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레조, 나를 붙들지 마라, 1525년경, 캠버스에 유채, 130 x 103 cm,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2010. 4. 9. 오후 1:19:05

글자

이름을 불러주세요

 

마리아는 울었다.

그녀는 사랑하는 분의 시신마저 잃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천사들이 물었다.

“여인아, 왜 우느냐?”

마리아의 관심은 오직 예수님뿐이었다.

그러기에 그녀에게는 시신도 살아계신 예수님이었다.

마리아가 그들에게 대답했다.

“누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주님의 시신이 아닌 제 주님을 찾고 있었다.

그녀에게 사랑하는 임은 결코 죽지 않았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그녀의 뒤에 서 계셨다.

그러나 그녀는 슬픔이 하도 커서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분의 울지 말라는 이야기도,

누구를 찾느냐는 이야기도 결코 들리지 않았다.

오직 그녀는 그분을 어디에 모셨는지에 관해 말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분을 자기가 모셔야 한다고 거듭 강조할 뿐이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늘 하시는 대로 아주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셨다.

“마리아야!”

그때야 비로소 그녀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

우리도 가끔 우리 주위에 있는 슬픈 사람들을 무척이나 많이 본다.

우리는 그들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왜 울어?”

“무엇 때문에 울어?”

“울어서 무슨 소용이 있어?”

그때에는 오늘의 일을 기억하자.

부드럽게 그녀의 이름만 불러주셨던 우리 주님을 생각하자.

그녀의 처지에서,

그녀와 하나 된 마음으로 그녀를 부를 때,

그녀가 내가 되고 내가 부활하신 예수님이 됨을 느껴보자.

 

댓글 2

  • 2010년 4월 9일 오후 6:24

    마리아야...얼마나 부드럽게 부르셨을까....그분의 음성이 들리는듯

  • 2010년 4월 19일 오후 7:29

    슬픔에 가득차 있을땐..이름만 불러줘도 위로가 됄수있을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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