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0일] 오래 살 수 있는 방법과 살아야할 이유

2022. 11. 10. 오전 6:51:37

글자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 4시에 일어났다. 며칠 전부터 컴퓨터가 말썽을 부려서 글을 쓰는데 애를 먹고 있다. 이럴 때마다 일찍 일어나서 글을 써야 하나를 고민해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많은 사람들과 약속을 해놓았으니....


인간은 누구나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인간의 본성이다. 우리의 삶이 희비의 곡선을 그으면서 웃었다가 울기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 행복하게 오래 살기를 갈망하는데서부터 시작된다.

 

오늘 새벽에 발칙한 상상을 해보았다. 사람들이 같은 날에 태어나고 모두 같은 날에 죽었다고 가정할 때 여기서도 우리는 차이점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인간의 수면 시간에 따라서 남보다 더 오래 살고 짧게 살았는가가 계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처럼 하루에 5시간 전후로 자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누구는 하루에 적어도 8시간 이상을 자는 사람도 있다. 남들보다 하루에 두 시간을 더 일찍 일어난다는 것은 2시간을 더 살았다는 의미이다. 남보다 덜 잔 2시간을 살아 있는 시간으로 볼 때 한 달이면 60시간, 1년이면 720시간이 된다. 인간의 수명을 80년으로 계산할 때 57,600시간, 이것을 하루로 나누면 2,400일이 된다. 즉 6년 반을 더 사는 셈이 된다. 

하루에 남보다 두 시간을 적게 잔다는 것이 같은 해, 같은 날에 태어나서 같은 해, 같은 날에 죽는다 하더라도 6년 반이나 남들보다 더 살게 된다는 점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자는 시간을 죽은 것과 동일시한다. 물론 생리적으로는 잠을 자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활동을 꾸준히 하지만, 수면으로 일상생활의 활동이 정지된 상태는 죽은 자와 동일하게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분석학에서는 우리가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은 잠을 적게 자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인간은 오래 살아야만 인간으로 태어난 가치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인간에게는 각자 삶의 가치관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짧고 굵게 사는 인생이 있는가 하면 지지리 못나게 살면서도 길게 사는 인생도 있다. 우리가 갈망하는 삶은 아마도 공통적으로 굵고도 길게 사는 인생일 것이다. 삶을 쩨쩨하게 살기보다는 위풍당당하게 살기 위해서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여기서 신앙인의 삶은 비 신앙인에 비해 한 가지를 더 갖고 있어야 한다. 그 한 가지는 하느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 신앙인은 더 굵고 더 오래 살 수 있어야 한다. 죽은 후에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충실한 일꾼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새벽부터 일어나서 고민하면서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주임신부님 묵상글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