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 서른 냥을 돌려주며 참회하는 유다
렘브란트(1606-1669, 네덜란드)는 빛의 유혹에 영혼을 던진 화가다.
그가 그린 <은전 서른 냥을 돌려주며 참회하는 유다>는
돈의 유혹에 영혼을 팔아버린 고뇌하는 인간을 그렸다.
그는 이탈리아의 종교 화가들처럼 대형제단화를 그리지 않았다.
단지 신심 있는 가정의 벽면에 성경으로 장식할
비교적 작은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그 세밀함은 별로 크지도 않은 그림에서 완성된다.
이 그림은 마태오복음 26장 14-16절과 27장 3-10절이 그 배경이다.
그림의 시작은 수석사제의 의자 뒤편에서부터 시작된다.
사제의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
예수님을 죽이려고.
그들의 얼굴은 희미한 묘사 탓에 마치 시신과도 같다.
남을 죽이는 자가 곧 자기를 죽이니까.
이어 수석사제와 유다의 뒷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
오른편 중앙의 암흑 속에서.
그들은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넘겨주기로 한다.
수석사제는 뒤도 보지 않고 은전주머니를
검은 그림자가 드리운 사람에게 넘기고 있다.
은밀한 뒷거래는 부끄러운 일이니까.
그런데 유다는 예수님께서 사형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친다.
그래서 은전 서른 닢을 수석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되돌려 주면서 말하였다.
"죄 없는 분을 팔아 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알 바가 아니라며
유다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한다.
유다는 그 은전을 성전 안에다 내 던진다.
성전 바닥에는 은전 서른 닢이 내동댕이쳐져 있다.
대사제와 원로들은 놀라며 동전을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유다는 절망에 몸부림치는 몸짓을 하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희망의 흔적이라곤 찾을 수 없다.
황폐한 눈빛,
모근까지 뜯겨나간 머리카락,
해진 옷,
뒤틀린 팔,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움켜진 두 손을 하고 그는 무작정 무릎을 꿇었다.
괴로움에 신음하는 몸뚱이는 가엾다 못해 소름이 끼친다.
그는 미친 듯 절규하면서 용서를 구하지만
희망을 포기한 채 몸을 매달아 죽는다.
그래서일까?
그림 중앙 한 가운데에는 이방인 장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그는 마치 십자가상에서 죽어가는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이야 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 하고 고백한
백인대장을 연상케 한다.
그는 예수님이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했고,
그분의 죽음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고 쉽게 자살한다.
백인대장은 자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에게 유다처럼
혼나야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죄보다 크다는 걸 믿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분개하는 것이다.
그러나 화가는 그림의 빛을 성경에 모아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화가는 유다의 죽음마저 하느님의 뜻이라고 말한다.
일찍이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게 한다.
"그들은 은전 서른 닢,
값어치가 매겨진 이의 몸값,
이스라엘 자손들이 값어치를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
주님께서 나에게 분부하신대로 옹기장이 밭 값으로 내 놓았다."
그래서 수석사제들은 그 부정한 돈을 주워 헌금 궤에 넣지 않고
옹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곳을 “피의 밭” 이라고 불렀다.
우리도 유다처럼 “피의 밭”에 묻히진 아닐는지. 손용환 신부
[출처] 은전 서른 냥을 돌려주며 참회하는 유다|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