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한 자리에 불러놓고 발을 씻겨 주셨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낮출 대로 낮추면서 사랑을 보여준 모습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장면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이유에서든 이웃의 발을 씻어 주기가 결코 쉽지 않다. 남의 발을 씻어 주기는커녕 손을 씻어주는 것조차 해본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보좌신부로 살던 시절이니 벌써 20년이 흘렀다. 외국에 성지순례를 다녀온 신자 분께서 14금으로 도금된 아주 예쁘고 고급스럽게 만들어진 손톱깍이 세트를 나에게 선물로 주셨다. 누구에게 선물을 받으면 더 필요한 분에게 주는 것이 하느님 사랑이라고 여기던 나였기에 누굴줄까? 고민했었다. 마침 함께 청소년을 담당하던 수녀님 축일이 코앞에 닥쳐서 못쓰는 글 솜씨지만 나름 정성을 들인 카드 한 장과 선물로 받은 손톱깍이 세트를 정성껏 포장해서 드렸다. 카드 안에 글귀 중에 “수녀님, 비록 소소한 손톱깍이 선물이지만 행복하게 잘 사용하세요.”라고 썼다.
그 후 수녀님이 선물을 개봉하고 난후에 나를 만나자, 그 손톱깍이로 예뻐서 어떻게 사용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문뜩 그 수녀님이 가끔씩 할머니들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고 어루만지는 것을 봤던 기억을 말했다. 그리고 할머니들 손톱을 깍아주면 어떠냐고 말했다. 할머니들의 특유의 투박하고 주름이 많은 검은 손에 노점상을 하느라 때가 끼어있는 손톱을 생생하게 봤기 때문이다.
이젠 할머니의 두 손을 따뜻이 어루만져 주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손톱을 깍아주는 수녀님이 되시길 기원한다고 말하니 수녀님도 웃으면서 살짝 흥분한 표정이었다. 다소 감동했던 것 같았다.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었다는 표정이었다.
그 후 수녀님은 미사가 끝난 후면 곧잘 할머니들의 손톱을 정겹게 다듬어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런 광경 속에서 벌어지는 흐뭇한 아름다움에서, 비록 손톱깍이 라는 작은 선물이지만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말을 실천할 수도 있음을 알았다. 지금도 손톱깍이 한 개가 쓰기에 따라서 이처럼 사랑을 조용히 전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그 무엇인가를 느낀다.
코로나로 또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나이든 노인들을 기피하려는 요즈음 세태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장면이다.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수녀님이 노인들의 손을 꼭 잡고 성당의 창가에서 정겹게 손톱을 깍아 주시던 모습은 살아 쉼 쉬는 천사의 모습 그 자체였다고 기억된다.
자식들을 키우기 위해서 많은 일로 거칠어진 노인들의 손을 정겹게 감싸 쥐고 손톱을 깍아주시던 그 수녀님의 수도명 조차 가물거린다.
주님 지금도 천사처럼 살아갈 것이라고 믿고 있는 그 수녀님을 위해서 은총을 듬뿍 내려주시옵소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