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반복되는 일이 있다. 입시철이 되면 탄식과 눈물, 환성과 웃음이 입시생이 있는 집에서는 일어난다. 곁에서 보기에도 딱하다. 오늘의 교육적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다. 낙방된 학생이 있는 집에서는 상가집을 방불케 한다. 반면 합격된 집에서는 효자 노릇을 했다며 이웃에게 떠들썩하게 자랑을 한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한 번 뿐인 우리 인생에서 높은 나무에만 올라가야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애당초 오르지 못할 높은 나무 보다는 조금 낮은 나무를 택해 오르는 것이 현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등만이 최고가 아니다. 이등도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최선에 미치지 못하면 차선을 택해 시간을 벌면서 노력하며 마침내 최고의 자리에 평가를 얻게 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문제가 평등하게 제시되어 있다. 이것 아니면 절대로 안 되는 일은 없다. 만약 인간이 사는 데 있어서 이것 아니면 절대로 안된다고 한다면 인간은 불행한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다.’하는 여유로움을 갖을 때 스스로의 삶에서 불행의 시간과 멀어질 수 있다. 좋은 대학을 놓쳤다고 해서 입시생인 당사자를 제껴놓고 부모가 오히려 절망에 빠진 모습으로 좌절한다면 무슨 꼴일까?
우리 주변에는 많이 배우지 못하지만 나름의 삶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다. 나름 어려움 속에서 살았지만 좌절하지 않고 법관과 변호사를 국회의원을 거쳐서 대통령에까지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분을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나름의 희망의 길을 제시 했다고 할 수 있다. 돈을 버는 관점이라면 정주영 회장같은 분이 그런 길을 제시해 주셨다. 시대가 다르다고 할지 모르지만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 길은 분명히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갈 수 있는 길을 적절히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가고 싶어도 현실적인 어렵거나 불가능한 길이라면 포기 할 줄도 알아야 한다. 청소년 시기에는 자신에게 적성에 맞거나 잘 할 수 있는 것을 찾아가는 소중한 시기이다. 만약 자식들이 그런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하면 부모들이 앞장서서 찾아 줘야 한다.
모든 사람이 달리기에서 11초 이내에 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것은 달리기를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는 것은 쉽게 인정하면서 자식이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운동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듯이 공부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 물론 내 자식이 그 안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것은 부모의 공통된 바램이다. 그 바램을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다만 내 자식이 그 안에 포함되지 않으면 다른 방향으로 돌아가는 법을 부모가 먼저 제시 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말은 부모가 먼저 좀 더 대범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꼭 높은 나무에만 올라가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마음속에 담아 줬으면 싶다. 기회는 살다보면 언제든지 반드시 찾아온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주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