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8장 기억하시는 하느님/ 기억은 사랑이다.
그러나 노아만은 주님의 눈에 들었다
* 성경은 fact(사실)의 차원에서만 이해하면 안 된다.
성경은 인생 안에서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아는데,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서 영적인
통찰이 근원적인 게 목적이므로 지엽적인 것에 머물면 안 된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떠올려 보는 게 중요하다.
노아만은 의롭게 살았다.
내가 마구 마구 살아도 우리 안에는 노아가 있다.
누가 뭐래도 우리가 하느님으부터 왔기에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1. 기억하시는 하느님
1) 기억은 사랑이다
"그때에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을 기억하셨다."(창세 8,1)
새로운 하느님을 알려주신다. 하느님은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성서에서 동사가 아주 중요하다.
창세 1,2장은 창조하시는 하느님을 알려주고 창세 8장은 기억하시는 하느님을 알려주신다.
창세 1,2장의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을 드러내 준다.
사랑은 창조를 통해 드러난다. 그리고 사랑은 기억하는 것이다.
누군가 사랑하는 것은 기억하는 것을 통해 드러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기도 중에 항상 기억한다.
어떤 상황을 바꿔 주기 이전에 하느님께 이끌려 가는데 도움을 주는 게 바로 기도이다.
기억한다는 것이 하느님 사랑의 증거이다. 우리는 하느님께서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알아들어야 한다.
우리 인생에 하느님은 나를 기억하신다. 우리가 당신을 떠났을 때도 기억하신다(루카 복음에서 돌아온 둘째 아들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하느님을 떠날 수 있어도 하느님은 우리를 기억하시는 분이심을 떠올리면 거기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된다. 이것이 기쁜소식이다.
하느님의 기억하심으로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이 열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노아만 기억하신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방주에 있었던 모든 들짐승과 집짐승들을 기억하셨다. 곧 내가 처해 있는 모든 자리를 기억하시는 분이시다. 내가 처해 있는 상황까지도 기억 해 주시는 분이시다. 곧 내 인생을 기억해 주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셈하시려고 기억하시는 게 목적이 아니다. 노아와 새로운 계약을 맺고 구원하시려고 기억하셨다. 주님께서는 마지막까지 구원하시려고 끝까지 기억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주님은 우리를 이 세상 삶에서 심판하시지 않으신다.
방주 속의 의미 : 작은 세상, 곧 우리 인생에 놓여 있는 모든 상황,
이것을 기억하시면서 새롭게 시작하시는 하느님이시다.
오늘날 성찬의 전례: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
우도 이야기 :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선생님, 저를 사랑해 주십시오.")라고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억은 사랑의 표현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기억한다는 것이다.
기도 중에 가족과 모든 이를 기억하는 것은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2) '바람을 일으키시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땅 위에 바람을 일으키시니 물이 내려갔다."(창세 8,1)
성서에서 바람은 하느님의 영, 하느님의 숨결이다.
물의 상징은 세상으로 이해, 영적으로 세상 걱정으로 볼 수 있다.
세상은 홍수로 모든 것이 죽어 있었다 => 세상은 영적으로 죽어 있었다.
이런 세상에 하느님께서 바람을 일으키신다. 영적으로 죽어 있는 세상을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영으로 바람을 일으켜 주신다. 그러자 물이 내려 간다. 곧 세상 걱정이 조금씩 빠져 나가며 그러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물을 빼는 작업을 하신다.
그런데 성령과 세상은 반비례한다. 성령께서 내 안에 가득 차면 세상 걱정이 설 자리가 없다.
물이 빠짐 : 세상 걱정에서 자유로와짐을 의미한다. 이것이 새로운 창조이다.
"하느님께서 노아에게 이르셨다. '너는 아내와 아들들과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에서 나와라."
(창세 8,1--16)
'나와라'는 동사 중요함 (기억하시다, 바람을 일으키시다, 나와라)
나오라 명령하심 : 하느님께서 이끌어 가시는 방식이다.
네가 있던 자리에서 나와라 하신다.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라.
마태 14장 22절 이하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왜 제자들은 풍랑에 휩쓸렸는가? 예수님께서 거기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풍랑에 휩싸여 노를 젓느라고 애쓰고 있을 때, 곧 세상 어려움에 자기들 힘으로
뭔가 해결해 보려고 애쓰고 있던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오심. 이 이야기를 우리 인생 안에서 영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물 위(세상)를 걸어오라고 말씀하신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도 세상을 이길 수 있다고 물 위(세상)로 걸어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밖으로 나왔다."(창세 8,18)
'밖으로 나왔다' ;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곧 다시 본래의 제 자리로 찾아갔다.
하느님의 창조의 자리로. 본래의 질서 회복해 갔다.
방주 속의 노아/ 하느님 앞에 제단을 쌓다
2. 기억하는 인간
하느님만 기억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제 인간도 기억하게 된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제일 먼저 제단을 쌓는다.
제단은 기억하는 행위의 표현이다.
홍수로 폐허가 된 그러한 상황에서 제단을 쌓고 감사할 수 있었던 노아의 마음을 묵상해 보자.
우리의 신앙은 노아처럼 폐허가 된 상황에서 제단을 쌓고 감사하며 살아가는가?
1) 방주 속의 노아 ; 긴 기다림(40 + 150)?
노아의 긴 기다림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우리는 1주일만 비가 계속 내려도 우울해지고 그러는데 그토록 긴 시간을 어떻게?
믿음과 사랑 때문에 견딜 수 있었다. 사랑은 기억하는 행위라고 했다. 그렇게 노아는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했다.
노아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방식 ;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방식 통해 드러난다.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 여기에는 힘이 있다.
우리의 인생 안에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위기의 순간들에서 ...
하느님의 약속을 기억해 가야 한다. 또한 기억에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의지적으로 기억하며 이겨내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길이다. 영혼의 어두운 밤에 더 하느님을 기억해 내는 것이 신앙의 길이다. 이렇게 살아갈 때 끝내는 "나와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기억 => 기다림 => 끝내 나오라는 응답 받게 된다.
곧 시간을 필요로 한다.
성모님의 삶 ; 마니피캇에 보면 하느님을 기억하셨다.
기억한다는 것 안에 구원적인 요소가 있다.
하느님을 기억하는 사람은 끝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휩쓸리는 사람은
끝내 휩쓸리게 된다. 상황 속에 빠져 버리고, 거기에 휩쓸려 버리는 상황이 된다.
2) 하느님 앞에 제단을 쌓다 ; 감사의 제물
제단 쌓다 ; 다시 한 번 하느님을 기억하는 행위이다.
방주 밖의 상황들을 묵상해 보자.
끊임없이 몰아치는 예상치 못했던 일들, 방주는 흔들릴 수밖에 없고, 물이 찰 수밖에 없고 ...
그런 상황 받아들이고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계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말고 기다려라.
노아가 비가 그치고 방주 밖으로 나와서 제단 쌓는 일이 쉬운 일이었을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홍수 지나간 자리를 상상해 보라. 아무 것도 없는 자리 ...
그 절망의 자리에서 감사의 제단을 쌓는 일이 쉽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단을 쌓는 노아 ...
그런 상황에서도 노아는 의지적으로 감사하려고 한다.
우리 안에는 그런 노아의 모습이 살고 있다.
어떤 처지에서도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17 참조).
역설적인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갈 때 하느님을 만나게 되어 있다.
신앙은 자연스러운 게 아니다. 의지적인 것이다.
노아가 제단을 쌓고 번제물을 바치자...
"주님께서는 그 향내를 맡으시고 마음속으로 생각하셨다."(창세 8,21)
노아가 제단 쌓고(하느님을 기억하고) 번제물을 드리자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하느님께서는 노아의 그 마음(향기)을 보셨다.
고통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사람들의 그 향기이다.
문화와 영성 연구소 길벗 강의 http://cafe.naver.com/iocis
문화와 영성 연구소에서 성서와 영성수련이라는 주제로 11주간 공부하는
창세기 5주간 공부한 내용을 제가 요약해 본 내용입니다.
* 출처 :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http://blog.naver.com/kr3217
카테고리 성서와 영성수련 길벗 강의에 창세기 강의 요약이 올려져 있습니다.
이정임(클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