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당신뜻을 전하는 방법으로 두가지 책을 주셨다. 하나는 성령의 영감을 받아 인간에 의해 글자로 기록된 성경이고, 또 하나는 하느님께서 손수 창조하신 창조물(자연)이다. 자연은 하느님의 말씀을 간직한 또 하나의 성경인 셈이다.
우리는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하려고 산과 강과 바다를 찾아가 생기를 얻는다. 지쳐있는 심신을 회복하는 데 자연만큼 좋은 것이 없음을 사람들은 직관적으로, 경험적으로 안다. 그것은 단순히 자연 속에 담겨있는 도심보다 높은 용존 산소량, 오존의 수치 때문 만이라고 할 수 없다. 무엇보다 자연 속에서 우리는 생명의 하느님을 호흡한다. 피정을 위한 집들이나 수도원들이 산속이나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 자리한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이러한 치유능력은 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라는 지역이 상징하는 역할과 비길 수 있겠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는 리시아스의 대군이 쳐들어왔을 때 유다 마카베오가 맞서 싸워 큰 승리를 거둔 장소이다(1미카 3.8-4.61). 엠마오 전투에서 승리한 뒤 유다 형제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다시 봉헌하였다. 따라서 유다 형제가 엠마오 전투에서 거둔 승리는 이교주의를 이긴 ‘유다이즘의 승리와 부활의 상징’(2마카 8.36)이 되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엠마오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장소이다(루카 24.13-35).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제자들은 실의와 절망에 빠져 다시 고향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예루살렘을 벗어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낯선 이와 동행을 하게 되는데, 그 낯선 분은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을 풀이해 주신다. 그들은 성경 해석을 듣고 뜨거운 감동을 느꼈다. 엠마오에 다다랐을 때 어느 덧 서산에는 노을이 물들고 그 낯선 분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싶어 한다. 함께 묵기를 허락하신 그 낯선 분은 저녁 식탁에서 빵을 쪼개어 나누어주신다. 그때서야 제자들은 그 낯선 분이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알아차리고 고향으로 향하던 절망의 길을 돌려 다시 예루살렘으로 걸음을 옮겨 용감하고 기쁘게 복음을 전파하였다. 이처럼 엠마오는 유다인에게서 그리스도인이게 이르기까지 절망에서 희망으로 건너가는 장소의 상징인 것이다.
겨우내 아무것도 없이 죽은 듯 보였던 대지위에 봄의 아지랑이와 함께 새록새록 솟아나는 들풀들과 마른 나누 가지에서 움트는 새싹들을 보고 있노라면, 신비하기도 하고 짜릿한 감동을 준다. 죽은 듯 고요했던 것이 결코 죽은 것이 아니었다. 자연은 그 속에서 숨죽이며 부활을 준비했던 것이다.
그 낯선 분이 성경을 해석해 줄 때 제자들의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듯이, 자연의 신비를 하나하나 알아간다는 것은 그대로 감동이다. 그 감동은 일상의 삶에 지친 몸과 마음을 정화시켜 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살아갈 힘을 준다. 자연은 그대로 우리들의 엠마오인 것이다.
- 주간경향 4월호, 이동훈 신부님 글 중에서 요약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