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락의 거리를 내려다보는 서울 명동 언덕엔 명동성당과 가톨릭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복잡한 도시의 소음을 뒤로 하고 가톨릭회관 1층 평화화랑에 들르면 세속의 야단스러움이 어느덧 사라진다. 이런 쉼터를 누가 만들었을까. 바로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47·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실장·서울대교구 성미술감독)이다.
“평화화랑에는 매일 100여명의 시민이 찾아옵니다. 연 4만여명이 들르는 문화공간이기도 하고 영적인 휴식을 제공하는 삶의 충전소이기도 합니다.”
정신부를 모르는 이도 천주교 서울주보 표지에 매주 성화(聖●)를 선정해온 신부라면 ‘아, 그 그림을 고르시는 신부님이시군’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서울주보 편집인이기도 한 정신부는 2000년 1월 첫째주부터 서울주보 1면에 성화를 싣고 그에 따른 설명을 곁들여왔다. 그동안 게재한 그림만도 220여작품. 매주 복음말씀에 관련된 성화를 고르고 그림에 대한 설명까지 상세하고 친절하게, 쉽고 편안하게 곁들여왔다.
“매주 280개 서울교구 성당에 30만부의 주보가 배포됩니다. 주보를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을 통해 사회전체를 아름답게 만드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정신적 빈곤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많은 아름다움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주보의 그림은 그들에게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는 통로인 셈이지요.”
가톨릭대 신학과를 졸업한 정신부는 1987년 사제수품후 서울 신당동·불광동·수유동성당 보좌신부로 활동했고 92년 종로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안식년인 98년에는 프랑스 파리에서 미술연수를 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어요. 그러나 큰형(정양모 성공회대 초빙교수)과 둘째형(정학모 대구교구 대덕성당 주임신부)에 이어 사제가 되면서 화가의 꿈을 접었습니다. 그러다 종로성당 주임신부로 있을 때 취미삼아 데생, 수채화, 유화 등을 그렸고 서울주보 편집을 맡게 되면서 ‘성화’보여주기를 시도했죠.”
복음말씀이 빽빽이 담긴 주보에 성화를 끼워넣는 배짱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파격이었다. 그리고 주보 속 성화를 통해 그날의 복음말씀을 가슴으로 느끼고 성서의 뜻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는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정신부의 실험작업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신앙성숙을 위해 신자들에게 성화를 읽어주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유럽 성화와 한국 성화를 골고루 게재하려 하지만, 균등한 비율을 이루기 힘듭니다. 게다가 복음과 강론에 맞는 성화를 고르려면 어찌나 힘이 드는지…한번도 쉽게 찾아본 적이 없어요. 요즘은 좀 나아졌지만.”
주보 성화의 성공에 힘입은 정신부는 2000년 12월 명동에 ‘평화화랑’을 개관하고, 2002년 ‘가톨릭미술아카데미(가미아)’를 서울 보문동 노동사목회관 내에 설립해 미술이론과 실기강좌를 운영하고 있다. 또 사이버갤러리인 ‘인터넷 평화화랑(https://gallery.catholic.or.kr)’도 열었다. 사제수품후 모은 1,000권의 도록과 1만개의 슬라이드필름은 ‘가미아’ 자료실에 기증, 누구나 보게 했다.
“그림을 읽으려면 작가, 시기, 화풍, 역사 등 그림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아야 합니다. 교회가 배경인 고전 성화에는 제각각의 신학적 배경이 있기 때문에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고선 제대로 ‘읽기’가 되지 않습니다.”
한국교회 최초로 성미술감독직까지 겸임하고 있는데도 정신부는 전문적으로 그림읽어주는 신부가 되기에는 아직 미흡하다고 겸손의 미소를 지었다.
〈유인화기자〉
경향신문-2005년8월29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