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성당의 나무들도 온갖 붉은 색으로 손수 치장하고 있다. 늦가을은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사색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러나 하늘이 푸르고 높은 까닭에 사색하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적어도 가을의 사색은 낙엽에서 오기 때문이다. 낙엽이 없는 가을의 향기는 상상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낙엽을 보면 구르몽의 시와 오 헨리의 단편 소설이 생각난다.
시몬! 숲으로 가자/나뭇잎은 져서/오솔길을, 이끼와 돌을 낙엽으로 덮고 있다/시몬! 너는 좋아 하느냐/낙엽 밟는 소리를....
이것은 구르몽의 시의 첫 구절이다.
가을은 낙엽을, 낙엽은 사색을, 그리고 사색은 우리에게 있어서 늘 무엇인가를 제시해 준다. 가을 하늘 높이만큼 감성의 지수도 높아지고 있는 지금, 가을을 통해서 사색은 믿음을, 믿음은 사랑을.... 이같은 연결 고리의 의미는 사색을 통해서 가을의 열매를 익혀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 시인이 아니면 어떤가? 부족하지만 시 같은 글을 써 보는 것은 어떨까?
낭만을 찾던 젊은 날로 돌아가 낙엽의 향기에서 묻어나오는 사색의 줄거리를 더듬어 주님에게 편지를 쓰는 우리가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주님은 우리가 사랑하는 연인이기 때문이다. 낙엽을 보고 사색 끝에 시 같은 편지를 얌전하게 정성껏 쓴다는 것은 기도하는 시간과 같은 뜻이 담긴 소중한 시간이다.
나는 지난 해 유난히 더웠던 여름을 뒤로 하고 만났던 가을에 주님께 편지를 쓴 적이 있었다. 죽기 전에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자기 변화가 있게 된 상황에 감사한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된다. 세세한 내용이 기억되지는 않지만 인생에서 늦가을로 들어서 나였기에 주님께 올리는 간절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다 쓴 편지를 봉투에 넣었다. 그리고 받아 볼 분의 이름과 주소도 썼다.
“하늘나라, 하느님 앞” 그리고 보내는 이는 “사제 김중광 파스칼”이라고 정확하게 썼다. 그리고 하늘나라로 배달하는게 제법 힘들다고 생각되어서 전곡 우체국에 가서 만원어치의 우표를 사다가 붙였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던 학교의 한 장소에 고이 묻어 놓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편지를 붙일 때, 내 이름과 세례명만 썼지 주소를 쓰지 않았다. 그렇다고 답신이 없다고 해서 허망하게 느끼지는 않는다. 그것은 주님께 편지를 썼다는 사실 만으로도 가을의 풍요로움과 행복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해의 늦가을이 다 가기 전에 주님에게 드리는 편지를 다시 써보고 싶다. 그때와 똑 같은 방법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