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다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었다.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성전에 들어가려면 성전세를 내야 했는데 반드시 성전에서만 사용하는 세켈이라는 돈으로 봉헌해야 했다. 그래서 시중에서 사용하던 돈을 환전 하는 과정에서 사단이 벌어졌다. 환전상들과 성전사제들이 담합해서 터무니없이 폭리를 취했던 것이다. 번제물로 바치는 소, 양,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도 마찬가지였다. 성전 안에서 파는 것만이 흠결이 없다고 규정해 놓아서 반드시 성전 안에서만 사야했다. 이러한 독과점은 오래전부터 내려온 관행이었고 그들은 하느님과 성전을 팔아서 순례자들에게 바가지를 씌운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그 누구하나 저항하는 사람이 없었다. 성전의 대사제들과 권력의 비호를 받고 있던 사람들에게 대항했다가는 다시는 성전에 들어가지 못할테니 불만이 있어도 대놓고 말하거나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화가 나신 예수님은 큰 채찍을 만들어 환전상들의 탁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을 쫓아내시며 소리치셨다. 그런 모습을 통해서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옳은 길을 가야 한다는 하느님의 정의를 분노로 보여 주신 것이다.
예수님도 이렇게 화를 내신 걸 보면 화를 내는 것이 절대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낸다면 분명히 문제가 있다. 화를 낼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거나 참는 것은 덕이나 사랑이 아니다. 비겁함을 넘어선 죄악이다. 이것은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다음에 또 그런 불의를 저지르도록 방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 주어야 하지만 동시에 분개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가 심각하다고 느끼면 반대의견과 행동을 반드시 해야 한다.
부정과 불의를 저지르면 그가 누구든 상관없이 바른 말을 하고 그러한 행동을 반복하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 그 상대가 절대권력자라해도 할 말은 해야 한다. 그런데 요즘 보면 그렇지 못한 것 같다. 대통령의 눈 밖에 날까봐 겁먹고 충언을 않다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긴다. 그게 반복되면 결론은 대통령과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사권자의 눈 밖에 날까봐 잘못된 일들을 대충 넘어가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충신이라면 뒤에서 욕할게 아니라 앞에서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만약 누가 나보고 본당에서 언제 속상하고 화가 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해주고 싶다. 정말이지 화가 나는 경우는 신자들이 하느님을 우습게 알 때다. 이유는 모든 잘못과 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흠숭해야 할 하느님을 소홀히 여기고 외면하고 무시하면 신앙인으로서 의미가 없어진다.
순교자들이 가족보다, 명예보다,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히 여긴 신앙을 헌신짝만도 못하게 취급하고 하느님을 쥐꼬리만 한 체면보다도, 몇 푼 안 되는 돈보다도 소홀히 여기다면 정말로 속상하고 때로는 화가 치밀어 오른다. 오늘 하루를 살면서 나는 하느님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는지 생각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