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결국 상대방을 살립니다.

2012. 1. 24. 오전 6:30:04

글자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의 제자들은 단식하는데, 선생님의 제자들은 어찌하여 단식하지 않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 단식할 수 없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약하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쓴 『기탄잘리』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임을 아는 한 타자라곤 없습니다. 임을 아는 한 닫힌 문도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남과 비교하고 차별하면서 기쁨을 찾는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비록 율법을 엄격히 지켰지만, 타고르의 말대로라면 진정 하느님을 모르던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모른다는 것은 사랑을 모른다는 말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인간의 부족함과 한계 때문에 겪는 고통에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결국 상대방을 살립니다.

지금 나는 내 삶의 기쁨을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이웃의 고통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것에서 참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성숙한 신앙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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