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좌신부로 살 때 주변에 대학 병원이 둘이나 있었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병자성사나 봉성체를 다녔다. 당시에는 병원에 상주하는 신부들이 없어서 주변 성당의 신부들 특히 그 중에 보좌신부들의 몫이었다.
내가 자주 가던 병원에 하모니카를 부는 노인이 있었다. 얼굴이 메마르고 허리가 구부정한 체형을 보면 일흔이 넘으신 노인이었다. 차림새로 봐도 넉넉한 분은 아니었다. 그분은 이틀이 멀다하고 병원을 찾았다. 병원을 찾을 때는 손에 늘 작은 손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리고 그 손가방 속에는 한끼의 도시락과 묵주 그리고 하모니카가 들어 있었다. 노인은 환자가 아니다. 병원을 찾는 이유는 병실에 있는 환자를 방문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병실에는 그 분을 아는 환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노인은 환자가 누워있는 방을 찾아 간 것이다.
그분은 몇 달 전에 갑작스럽게 풍을 맞아 병원에 보름쯤 입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심하지는 않았다. 퇴원 후에는 전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행에는 큰 지장은 없었다. 노인이 병원에 입원하고 있을 당시, 토요일 오후와 주일에는 어김없이 병실을 찾는 중년 여인이 있었다. 그 여인은 과거 성우의 경력이 있는 본당 신자분이다. 병원이 자신이 살던 아파트와 가까워서 레지오 활동으로 늘 병실을 찾아서 환자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돌아가곤 하셨던 것이다.
그 노인도 자매님의 신세를 지었는데, 그때 따뜻한 고마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 후 노인은 자신도 봉사를 하고 싶었는데 자신이 나이가 들어서 마땅한 게 없어서 고민을 하시다가 젊어서부터 불었던 하모니카가 생각이 나서 병원에 봉사 할 것을 부탁했는데 거절을 당하셔서 낙담을 하시다가 병자성사 때문에 왔다갔다하던 내가 생각나서 나름 청탁을 하러 본당에 찾아오셨다. 내가 병원 관계자에게 이야기해서 너무 크지 않게 그리고 원하시는 분 만을 위해서 불어줄 것을 허락 받았다.
막상 허락은 받았지만 걱정을 하시길래 그럼 일단 본당에서 어르신 대학에서 몇 번 봉사를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간만에 불어보는 하모니카이지만 제법 잘 부셨다. 그래서 용기를 얻어서 하모니카와 도시락과 묵주를 챙긴 손가방을 들고 병원으로 향하셨다. 병원으로 향하는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뭐라 말할 수 없는 묘한 감동이 있었다.
할아버지가 불어주시는 하모니카의 노래는 거의가 동요였고 성가였다. 이렇게 병원을 찾아 하모니카를 부는 것이 석 달이 됐을 무렵에는 누가 들어도 하모니카를 부는 솜씨에 경탄을 했다. 그리고 그분은 병원에서 나름 요즘 표현으로 인싸이자 스타였다. 어쩌다가 노인이 안보이면 환자들이 먼저 찾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노인은 진정한 행복을 찾으신 분이라고 생각된다. 병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으신 봉사자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잘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환자에게 위로와 희망을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던 할아버지가 가끔은 궁금해진다. 살아계시면 거의 백세가 되셨을텐데, 혹시 돌아가셨으면 하늘나라에서 하느님 앞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계시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