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브레히트 뒤러(1471-1528, 독일)는 시대를 선도하는 천재적 화가였다.
그는 독일과 이탈리아, 프랑스와 동유럽의 문화가 교차하는 뉘른베르크에서 태어나
독일 화가로는 처음으로 알프스 이남의 미술 세계를 순례했고,
이로 인해 그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회화 기법을 독일로 가져오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이탈리아 미술의 현란한 색과 빛, 구성과 원근법을
북유럽의 초상화 기법과 세밀한 디자인에 접목시켜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천재성이 타고난 재능만으로 가능할까?
아니다.
천재성은 타고난 재능과 함께 그 재능을 극대화 시킬 교육과 환경이 중요하다.
그는 13세에 자기 초상화를 그려 천재성을 인정받았지만,
두 번의 긴 여행을 통해 이탈리아의 선구적인 이론을 배웠다.
그는 뉘른베르크로 돌아와 그곳의 상인인 마테우스 란다우어의 주문으로
성당 제단화인 <삼위일체에 대한 경배>를 그린다.
이 그림이 바로 그의 천재성을 최고로 표현한 대표적 작품이다.
그림의 황금분할선상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성자 예수님이 계신다.
그분은 십자가의 죽음으로 세상을 구원하셨다.
이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임금이신 성부 하느님은 아들 예수님을 두 팔로 감싸 안으신다.
그분은 하늘의 색인 청색 옷을 입으셨고,
영광의 색인 금색과 생명의 색인 녹색을 안과 밖으로 장식한 망토를 걸치셨다.
그래서 하늘의 임금이신 영광의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생명으로 창조하셨나 보다.
그 위에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천사들을 거느리고 임하고 계신다.
그래서 그림 전체가 성령의 힘으로 거룩하게 보이는가 보다.
성부의 옷을 펼쳐들고 있는 천사들은 그리스도의 수난 도구를 들고
성 삼위를 찬양하고 있다.
그들의 색체가 하도 눈부시게 화려하고 생생하여
그리스도의 수난 도구가 묻힐 지경이다.
성인들은 두 개의 반원을 이루면서 성 삼위를 둘러싸고 있는데
이러한 구성은 라파엘로의 프레스코화인 <성체의 논쟁>의 구성과 비슷하다.
성녀들은 종려나무가지를 손에 들고 있는데,
이는 순교를 상징하기도 하고,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기 위해 가져온 나뭇가지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런데 그 중심에는 푸른 옷에 왕관을 쓰신 여인이 있다.
그분은 아마 성모님일 게다.
그리고 그분 좌우에는 어린양을 안고 있는 성녀와
성작에 성체를 받쳐 들고 있는 성인이 돋보인다.
이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음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
그 반대편에는 세례자 요한이 중심에 있고,
십계명을 들고 있는 모세, 하프를 들고 있는 다윗,
담비 털을 단 가운을 걸친 솔로몬 등 구약의 인물들과
당대의 의상을 입은 수많은 성인들이 있다.
맨 아래 왼편에는 이 그림의 주문자인 마테우스 란다우어의 초상이 보인다.
그는 주위의 성인들과는 달리 수수하고 어두운 옷을 입고
겸손하게 무릎 꿇어 기도하고 있다.
그의 간절한 기도는
성인들과 함께 성 삼위를 찬양하게 해 달라는 기도일 게다.
그래서일까?
그의 곁에는 기적을 많이 행한 수도복을 입은 프란치스코 성인이 있고,
성경을 집대성 한 예로니모 성인이 주교복을 입고 그를 쳐다보고 있다.
그뿐인가?
예로니모 성인은 그분께로 함께 가자며 손까지 내밀고 있다.
하단의 중심에는 삼중관을 쓰고 화려한 금색 망토를 입은 그레고리오 교황이
그레고리안 성가를 집대성 한 교황답게 성삼위를 찬양하고 있고,
그 맞은편에는 하느님을 닮은 이름 모를 성왕이
다른 왕에게 성삼위의 축복에 대해 논하는 것 같다.
그리고 칼을 찬 유스타스 성인을 비롯한 다른 성인들이 공중에 떠 있다.
뒤러는 자화상을 맨 아래 오른편에 그렸다.
그는 자신의 서명과 함께 라틴어로 연도를 써 넣은 커다란 기념비 옆에
홀로 외로이 머물러 있다.
천국은 천재적 재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대한 헌신적인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한없이 넓은 아름다운 호수의 풍경도
하늘의 영광에 비하면 초라하게만 보인다.
화려한 외모를 지녔던 뒤러도
성인들의 영광에 비하면 아주 작게만 보인다.
[출처] 삼위일체에 대한 경배 - 알브레히트 뒤러|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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