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쎄마니동산에서의 기도'...벨리니-해설-

2009. 9. 25. 오후 8:5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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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니에서의 기도

 

조반니 벨리니(1427-1516, 이탈리아)는 회화의 역사를 한 단계 끌어올리고

베네치아 미술의 기초를 굳건히 한 화가다.

그의 원색 사용과 빛의 효과는 후대 베네치아 화가들의 시금석이 되었다.

 

그는 마태오복음 26장 36-46절, 마르코복음 14장 32-42절, 루카복음 22장 39-46절을 배경으로

 <겟세마니에서의 기도>를 그렸다.

그는 5년 전에 그의 매부 안드레아 만테냐가 그렸던 작품의 구도를 받아들였고,

자기 나름대로 자연주의적 사실주의를 느낄 수 있도록 부드럽게 그림을 그렸다.

공교롭게도 런던국립미술관에는 이 두 화가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이 그림은 성경말씀처럼 세 부분으로 구분되어 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떨어져 간절히 기도하고 있고,

제자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으며,

멀리서는 유다가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성전경비병들을 데려오고 있다.

 

고난이 다가오고 있음을 예감한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그분의 맨발은 위태로운 운명을 예감하고,

땀에 젖어 몸에 찰싹 붙어 있는 그분의 옷은 피땀 흘려 기도하심을 느끼게 한다.

그분은 땅에 엎드리시어 기도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것을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십시오.”

그래서일까?

천사가 고통의 잔을 들어 예수님께 내밀고 있다.

그런데 천사는 환영의 모습이다.

고뇌와 갈등은 생각으로 하는 것이니까.

 

스승의 고뇌와는 달리 제자들은 태평스럽게 자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가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그런데 그들은 스승의 말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잠들어 있지 않은가?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자고 있느냐?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너희는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그래서 야고보와 요한은 앉아서 자고 있나보다.

스승의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그러나 시몬은 누워서 잔다.

그래서 스승은 베드로에게 오셔서 세 번씩이나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고 말씀하셨다.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는 베드로의 행동을 예고하듯이.

그런데 예수님과 같이 맨발인 제자는 야고보뿐이다.

야고보의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인사 청탁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에 야고보가 마실 수 있다고 대답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예수님의 12제자 중에서 야고보가 가장 먼저 순교했다.

 

예수님의 등 뒤에서는 배신자 유다가 군인들을 데려오고 있다.

그는 죽음의 색인 검은 옷을 입고 있다.

또 그의 얼굴을 비롯하여 창과 방패를 든 군인들의 얼굴도 죽음의 그림자가 검게 드리우고 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군인들에게 스승을 체포할 계획을 말한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때를 아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때가 왔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그래서일까?

오른편 중앙에는 말라죽은 것 같은 앙상한 나무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마지막 말이 아니다.

벨리니는 예수님의 고뇌를 죽음의 밤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고뇌를 부활의 새벽으로 표현했다.

분명 이 그림은 시간으로나 내용으로 볼 때 그 배경이 어두운 밤이어야 한다.

고뇌의 기도, 제자들의 배신 모두가 어두운 밤에 이루어지니까.

하지만 이 고뇌는 세상을 위한 예수님의 사랑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상의 색인 푸른색 겉옷과 사랑의 색인 붉은색 속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 배경 또한 이른 아침의 햇살을 받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왜 이 그림의 배경이 서양미술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새벽풍경일까?

스승의 사랑이 제자들의 배신을 이겼으니까.

사랑의 빛이 배신의 어둠을 이겼으니까.

그래서 지평선 너머의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나온 장밋빛 햇살은

언덕 위에 있는 두 마을에 두루 퍼진다.

그분의 고뇌로 말미암아 부활의 햇살이 온 세상을 비추니까. 손용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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