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같은 천년신앙

2015. 5. 23. 오후 3: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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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같은 천년신앙

​창세기 1장에 7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7천년에 걸쳐 각급 차원의 신앙에 관한 천지창조를 예시해 주시는 그림자가 되는 것이다.(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베후 3:8)

 

신앙의 천지란 무엇을 상징적으로 말하는가 하면 하늘에 갈 반열과 배지옥(땅)에 갈 반열을 갈라놓는 하나님의 분류사업인데 하늘본향에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사람들에게는 본향에 갈길이 열리므로 그런 사람들에게는 구속역사가 되는 것이다.​

 

천지는 하늘과 땅인데 구속역사적 하늘과 땅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영과 육의 상대성 원리를 뜻하는 두 세계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 세계인가 하면 우리의 심령 안에 이루어지는 정신의 세계와 육신의 세계를 말하는 것인데 이 두 세계가 혼돈한 것을 갈라 놓으심으로서 하늘에 갈 길이 열리는 것이다. 그러니까 창세 1장 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라고 한 땅은 마음을 상징하는데 무슨 마음인가 하면 신앙의 마음 곧 신앙심(信仰心)을 말하는 것이다.

전도서 3:20-21 다 같은 데로 가는 것을! 다 티끌(흙)에서 왔다가 티끌로 돌아 가는 것을!사람(히브리어"아담벤)의 숨은 위로 올라 각 짐승의 숨은 땅 속으로 내려 간다고 누가 장담하랴!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라는 말은 짐승과 사람(인생, 히브리어로 아담벤)도

다 육적 기복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다. 즉 세상 기복의 정신을 흙이라고 하는 것이다.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라는 말은 이 세상의 기복 정신은 다 땅으로 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흙으로 말미암아", 즉 육적인 기복정신으로 말미암아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다 땅으로 가거니와 "인생의 혼은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가는 줄을 누가알랴" 우리 심령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찾아가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는 말은 항상 하늘본향을 그리워하며 살아야할 마음이 육체에 상관된 율법 차원의 기복신앙으로 타락하므로 말미암아 진리가 혼돈하고 공허해진 것을 심안적(心眼的)차원인 공관복음 차원의 신앙세계로 끌어 올릴 것을 예시해 주는 것이  이사야 65:17(보아라, 나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한다. 지난 일은 기억에서 사라져 생각나지도 아니하리라)의 새 하늘과 새 땅이고 심안적 차원(공관복음)에서 한 차원 더 높은 영안적차원(靈眼的次元, 요한복음차원)으로 신앙이 성숙하므로써 요한계시록 차원의 경지에 도달하기를 갈망하는 단계가 요한복음 차원의 신앙이다.

신앙의 마음(信仰心)이 성장하는 신앙 교육의 단계를 다시정리를 하자면 율법적 차원에서 심안적 차원으로, 공관복음차원에서 영안적인 차원으로, 요한복음차원에서 계시안적으로 사시 사철의 자연의 원리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3:13에 우리는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정의가 깃들어 있습니다.라고 한 새 하늘과 새 땅은 베드로 선생께서 사도 된 입장에서의 그의 신앙심이 요한계시록 차원의 신앙차원을 말하는 것이지만, 그 경지에 아직 들어가지는 못하고 그 경지에 들어가기를 소망하며 바라고 있는 신앙차원의 단계가 요한복음 차원이다. 

신앙의 단계는 사시사철로 4단계 차원적으로 자연의 섭리(攝理)속에 이루어져 있다.

성서에서는 구약성경(율법차원), 공관복음(심안적차원), 요한복음(영안적차원), 요한계시록(계시안적차원)의 4차원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행적과 신앙의 4단계로 나누어 보자.

 

구 약 성 경

공 관 복 음 

요 한 복 음 

요 한 계 시 록 

이스라엘의 행적 

예수님의 행적 

독생자(말씀)의 행적 

보혜사(성령)의 행적 

그림자로 본 그리스도 

비유로 본 그리스도 

말씀으로 본 그리스도 

신령으로 본 그리스도 

 육안으로 보는 차원

심안으로 보는 차원 

영안으로 보는 차원 

계시안으로 보는 차원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

선생으로 오신 그리스도 

 친구로 오신 그리스도

 남편으로 오신 그리스도

 백성에게 보이신

왕의 사랑

제자에게 보이신

스승의 사랑 

 자녀에게 보이신

어버이의 사랑

아내에게 보이신

신랑의 사랑 

 엄마 배안에 태아의 차원

젖먹는 아이의 차원 

 떡을 먹는 성인의 차원

상속을 받은 자의 차원 

수면중인 씨의 껍질 말씀 

씨는 심는 모습으로 말씀 

열매를 맺게하는 말씀 

추수하는 낮으로서의 말씀 

애굽에서 종으로

이스라엘 

광야에 구원한

이스라엘 

가나안을 정복한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건축한

이스라엘 

 겨울로 상징된 말씀차원

봄으로 상징된 말씀차원 

 여름으로 상징된 말씀차원

가을로 상징된 말씀차원 

 밤으로 상징된 말씀차원

아침으로 상징된 말씀차원 

낮으로 상징된 말씀차원 

저녁떄로 상징된 말씀차원 

 서쪽으로 상징된 방향

남쪽으로 상징된 방향 

동쪽으로 상징된 방향 

 북쪽으로 상징된 방향

 땅에 있는 예루살렘

마음에 있는 새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 

하늘에서 내려오는

예루살렘 

 

구약성경(율법차원)은 이스라엘의 행적으로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엄마품에 있는 것이고,신약성경(공관복음)은 예수님의 삶의 행적으로 제자에게 보이신 스승의 사랑이며 젖먹는 아이의 차원이고, 말씀차원으로(요한복음)는 독생자의 행적으로 자녀에게 보이신 어버지(말씀)의 사랑이며,보혜사(성령)의 행적으로 남편으로 오신 그리스도이며 아내에게 보이신 신랑의 사랑이다.

갈라 4:1-3 내가 말하려는 것은 이것입니다. 상속자는 모든 재산의 주인이지만 그가 어릴 때는 종이나 조금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버지가 정해 둔 때가 올 때까지 보호자와 관리자의 지시를 받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는 자연숭배에 얽매여 종노릇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렸을 동안에는" 라는 말은 구약차원에서 볼 때는 육체가 주역이므로 왕과 백성의 행적으로 본다. 신약에서는 마음(靈)이 주역이므로 그 마음을 본을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인 공관복음 차원이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 젖먹은 어린아이처럼 초등학문 단계이며, 이 공관복음 차원에서 성장하지 못하면 하느님의 말씀인 양의 울타리(성)밖으로 쫓겨 나가 슬피 우는 어린아이 신앙이다. 이런 신앙을 초등학문 아래 있는 차원이다. (마태 22:13) 

히브 6:1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초보적 교리를 넘어서서 성숙한 경지로 나아갑시다,...초등학문을 버리고 라는 뜻이다. 친구로 오신 그리스도가 요한복음 차원으로서 진정 말씀으로 거듭난것은 심령이 거듭났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이 예수님의 삶의 마음으로 변화되고 바꿔지는 것이다. 우리의 육적인 본능이 예수 그리스도의 본능으로 전혀 새롭게 그리스도의 본능으로 창조 된 것을 거듭 났다고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거듭나지 못한 이들은 성경의 모든것들을 보이는 차원, 즉 이 세상 학문으로 해결하고 따지는 것이 다 초등학문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사실은 이 세상에 사는 자체가 죄요, 우리는 전부가 다 영적으로 죄인이다.(디모전 1:15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말은 틀림없는 것이고 누구나 받아 들일 만한 사실입니다. 나는 죄인들 중에서 가장 큰 죄인입니다.) 이 죄인의 죄수복을 벗는 날까지 "예수의 흔적(4단계 신앙차원)"을 입어야 한다 (갈 6:17 앞으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내 몸에는 예수의 낙인이 찍혀 있습니다.)

그러면 창세기 1장에 7일을 7000년으로 확대한 성서전체의 줄거리를 알아보자.

1천년 대에는 에녹이 나와서 승천하였고,

2천년 대에 노아가 나와서 방주를 지었고,

3천년 대에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심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으로 시작된 즉 개혁된 것이고,​

4천년 대에 예수께서 탄생하심으로 말미암아 복음의 시작이 되었고,​

5천년 대에는 로마 천주교회가 형성되므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죽이는 암흑시대에 청교도 나그네들이 있었고,

​6천년 대에는 남은 무리의 나그네회가 나오게 된 것이다.

다시 한번 창세기 1장과 연결해 보면 첫째 날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으므로서 어두움과 빛이 나뉘게 된 것 같이 에녹이 처음으로 승천하므로 첫째 빛이 된 것이고,  이튼날 윗 물과 아래 물을 나누신 것처럼 2000년대 누가 나왔는가?

여기서 잠간 말해둘 것은 2000년대 하면 이 세상에서는 2001년부터 300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을 2000년대 라고 하는데 여기 말하는 2000년대는 1001부터 2000년 안에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것이다. 노아가 나와서 방주를 만들므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은 방주를 통해서 구원을 얻고 순종치 아니한 사람들은 홍수로 멸망을 당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윗 물과 아래 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세째 날은 땅은 드러난 것같이 모든 우상 숭배하는 속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심으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처음으로 드러나게 되고, 4000년 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그리스도 큰 광명이고 예수는 작은 광명이다.그래서 복음과 율법은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이 되는 것이다. 5000년 대에는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을 통해서 교권적 바벨론에서 나온 나그네들과 기복교권이 나타나서 각기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다. 나그네들은 공중에 날아다니는 새로 상징되는 것이고, 모든 기복교권에 속한 교인들은 물 속에 사는 물고기로 상징되는 것이다. 

6000년대에는 사람과 짐승을 만드셨는데 사람은 영생복음이 나오므로 말미암아 남은 무리 곧 나그네회를 상징하는 것이고 짐승은 교권을 통해서 기복으로 타락해 가는 교인들을 상징하는 것이다. 7000년대에는 많은 나그네들이 하늘본향에 돌아가서 안식하게 된다.이렇게 볼 때 창세기 1장은 성경전체를 축소한 것이다. 

성경을 또 셋으로 나눈다면 창세기가 2000년, 이스라엘 역사가 2000년, 복음의 역사가 2000년으로 모두 6000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1장을 또 셋으로 나눈다면 아담시대와 노아시대와 아브라함이 시대로 나눌 수 있다.그리고 첫째 빛을 통해서 3일 동안에 혼돈 된 땅을 모세로 하여금 정돈하고 큰 광명인 그리스도와 작은 광명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새 생명이 나오게 되고 그 다음 안식하신 것이므로 셋으로 나눌 수 있다. 

그 다음에 창세기 1장에는 첫째 빛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시고 바다와 육지를 나누시고 윗 물과 아래 물을 나누셨는데 이것들은 다 무생물이고 둘째로 오는 큰 광명과 작은 광명으로 나무와 짐승과 사람을 만드셨는데 이것들은 다 생물이다. 이와 같이 둘로 나누어 봐도 창세기는 성서전체의 축소판이 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첫째 날은 빛과 어두움을 나누게 하시므로 빛은 하늘나라에 갈 자를 상징하고 어두움은 지옥에 떨어질 자를 상징하는 것이다. (밤에 찾아오는 니고데모...) 그 처럼 모든 우주만물로 천국 백성이 될 자와 지옥에 처질자를 상징하는 것이므로 성서전체가 상대성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둘째 날은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 물로 나누게 하시고  셋째 날은 뭍과 바다로 나누게 하시고 넷째 날은 낮과 밤으로 나누게 하시고  다섯째 날은 물(말씀)에서 번성하는 모든 생물과 공중에 나는 새로 나누게 하시고 여섯째 날은 사람과 짐승으로 나누게 하셨다. [물은 성경에서 말씀을 뜻하고 있다]  그런 원리를 음과 양의 이치라고도 하고 배필이라고도 한다.

양지와 음지, 사람과 짐승, 영과 육, 남자와 여자, 복음과 율법, 진리와 교리, 생명과 사망, 참과 거짓, 진짜와 가짜, 위와 아래, 우편과 좌편, 멜기세덱의 반차와 레위의 반차, 나그네 정신과 기복정신으로 상대성의 원리로 나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목적은 사람의 후손과 짐승의 후손을 다른 말로하면 여자의 후손과 뱀이 후손을 가려내시기 위해서다.그래서 창조의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창조하셨다.

● 창 1장 3-5절은 첫째 날인데 빛과 어두움을 나누시고 낮과 밤을 나누시고

● 창 1장 6-8절은 둘째 날 윗 물과 아래 물을 나누시고

● 창 1장 9-13절은 셋째 날 땅과 바다를 나누시고

● 창 1장 14-19절은 넷째 날 큰 광명과 작은 광명을 있게 하시고

● 창 1장 20-23절은 다섯째 날 공중의 새와 물 속에 고기를 있게 하시고

● 창 1장 24-31절은 여섯째 날 사람과 짐승을 나누시고

● 창 2장 1-3절은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창조를 마치시고 안식에 들어 가셨다.

이런 근거를 통해서 볼 때 창세기 1장은 성서 전체를 축소한 것이고 또한 창세기를 축소한 것이 확실하다는 증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다.성경 전체에 창세기 1장의 용어가 쓰여지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 1장을 특별히 잘 이해하여야 성경전체의 맥이 잡히는 것이다.

그런데 1장 26절에 하느님께서는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 그래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 또 집짐승과 모든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셨다.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맨 처음에 사람을 육체로 창조하셨다고 하므로서 첫 단추를 잘 못 꿰놓았으니까 성서 전체를 엉뚱하게 해석하는 것이다.그리고 창세기 맨 첫장 첫머리에 "태초"라는 말이 원어 성경에 "레쉬트" 라고한 이분이 바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태 11장 27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저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밖에는 아들을 아는 이가 없고 아들과 또 그가 아버지를 계시하려고 택한 사람들밖에는 아버지를 아는 이가 없습니다.'  하셨다. 하느님을 모르는데 하느님의 말씀을 알 수 있겠는가?

말씀을 주신 후에는 말씀이 곧 하느이시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지 성경을 통해서 지시를 내려시는 것이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인 씨나락을 귀신학자(神學者)들이 다 까먹고 자기들이 다 까 먹고 자기들이 만든 각종 종교의 교리와 의식제도로 성경을 혼돈시켜 놓았기 때문에 진리의 말씀이 공허하고 흑암이 깊은 위에 있는 것이다.

그런 귀신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와 교리는 하느님과 관계가 없기 때문에 성경을 아무리 읽어보아도 문자적인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말로만 해석할 뿐 문자 속에 함축돼 있는 하느님의 뜻은 아무리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아무리 보아도 알지 못하게 감추어 놓으신 것이다. (마태13:11-15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는 하늘 나라의 신비를 알 수 있는 특권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받지 못하였다.  가진 사람은 더 받아 넉넉하게 되겠지만 못 가진 사람은 그 가진 것 마저 빼앗길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이사야가 일찌기, '너희는 듣고 또 들어도 알아 듣지 못하고, 보고 또 보아도 알아 보지 못하리라.  이 백성이 마음의 문을 닫고 귀를 막고 눈을 감은 탓이니, 그렇지만 않다면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 서서 마침내 나한테 온전하게 고침을 받으리라' 고 말하지 않았더냐? )​

​오직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는 족속들에 한해서만 하느님께서 감추어 놓으신 영적 뜻을 알아보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4단계의 차원적인 심령의 눈과 귀를 열어 주시는 것이다.하느님의 음성 듣기를 원한다면 내 마음을 점령하고 있는 육의 본능이 사라지고 텅비어 있는 무아경지(無我境地)의 심령으로 첫째 마음이 정돈돼야 하고 그 마음의 문을 하느님께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세상사로 걱정을 하거나 불안하거나 잡념으로 산만한 마음은 하느님과 차단이 되기 때문에 그런 마음속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고 하느님과 차단이 되기 때문에 그런 마음 속에는 성령이 임하지 않고 하느님의 음성이 들려오지 않으므로 묵상을 하는 목적은 세상을 잊고 마음을 비우고 마음을 정돈한 그런 심령으로 ​무아경지에 들어가기 위해서 묵상을 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세상 생각을 잠재우기 위해서하는 것이 묵상(默想)이므로 잠잘묵(默)자와 생각상(想)자를 써서 묵상이라고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예배와 기도는 묵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오늘날 각종 종교인들이 입으로 소리내서 기도하고 의식으로 예배하는 것은 그들의 하느님에게 하는 것이지 참 하느님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다.

하느님은 육체를 가지신 분이 아니고 영이시므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라고 하셨다. (요4:24 하느님은 영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예배하는 사람들은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드려야 한다.' )그러니까 사람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중심(속마음)을 보시는 하느님께 소리내서 찬송하고 기도하는 그런 의식(義式)에 인박힌 자를 가리켜서 술 취한자 또는 술에 인박힌 자라고 하는 것이다.

구약의 율법은 육체에 상관된 계명이기 때문에 율법차원에서 말하는 술은 문자적인 술이고, 신약은 심령에 상관된 계명이기 때문에 술은 육적인 종교 의식이나 교리 같은 것을 성경에서는 술로 비유한 것이다.그런 의식이나 기복에 인박힌 것을 가리켜서 하느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고한 것이고 그런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라고 한 것이다.

(계시 18:2-6  2그는 힘찬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무너졌다! 대바빌론이 무너졌다! 바빌론은 악마들의 거처가 되고 더러운 악령들의 소굴이 되었으며 더럽고 미움받는 온갖 새들의 집이 되었다. 3 모든 백성이 그 여자의 음행으로 말미암은 분노의 포도주를 마셨고 세상의 왕들이 그 여자와 놀아났으며 세상의 상인들이 그 여자의 사치 바람에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4 또 하늘로부터 이와 같은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내 백성아, 그 여자를 버리고 나오너라. 너희는 그 여자의 죄에 휩쓸리지 말고 그 여자가 당하는 재난을 당하지 않도록 하여라. 5 그 여자의 죄는 하늘에까지 사무쳤고 하느님께서도 그 여자의 사악한 짓들을 기억하신다. 6 그 여자한테서 받은 만큼 돌려 주고 그 여자의 행위를 갑절로 갚아 주어라. 그 여자가 부어 준 잔을 갑절로 되돌려 주어라.) 

온 지상에 확산돼 있는 기복 교권들은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고 만국이라고 하는데

그들이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고 진노하시는 종교의식을 자행하므로 말미암아 육적으로는 부흥 하였지만 영적 신앙은 다 무너진 것이다.그래서 그 바벨 교회들이 어떻게 되였다고 하였는가 하면 귀신의 처소가 되고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이 되고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가 모이는 곳이 되였다고 하였다.

성경에서 귀신은 광명의 천사를 가장한 사단의 일꾼을 귀신이라고 하는데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인가​ 하면 자칭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목자(牧者)라고 하고 자기에게는 목사(牧師)라고 하는 권위주의 군림하는 랍비라 칭함을 받는 목사들이다.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함이라고 하셨는데 이분들은 군림하는 군왕과 같은 존재다.

 

 

[출처] 각급 차원의 신앙창조 7천년을 7일로 축소해서 예시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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