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2 (7-12)안병철 신부(가톨릭 대학 교수)

2015. 9. 17. 오전 9: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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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강해 2 (7-12)안병철 신부(가톨릭 대학 교수)



5. 예고된 경배 (24,12-31장)
이 부분을 읽는데 있어서 독자들은 상당한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전체를 상세하게 살펴보지는 않고 이 부분에서 의미를 띄고 있는 몇가지 내용들을 찾아내는데 주력해 볼 것이다.
이 텍스트는 “들판”에 대한 언급 내용을 그 테두리로 삼고 있다(24,12과 31,18). 하느님께서는 그 위에다 “율법과 계명”을 적으신다.
24,12-18에서는 16,10에서처럼 영광과 구름이 표상하고 있는 분위기에 대한 묘사가 장엄하게 소개되고 있다. 백성은 중재자가 들어오는 인상깊은 분위기를 멀리서 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야훼, 그분만이 말씀하신다. 말씀하시면서 그분은 긴 담화문의 형태로(25,1-30) 그리고 매우 짧은 6번의 개입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주 상세하게 지시하신다.
이 전체의 내용은 8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살펴보면 :
1) 백성의 기부 (25,1-7)
야훼께서 요구하신 성소(聖所)는 모든 이의 작품이 될 것이다. 백성 전체가 재료를 제공하는 관대함을 보이게 될 것이다.
2) 성소(聖所), 그 모형과 가구(25,8-27,21)
서론인 25,8-9은 기부의 목적을 우선 밝히고 있다 : 하느님께 성소를 지어 바치는 일, 이런 사실로부터 건축의 모든 세부적 내용을 규정하시는 분이 그분이시다.
3) 사제들 (28,1-29. 37)
4) 날마다 드리는 번제 (29,38-46)
매일 아침과 저녁에 의식을 거행하는 기회에 축성과 신적 현존과 출애굽의 기억을 상기시키는(29,45-46) 아름다운 형태의 내용이 표출된다.
5) 보편적인 요소들 (30,1-10. 17-38)
6) 성소(聖所)를 위한 세금 (30,11-16)
각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 앞에서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기부 역시 모든 이에게 있어서 동일하다. 각자가 가진 것은 모두다 하느님께 속한다는 사상이 내재되어 있다.
7) 기술자들 (31,1-11)
유다지파와 단지파 출신의 기술자들은 “지혜”를 주시는 하느님의 영(靈)으로 충만된 자들인데 지혜란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당신 스스로 결정하신 것을 실현시키도록 그들에게 선물을 베푸실 것이다. 바로 하느님이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이시다.
8) 안식일 법 (31,12-17)

6. 지연된 경배 (32-34장)
아름다운 성소를 건축하려는 계획은 일련의 이야기들로 갑작스럽게 중단된다 : 모세가 하느님으로부터 명령을 받는 동안 백성은 봉기를 일으킨다. 기대하던 해방이 적의 반대에 의해서 실현된 것이 없었다 : 이번에는 백성 스스로가 하느님의 계획을 왜곡시키려 하고 있다. 이렇게해서 이미 앞서 요약한 바 있는 반란, 처벌 그리고 용서에 대한 주제가 불쑥 나타나게 된다. 3개의 장(章)은 극단적인 두 개의 내용 대조를 통해 더욱 부각되게 된다 :
- 32,1에서 백성은 모세가 지체하고 돌아오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다.
 그결과 백성은 그의 부재를 확인하고 그로부터 멀어져간다.
- 34,35에서 백성은 모세의 얼굴이 YHWH와의 만남에서 빛나고 있음을 본다.
 이번에는 초자연적인 선교의 광채 속에서 지도자로서의 그의 현존을 맞아들인다.

이 부분을 넷으로 나눌 수 있다 :
- 금송아지를 중심으로 한 백성의 반기 (32장)
- 모세의 야훼와의 대화 (33,1-34,9)
- 계약의 말씀들 (34,10-28)
- 모세의 영광 (34,29-35)

1) 금 송아지
이 부분의 주제는 분명하다 : 모세가 부재중일 때, 백성은 모세의 분노와 중재 그리고 용서를 야기시킬 우상을 만든다.

① 잘못
32,1-6은 어느정도 명확한 개막 이야기를 소개한다 : 다시 모세를 볼 수 없다는데 대해 불안을 느낀 백성들은 아론에게 백성이 가지고 있던 보석들을 모아 송아지 상을 만들게 하도록 결정을 내린다.
그런데 이 송아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텍스트는 여기서 이율 배반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 텍스트는 우선 다신론적 표현을 쓴다 (우리에게 신들을 만들어 주시오 : 1절, 4절). 그리고 나서 YHWH를 위한 축제가 문제시되고 있다(5절). 이 이야기의 원초적 의미는 십계명에서 명한 금지 규정을 준수하지 않고 불법적인 방식으로 YHWH께 돌려드리는 의식인 것 같다.
송아지(또는 황소)는 신성(神性)을 받쳐주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었다. 그러나 야훼 하느님은 누구도 자신에 대해 손을 얹을 수 없는, 그런 분으로 남아계시는 분이시다. 하느님에 대한 개념 설정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② 모세의 중재
모세는 야훼와(32,8) 여호수아(32,17)에 의해 계속적으로 경고를 받고 있다. 그는 두 번에 걸쳐 야훼께 애원한다(11-13과 31-32). 그리고 상이한 두 개의 처벌을 내린다(19-20과 25-28).
이 모든 것은 잘 정돈된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A. 야훼와 모세      A‘. 모세와 야훼
  간구 (7-14)          간구 (30-35)
B. 모세와 백성      B'. 모세와 백성
  처벌 (15-20)         처벌 (25-29)
        C. 모세와 아론
각 부분의 상세한 내용은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묵상해 보자. 거기서 하느님의 충실성이야말로 용서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2) 하느님 앞에서의 모세 (33,7-11. 18-23; 34,1-8)
여기서는 무엇보다도 모세가 산위에서 받은 것과는 다른 “만남의 장막”이 문제시 되고 있다(참조. 27,21 : 만남의 장막이라는 말이 동일하게 쓰이기는 하나 다르다). 여기서의 장막은 모세가 진지 밖에 칠 수 있는 가벼운 것이다. 이 장막은 번제의 장소가 아니라 말씀과 내적인 만남의 장소이다. 여러 인물들이 문제시 되고 있다 : 무엇보다 모세는 어떤 사람이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야훼를 마주보고 말하고 있다. 모세가 주님을 볼 것인가?(참조 33,20) 확실치 않으나 그가 받은 말씀은 친숙하고 간단하다.
그 다음으로 여호수아가 나온다. 17,9-13에서 군대의 책임자였던 그가 여기서는 거룩한 장소에서 영원한 현존을 보장케 해주는, 모세를 도와주는 젊은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야훼를 찾는”사람들과 장막에 갈수 있는 자들이 있다. 끝으로 신비스러운 구름 기둥을 통해 자신을 표명하시는 주님과 모세와의 만남을 서서 구불린 채로 멀리서 지켜보는 백성이 있다.
다음 이어지는 장면은 “당신 영광을 보게 해 주십시오”(33,18)라는 모세의 청으로 시작된다. 그같은 청원은 장막안에서의 관습적인 만남들이 무엇인가 불완전했었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응답은 하느님의 “얼굴”을 보는 것이 배제되고 있지만 거룩한 이름의 선포를 동반하는 내용을 예고한다(33,19-23). 이것은 성서 여러군데에서 되풀이 되고 있는, 야훼의 사랑과 죄에 대한 정의로운 댓가(참조. 민수 14,18; 요엘 2,13; 요나 4,2)에 대한 형태와 함께 34,5-7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것은 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께 대한 가장 심오하고도 가장 올바른 “개념”일 수가 있다.

3) 계약의 말씀들
34,10-28에서는 마지막 구절을 제외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야훼 혼자 말씀하신다. 야훼의 선언은 “계약을 체결하다”라는 형태를 그 테두리로 하고 있다(34,10과 34,27). 34,10에서 상대자는 지적이 되고 있지 않으며 행동은 일방적으로 나타나고 놀라운 일에 대한 예고를 통해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어느 민족사이에서도 이루어진 적이 없는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는 내용이 계발되고 있다.
34,37은 “너와 이스라엘과 함께”라고 말하며 계약의 기초로써 상대자의 응답을 내포하고 있는 “말씀들”에 조회하고 있다. 이 계약은 갱신, 쇄신으로 소개되고 있지않다: 이 계약은 다른 원천에서 온 것임에 틀림없다.
이렇나 테두리 내부에 계명들이 자리하게 된다 : “지켜라...지켜라”이 계명들은 10절에서의 놀라운일이 구현되는 것을 보게 될, 언약된 땅에 뿌리내리는 것에 관계된다. 야훼만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동맹이다. 다른 민족들과 관계를 맺는 것은 그들의 신(神)들과의 타협인 것이다.
34,18-26에서는 다양한 계명들이 순서없이 연결되고 있다 : 축제들, 안식일, 장자와 맏배의 봉헌. 이 모든 것은 야훼의 종주권에 대한 인식에 연계된다.

4) 모세의 영광
자기 백성에게로 모세가 되돌아 오고 말씀을 전하는데 대한 간략한 이 이야기는 경이함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34,29-35) : 중재자의 얼굴의 피부가 빛난다(29.30.35). 사실상 모세를 변하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빛나는 영광이며 거기서부터 그의 주변인물의 종교적 두려움이 유발된다(34,30).
34,33-35은 그런 현상이 항구하게 지속되고 있음을 알려준다.



7. 실현된 경배 (35-40장)
이제 성소의 건축은 가능해졌다. 이 텍스트는 세 단계로 이루어진다.
① 작업준비(35,1-36,7)
다섯 번째 부분의 끝 부분(31,12-17)과 관련을 맺는 안식일에 대해 장엄하게 상기시킨 다음(35,1-3), 모세는 성소를 짓는 위대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재료들을 모아오라고 공동체를 초대한다. 공동체의 응답은 관대하게 나타난다. 분위기는 모두가 일치된 모습의 열정적인 분위기다.

② 작업(36,8-39.31)
기술자들은 끊임없이 “지혜”라는 단어로 특징있게 묘사되고 있는데, 계획이 성취되기 시작한다.

③ 공사가 끝나고 작업을 성화시킴 (39,32-40,38)
 - 모세에게 작업을 소개함 (39,32-43)
 - 야훼께 성막을 세워바침 (40,1-33)
 - 영광의 현현 (40,34-38)


Ⅱ. 출애굽기의 신학적 내용
1. 에집트로부터의 탈출 : 백성 공동체의 체험
출애굽기에서의 가장 중요한 테마는 이스라엘 백성이 에집트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께서 그 백성을 이끌어 내셨다는 사실이다.
출애 3,7-8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고통당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구해내시려는 생각을 갖고 계셨음을 알 수 있다. 사실상 그분은 당신의 그러한 계획을 실행에 옮기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여 야훼 하느님을 “이스라엘을 에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라고 응답한다.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파라오의 압정과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생명을 얻게 해 주셨기 때문에 그들은 사실상 온전한 자유를 얻게 된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쟁취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드러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출애굽의 실제적인 모습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의 쟁취라는 사실 속에는 하느님에 대한 민족 전체의 공동체적인 체험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출애굽기에서 보면 모세는 수동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민족의 해방을 위해 파라오와 대적하고 싸운 것은 모세가 아니라 바로 모세를 파견하신 하느님 자신인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이처럼 출애굽의 놀라운 사건을 통해서 민족이 걸어가야 할 삶의 길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제시해 주셨기 때문에 사실상 이스라엘이 민족으로서 설정되는 것이 바로 출애굽에서부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에집트로부터 해방을 체험하게 된 그 순간이 바로 민족으로서의 실존을 시작하는 기점이 되고 출발점이 되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 민족이 언약의 땅에서 살아갈 때에도 에집트에서 나올 때의 그 정신으로 살아야만 민족으로서의 실존을 살아갈 수 있지 그렇지 아니하면 민족으로서의 삶이 근본적으로 깨질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고 있다.

2. 야훼라는 이름의 신학적 의미
출애 3,14에서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가르쳐주셨는데 그 이름이 바로 야훼이다. 이 이름의 어원은 “있다”라는 동사에서 나오는 것인데 그것의 신학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
첫째, 너희들이 나를 믿을 수 있도록 그런 모습으로 내가 있겠다라는 신뢰의 가능성이 담겨져 있는 그런 의미,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신뢰할 수 있는 그런 분 이시다.
둘째, 하느님은 인간의 원의나 계획에 따라 좌지우지 되는 분이 아니라 인간에게 전권을 행사하는 분이시다. 즉 하느님이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이스라엘은 신뢰를 하느님께 두어야 한다는 의미.
셋째, 다른 신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하느님의 절대성의 의미.
결과적으로 야훼라는 이름은 “나는 구원자로서 자신을 드러내는 존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야훼는 계속해서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드러내시는 분이시다.
그분이 우리 안에 구원을 목적으로 내려오시고 지금 우리에게는 당신을 드러내는 말씀으로 오시는 것이다.

3. 시나이에서의 계약
이에 대해서는 광주 카톨릭 대학에서 번역한 “성서 신학 사전”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발췌하여 소개한다.
                                    계  약
하느님께서는, 모든 인간이 당신과 함께 친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계약의 주제가 표현하는 것은 바로 이 사상인데, 이는 구원의 교리의 근본이다. 이 계약이 구약에서는 모든 종교적 사고를 지배하고 있지만, 시대의 경과에 따라 더욱더 그 뜻이 깊어진다. 신약 시대에 이르러, 계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전체를 내포하기 때문에 유례없는 충만한 뜻을 지니게 된다.

[ 구 약 ]
“계약”(히브리어, berith)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표시하는 용어로 사용되기 전에, 인간 상호 간의 사회적 또한 법률적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였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쌍방의 권리와 의무를 전제로 하는 약속이나 협정을 통하여 상호 연결된다. 첫째로, 평등한 입장에 있는 집단들 혹은 개인들이 서로 돕기를 희망하는 협정의 예로는, 평화의 계약(창세 14,13. 21-23 ; 21,22-24; 26,28; 31,44-46; 1열왕 5,26; 15,19), 형제 계약(아모 1,9), 우호 협약(1사무 23,18), 결혼(말라 2,14) 등이 있다.
다음으로, 강자가 약자의 보호를 약속하고 약자가 강자에게 봉사를 서약하는 불평등한 입장에서 맺는 협정의 예로는, 고대 동방세계에서 널리 실행하던 예속 협정이 있고 성서에도 몇가지 예가 나온다(여호 9,11-15; 1사무 11,1; 2사무 3,12-14). 이때는 약자의 입장에 있는 자가 계약을 체결하자고 청원할 수도 있었으나, 보통은 강자가 자기 임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그 조건도 규정하고 있다(참조. 에제 17,13-14). 계약은 관습으로 인정되는 의식에 따라서 체결되었다. 당사자들은 맹세로써 서로 약속한다. 그리고 동물을 두 토막으로 잘라서 계약을 파기하는 자를 저주하는 말을 하면서, 그 사이를 통과하도록 되어 있다(참조. 예레 34,18). 계약이 체결되면, 기념하는 표지를 세웠는데 돌을 세워두거나 나무를 심거나 하였고 이것은 계약의 증거가 된다(창세 21,33; 31,48-50). 이것이 이스라엘의 기초적 체험이며, 이 체험에서 출발하여 하느님과의 관계를 표현한다.

1) 시나이의 계약 계약이라는 주제는 구약에 있어 후기에 도입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전 종교 사상의 출발점이며, 자연계의 신들을 예배의 대상으로 하는 인근제국의 종교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해방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나이 산에서 야훼와 계약을 맺었고, 이로써 야훼께 대한 숭배가 그들의 국가 종교가 되었다. 분명히 이 계약은 평등한 자들 간의 협정이 아니고, 예속적 협정과 비슷하다. 야훼께서는 최고의 자유를 누리면서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려고 작정하시고, 그 조건들도 정해주신다. 그러나 이 계약과 인간 상호간의 계약의 비교를 더 이상 진전시켜서는 안된다. 그 이유는 시나이 산의 계약의 당사자는 하느님 자신이므로, 이 계약은 전혀 다른 특별한 질서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구원 계획의 본질적 측면을 계시하고 있다.

① 하느님의 계획 안의 계약
야훼께서는 불타는 가시덤불에서 당신을 현시하신 때부터, 당신의 이름과 이스라엘에 대한 계획을 한꺼번에 모세에게 계시하셨다. 그 계획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이주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에집트에서 구출하는 것이다(출애 3,7-10. 16-17).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야훼의 백성”이요(출애 3,10). 야훼께서는 그 조상에게 약속하신 땅을 이 백성에게 주시고자 하셨기 때문이다(참조. 창세 12,7; 13,15). 이것은 벌써 이스라엘이 선택의 대상이며 약속의 보관자라는 것을 하느님 편에서 전제하고 계신다. 그리고 에집트 탈출은 호렙산의 계시를 확인하게 된다. 즉 하느님께서는 실제로 이 백성을 구출함으로써 당신이 그들의 주인이라는 것과 당신의 뜻을 그들에게 요구하실 수 있다는 것을 드러내신다. 그 때문에 구출된 백성은 신앙으로써 이 사건에 대답한다(출애 14,31). 이점을 확인한 다음에 비로소 하느님께서는 그 계약의 계획을 다음과 같이 계시하신다. “이제 너희가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계약을 지킨다면, 너희야말로 뭇민족 가운데서 내 것이 되리라. 온 세계가 나의 것이 아니냐? 너희야말로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내 나라, 거룩한 내 백성이 되리라”(출애 19,5-6). 이 말씀은 하느님의 선택이 무상으로 이루어졌음을 뚜렷이 나타낸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신명 9,4-6), 다만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리고 그들의 조상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지키시려고(신명 7,6-8) 그들을 선택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이교 백성들과 분리시키시어 그들만을 당신 백성으로 유보하신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예배로써 하느님을 섬기고 하느님의 왕국이 될 것이다. 그 대신에 야훼께서는 그들에게 도움과 보호를 보장하신다. 그분은 이미 그들을 에집트 탈출 때 “독수리 날개에 태워” 그분에게로 데려오셨다(출애 19,4). 그리고 미래에도 이와같이 보호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야훼의 천사가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약속된 땅을 쉽게 정복하도록 도울것이고, 하느님께서는 이 약속된 땅에서 그들에게 갖가지 축복을 충만히 주실 것이고, 생명과 평화를 보장하실 것이다(출애 23,20-33). 이와같이 시나이의 계약은 하느님의 계획중에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미래 역사의 진행은 오로지 이 사건을 기점으로 한다. 그러나 미래 역사의 상세한 점은 최초부터 완전히 계시된 것은 아니다.

② 계약 조항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시고, 여러 가지 약속들을 하시면서, 그들이 지켜야 할 각종 조건도 부과하신다. 모세오경에는 여러 가지 전승이 뒤섞여 있으나, 그중에는 계약의 조항도 약간 포함되어 있고 이것이 협정의 형태를 취하여 율법을 구성한다. 그 중에 첫째로, 야훼만을 숭배하라는 명령과 우상 숭배의 금지를 들 수 있다(출애 20,3-5; 신명 5,7-9). 여기서 직접 다라오는 결과로는 이교 백성들과 타협하거나 계약을 체결하여서는 안된다(참조. 출애 23,24; 34,12-16)는 것이다.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종교적 생활 전체가 각종 계명들로써 그물처럼 짜여져 있는 당신의 뜻을 남김없이 수락하기를 요구하고 계신다. 모세는 야훼께서 그들에게 분부하신 이 말씀을 모두 그들에게 선포하셨다. 그러자 백성들을 일제히 “야훼께서 말씀하신 이것은 모두 그대로 실천하겠습니다.”하고 대답하였다(출애 19,7-8). 이 장엄한 약속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하는 것이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좌우하는 조건이 된다. 따라서 야훼의 백성은 언제나 기로에 서 있다. 만일 순종하면 하느님의 축복이 보증되나, 반대로 약속을 거부하면 자신들 스스로 저주에 몸을 던지게 된다(참조. 출애 23,20-33; 신명 28장; 레위 26장).

③ 계약의 체결
출애굽기는 계약 체결에 관한 두가지 의식을 전해준다. 첫째,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함께 야훼를 바라보면서 그 면전에서 거룩한 식사를 한다(출애 24,1-2. 9-11). 둘째, 이것은 남북조 시대에 북쪽 왕국의 성소에서 거행되던 전례 전승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되는데, 모세가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기둥을 세워 제단을 만들고 제물을 바친다. 그 피의 반은 제단에 뿌리고, 반은 백성에게 뿌려, 야훼와 이스라엘이 굳게 결속되어 있다는 것을 표시하고, 그리고 백성은 계약의 조항을 지키겠다고 성대하게 약속한다(출애 24,3-8). 이 의식에서는 계약의 피가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한번 약정이 이루어지면 여러 가지 물적 증거를 남겨, 계약을 영구히 기념하고 이스라엘 최초에 맺은 언약을 후세에 증거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기념물중에 먼저, “결약의 궤”가 있다. 이것은 율법의 판이 들어있는 궤짝으로서, 계약을 기념하면서 동시에 이스라엘 가운데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표징이다(출애 25,10-22; 민수 10,33-36). 다음은 “만남의 장막”이다. 이 장막은, 결약의 궤를 안치하고 미래의 성전의 모습을 표시하며 이스라엘 백성과 야훼의 만남의 장소이다(출애 33,7-11). 이리하여 “결약의 궤”와 “만남의 장막”이 있는 곳이 선택된 백성의 예배 중심지가 되고 열두 지파의 연맹은 다른 예배 장소들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고, 이곳에서 야훼께 공식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예배는 시나이의 계약이라는 그들의 종교적 민족적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다. 그들의 예절이 타 민족에서 빌어온 요소가 많이 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의미를 갖는 것은 이와같은 관련성 때문이다. 이와같이 율법 전체도 그 기본 조항이 진술되어 있는 시나이의 계약과 연관시킴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갖게된다.

④ 시나이 계약의 의미와 한계
시나이의 계약은 구원 계획의 본질적 측면을 결정적 양상으로 계시하였다. 즉 하느님께서는 인간들이 당신에게 봉사하는 종교적 공동체를 이루어 율법으로써 통치되고 당신 약속의 보관자가 되게하여 당신과 결속시키기를 원하신다. 이 하느님의 계획은 신약으로 충만히 성취될 것이다. 시나이 산에서는 그 실현이 시작되었으나 여러 가지 관점에서 아직 모호하고 불완전한 것으로 남아있다. 비록 이 계약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선물이지만, 그 계약 체결의 양상은 구원의 계획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운명과 결부시키는 것처럼 보이며, 또한 구원을 인간의 성실함에 대한 보수처럼 나타나게 할 위험을 안고 있다. 그뿐 아니라 이 계약이 한 민족에게 제한된 것은, 성서에 분명히 긍정되어 있는 하느님 계획의 보편성과 잘 부합하지 않는다. 그리고 하느님의 약속이 이스라엘의 지상적 행복같은 현세적인 것을 대상으로 한 것도 하느님의 나라를 먼저 이스라엘 안에 건설하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전 세계에 건설하려는 계약의 종교적 목적을 은폐시킬 위험이 있다. 그러나 시나이산의 계약은, 이와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생활 전반기 이후 계시의 발전을 지배하게 된다.

2)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의 계약
① 계약의 갱신
계약이 이스라엘의 예배 의식을 통하여 해마다 갱신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 그러나 신명기에는 전례에 관한 단편들이 있는데, 여기는 의식적인 저주의 선언(신명 27,2-26)과 율법의 장엄한 낭독(신명 31,9-13.24-27; 32,45-47)등으로 그와 같은 종류의 갱신을 하였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율법의 장엄한 낭독은 칠년에 한번씩 하도록 규정되어 있고(신명 31,10), 옛날부터 실시하였는지는 확증되지 않는다. 실제로 계약의 갱신은, 이스라엘이 역사의 중대한 기로에 봉착하였을 때 있었다는 것을 쉽게 입증할 수 있다. 여호수아는 세겜에서 계약을 갱신하고 백성은 야훼께 대한 서약을 새롭게 하였다(여호 8,30-35; 24,1-28).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과 협정을 맺은 다음(2사무 5,3) 자기와 자기 왕조에 대해 하느님과 계약을 맺었으나(시편 89,4-5.20-38; 참조. 2사무 7,8-16; 23,5), 이 계약에는 시나이의 계약을 충실히 준수할 것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시편 89,31-33; 132,12; 참조. 2사무 7,14). 성전봉헌식에서 솔로몬이 읊은 기도와 축복은 다윗의 계약과 시나이 계약을 동시에 관련지어 주는데, 성전은 이 두 계약의 기념물이다(1열왕 8,14-29. 52-61). 같은 갱신은 요아스 시대에도 있었고(2열왕 11,17), 특히 신명기의 의식을 따른 요시야의 갱신은 유명하다(2열왕 23,1-3; 참조. 24,3-8). 에즈라에 의한 율법의 장엄한 낭독도 비슷한 상황을 제시한다(느혜 8장). 이와같이 계약 사상은 종교적 쇄신이 있을 때마다 그 토대를 이루는 지침이 된다.

② 예언자의 반성
예언자들의 메시지도 끊임없이 계약에 관하여 언급한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불충실을 고발하고 죄지은 백성을 위협하는 재앙을 선포하고 있으나, 그것은 시나이의 계약과 이 계약에 내포되는 요구와 저주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언자들은, 계약이 당시 사람들의 마음안에 생생하게 살아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옛 전승에는 다만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던 새로운 관점들을 명백하게 하엿다. 계약은 처음에는 야훼와 그의 백성과의 협정이라는 법적 측면을 강조하면서 설명되고 있었다. 이것에 대하여 예언자들은 하느님과 그 백성의 상호 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인간 체험 중에서 다른 비유를 찾으면서 감정적 요소를 가미하였다. 이스라엘은 양의 무리이며, 야훼는 목자이다. 이스라엘은 포도나무요, 야훼는 포도원 주인이다. 이스라엘은 신부요, 야훼는 신랑이다. 이러한 비유 특히 신랑과 신부의 비유는 시나이 계약이 사랑을 토대로한 관계임을 제시해 준다(참조. 에제 16,6-14). 즉 하느님께서는 무조건으로 먼저 백성을 사랑하시고, 백성에게 순종으로써 나타내는 사랑의 응답을 호소하신다. 신명기에 나타나는 영성은 이러한 깊은 체험의 열매를 따 모은 것이다. 그곳에는 계약의 요구, 약속, 경고가 끊임없이 상기되고 있으나, 그것은 이스라엘에게 사랑을 기대하시는(신명 6,5; 10,12-13; 11,1) 하느님의 사랑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다(신명 4,37; 7,8; 10,15). 이와같은 배경에서 “너희는 나의 백성이며,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다”라는 계약의 근본사상을 나타내는 표현이 나온다. 물론 여기서도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사랑은 순종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야 한다. 이 관계에 있어 백성은 하나의 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삶과 죽음 중에 하나의 선택인 것이다(신명 30,15-20). 이것 역시 그들이 맺은 계약의 결과 중의 하나이다.

③ 구세사의 종합
예언자들의 설교와 비슷하게,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회상하는 역사서의 저자들도 역시 계약의 교리를 출발점으로 한다. 이미 야훼스트 전승은 시나이의 계약을, 첫 번째 약속의 전형인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과 연결시킨다(창세 15장). 신명기의 저자들은, 모세 시대부터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역사(여호수아부터 열왕기 후서까지)를 저술하면서 여러 가지 사건들 안에 시나이 계약의 적용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하려는 것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 즉 야훼께서는 자기 약속을 이루셨지만, 백성을 불충실은, 야훼께서 미리 예고한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시지 않을 수 없게 하였다. 이것이 바로 사마리아(2열왕 17,7-23)와 예루살렘(2열왕 23,26-27)의 멸망의 뜻이다. 한편 바빌로니아 유배 중에 제관계 사가들이 천지 창조부터 모세 시대에 이르기까지의 하느님 계획을 서술할 때에도, 하느님의 계약이 그 길잡이가 되어있다. 첫째로 창조 계획의 최초 좌절과 노아 홍수가 있은 후 체결된 아브라함의 계약은, 하느님의 계획을 성조 아브라함의 자손에게만 국한하고 있다(창세 17,1-14). 그리고 에집트에서 겪은 시련 후에 체결된 시나이의 계약은 하느님의 백성을 창설하면서 미래를 준비한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은 시나이의 약조와 대조하면서 자기 역사의 의미를 이해하였다.

3) 새로운 계약을 향해서
① 옛 계약의 파기
예언자들은 시나이의 협정에 함축된 의미를 강조하면서 계약의 교리를 심화시킨 것만이 아니다. 눈을 미래로 향하여 돌리면서 그들은 하느님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그분의 백성의 드라마를 총괄적으로 제시하였다. 이스라엘의 불충실의 결과로(예레 22,9) 옛 계약은 파기되는데(예레 31,32) 그것은 마치 부인의 간음 때문에 실패로 돌아가는 결혼과 같다(호세 2,4; 에제 16,15-43). 이 계약 파기는 하느님의 자의로 된 것이 아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기서 여러 가지 결과를 끌어 내신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그 역사 중에 자기 불충실에 대한 응당한 벌을 받는다. 그들이 당한 예루살렘의 멸망, 유배, 분산 등 민족적 시련의 의미는 이것일 것이다.

② 새로운 계약의 약속
이와같은 사정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 계시하던 계약의 계획은 변치않고 계속된다(예레 31,35-37; 33,20-26). 따라서 마지막 때에 새로운 계약이 있을 것이다. 호세아는 이것을 새로운 약혼의 형태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 계약은 신부에게 사랑, 정의, 충실 및 하느님께 대한 인식을 갖게 할 것이고, 또한 인간과 전 피조물 사이에 평화를 회복시킬 것이다(호세 2,20-24). 예레미아는 그 때에는 하느님의 율법이 인간의 마음에 새겨질 것이므로, 인간의 마음이 변화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적한다(예레 31,33-34; 32,37-41). 에제키엘은 영원한 계약, 평화의 계약을 체결하라고 선포하는데(에제 36,26), 이 계약은 시나이 계약(에제 16,60)과 다윗의 계약(에제 34,23-24)을 갱신할 것이고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키며 하느님의 성령을 부여할 것이다(에제 36,26-27). 이렇게 하여 옛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될 것이다”라고 하신 약속의 계획이 실현될 것이다(예레 31,33; 32,38; 에제 36,38; 37,27).
이사야서의 위로의 메시지에는 이러한 종말론적 계약이 야훼와 새 예루살렘의 혼인잔치의 형태를 취한다(이사 54장). 이 계약은 노아에게 맹세한 계약(이사 54,9-10)과 다위에게 은총을 약속한 계약(이사 55,3)과 같이 확고 부동한 것이다. 이 계약을 맺은 주인공은, 야훼께서 “백성의 계약이요 뭇 백성들의 빛”(이사 42,6; 49,6-8)으로 삼으시는 신비스런 야훼의 종이시다. 이와같이 그 시야가 화려하게 확대되었다. 인간 역사 전체를 지배하는 이 계약의 계획은 세상 마칠 때 그 정점을 맞이할 것이다. 성조 아브라함의 계약, 시나이 산의 계약, 다윗의 계약 등에서 불완전하게 계시된 것이, 이 새로운 계약에서는 마침내 야훼의 종의 중개로, 내적이면서 동시에 보편적인 완전한 모습으로 성취될 것이다. 물론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노정을 계속할 것이다. 그리고 유대인의 제반 제도는, 시나이의 협정을 생각해서 “거룩한 계약(다니 11,28-30)이라는 이름을 간직할 것이다. 그러나 이 역사는 실제로 미래를 향하여, 즉 새로운 계약인 신약을 향하여 있다.

4. 결론
성서의 역사, 다시말해서 구원의 역사는 아브라함과 함께 시작한다. 좀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는 사건에서부터 구원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러나 수세기가 지난 후에야 비로서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사건인 출애굽이 나타난다.
출애굽의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 속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개입하실 것이라는데 대한 보증이요 전형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출애굽은 이미 언급한 것처럼 하느님 백성의 역사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신명 32,5-10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낳으셨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호세 11,1 ; 예레 31,9 ; 이사 63,16 ; 64,7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사랑안에서 부자 관계를 설정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백성에 대한 사랑의 표지로써 출애굽은 그야말로 구원의 보증이었던 것이다. 에집트의 종살이에서 당신 백성을 해방시키신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앗시리아로부터 위협을 당하고 있을 때 다시금 해방의 손길을 펼치실 것이라는 백성의 믿음이 예언자의 입을 통해 선포되고 있다(이사 10,25). 또한 바빌론으로 유배를 떠나야만 했던 고통과 치욕의 순간에도 출애굽의 체험과 신앙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해방의 순간을 희망할 수 있게 해주었으며 예레 16,14-15은 그 점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이렇게 끊임없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해방의 손길이 늘 가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하느님께 대한 충실성보다는 순간순간의 만족을 찾는데 더 열중하게 되었고 이같은 그들의 불충한 모습은 급기야 중재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신 그분 자신이 구원의 현장에 나타나는 육화의 새로운 구원의 시대를 열어 불완전했던 구원의 모습을 완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이처럼 고난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통해 온전하게 구현된 구원의 실재를 살아가는 특권을 받은 신약 백성 공동체에 속한 자들인데 과연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변함없는 충실성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그렇지 않는다면 문제의 근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출처: http://www.godword.or.kr/mai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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