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수의

2022. 11. 7. 오전 7:02:08

글자

위령성월이다. 죽은 조상들을 기억하고 나의 죽음을 생각해보는 거룩한 시기이다. 수의는 이승을 떠나 저승으로 갈 때 죽은 자에게 입히는 옷을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값 비싼 수의를 죽기 전에 미리 장만하기도 하고 또 죽은 다음에도 비싼 수의를 입혀서 떠나보낸다. 그래야 자식된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마지막 가는 이에게 푸짐한 대접은 못해 준다 하더라도 옷 한 벌쯤은 값비싼 것으로 입혀 보내야 한다는게 다수의 생각이다. 하지만 수의에 관해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망자가 입는 옷, 수의는 죄수가 입는 옷을 뜻하는 수의와 발음도 내용도 비슷하다. 삶을 통해서 많은 죄를 짓고 살다가 가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기에 우리가 죽어서 입는 옷을 마땅히 죄수가 입어야하는 수의와 같은 뜻이 될 수도 있고 실제로 일제 치하에서 조선인은 죄인이라고 하면서 베로 만든 수의를 권장해서 지금까지 내려왔다. 그래서 모든 망자들이 보편적으로 베로 만든 수의를 입고 하늘나라로 향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온갖 추한 짓을 다 하고 많은 죄를 범한 사람이 수의만 좋은 것을 걸치고 간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반겨 줄 리는 없다. 오히려 가장 값 싼 옷이나 평소에 고인이 즐겨 입던 옷을 입고 떠나는 것이 속죄를 의미하는 모습이 아닐까 라고 생각한다. 


몇 년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을 때 가족들과 상의해서 평소에 가장 좋아하고 즐겨 입으셨던 양복과 구두를 수의로 했다. 물론 그 양복은 아들인 내가 사드렸던 것이라 아버지께서는 평소에도 아끼면서도 중요한 날에만 입고 신으셨다. 그래서 염을 하는 마지막까지도 아버지와의 추억을 더 간절히 생각할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판단을 잘했다고 생각된다. 


사제인 나는 죽으면 선택없이 평소에 입던 제의를 입고 하느님을 만나러 갈 것이다. 사제가 제의를 입고 가는 것은 영광이라고 생각된다. 언젠가 후배 신부가 하늘나라에 먼저 가던 날 신부 부모님께서 아들 신부에게 마지막으로 하셨던 말씀이 생각났다. 

“마지막으로 가는 날 제의를 입고 가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짧은 한 말씀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었다. 마지막까지 사제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부모님들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평소에 입던 수단 위에 제의를 입고 손에는 묵주를 들고 누워있는 마지막 모습은 숭고함마저 들게 한다. 나도 그렇게 인생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은 사제로 남은 생애를 뜨거운 불꽃으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 하루는 사제로 살아가도록 불러주시고 특혜를 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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