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임 글라라 2015-07-01 오후 11:30:49
이스마엘을 축복하시는 하느님
사라가 이집트 여인 자신의 몸종 하가르를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내는 장면을 깊이 공부하고 놀랐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사 안에서 새롭게 발견하는 사라의 모습을 보면서
새로운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저의 부족함까지
구원의 도구로 써 주심에 감사합니다.
사라에 대한 그동안의 이미지와 다른 이미지에 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졌고요.
저의 그동안 사라에 대한 이미지는 한 가지였습니다.
하느님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생각으로 하가르를 아브라함에게
들여보냈던 여인, 그러니까 하느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는 여인의 모습만
봤다는 거지요. 그런데 ...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라 자신을 생각해
볼 때 ... 점점 나이는 들어 가고 달거리는 없어지고 ... 어찌 자신의 몸에서 소생이
생길 것이라고 희망할 수 있겠는지요? 그러니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생기는 것은
꼭 자기를 통해서가 아니어도 되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자기 몸종인 하가르를 남편의 침실에 들여보냈죠. 그런데 아무리 나이가
많은 여인이라 해도 자기 남편에게 다른 여인을 자라고 들여보내는 게 얼마나 큰
아픔이고, 쓰라림이고 고통이었겠습니까? 그러한 고통을 통해서라도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얻어 주려고 했던 사라의 그 마음을 ...
아무튼 그렇게 태어난 이스마엘도 하느님께서는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볼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뜻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부족하고 짧은 우리들의
생각과 판단으로 무엇을 했을 때 ... 그 또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 그리도 내 말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느냐고 탓하지 않으시고 ...
하느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는 사라의 모습도 있지만 ...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려는 사라의 모습도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는 것도 지혜지만 하느님의 뜻에 더 잘 협력하려고 애쓰는
사라의 모습도 중요함을 배우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온 삶을 돌아보니 ...
하느님의 뜻을 믿고 기다리는 삶을 살았던 것보다 ...
내 나름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살았던 모습, 사라가 하가르를 아브라함의 침실에
들여보냈던 것과 비슷한 의미로 살았던 삶의 모습이 거의 다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
사라가 자신의 생각으로 이루어 놓은 어떤 일, 이스마엘을 축복해 주셨듯이 ...
내가 사라처럼 살았던 내 삶의 모습 모두를 축복해 주시는 분이심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 주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이스마엘은 어떻게 태어났을까요?(창세기 16장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