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걸어갑니다

2008. 2. 19. 오후 3:46:46

글자

또 걸어갑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깊어지고 넓어질까요?
해마다 사순시기만 되면 제 약함에 어김없이 무너집니다.
아직도 보내야할 사순시기의 여정이 이렇게나 많이 남았는데
초반부터 넘어지기만 합니다.

요즘 들어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된다는 것이
많이 두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왜냐면 저에게 그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의 또 다른 모습들을 만나게 되면
좋았던 인상이 변해버리고 실망하는 모습을 보이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누가 칭찬을 하면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또 좋은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마음에 부담도 커집니다.
그저 보통 평범한 사람으로 보여 지면 좋겠습니다.
착한 마음도 있지만 벌컥 화를 내는 깔깔한 성격도 있고,
넉넉한 마음도 있지만 소심해서 꽁하고 있는 것들도 있는...
털털하지만 그래도 사람냄새는 잃지 않고 사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일 년 정도 외부에 있는 자매님과 작업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서로가 가급적 충돌을 피하면서 긴 인내의 시간을 가지며
작업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드디어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따끔하게 한마디 해 주고 싶은 말들이 이렇게나 쌓여 있는데...
그 못 다한 말들 보다 제게 갖는 서운함이 마음에 걸립니다.

그저 저라는 사람에 대한 서운함으로 끝나기를...
가톨릭에 대한 반감으로 넘어가지 않기를...
상대에게 해 주고 싶은 말들, 그의 서투름 들이 떠오를수록
저의 무능함 또한 커져만 갑니다.
상대를 들추는 것이 저를 헤집어 놓는 것임을 다시 기억합니다.

예수님도 그래서 그러셨나봅니다.
굳이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있는 사람들의 허물을 들춰내지 않으시고,
잘 잘못 따지기보다 침묵으로 묵묵히 걸으신 이유를 알아듣습니다.

십자가를 기꺼이 지시는 예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저 저도 넉넉한 웃음으로 부족함을 덮을 수 있기를 말입니다.

바오로딸 홈지기수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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