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의 원리(原理)
창세기는 성서 전체의 축소판이고 설계도면이다. 성서 전체 70권 중에 맨 첫 번째 책이다. 성서 전체를 많은 사람들은 66권이라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시편을 한 권으로 보기 때문이다. 시편을 쓴 것도 다섯 사람이 썼는데 어떻게 한 권이라고 하겠는가? 그리고 창세기부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까지를 모세가 기록했다고 한다, 모세 5경이라고 하는데 창세기는 모세가 기록한 책이 아니다. 모세 하면 율법의 대명사로 불리움으로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만 율법이고 창세기는 율법이 아니다. 창세기는 사실상 복음이요, 성서 전체를 축소해 놓은 축소판 처럼 설계도면이다. 성서 전체 70권을 한 권으로 보면 창세기는 서론이고, 요한계시록은 결론이다.우리가 편지를 쓸때도 서론과 본론과 결론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종파에서도 성경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는 하면서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이다.
베드로후서 1:20-21을 읽어보자 베후 1:21 예언은 인간의 생각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성령에 이끌려서 하느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아 전한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으로 낸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뜻으로 풀면 맞겠는가? 베후 1:20 무엇보다도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서의 어떤 예언도 임의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점입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성경은 세상기복 정신이 아니다, 사람은 세상의 눈으로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정신이 어디에 있는지에 따라서 말씀의 눈이 달라질수 밖에 없다.
마태 19:23-24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부자는 하늘 나라에 들어 가기가 어렵다. 거듭 말하지만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 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영적인 말씀을 사사로이 세상적 기복으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인 것이다. 하느님의 뜻은 사람의 생각 즉 세상 역사나 자신의 세상 지식으로 풀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성령으로 감동 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에언하기를 더욱 힘쓰라는 말은 영적으로 배우고 영적으로 깨닫고 영적으로 신앙하기를 힘쓰라는 뜻이다.
이사야 55:8-9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다. 나의 길은 너희 길과 같지 않다.' 야훼의 말씀이시다. '하늘이 땅에서 아득하듯 나의 길은 너희 길보다 높다. 나의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다.
사람의 생각과 말과는 그 뜻이 전혀 다른 하느님의 말씀을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뜻으로 풀면 그것이 바로 사망나무의 열매라고도 하는 선악을 모르게 하는 나무의 실과이므로, 하느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에덴동산에 있는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으로 먹되 땅에 있는 그 선악을 모르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다.
여기서 우리가 한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성경은 모든 단어와 숙어 그리고 사건의 환경들이 전부 비유로 덮혀 있다. 그러타면 "선과 악"의 비유(비밀암호)의 말씀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 비밀암호를 알아가는것이 바로 하느님의 마음과 뜻이다. 세상에서의 도덕적인 선과 악은 세상에 가름침이다, 이런 가름침은 유치원생도 아는 것이다 (히 5:13), 하늘의 가르침에 선과 악은 분명 무슨 뜻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마태복음 13: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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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가 저희에게 비유로 말하기는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의 예언이 저희에게 이루었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1]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2]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저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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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본문에 1]"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라고하였다, 마음이 "완악" 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하느님 심령(영)으로 보시기에 얼마나 악하면 완악이라고 할까? 그러면 반대로 우리가 선하다고 볼 때 악(惡)의 반대말은 선(善)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육체라는 본능속에 욕(慾)이 있다, 그 본능은 육(肉)이다, 영(聖靈)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성경은 죄인들이 보는 말씀의 책이다. 그래서 디모데오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 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딤전 1:15) 우리의 신앙은 연어의 물고기 처럼 자신의 본향인 하늘본향을 그리워하면서 돌아가려는 선(성령)을 찾아가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내 마음 안에 있는 두 사람의 존재을 알려준다!신앙은 겉사람과 속사람인 두 존재의 마음(심령)적인 전쟁인것이다 (갈 5:17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이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겉사람인 육체의 존재는 먹고, 마시고, 시집, 장가 가고 집짓고,......이것을 육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 육의 본능속에 우리는 선한 성령의 사랑을 채워가고 신앙을 배워가며 성장해야 하는 것이다. 선이라는 것은 우리의 선한 양심인 속사람이다, 이 심령만이 오직 하나님을 찾아가는 길이다, (베전3:21 그것은 오늘날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세례는 몸에서 더러운 때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으로 살겠다고 하느님께 서약을 하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올라 가셔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천사들과 세력과 능력의 천신들을 당신에게 복종시키셨습니다 ) 이 속사람이 성장하는 것을 불경에서는 참 나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한다. 즉 우리의 마음(심령)의 속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은 4단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즉 자연의 섭리처럼 4계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우리가 식물을 심어 열매를 얻기까지는 석달이 걸리는 것처럼 또한 겨울에 모종을 심어서 가을에 추수하기까지도 넷 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요엘 1:3-4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하는 목적은 우리가 아버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사귀는 친교를 여러분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이 글을 써 보냅니다.) 그러면 첫 단계인 겨울차원 즉 율법차원 속에 매여 있는 신앙(성경)의 눈은 어떻한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3장에 보시면 선악을 모르게 하는 나무와 뱀을 상징하는 것이 과연 눈에 보이는 파충류의 뱀일까? 나무 또한 어떻한 비유로 표현 하였을까? "선과 악"을 모르게 하는 즉 구별하지 못하게 하는 나무의 실과을 먹지 말라고 했다!
성경에서는 나무는 사람을 뜻한다, 마태 3:10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9절에 보면 좋지 못한 나무의 열매는 아브라함의 조상이 아니라고 단정하고있다. 마태복음 12:34절에는 독사의 자식들이 나온다, 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할까? 독사는 뱀인데,...과연 누구일까? ^^ 그러타면 뱀은 누구를 상징하는것가? 완악한 자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윗 본문 마태13장15절 말씀에 2]"눈은 감았으니" 라고했는데, 무슨 눈을 감았던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인 심령의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 함이라" 하느님께서 두려워 하셨다고 했다, 왜 두려워 하실까? 세상 기복 정신의 눈을 가지고 있으므로, 육과 영은 천양지차(天壤之差) 다르다. 영차원에서는 육은 자기 자식이 아니다,.. 남의 자식인데,.. 영적인 자식이 아니고 육적인 자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려운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낳은 자식이 아닌데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아버지, 어머니라고 하면 그 기분이 좋겠는가?! 굉장히 찜찜 할 것이다. 무~척이나,... ! 그렇타면 기복적인 세상 정신만 가지고, 그냥 예수님을 믿으면 사람이 만들어낸 교리속에 맹종(盲從)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두려운 것이다. 일요일만 되면 교회에가서 성경책만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면 무슨 소득이 있을까? 말씀은 하느님(요1:1)이라고 하셨는데, 그분의 뜻을 알지 못하면 벙어리며, 소경이고, 미문 밖에 있는 앉은뱅이(행3:1-10)와 같은 완악한 상태이다. 이런 육적인 기복정신으로 기도을 한다면 과연 말씀의 문(양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본문으로 다시 돌아와보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말라"고 하셨다는 의미? 그리고 그 완악한 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마태복음 23:23절에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라고 하셨고, 이 말씀은 2천년 유대인들에게만 전 했다면 그 진리는 2천년 전에 죽어있는 말씀이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 말씀을 변질해 놓고 현대판 유대인들의 교리와 교권속에 철저히 가두어 놓았다는 말씀이다.
현대판 유대인들을 오늘날 보자면, 교리와 교권으로 자신들의 교인들을 세뇌 시키면서 자신의 왕국의 울타리를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즉 출애굽기에 바로 왕처럼 국고성인 라암셋의 울타리를 강제로 건축시키면서, 그 정신을 묶어 놓는 것처럼 현대판 종교인들의 모습과 마찮가지이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마태 23:13)
오늘날은 바로 왕처럼 많은 종파들이 있다, 거짓이 많아야 참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듯이, 참은 소수이다 보일듯 말 듯 거짓속에 파묻혀 있는 것처럼, 진리의 보석은 쉽게 보이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느님은 다수 보다 소수를 사랑하신다.(고전 10:5)
요한복음 8:44절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참된 편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니니라" 고 하셨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런 거짓말장이가 천국의 비밀암호 문서인 성경을 깨닫고 하늘 나라의 시민이 될까봐 두려워 하신다고 이사야를 통해서도 말씀하셨고, 예수께서도 이 모든 성경을 비유로 만 말씀하시고 비유가 아니면 아무 것도 말씀하시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마태복음 13:10-15절에 자세히 설명하셨다. 그런 자들이 비밀암호로 기록해 놓은 성경을 올바로 깨닫고 천국 백성이 된다면 선(善)만 존재하고 죄와 악을 알지도 못하는 천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세상 육적인 아들도 선(善)만 알려주면 과연 이 험한 세상에서 선악을 구별할 수 있는 자식이 될까요? 세상 어느 아버지도 그 자식에게 도덕적인 선과 악을 구별 할 수 있도록 교육을 할 것이다. 하물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선과 악을 통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 지구성인 세계에 첫 사람에게 육체를 입혀서, 첫 아담을 짐승의 울타리에 보내어 "희. 노. 애. 락(喜怒哀樂)"을 주시면서 "참 나"를 찾아오게 신앙의 교육을 주신것이 성경 책이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에 한해서만 그 비밀암호의 뜻을 알게 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비유란 비밀암호라는 뜻이다. 성경 전체가 비유와 상징과 예시(例示)로 쓰여진 하나님의 암호문서인데, 이 암호문서를 문자적으로 보므로써 영적 진리를 육적인 사람의 생각으로 혼잡시켜 놓는 것을 성경상에 혼돈 또는 음행이라고 한것이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8:3절에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한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가 바로 성경을 그렇게(육적으로) 보는 것을 말한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혼잡시켜서 만든 각가지 종교의 교리와 종교 지도자들의 설교를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라고 하였고, 창세기 1:2절에는 그런 신앙 세계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고 하였다.
오늘날에 현대판 유대인 처럼 그런 거짓 목자들을 가리켜서 선악을 모르게 하는 사망나무라고 한 것인데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그런 귀신(神學者)들이 말씀의 참 뜻인 씨나락을 다 까먹고 껍데기만 남겨 넣은 것이다. 오늘날 각 교파마다 제각기 자기들의 교리에 맞게끔 성경을 변질시켜서 엉망진창으로 번역해 놓았다.
교리(敎理)란? 사람들의 뜻으로 자신들의 울타리를 만든것이다. - 명사[종교적인 원리나 이치. 각 종교의 종파가 진리라고 규정한 신앙의 체계을 이른다]
출 1:8-11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 보다 많고 강하도다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감독들을 그들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위 본문 말씀에 보시면 "저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자" 라고 하였다. 무거운 짐은 무엇인가? 이것이 바로 육적인 생각으로 만들어 낸 것이 교리(敎理)인 것이다. 사람이 만들어낸 교권과 교리는 그 울타리속에 가두어 넣고 이스라엘 자손을 고역으로 저들의 성전을 건축하게 하면서 현대판 라암셋을 강제로 만들고 있다. 요즘 성전 건물을 너무 크게 건축해서, 은행에서는 임대 사업까지 권장을 하면서 융자금액을 갚아 나간다고 한다. 과연 하느님의 말씀 즉 언약궤가 그런 세상적인 돈으로 쳐 바른 곳에 하느님의 말씀이 있겠습니까! 육적인 눈에 보이는 사업에 하느님의 말씀이 머물고 있겠습니까!
누가 19:45-46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쫓으시며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다, 구약은 육적인것이 주된 역활이고, 신약은 마음이 주역(主役)이므로 심령이 가난한자는 복이 있다고 하였다. (마태 5:3) 위 본문에 영적인 출애굽을 육적인 출애굽으로 그림자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육적인 주역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영적인 주역은 꼭 있기 마련이다. 이사 34:16 야훼의 기록을 찾아 내어 읽어 보아라. 이런 모든 짐승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으리라. 그것들은 직접 야훼의 입에서 떨어진 분부를 받아 그의 입김으로 몰려 온 것들이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교권과 교리로 통하여 저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는 짝의 장면을 찾아보겠습니다. 누가 11:46 그러자 예수께서는 '너희 율법교사들도 화를 입을 것이다. 너희는 견디기 어려운 짐을 남에게 지워 놓고 자기는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는다. 예수께서 유대인 율법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사람에게 무거운 짐을 지운다고 하셨는데 이런 말씀은 구약에서 온 용어들이다. 애굽 사람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므로 저들이 딴 생각을 못하게 해서 모세가 오기 직전에 무거운 짐을 지우자는 일이 있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무거운 짐을 지게 한 것이다, 이것이 현대판 유대인의 교리(敎理) 인것이다! 마태 23: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 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이와같이 애굽 사람들을 무거운 짐을 옛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우고 저희들은 손가락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감독만 하는 것이다.
마 11:30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 광야로 불러낸 것과 마찬가지고,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악 가운데서 불러내사 은헤에 속하여 믿음으로 선과 악을 구별 할 수 있도록 구원하신 것이다. 그의 생애의 삶은 참 신앙의 본을 보여주고 떠나지만 보혜사 말씀으로 되 돌아 오신것이다.
성경 공부는 왜 하는지?,... 하느님의 주신 깊은 말씀의 뜻을 알아야 하늘본향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옛 전에 언약하신 구약의 주역으로 육체의 중심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수는 없다. 마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가기만 하면 그 무거운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었던 것처럼, 성경의 비밀암호를 알아가는 것이 그 무것운 짐을 벗는 것이다.요일 5:3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태초라는 용어의 의미
원어(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책의 명칭을 창세기라고 하지 않고 이 책의 명칭을 "쎄-페르 마아세 베레쉬트" 라고 하였는데 무슨 뜻인가 하면 [태초(레쉬트)께서 하신 일들] 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태초]란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그런데 이 책의 이름이 70인 역이라고 하는 헬라어 성경에서 부터 창세기(제네세오스)로 바꿘 것이다. 그 당시(BC 2-3세기)에 이 책을 번역한 72명의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영감이나 계시를 받지 못한 상태에서 자기들의 멋대로 고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 이야말로 다른 어떤 말씀이 오류보다도 참으로 중대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성서 전체를 엉뚱하게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70여명의 학자들이 의논해서 고친 책이름인데 하느님의 영감을 받지 못했다는 근거가 무엇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창세기라는 말은 이 세상 나라를 창건한 기록이라는 말인데 "태초" 곧 "레쉬트" 하느님은 이 세상 나라를 창건하신 분이 아니고 우주와 그 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레쉬트" 곧 우리말로 "태초"라고 번역한 그 분은 아무데도 매이지 않은 분이시기 때문에 "야훼(여호와. 우리말_나는 스스로 있는자)" 라고 한다.
히 1:1-2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느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만유]란 온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뜻하는 동시에 우주 자체가 [만유]이시고 "레쉬트" 곧 한국말로 "태초"라고 번역한 그 분이시다. 그러니까 "레쉬트" 곧 "태초"라고 하는 그 분이 만유를 창조하셨고 그분 자체가 [만유]이시기 때문에 그 분이 천태만상(千態萬象)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그 분은 아무데도 매이지 않으셨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분이시므로 야훼 하느님이시고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 하느님이시다.
그 하느님이 아버지로 나타나시기도 하고 아들로 나타나기도 하고 또는 그리스도로, 천사로, 아담(사람)으로, 멜기세덱으로, 겐 족속으로, 어린양으로, 성령으로, 새벽 별로, 생명나무로, 포도나무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로, 선지자들로 등등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니까 말씀으로 나타나기도 하셨고 그 말씀이 육신을 입고 오시기도 하셨다.
아ㅣ 41: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도 나요 나중 있을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태초부터 만대를] 이라고 한 이 태초께서 자신을 누구하고 말씀하셨는가? 나 여호와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태초" 그 분이 곧 여호와 하느님이시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고한 그의 근본이란 누구의 근본이라는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의 근본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태초]라는 말은 [태초 안에] 또는 [태초에게]라는 말이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이 곧 하느님이시니라. [태초]라는 그분 안에 말씀이 계셨는데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였다.
요 1서 1:1-3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화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우리가 보고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여기서 [태초]라고 하는 말은 그 태초 안에 계시는 생명의 말씀(그리스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그러니까 태초 곧 "레쉬트" 하느님 안에 하느님과 함께 계신 메시야(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말하는 것이다. 태초께서 창조하신 천지만물이 우주 안에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것이나 보이지 아니하는 것이나 우주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이 모두 생기(生氣)이신 태초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다.
히 1:3 이는 하느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는 하느님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고 하였는데, 태초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곧 태초(레쉬트) 하느님을 영광되게 하시는 것인데 그 이유는 그 아들도 아버지도 공기와 같이 온 우주 안에 하나로 되어 있는 생기(生氣)의 형상이므로 두 분의 본체는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두 분이신 아버지와 아들의 같은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라는 했는데 [만물]은 모든 믿는 사람들을 상징적으로 예시해 주는 것이고 [그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한 말은 태초하느님 편에 계시다는 말이다.
하느님의 아들로 기름부음을 받은 그 아들 그리스도의 근본 본체는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신데 아버지 품안에 계시므로 태초하나님 보다 작을 뿐이다. 온 우주 안에 있는 공기보다 자동차 바퀴나 풍선 속에 들어 있는 공기의 부피가 작은 것 같이 예수님 속에 계시는 아들 하나님은 "레쉬트" 곧 태초 하나님보다 작을 뿐이지 같은 하느님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요14:28 참조)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면 나의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니라 이것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성서 전체를 엉뚱하게 잘못된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신 사람에게 짐승의 육체를 입혀서 짐승의 우리(畜舍, 가축을기르는 울타리)에 보내신 그 사람(아담)이 후에 그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을 예시해주시는 "알파와 오메가" 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 사람(아담)을 범죄자로 보고 성경을 그렇게 번역을 한 것이다. (롬 5:14, 계 21:6, 22:13, 사 44:6 참조)
창 3:21-22 여호와 하느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니라 여호와 하느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사람이 선악을 아는 나무가 되므로서 우리간에 갇혔있는 짐승중에 우두머리가 되었으니 그가 생명나무의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가죽옷을 지어 입히니라" 이 가죽옷은 짐승과 똑 같은 육체를 입히니라고 하신것이다, 그 육체를 지어 입히시고 짐승의 우리간(畜舍)으로 쫓아 보내 버린것이다, 첫 아담은 짐승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하늘본향을 그리워하는 심정으로 짐승의 우리간에서 첫 아담의 육체 즉 겉사람은 단 생(生)을하고, 속사람은 영생을 할까 하노라고 하셨다. 짐승의 우리간 "우리(畜舍)"은 히브리어 말로는 "게데라" 라고 한다. 그렇다면 첫 아담의 심령속에는 누가 계실까? 히 1장 3절에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라고 하셨다, 그 아담의 죄를 정결케 하신 분은 태초 즉 레쉬트라는 능력의 말씀이 계셨다는 것이다. 그 분이 바로 "알파와 오메가"라는 능력의 말씀 즉 하느님이 뜻을 모르면 함께 사귐(동행)도 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로마서 5장 12-14절에 말씀을 보자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노릇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이 본체시니 하느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목말뚝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의 마음도 근본 본체는 "레쉬트" 하느님이라는 말이다. 그러니까 그 분은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시는 것이다. 계 21:6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알파, 헬라어 알파벳 첫 글자, 시작을 뜻한다/ 오메가, 헬라어, 히랍, 그리스, 알파벳의 끝 글자, 그리스도의 존재를 나타내는 칭호, 하느님께서도 사용되었다(계 21:6)] 이 말은 무슨 뜻인가? 성경 첫째 권에 "태초" 라고 한 "태초"도 [나]요 마지막 책(계시록) 끝에 이것들을 증거한 예수도 [나]라는 뜻이다. 다 같은 하느님의 존재라는 뜻이다. 그 분이 맨 처음 태초(太初)에 아무것도 없는 텅비어 있는(空虛한) 우주 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분을 태초(레쉬트)라고도 하고 만유라고도 하는 창조주이시고 조물주 이시다.
롬 1:20-25 창세로부터[태초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느님을 알되 하느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느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가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리로다 아
"태초 곧 레쉬트께서 하신 일들" 이라는 책의 명칭을 72명의 유대인들이 창세기라는 명칭으로 고쳐놨기 때문에 로마서 1:20에도 창세부터라고 하였느데 창세로부터가 아니고 태초로부터라고 해야 맞는 것이다. 태초 하느님께서 만드신 만물을 보더라도 조물주가 어디 있고, 하느님이 어디 있느냐고, 창조주를 부인할 수 없을 텐데 오늘날 인간들이 그 분의 말씀을 거짓된(사람의 생각으로_육적인 욕망으로) 교리(울타리)로 바꾸어서 십자가 우상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하느님의 말씀보다 몰각한 목자들의 말과 그들이 만들어놓은 교리와 제도의식을 우상화 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태초(레쉬트)께서 하신 일들" 이라는 책의 명칭을 창세기라는 명칭으로 고친 것이 옳다고 핑계치 못하리라는 말이다. 그런데 짐승 중에서도 가장 간교한 옛 뱀의 가죽(육신)을 입고 짐승들의 우릿간으로 창조해 놓으신 지구성(지옥)이라는 짐승들의 우릿간에 살고 있으면서 자기들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섯째 날에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느님이 보시기에 사람이라야 진짜 사람이지 인간들의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은 사실상 사람이 아니다.
인간들의 관점에서는 머리를 하늘로 두고 천으로 만든 옷을 입고 말이라는 독특한 구음(口音)을 내면 사람이라고 하고 날 때부터 털옷을 입고 머리를 땅으로 향해 다니면서 말이 아닌 소리만 내면 짐승이라고 외모만 보고 판단하지만,... 하느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므로써 그 속에 성령이 있으면 사람으로 보시고 약육강식하는 악령이 그 속에 있으면 짐승으로 보시는 것이다. 짐승이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또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보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비록 여러분의 몸은 죄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을 살아있습니다. (로마8:5-10)
*천지 창조의 의미 *
창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은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 하였는데, 히브리어로 "레쉬트" 라고 하고 한국말로 "태초" 라고 번역한 그 분이 천지와 만물을 창조주 하나님이다. 그러니까 창세기 1:1절부터 2:3절까지는 문자적인 실제의 천지창조를 요약해서 기록한 실재 천지창조의 역사서인 동시에 사람들과 짐승들이 혼돈하고(뒤섞여있고) 진리가 공허한(텅비어있는) 그들을 원상태로 갈라놓는 신앙 교육의 교육과정과 그 교육이 되어 가는 신앙의 상태를 요약해서 말해주는 것이므로 1:1절부터 2:3절까지는 성서 전체를 축소한 축소판(설계도면)이고 서론이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1장에 약설(略設)한 것 같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나서 천년간 안식하신 후에 창조하신 것을 살펴 보시니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 놓으신 사람(아담)이 짐승 중에 가장 간사하고 교만한 뱀의 형상인 육체를 입고 뱀들과 섞여 살면서 많은 튀기(네피림, 창 6:4)을 생육하고 번성케 하므로서 사람(아담)의 마음인 성령과 짐승의 마음인 악령이 섞여서 혼돈하고 그들 속에 진리의 성령이 텅비어서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이 심령 안에 신앙의 천지를 창조하시는데 문자적 실제의 천지창조를 상징과 비유로 예시해서 구속사적 천지를 창조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알지 못하게 상징과 비유로 된 하나님의 비밀 암호문서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한해서는 그 비밀을 자기 종 선지자들을 통해서 미리 알게 역사 하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문자적으로 출애굽한 실제를 기록한 출애굽기는 선택 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 출애굽 할 것을 예시해 주는 것 같이 레쉬트 하나님이 문자적인 실제의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아담)이 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에게 미혹돼서 뱀들의 나라인 이 세상에 매여 있는 것을 해방시켜 주시기 위해서 신앙의 천지를 창조하실 것을 예시해 주는 그림자인 것이다.
그러니까 성경이란? 옛 뱀으로 변질된 인간(뱀,육체)들을 하나님의 형상(성령,聖靈)으로 재창조해서 하늘 본향에 복귀시키는 신앙 교과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 한해서만 알아 볼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비밀암호서다. 그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될 자들에게는 반드시 그림자로 미리 예시해 주시는 것이다.
사 46:9-10 너희는 옛적 일을 기억하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 나 같은 이가 없느니라 내가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나 외에 다른이가 없느니라 나는 하나님이라]고 하신 이 분이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하신 그 분이다. 성경 맨 첫 머리에 "태초"라고 한 "레쉬트" 바로 그 분이 하신 말씀이다.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셨고" 이사야 선지자 시대까지 아직 이루지 아니하신 일까지 옛적부터 그림자로 보여주셨다고 이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다.
아모스 선지자가 3장 7절에서 대변한 그분에 대한 어떤 말씀을 하였나 보자.
암 3:7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주 여호와께서는] 이라고 한 주는 창조주를 말하는 것이다.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자기 종인 선지자들게 미리 예시해 주시지 아니하고는 어떤 일든지 절대로 행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그러니까 성경이란? 옛 뱀으로 변질된 인간(뱀)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해서 하늘본향에 복귀시키는 하나님의 경륜섭리를 예시해 주시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돌아갈 가능성이 있는 자들에 한해서만 알아볼 수 있게 하신 하나님의 비밀 암호 문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아무리 많이 읽고 연구를 한다고 해서 그 속에 감취어 놓으신 비밀암호를 가르쳐 주는 계통 즉 맥을 통하지 않고는 자기 스스로 깨닫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멜기세덱의 반차인 계통이 없이 자기가 직접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것이다. 뿌리가 없는 나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멜기세덱(겐 족속) 뿌리의 계통은 아직도 이어오고 있다.단지 많은 사람들 틈 속에 숨어 있는 것 처럼, 참 이라는 것은 거짓이 많은 중에 보일듯 말듯 숨어 있는 것 처럼, 그 흔한 보석이라면 그 보석이 가치가 있을까?,... 그러므로 참 진리의 말씀은 비밀암호로 덮혀 있다.
마 11:27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아들과 또 아들의 아들 된 자가 자기의 또 영적 아들 된 자에게 계시를 주도록 하나님께 소원을 올려서 소원대로 계시를 받지 않고는 사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육의 눈(肉眼)만 가지고는 하나님을 보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말로만 하나님 아버지 아버지 하나님 하고 외치지만 엿새 동안에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는 그 하나님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있는가? 하나님께 소원을 올려도 계시를 꼭 주신다는 보장이 없는데 하나님께 직접 소원을 올릴 수 있는 채널도 없이 어떻게 소원을 올리겠는가?
첫째로 이 땅에서 나의 영적 사부(師父)로 관계를 맺고 있는 그 사부가 이 땅에서 계시를 받고 나를 가르치다가 육체를 벗고 영계에 가서 하나님께 나의 대한 소원을 올려서 계시의 채널을 그 사부가 받아서 수시로 나에게 계시를 주시는 것이다.
딤후 1:1-2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대로 1]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가 있을찌어다.
1]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 사도란? 보내심음 받았다는 뜻인데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재연하는 자를 사도라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재연하는 사명을 가진 바울은,
2]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한다고 하였다,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한다 바울은 디모데를 직접 낳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낳았다. 여기에서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낳았다는 뜻이다.
약 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니라 자기의 정신을 좇아 우리를 말씀으로 낳으셨느니라. 말씀으로 낳았다는 것은 정신으로 말미암아 새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육체로 말미암아 나고 또 한번 정신으로 새로 나는 것을 거듭난다고 한다. 바울은 정신으로 디모데를 낳았다고 해서 아들이라 하였는데 육체로 난 아들이 아니고 정신으로 낳았다고 해서 참 아들,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성경의 뜻을 잘 모르는 자는 대표적으로 누구인가? 바로 "니고데모" 이다.
하나님이 나라를 볼 수 없는 자는 모태에서 두번씩 어떻게 낳는냐고 예수님께 반문을 하면서, 니고데모는 자신의 신앙의 한계를 드러낸다. 즉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릴수 없는 자를 표현한 사건이다.
요 3:4-5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이런 계통을 통하지 않고는 결코 계시를 받을 수 없게 돼 있다.그러나 그 사부와 사제 관계가 풀리지 않고 계속 매어져 있어야 되는 것이다.
마 18: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라] 라고 하셨다.나의 사부가 육체를 벗고 하늘나라에 가 있을 때까지 나와 사제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 매여저 있으면 하늘나라에서도 나를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인정할 것이고 땅에서 맺은 사제관계가 끊어지면 하늘나라에서도 나를 하늘나라 백성으로 받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하늘나라의 계통인 겐 족속을 영접해서 그 계통의 지도를 받아야 하나님의 비밀암호 문서인 성경을 깨닫을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다.
행 8:26-31 주의 사자가 빌립더러 일러 가로되 일어나서 남으로 향하여 예루살렘에서 가사로 내려가는 길까지 가라 하니 그 길은 광야라 일어나 가서 보니 에디오피아 사람 곧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모든 국고를 맡은 큰 권세가 있는 내시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돌아 가는데 병거를 타고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읽어더라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이 병거로 가까이 나아가라 하시거늘 빌립이 달려가서 선지자 이사야의 글 읽는 것을 듣고 말하되 읽는 것을 깨닫느뇨 대답하되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하고 빌립을 청하여 벙거에 올라 같이 앉으라 하니라.
에디오피아의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도 지도해 주는 사람이 없이는 성경을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깨닫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 다시 본문으로 가서 [태초에 하나님이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한 [태초]란 온 우주 안에 계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우주 자체이신 것이다.
창세기 1장은 그분이 처음 창조하신 문자적 천지창조를 요약해서 말해주는 동시에 장차 이루실 신앙의 천지창조를 상징적으로 예시해 주는 그림자이므로 그림자의 실체(히10:1)를 알아보는 것이 성경 공부며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하나님의 뜻이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성경에는 율법을 상징하는 구약이 있고, 복음을 상징하는 신약이 있다. 이 두 언약을 주역을 보자면, 옛 언약으로 약속을 한 "구약은 육적인 주역"으로 성경을 보면 "아들 많이 낳고 돈 많이 벌고 권세를 가지면 그것이 육(율법)적인 복이다, (신 28장 참조) 그러나 신약에 와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한다.( 마5:3 참조)
그러타면 "신약은 심령(마음)의 주역"으로 보아야 한다, 즉 그림자인 육적(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복음)의 그림자로서 참 형상이 아니므로 온전한 제사(예배)을 드릴수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문자적인 그림자의 천지는 하늘과 땅이지만, 이 천지를 상징과 비유로 사용해서 말하는 구속(救:구원할 구 贖속죄할 속)사적 천지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하늘과 땅하면 사람들은 해와 달이 있고 별들이 있는 저 하늘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성(持久性)을 가리켜서 천지라고 하는데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이고 사람들의 뜻이지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뜻은 아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말하는 하늘은 무엇이고 땅은 무엇인가?
우리가 공부하는 성경을 신앙교과서라고 하는데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입고 있는 이 짐승의 가죽인 육체를 벗고 영체로 영원히 살게 될 하늘 본향에 돌아갈 것을 소망하는 것이 신앙인데 하늘은 땅의 반대인 영의 세계를 하늘이라고 하고 육체들이 살고 있는 이 육의 세계를 땅이라고 하는 동시에, 하늘본향에 돌아가는 그 길을 가르쳐 주는 자와 배우는 자 곧 스승과 제자, 영생할 수 있는 영적 새 생명을 탄생시켜 주는 영적 아버지와 아들, 인도하는 자와 인도를 받는 자,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 곧 통치자와 백성을 하늘과 땅(천지)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야서 1장 2절에 [하늘이여 들으라 땅이여 귀를 기울이라] 고한 하늘은 이스라엘의 통치자를 뜻하고 땅은 백성을 가리켜서 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성경을 보는데 있어서 창조사적으로 보는 것과 구속사적 관점에서 보는 것과 두 가지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인데 성경은 사실상 구속(救贖) 역사서이지 문자적인 창조 역사서는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다. (고후 3:6 참조) 구속역사서 라는 말은 어떻게 하는 것을 구속(救贖)이라고 하는가 하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하셨으니까 영적 존재고 짐승은 흙의 성분으로 창조하셨으니까 육적 존재이다.
영적 존재인 사람은 하나님과 같은 형상이므로 사람이 살수 있는 영역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온 우주 전체이고, 짐승들은 이 지구라고 하는 우릿갓(畜舍, 히브리어 게데라: 창 3:22 참조)을 벗어나서는 살 수 없도록 영역이 제한 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의 창조를 끝내고 안식하시는 동안에 하늘에 살아야할 사람이 암 뱀들의 육체미를 보고 그들에게 미혹되어 많은 튀기(네피림 창6:4)들을 번성케 하므로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가 혼돈 돼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는 작업을 하고 계시는데 이 작업을 구속역사라고 한고 천지창조로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세상 나라 백성들을 교육하라고 주신 책이 아니라, 천국의 시민권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의 백성 될 교육을 하기 위해서 주신 신앙교과서이다.
윌리엄 틴텔 번역의 디모데후서 3:16-17을 보자 딤후 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때로는 책망과 사랑의 매로 징계하셔서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일진대 온 회중이 알아둘 것은 이 세상 나라 백성을 교육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 백성으로 교육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라.
성경은 이 세상 나라의 백성을 교육하기 위해 주신 책이 아니라고 하였다. 문자적으로 보면 다말이라는 여인은 창녀를 가장하고 자기의 시아버지와 성관계를 해서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를 낳았고 롯의 두 딸은 자기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고 관계를 해서 낳은 후손들이 모두 예수님의 조상으로 마태복음 족보(마1 장)에 올라 있다. 이런 사건들이 이 세상 나라 윤리도덕에 유익한 교육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세상 나라의 백성으로 의롭게 교육하기 위해서라면 70권의 성경보다 명심보감 한 권이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그러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고한 천(하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고, 지(땅)는 인간들의 마음을 의미하므로 이 신앙 교과서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천지 창조는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그분의 정신으로 변화시켜서 하늘 본향에 복귀시키는 하나님의 대 역사를 말하는 것이다.
하늘에 있어야할 사람은 하늘에 있게 하시고 땅에 있어야할 짐승은 땅에 있게 하시는 것을 구속역사적 관점에서 천지창조라고 하는 것이다. 땅이 혼돈하고 라고 한 [땅]은 언제나 마음을 상징하고 [혼돈하고]라는 말은 뒤죽박죽 섞여 있다는 말인데 누구의 마음이 무엇과 섞여 있다는 말인가?
사람과 짐승이 몸만 섞여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까지 섞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늘이 내 본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야 되고 짐승들은 자기가 이 땅의 주인이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므로서 사람들의 마음과 짐승들의 마음이 갈라져 있어야 될 것인데 사람들이 몸까지 옛 뱀의 육체를 입고 약육강식하는 짐승들의 마음과 혼돈 하므로서 마음 속에 있어야할 하늘 본향 정신이 공허(텅빈)한 것이다.
나그네 정신의 상대적인 주인 정신이므로 사람이라면 이 땅에 있는 동안 나그네 정신으로 살아야 사람이지 짐승들의 우릿간으로 만들어 놓으신 지구성에서 주인 행세를 한다면 짐승이지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신앙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캄캄한 흑암 속에 있는 짐승이 된 인간에게 갑자기 태양 같이 밝은 영적 복음 차원의 빛을 비추어 준들 받아들이지 못랄 것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되 돌아갈 사람과 영원히 뱀의 후손이 될 자를 갈라내는 것이 신앙교육인데 이 교육의 첫째 날에는 초보적인 첫 단계의 빛을 비추어 줘야 되는 것이다.
빛이란 신앙교육의 교사 역할을 빛이라고 하는데 초보적인 유치원생들에게 주시는 빛은 단번에 너무 밝고 차원 높은 큰 빛을 비춰 주어서는 않되므로 기복에 깊이 잠든 아담 부부를 첫째 날의 빛으로 보내신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날의 빛은 율법의 빛이기 때문에 율법의 빛은 영적인 진리의 말씀 밖에 있는 빛이다.(요 1:4-9 참조)
그렇다면 복음의 빛은 몇째날에 있을까? 첫쨰 날의 빛은 율법의 빛이라고 했고, 복음의 빛은 바로 네째날에 있다. 옛언약인 구약은 율법의 빛을 가르고 새하늘과 새땅을 창조(사 65:17)하는 복음의 빛이 주야(晝夜)를 나누면서 빛과 어두움으로 나뉘게 하신것을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이다.
[출처] 하늘과 땅을 창조하는 의미(3)|작성자 겐족속
겐족속의 의미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다.(히5:8-9 참조)
멜기세덱은 레갑 족속의 조상이요 요나답은 레갑의 아들이므로 레갑 족속은 곧 멜기세덱이 족속이요 요나답의 족속이요 이드로의 족속이요 겐 족속이다. (대상2:55 참조)
요나답을 여호나답 이라고도 하여 두 가지 이름을 번갈아 사용하였다.
역대상 2:55에 레갑 족속을 서기관 족속이라고도 하였다. 서기관 족속이라는 말은 제사장 족속 또는 비서관 족속이라는 말과 같은 뜻인데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족속이다.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설 자가 영영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고 한 것이다. (렘35:19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