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보 김기창의 신앙화, ‘두루마기를 입은 예수’

2009. 9. 19. 오후 9:53:15

글자
 
(‘오천 인을 먹임’, 1952-1953, 63x76cm, 비단에 수묵 채색, 개인 소장)
 
권용준(한국디지털대학교 문화예술학과 교수)
 
 
그림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도 스스로를 ‘바로’라 불렀던 화가, 악성 베토벤처럼 귀머거리였던 화가, 그리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기에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꿈꿀 수 있었다.”고 했던 화가를 잘 알고 있다. 바로 운보 김기창 베드로 화백(1910-2001년)이다.
 
그는 아름답건 추하건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운명, 그 적막한 세계로의 유배를 ‘하느님의 선택’으로 믿고, 예술을 통해 그 소외를 극복하고자 일생 불굴의 의지와 투혼의 열정을 사르게 된다. 이런 그의 치열한 삶과 예술적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30점으로 이루어진 그의 신앙화이다.
 
“그것은 마음 괴로운 순간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 줄기 빛이 어디에선가 비껴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빛줄기 아래에서 예수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있었다. 통곡을 끝내고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나는 동굴이 아닌 햇빛이 눈부신 방에 앉아 화필을 들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깜빡 졸았고 졸다가 예수의 괴기한 꿈을 꾼 것이다”(‘나의 심혼을 바친 갓쓴 예수의 일대기’, “운보 김기창 성화집 예수의 생애”). 운보의 이 고백에서 보듯이 그의 신앙화는 붓을 들고 그림에 열중하다가 잠시 조는 사이에 문득 수난의 예수를 현몽한 것이 계기가 된 것이다.
 
물론 때가 6.25라는 민족 수난기였기에 당시 운보가 느낀 예수의 수난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 예수의 수난은 곧 우리 민족이 전쟁통에 겪는 아픔과 고난에 대한 공감이며, 동시에 그 극복에 대한 염원이었던 것이다. 특히 오래 전 그리스도교가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면서 겪었던 수많은 박해와 순교의 숭고한 희생이라는 우리 한국인들의 자기 체험 역시 그 예수의 모습에 투영된 것은 아닌가?
 
이처럼 예수의 수난과 민족의 가혹한 역사와 현실이 교향악처럼 어울린 그의 신앙화는 ‘수태고지’, ‘예수 탄생’,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 박힘’, ‘부활’ 등 예수의 탄생에서 부활에 이르는 과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운보는 이 일련의 수난사를 회화언어로 옮기고자 복음을 깊이 연구하고 그 고난에 자신의 삶과 모습을 반영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운보는 이 신앙화의 주된 인물인 예수의 모습에 매우 고심하고 심혼을 쏟았다. 특히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그를 각별히 위로해 주던 미국인 선교사 젠슨 씨가 했던 말이 자극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어느 한 나라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많은 나라가 자신들의 모습을 본떠 성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당신도 한국의 풍속화로 그리스도의 생애를 그려보십시오”(심경자, “장애를 딛고 선 천재 화가 김기창”). 그래서인가 운보는 예수의 형상이 “첫째는 평범한 인물이어야 하고, 둘째는 그리스도교 정신에서 어느 지역이나 종파를 초월하여 세계의 모든 사람, 즉 계급도 없고 남녀노소 모두에게 정신적 의지가 될 수 있는 그런 인물상”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힌 것이다.
 
이런 고뇌의 여정에서 탄생한 예수는 바지저고리와 두루마기를 입고 갓을 쓴 모습, 바로 우리의 모습이 된 것이다. ‘악마에게 시험받다’의 예수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마태 16,23)고 지엄하게 질타하는 고결한 선비의 기품을 보인다. 특히 이 그림에서 돌을 들고 예수를 유혹하는 사탄의 모습이 우리 기억 속에 존재하는 미워할 수 없는 도깨비 형상으로 친근함을 더하고 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마태 7,7)를 설교하는 ‘산상 설교’의 예수는 진리를 가르치는 결연한 의지의 선비가 아닌가? 그의 설교를 듣는 자들의 모습에서 조선인들의 일상적 삶과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요한 4,14)라고 말씀하고 계신 ‘사마리아의 여인’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사람들이 배불리 먹었다는 ‘오천 인을 먹임’의 예수는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실학자 선비로서의 인자함을 보인다.
 
이처럼 운보의 신앙화에 보인 예수는 엄격하고 치열한 조선의 계급구조 속에서 만인을 아우르고 안아주는 따뜻한 인간적 품성과 사랑이라는 하느님의 숭고한 가르침을 몸소 보여주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서고 있다.
 
조선의 모습은 이뿐이 아니다. ‘수태고지’의 가브리엘 천사는 우리 동화 속의 선녀이며, 마리아는 물레로 실을 잣는 양반집 규수이다. ‘아기 예수 탄생’은 어떠한가? 그리스도교 성인들은 모두 한결같이 한복을 입고 황색피부를 지닌 한국적 이미지로 묘사되어 있다. 이 땅의 토종인 황소와 말 그리고 닭이 있는 외양간에서 갓을 쓴 아버지와 두루마기를 걸친 어머니 곁에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모습이 참으로 신선한다. 또한 조선의 단아한 여인들의 모습은 신윤복의 풍속도를 보는 듯하다. 계층에 따라 여인들은 온갖 색의 한복과 쓰개치마를 쓰고 있으며, 밥상을 들고 광주리를 이고 있는 여인들이 바로 우리 조선 여인들의 모습이 아닌가? 외국의 소재, 곧 서양 종교의 소재를 한국적인 모습으로 바꾸어 표현한 운보의 자유로운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조선의 모습이 운보 특유의 필선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 동양화의 기본은 간결한 선이며 깊이감이 없는 평면이고 많은 부분을 생략한 여백이다. 이처럼 우리의 눈으로 본 복잡한 만사를 어이 그림으로 표현할 것인가. 지나치게 작은 부분에 집착하다 보면 도리어 큰 것을 잃어버리는 것[근모이실모(謹毛而失貌)]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지 않았어도 그 의경(意境)을 통해 표현되지 않은 것을 보아야 하는 것[의도필부도(意到筆不到)]이다. 이처럼 형태에 유의하지 않으면서 그 정신을 본다는 ‘이형사신(以形寫神)’이 결국 ‘기운생동(氣韻生動)’이라는 정신의 함축적 표현을 가능하게 하는 동양화의 기본 원리인 바, 지금 김기창이 신앙화의 기법이 바로 동양화의 핵심을 보여주고 있다.
 
운보가 그린 이 일련의 신앙화에 대한 최순우 선생의 평은 그 가치를 가장 적절한 언어로 표현한다.
 
“이 성화연작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생애를 담은 것이어서 더 그러하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루어진 그 간절한 사제가 더할 나위 없고 또 한국 시골의 초라한 초가집들과 평범한 한국 시골의 정경 등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지만 결코 천박하지도 어색하지도 않은 것은 한국작가로서 그의 두드러진 기량을 아울러 드러내주는 것이 된다. 그의 소묘능력이 화면포치의 묘는 어느 서양화가에게도 결코 뒤설 수가 없으며 더구나 그의 필력은 아마도 당대에 따를 이가 한동안은 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함께한 예수가 있는 이 신앙화들은 1970년 미국 뉴욕 문화센터에 전시되어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 성스러운 예수의 일대기를 많은 외국인들에게 보여주었으며, 큰 감동을 안겨주었다.
 
“나는 그리스도교의 숭고한 희생과 사랑의 정신을 비교적 성공적으로 완성했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나라 화가로는 최초로 말이다. 이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아마도 나를 일깨우시려고 꿈으로 그런 예시를 하였으리라.”
 
 
 
 

댓글 4

  • 2009년 9월 19일 오후 9:57

    대~한~민국!!!!!......대한민국임이 갈수록 자랑스럽다고 느끼는 1인...진정한 예수님의 사랑은 인류에 대한 사랑과 평화...진리는 세계 어디서건..모두 통하게 되어있죠^^

  • 2009년 9월 19일 오후 10:56

    상상해보지 못한 모습이에요...음...상상은 못해봤지만...생각해보니 김대건신부님때의 모습같기도 하네요..^^

  • 2009년 9월 19일 오후 11:01

    헉..갑자기..동양화...적응 안됨...ㅋㅋㅋ...갓..두루마기..바지저고리를 입은 예수님이 오천명을 먹이시다..흠...그려지지는,,않습니다요..ㅋ...박해때 교우촌의 모습이라면 모를까..^^*..그러나,,긍지를 가질 수 있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성화는 될 듯..^^..

  • 2009년 9월 20일 오후 5:09

    글게~동양화라면~김대건신부님 이겠지 생각해보겠지만~~예수님을~~상상이 멀어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