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다 빈치(1494~1497, 이탈리아)가 그린
"최후의 만찬"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게다.
이 그림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이 왜 유명할까?
이 그림에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실험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템페라라는 새로운 안료로 벽화를 그려 그 시대에 혁신을 일으켰다.
또한 원근법과 명암법을 이용해 그림을 그려
마치 입체적인 작품을 보듯 사람들로 하여금 환영효과에 빠져들게 한다.
원근법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머리가 놓이게 하여
어느 곳에서 그림을 보더라도 예수님이 중심에 있다.
또 예수님을 삼각형 구도로 그려 안정감과 긴장감을 동시에 갖게 한다.
게다가 그는 전통적인 구성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형시켰다.
이전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는 그리스도의 반대편에 유다를 그렸는데,
이 그림에서는 모든 인물을 한 평면에 위치시키고
세 명씩 무리지어 구분되도록 하였다.
그리고 인물의 얼굴모습과 역동적인 몸짓을 통해 인간의 감정까지도 묘사했다.
그래서일까?
이 그림에는 분노, 체념, 고통, 충격, 당황, 공포 등의 감정들이 엿보인다.
그림의 배경이 되는 성경 내용은
예수님께서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라고 하신
구절이다(마태 26, 21-22 ; 요한 13, 23-24).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들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최후의 만찬’을 그렸다.
제자들은 세 명씩 네 그룹으로 질서 있게 그려져 있다.
왼쪽부터 사도 바르톨로메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가
첫 번째 그룹이다.
예수님의 말씀에 안드레아가 크게 놀라 손을 펴 들고 예수님을 바라본다.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도 놀라워하며
배반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손으로 가리키고 있다.
바르톨로메오는 배반자가 누구인지 궁금해 두 손을 식탁에 지탱한 채
온몸을 예수님께로 향하고 있다.
두 번째 그룹이 제자들 중에서 중심인물들이다.
왼쪽부터 예수님을 배반한 이스카리옷 유다, 칼을 들고 있는 베드로,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도 요한이 그들이다.
유다는 오른손으로 돈주머니를 움켜쥐고 앞으로 몸을 기울이고 있고,
왼손은 빵과 대접으로 향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손을 대접에 담근 자가 배반자라 했으니까.
또 다른 복음에서는 내가 빵조각을 적셔서 줄 자가 바로 배반자라 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유다의 얼굴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어져 있다.
이제 유다는 일어나 예수님을 떠나 밖으로 나갈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능청스럽게 말한다.
“선생님, 저는 아니겠지요?”
성미 급한 베드로가 유다를 뒤로 밀치며
요한에게 누가 배반할 것인지를 여쭙게 한다.
그리고 그의 왼손에는 칼이 숨겨져 있다.
그의 이러한 돌발적 행동에는 배반자를 자기가 죽이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는 예수님이 체포될 때 칼을 휘둘러 말코스의 귀를 자르지 않았는가?
사도 요한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있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는 유다와는 달리 광채가 있고,
온화한 슬픔이 드리어져 있다.
그리고 그는 슬픔의 전율을 감추기 위해 깍지를 꼈다.
그는 예수님에게 물을 것이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왼편에는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필립보가
세 번째 그룹으로 있다.
토마스는 질문을 하는 것처럼 집게손가락을 세워 들고 있다.
그는 그 손가락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상처 난 옆구리를 확인하리라.
그는 직접 보고야 믿겠다고 말했으니까.
부활에 대한 의심 또한 예수님에 대한 배반행위임을
작가는 말하는 것 아닌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님의 왼편 가장 가까운 곳에서 겁에 질린 얼굴로
양 팔을 벌려 놀라고 있다.
그는 일찍이 자기 어머니를 시켜 영광의 날에
자기와 자기 아우를 왼편과 오른편에 앉게 해 달라고 청하지 않았던가?
그래서일까?
작가는 친절하게도 요한과 야고보 형제를 예수님의 좌우에 앉게 했다.
필립보는 자기의 결백을 증명이라도 하듯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리키며
슬픔어린 눈빛으로 예수님을 애틋이 바라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그룹에는 마태오, 야고보의 아들 유다, 시몬이 있다.
마태오는 배반자가 자기들 안에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
그가 누구일까를 시몬에게 묻고 있다.
유다도 배반자가 자기는 아닐 거라며 시몬에게 이야기 하는 것 같다.
시몬은 배신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는 듯 양손을 쳐들고 있다.
이 그림에는 예수님과 제자들의 머리에 후광을 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예수님 뒤에 있는 밝은 창문이 후광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때는 늦은 오후였다. 빛이 오른쪽 벽에만 가득하니까.
예수님의 운명도 이제 저물어 가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운명 앞에서 갈등을 한다.
그분은 한손으로는 빵을 잡으려 하고 다른 한손으로는 손을 놓는다.
잡을 것인가?
놓을 것인가?
그것이 문제인가 보다.
[출처] 최후의 만찬 - 레오나르도 다 빈치|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