)이 되게 하여라”라는 의미인가 아니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신성(神性)이 내려 보내는 저주의 잔 아래 자신이 서있다는 종교적 인간의 반응으로 보아야만 하는가?
두 개의 상세한 내용이 강조되고 있다 : 누룩이 들지 않은 빵(이것이 아짐 축제의 의식을 정당화시키게 될 내용이다)과  이미 예고된 에집트인들의 몰살(3,21-22 ; 11,2-3). 그러나 본질적인 것은 시작 때의 상황이 전체적으로 다시 되돌아오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사내아이들의 살해를 통해 전멸한 것 이라고 경고 받았었다(1,22). 그러나 이제는 힘없는 자들의 하느님의 권세를 통해서 그와 같은 전멸의 대상이 다름아닌 바로 막강한 힘을 지닌 에집트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에집트의 멸망은 온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며 에집트는 경고와 함께 역사의 지평에 남아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은 이 사건을 통해서 다시한번 당신이 가장 강한 분이심을 드러내 보이시게 될 것이다.

C. 의식(儀式) 규칙들
이 부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점유하고 있는 이 내용들은 출애굽기가 내포하게 될 법령집의 첫 번째에 해당된다. 이 규칙들은 그것들이 삽입되어 있는 이야기와 무관한 것이 아니다.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거룩한 행위들을 통하여 영원히 기념되어야만 한다. 이 점은 편집자들의 눈에 너무나도 중요한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에집트로부터의 영광스러운 탈출 직전과 바로 직후에 그같은 기념의식의 제정을 자리하게 했던 것이다. 아니 의식 자체는 사건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구원한 행위와 세세대대로 되풀이해서 행하여야 할 의식을 거의 구분하지 않고 있다.  이 텍스트들을 좀더 자세하게 관찰해 보자 : 이 텍스트들은 세 가지 서로 다른 의식에 관계 되는데 그 의식들의 소개는 상이한 원천으로부터 올 수 밖에 없다는 어느정도 복잡한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다.
a - 과월절 (12,2-14)
 b - 아짐 (12,15-20)
a′- 과월절 (12,21-27)
a″- 과월절 (12,40-51)
c - 장자, 맏배 (13,1-2)
b′- 아짐 (13,3-10)
c′- 장자, 맏배 (13,11-16)

a. 과월절
이 것은 구분되는 세 개의 내용으로 소개되나 첫 번째 자리를 점유하고 있다 : 12,2-14.21-27.40-51
- 12,2-14
여기서는 가정에서 거행되는 거룩한 식사와 보호 받는다는 표시처럼 인식되고 있는 피의 사용에 대한 관점과 더불어 이 의식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이 내용은 사실상 백성의 회동을 내포하게 되는 “기념”,“순례”와도 같이 축제의 제정에 의해 성취된다.
- 12,21-27
야휘스트 전승에서 온 것으로써 선행하는 내용을 다시 중복해서 전해준다. 여기서는 식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고 피의 의식에 대해 강조하며 가정의 아버지와 아들과의 대화를 통한 그런 형태로써 구원 사건을 상기시키면서 축제의 제정내용을 계발시키고 있다.
- 12,40-51
40-41과 51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용어들을 그 틀로써 사용하고 있다 : “그날 밤” “바로 이 날에”. 축제에 참여하는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일련의 명령들이 소개되는데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아닌 자들은 거기서 제외된다.

 b. 누룩없는 빵의주간
이것 역시 에집트로부터의 탈출사건에 조회하고 있다(12,17). 그리고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공동체로부터 축출되고 벌을 받게된다. 이런 법은 13,3-10에서 자손에게 전수되어야 한다는 내용과 더불어 다시 상기되고 있다.

c. 장자 및 맏배에 대한 법
이 내용은 13,1-2,11-16에서 소개되고 있는데 누룩없는 빵의 내용으로 그 맥이 끊기고 있다. 나귀를 제외하고는(부정한 동물) 동물들은 희생제물로 바쳐진다. 장자들은 구원된다. 여기서도 가장은 자기의 아들에게 출애굽의 기억속에 이 의식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만 한다.

이 내용들을 통해서 성체성사의 의미를 더 깊이 묵상할 수 있을 것이다.

 2) 바다의 경이함 (14,1-15,21)

이 내용은 세 번째 부분(12-16장)의 핵심을 이루는 것으로써 결정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되어있다. 이 사건이 출발점에서는 기대치 않은 돌발적 사건처럼 소개된다 : 이스라엘은 자유롭게 되었다고 믿었으나 파라오는 자기가 한 결정에로 다시 돌아와 에집트를 떠나도 좋다고 해서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뒤쫓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느님의 권세가 보다 찬란하게 펼쳐 보여지게 될 기회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막강한 에집트 세력이 뒤쫓는 절박한 순간에 구원의 체험을 하게 될 것이고 에집트는 그토록 자신에 차있던 모습이 대 재앙을 겪으면서 사그러지는 아픔을 겪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는 제관계와 제호비스트, 이 두 개의 원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A. 제호비스트에 속하는 텍스트 : 14,5-7. 9-14. 19-21. 24-25. 27. 30-31
 
 이 이야기는 네 단계로 구분될 수 있다 :
- 에집트인들의 반응 (14,5-9)
이스라엘 백성은 도망갔는가? 아니면 도망가게 내버려 두었는가?
아무튼 추적 계획이 수립된다.
- 이스라엘 백성의 반응 (14,10-14)
두려움과 공포에 쌓인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 소리쳐 외치며 자신들을 불행속에 집어 넣었다는 이유로 모세를 고발했다. 모세는 인간적인 중재없이 하느님께서 구원을 주실 것이라고 예고한다.
- 경이로운 사건 (14,19-27)
구름 기둥이 두 개의 진지 위에 머물고 바람이 바다를 마르게 한다. 에집트 병사들은 마른 바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다가 바다가 다시 합쳐지는 바람에 그 속에 갇혀 죽음을 겪게 된다. 과연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를 통과했는가? 이에 대해 출애굽기는 아무런 언급은 없으나 에집트인들만이 그 바다속에 갇혀 버렸다고 전해준다.
- 결론 (14,30-31)
이스라엘 백성은 “보고”, “믿는다”
여기서 모세는 놀라운 일을 예고하고 백성에게 신뢰를 가져다 주는 대변인으로써 평온하게 이 사건을 받아들이고 신앙 안에서 행진하게 도와줄 수 있는 인물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두려움”에서(14,10) 하느님을 “경외”하는데로 넘어간다(14,31). 언약된 구원은(14,13) 실현되었다. 살아있다고 “보았던” 에집트인들은(14,13) 이제 죽은자로 “보여진다”(14,30). 더 이상 그들을 보지 않을 것이나 사람들은 야훼의 “능력있는 손”을 “보게된다”(14,31).

 B. 제관계에 속하는 텍스트 : 14,1-4. 8-9. 15-18. 21-23. 26-29

이 텍스트에서 야훼는 이 텍스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14,2-4. 15-18. 26) 당신 말씀을 통해 개입하신다. 다른 모든 인물들은 그분의 도구들이다. 모세가 자연에 명령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백성은 받은 명령에 따라 바다에 들어간다. 야훼께서 “마음을 완고하게 한” 에집트인들은 멸망을 향해 나아간다. 야훼는 세상의 주인이시며, 막강한 세력을 지녔던 에집트라 할지라도 그분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다. 야훼는 당신 힘으로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신다(14,4. 17. 18). 이 텍스트가 집중시키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영광이다. 그 결과는 바로 이스라엘의 구원으로 나타난다.
14장 전체를 읽으면서 우리는 제관계 이야기가 옛 이야기를 삽입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독자는 “나는 야훼이다. 나는 파라오를 쳐 나의 영광을 드러낸다”라는 표현을 통해 당신 영광을 드러내시는 하느님께 대한 깊은 인상을 받고 있다.

 C. 만나 (16장)
상이한 원천으로 형성된 복잡한 부분이다. 주가 되는 텍스트는 1-30절이고 31-35절은 부록이라 볼 수 있다. 1-30절에서는 시련, 소근거림, 불순종의 주제가 지배적으로 나타나는데 이것들은 만나의 선물이 주어지기 전 뿐만아니라 후에도 나타나는데 만나의 선물이 구심점을 이루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중요한 요소들을 전해준다.

 ① 만나의 선물 (1-12절)
 15, 27에 이어지고 (비록 엘림에서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날짜에 대한 언급이 구체적으로 묘사되는 여정에 관한 구절 다음에 소근거림(투덜거림)의 주제가 나타난다.
투덜거린다는 말은 2. 7. 8. 9. 12절에서 다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에집트에서 오히려 조용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기회를 잃게 된 것을 후회한다. 모세와 아론은 개입(6-10절)은 빵과 고기를 예고하시는 야훼의 두 말씀에 둘러싸여 있다(4-5. 11-12). 6-12절은 제관계 기원에서 온 것으로 따로 떼어놓고 생각해 볼 수 있다. 6-12절의 짜임새 있는 구조를 보면 :
a - 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6절).
 b - 너희는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7a).
   c - 너희가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셨다.
       - 우리가 무엇이라고?(7b)
     d - 8a
   c′- 너희가 투덜대는 소리를 들으셨다.
       - 우리가 무엇이라고?(8a)
 b′- 영광이 나타났다(10).
a′- 야훼임을 알게 될 것이다(12).
b에서 예고된 영광은 b′에서 나타난다 : 그것은 당신 광채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느님의 전적인 권능인 것이다. 그러나 관심의 집중은 중심인 8a를 향하고 있다. 일상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빵과 고기라는 구체적인 선물을 통해서 영광의 가시적인 모습이 표명된다. 여기서 우리는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라는 창조의 이야기를 연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② 사건 (13-15절)
묘사 내용이 소박하다. 메추라기에 대한 언급이 민수 11장과 비교해 볼 때 상당히 간략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관심은 짤막한 묘사. 그리고 대중적 언어학적 문제를 통해 만나라는 이름의 설명과 더불어 만나에 집중되어 있다.

 ③ 만나의 용도 (16-30절)
두 개의 중요한 장면을 통해 선물(이 음식은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이 지니는 놀라운 성격이 강조되고 있지만 무엇보다도 당신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원의가 무엇인지를 지적해 주려는 의미가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 첫째 장면 (16-21절)
하느님의 선물을 받는데 있어서 모두가 동등하다는 사상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즉 각자는 얼마나 만나를 거두었든지 간에 자기가 필요한 만큼만 받게된다. 만나는 저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루 분량만큼만 음식으로써 기능을 하게된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필요한 빵을 오늘 주신다.(마태 6,11)
- 둘째 장면 (22-30절)
보다 진전된 내용으로써 안식일에 관계되는 내용이다. 즉 하느님의 선물은 일곱째 날을 다른 날과 다르게 함으로써 주간의 거룩ㅎ나 리듬을 준수한다. 그러므로 성서에서 첫 번째로 언급된(창세 2,1-3은 직접적으로 그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고 있다.) 안식일은 출애굽 사건에 연결되어 있다. 이와같이 시간의 성화(聖火)를 근본으로 제정하는 과월절과 안식일은 이 세 번째 부분의 처음과 마지막에 이르는 동안 행하여지고 있다. 이 두 개의 장면 속에서는 불순종(20.27절)과 그것으로 인해 받아 마당한 비난이 문제시되고 있다 :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있기를 원한다면, 모세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통교하신 계명에 순종해야만 한다.

 ④ 부록 (31-35절)
여기에서 만나의 본성에 관해서(31절) 그리고 만나가 나타나는 기간에 대해서(35절) 묘사해 주는 내용이 소개된다. 그 중간에 만나에 대한 “기억”과 후손들을 위한 보존이 제정된다. 아론은 나중에 가서 시나이에서 나타나게 될 단지 하나를 가져다 놓는다.

4. 시나이에서의 계약 (17-24,11)
이제 우리는 복잡한 내용들로 되어 있으나 그 내용들의 최절정이 시나이에서의 현현임에 틀림없는, 출애굽기의 심장부에 다다르고 있다. 시나이는 이 책의 후반부의 테두리이다. 그 이유는 시나이를 떠난 것이 민수 10장에서야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현현은 외적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 세 개의 장면에 뒤이어 나타나고 그 뒤를 이어 분명하게 구분되는 “십계명”과 “계약의 법전”이 계약의 체결 마지막 장면과 함께 소개된다. 처음과 마지막 집단사이에 분명하게 균형잡힌 모습을 찾아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련의 공통적인 요소들이 자리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 책(17,14과 24,7), 산(17,20과 24,1.9), 야훼 면전에서의 식사(18,12과 24,11).
처음에 소개되는 세 개의 장면들은 야훼와의 위대한 만남을 위한 준비처럼 읽혀질 수 있다 : 백성들은 거기서 야훼께서 자기네들 가운데 계시다는 인식을 갖는다(17,7에서 제기된 질문에 17장의 다른 두 장면이 응답해 준다) : 그 백성은 자기네 하느님으로부터 특권을 받은 자로써 아말렉과 미디안이라는 다른 두 민족과 비교되는 차원에 자리하고 있다 : 그 백성은 야훼를 받아들이기 위해 조직되고 그분께 동참한다.

1) 시험의 물(17,1-7)
17,1-7을 주의깊게 읽어보면 그 텍스트가 한군데서 온 것이 아님을 즉시 알수 있다. 3절에서의 불평은 2절의 것을 다시 반복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백성의 태도는 두 경우 모두 동일한 양식으로 심판받고 있는 것 같지 않다. 4절에서 모세는 그 무엇에 앞서 고통에 지쳐있는 백성의 요구에 응답할 방도를 찾고 있다. 그와는 반대로 7절에서 다시 취해지고 있는 2절에서는 불의한 공격이 문제시되고 있다. 모세에게 “소송을 제기하고자”한다면 그것은 야훼 자신을 시련에 처하게 하는 것인데 그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래서 모세는 여기서 하느님을 변호하게 된다.
옛 이야기는 아마도 3-7절에 제한된 것 같다 : 최종편집은 이스라엘의 죄에대해 아주 강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시대에(유배?) 연계되어 있는 보다 강력하고 엄한 또다른 판단을 여기다 갖다놓게 되었다. 마싸아와 므리바라는 장소에 주어진 이중적인 이름은 “시험”과 “소송”이라는 두가지 주제를 취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출애굽기의 흐름 속에서 중요한 것은 마지막 질문이다 : 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는가? 안계시는가? 의심과 망설임의 순간은 주님으로 하여금 다시 한번 더 당신 현존의 증거를 주시게끔 한다.
6절에서의 호렙에 대한 언급은 설명하기가 어렵다.

2) 아말렉에 대한 승리(17,8-16)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공공연한 적이다 : 신명기는(25,17-19) 그에 대해서 특별히 강력한 말을 하고 있다. 사울과 다윗은 그와 전쟁을 할 것이다. 아말렉의 공격은 그 어느 것으로도 정당화되고 있지 않다 : 이스라엘은 잘 훈련된 군대도 없었으며 하느님의 산을 향해 나아가는 무서움에 많은 집단이다. 전투에 대한 이야기는(17,8-16) 상당히 놀랍다. 여기에서 처음으로 여호수아가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는 위대한 미래를 위해 언약된 인물로 나타난다. 그가 이끄는 군대가 승리하는 것은 그의 군대가 강력해서가 아니라 언덕위에서의 모세의 초능력적인 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의 행위는 이 텍스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하지가 않다 : 그는 9절에서 “하느님의 지팡이”로, 11절에서는 팔을 벌려, 12절에서는 두 팔을 들어 행동한다. 여기서도 원천들이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장면은 처음으로 언급되는 “책”에 대한 묘사로 그리고 선조들을 생각게하는(창세 12,7.8 ; 35,1)제단의 건축으로 끝맺음 된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한번 당신 백성과 사실상 함께 하시며 그 백성이 당신의 길을 따르도록 모든 것을 해 주시는 하느님의 힘에 의해서 제거된 장애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야훼는 당신 백성 한 가운데 계신다”(17,7).
모세는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자로 놀라운 능력을 지닌 인간이면서도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인간적 제약을 지닌 인간으로 묘사되고 있다(12절).

3) 이드로와의 만남(18장)
이드로의 도착과(1절) 출발(27절)로 테두리 지어져 있는 18장은 다시한번 매우 화목한 분위기이기는 하지만 이상하게되 이드로가 나타나는 내요을 담고 있다. 18장은 계속되는 이 틀 속에 자리하고 있는 두 개의 장면으로 구분된다(13절).
① 첫째 날
1 - 6 : 이드로의 계획과 그의 여행
7 - 11 : 모세와의 만남
이것은 번제물과 식사로 완성(12절)
일련의 질문들이 제기된다 :
- 시뽀라와 그의 두 아들들이(이미 4,20에서 언급됨) 어떻게 모세 곁에 있게 되었는가? 18,2이 말하는 ‘돌아와 있다’라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두 개의 다른 전승이 있는 것은 아닐까?
- 이드로의 축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10-11절)
이 축복은 야훼의 지배권을 주장하는 것으로 완료된다.
- 12절에 나오는 제물 봉헌에 있어서 이드로의 역할은 어떤 것인가?
사제로서의 역할은, 그가 미디안에서의 사제로 섬기는 하느님이 야훼이시라고 한다면 보다 설명이 쉽다.
산 위에서의 이 거룩한 식사는 24,11(네 번째 부분 마지막)에 까지 행하여진다.

② 둘째 날
18,13-27의 장면은 약간 다르다. 여기서 이드로는 모세에게 그의 직무를 경감시켜주게 하는 하나의 조직을 만들도록 제안하고 있는 지혜로운 충고자처럼 소개된다. 재판관들을 세우는 제도는 여기와 신명기에서 독립적인 전혀 다른 법률로 소개된다. 이렇게 해서 정의를 실현하는데 도움을 줄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령의 형태로 에집트로부터 탈출한 분간할 수 없는 군중을 조직할 수 있도록 소개하게 될 장엄한 장면속에서 당신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은 여기저기서 모은 군중이 아니라 바로 그 백성에게 하시는 것이다.

4) 위대한 현현(19장)
19,1에서 시나이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은 거기서 현현을 통해 야훼를 만나게 되는 데 현현을 전해주는 이야기는 십계명 이야기에 의해 중단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19,1-25과 20,18-21을 함께 읽을 것이다.
도식을 살펴보면 :

A. 현현의 준비
  a - 산 위에서의 모세 (3-6)                   
    b - 백성과 함께(7-8a)
  a'- 산 위에서(8b-13)  
    b'- 백성과 함께(14-15)
      B - 현현의 이야기(16-20a)
A'- 현현에 대한 반응
  a″- 산 위에서(20b-24)
    b″- 백성과 함께(19,25 ; 20,18-21a)
  a″′- 산 위에서(21b). 다음을 향한 개방


A. 현현의 준비
모세는 산 위에서 야훼와 그리고 산 아래에 머물러 있는 백성과 교대로 접촉하고 있다. 왔다 갔다하는 행위는 지극히 높으신 분과 사람들과의 관계를 보장하는 중개자의 역할을 표명하는 것이다.
a) 야훼의 담화문(3-6)
  이것은 역사적 도식 위에서 설정되었으니
- 과거 : “너희는 보지 않았느냐.” 에집트를 치시고 이스라엘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행위를. 여기서 날개에 대한 은유법은 하느님의 능력과 인간의 수동성을 상기시켜 준다 : 모든 것을 하신 분은 바로 야훼이시다.
- 현재 : 이제 그분의 말씀을 경청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분의 계약을 지켜야만 한다.
- 미래 : 땅에 있는 모든 것의 하느님이신(참조 : 창세 9,12-16) 그분은 이스라엘을 향해 매우 특별한 태도를 간직하실 것이다.
b) 백성의 응답 (7-8a)
반응은 한 마음으로의 참여로 나타나는데 그 참여의 대상은 아직 분명하게 명시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야훼께서 아직도 행동에 옮겨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a′) 만남의 준비(8b-13)
사실상 여기에는 두 개의 야훼의 담화문이 나온다. 첫 번째 선포는 모세와 백성과의 관계와 모세에 대한 믿음에 관계된다(참조 14,31) 그 뒤를 이어 하느님을 만나는데 필요한 준비로써의 의식적 요소들이 나온다 : 목욕, 몸과 마음을 깨끗이, 불순명시 처벌.
b′) 계명의 시행(14-15)
모세는 위의 계명에 다른 것을 추가한다 : 성적 자제(다른 종교들에서는 거룩하신 분에게 접근하는 것에 연계되어 있음)

B. 현현에 관한 이야기
16-20a : 절정에 이르는 부분
용어 사용에 있어서 놀라울 정도로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리(16a) 소리(19b)
 나팔소리(16b)   나팔소리(19a)
   떨었다(16b)   떨었다(18b)
     연기(18a)   연기(18b)
                불 속에서 내려오신 야훼
                         (18a)
사건은 다른 기회에 하느님의 역사(役事)하심이 표명 되었던 때처럼(창세 22,4 : 여호 1,11 : 2열왕 20,5-8 : 호세 6,2) 셋째 날에 이루어지고 있다. 소리가나는 그리고 가시적인 요소들은 3,2에서처럼 불에 연계되어 있는 하느님의 현존을 동반하게 된다.
모세는 그가 에집트로부터 백성을 이끌어냈던 것처럼(3,10 ; 14,11) 백성으로 하여금 야훼를 만나러 나오게 하고있다. 종살이에서 벗어나게 했던 것이 이러한 만남에 있었다고 이해해야만 할 것이다.

A′현현에 대한 반응들
a″) 새로운 계명들(20b-24).
다시한번 거룩하신 분을 향한 존경의 행위 영역속에 들어가게 된다. 아직까지 언급하지 않은 사제들에게 특별한 자리가 부여된다. 그러나 그들이 이 부분에서 특별한 그 어떤 역할도 하는 것은 없다.
b″) 신학적 요소들(19,25 ; 20,18-21a)
현현에 관한 묘사 내용을 간략하게 취한 다음,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나타난다 :
- 그분 자신이 십계명을 선포하신, 너무나도 무서운 하느님의 말씀과 현존앞에서 모세로 하여금 중재자로서 필수 불가결한 역할 속에 바쳐지게 되었다(참조 신명 5,24-27과 18,16)
- 시험에 대한 주제(20,20)
 이것은 엘로히스트들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속에서 백성을 이루게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도래에 대해 주석하는 것처럼 소개되고 있다.
a″′) 하느님을 향해 모세가 돌아옴 (20,21b)
모세는 먹구름이 낀 밤에 하느님 곁으로 들어간다. 바로 거기서 모세는 계약의 법전을 받게 될 것이다.

5) 십계명
십계명을 유명하게 만드는 것은 영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율법”이라는 특성이다. 또한 다른 계명들과는 달리 하느님께서 직접 모인 백성에게 주셨고 하느님께서 직접 돌판에 새겨주셨다는 사실이 또한 그렇다(24,12 ; 31,18). 십계명의 역사는 분명 복잡하지만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상태에서의 십계명을 읽게 될 것이다.
10개로 구분하는 것이 당연한 것은 아니며,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의 상이한 전승들은 동일한 방식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텍스트 속에 표출되고 있는 것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는 집합체인 것이다 : 첫째 부분에서(2-6) 야훼께서는 1인칭으로 말씀하신다 : 둘째 부분에서(7-12) 사람들은 야훼에 대해서 3인칭으로 말한다 : 셋째 부분에서(13-17) 야훼는 명명되지 않는다.

① 첫째 부분(2-6절)
야훼의 담화는 “나는 너희의 하느님 야훼이다”또는 “나 야훼는 너희의 하느님이다”라는 표현을 테두리로 사용하고 있으며 그분이 구원자이시오 해방자이신 하느님(2절)이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그 하느님은 자기를 사랑하느냐 미워하느냐에 따라 상을 주시거나 벌을 주시는 시기하는 하느님이시기도 하다(5절). 그러나 사랑의 결과는(수천 세대에 이름) 악의 결과보다(삼대에 이름) 훨씬 폭이 넓다. 하느님의 그러한 시기심은 배타심을 계명(다신론이 팽배해 있던 세상 안에서 다른 신은 안된다는 배타성)과 거짓 신 뿐만 아니라 야훼 자신에 대한 평가적인 모든 이미지를 만드는 것을 거부하는, 이 두 계명으로 소개된다(출애 32장의 황금 송아지가 그 점을 밝혀줄 것이다). 이 하느님은 존재하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당신 모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을 제외하고는”(창세 1,26-27) 당신을 닮을 수 없다고 주장하신다. 그분의 영광을 잴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율법관들이다(34,1.4 ; 신명 10,1.3).

② 둘째 부분(7-12절)
존경은 세 영역에서 요구되고 있다 :
- 야훼 이름의 사용
  그 이름에 근거해서 그 어떤 악을 행할 수 없으며 그 이름은 다른 이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거나 거짓말을 받쳐주는데 사용될 수 없다(참조 신명 18,20-22).
- 안식일
  창조를 완성하고 쉬시는 하느님의 휴식에 대한 주간(週刊)적인 기념(창세 2,2-3)을 의미하는 것으로써 야훼께 시간을 봉헌하는 표지이다.
- 야훼께서 주신 생명을 이어가고 있는 부모들은 그들이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수해야할 책임이 있다(12,24-27; 13,8.14-15; 신명 4,10; 11,18-21)

③ 세째 부분(13-17절)
여기서 선행하는 계명을 통해 이미 도입된 인간들 간의 올바른 관계가 문제시 되고 있다. 성서적 관점에서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인간들에 대한 존경이 구분되는 것이 아니다(참조. 예레 7,3-7). 십계명은 몇가지 근본적인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 : 무죄한 자를 죽게하는 일. 부정한 관계를 맺는일, 자유를 거역하는 일, 도둑질 등등.

근본적인 율법으로써 십계명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요구를 모두 다 커버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법률들이 특별한 경우를 위해서 존재한다. 그러나 중심이 되는 축은 하느님의 권리와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중인식, 더 나아가 그 두 개의 관점이 분리될 수 없는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데 대한 인식과 더불어 형성되는 것이다.

6) 계약의 법전
출애굽 이야기의 흐름 속에서 보면 “계약의 법전”(20,22-23,33)은 출애굽기에 나오는 4개의 법률집 중 세 번째에 해당된다. 이 법전은, 이번에는 모세의 중재를 통해서 선포된 것으로써 십계명의 진전 내용처럼 표출된다.
이 법전은 아주 오랜 시기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와같은 사실을 우리는 그 법전이 반영해 주고 있는 사회상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법전은 거의 구조화되어 있지 않은 사회의 문제를 소개해 주고 있는데 그러한 사회는 농업보다는 노예제도에 대해 더 집중적 관심을 두고 있다. 하지만 보다 부유한 자들이 있는가 하면 아주 가난한 자들이 있고, 이주자들이 있고 노예들이 있다. 백성은 책임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왕이 문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정의와 의식(儀式)이 구성되어 있었으나 특별한 사제들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사람들은 농총의 삶의 단계에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에집트로부터의 탈출을 기념하는데 연결되어 있는 축제나 순례를 거행했다. 이 모든 것은 가나안에 정착하는 초기에 다시 말해서 여호수아와 판관들의 시대에 연결될 수 있었을 것이다. 한편 그러한 요소들이 시간의 흐름속에서 첨가되거나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이 배제되지는 않는다.
그러한 것이 어떻게 세워지게 되었는지 살펴보자면 두가지 내용을 살펴 볼수 있을 것이다.

① 의식과 사회적 삶
사회 생활에 관계되는 계명들은 두 그룹의 의식적 계명을 그 테두리로 하고있다(20,22-26; 23,13-19): 이 법률에는 특별히 YHWH만을 공경하는데 충실한 자들을 위한 행복의 언약이 마지막에 첨가되어 있다(23,20-33). 중심부분은 “종교와 무관한”것이 아니다. 이 부분은 상당수의 종교적 조회내용을 담고 있다(21,6.13; 22,8.19 등등).

② 법률의 형태
법전의 다양한 계명들은 두 개의 형태로 소개되고 있는데:
- 한 그룹은 명약관화한 계명들이다 : “너희는 이것을 행하라.”
“이것을 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명령의 동기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나 백성의 체험과(22,20; 23,9)하느님의 행동에(22,26) 조회하고 있다.
- 다른 그룹의 율법들은 보다 진전된 형태로 소개되고 있다.

7) 계약의 체결(24,1-11)
출애굽기의 핵심부분이 현현과 더불어 절정에 이르게 된다면 그 부분은 계약의 거행 속에서 완성된다 하겠다(24,1-11). 이 텍스트 역시 난해한데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산위에서의 만남에 대한 이야기(1-2,9-11)와 산밑에서의 희생제사에 대한 이야기(3-8)를 구분해 왔다.
이 텍스트에서 집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은 :
- 이 텍스트는 “말씀들”(십계명)과 계명들(계약의 법전)을 담고 있다 : 그것들은 야훼께서 백성들로 하여금 실천에 옮기도록 요구하신 것들이다.
- 이러한 바탕 위에서 이스라엘과 계약이 체결된다 : 계약은 하느님의 주도권 위에서 설정되고 상대자인 백성은 거기서 책임부분을 취하게 된다.
- 제단과 백성위에 뿌려진 피의 의식은 주님과 모든 민족들과의 공동생활 공동체를 의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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