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브란트 ‘라자로의 소생’

2009. 9. 22. 오전 9:05:06

글자

          램브란트. 1630. 판넬. 유화. 96.2 x 81.5cm,

                로스엔젤레스 미술 박물관 소장

 

누구나 자기의 작품 중에서 꼭 간직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렘브란트(1606~1669)는 그가 20대 초반에 그린  “라자로의 부활”

거의 일생동안 간직하고 살았다.


이 그림의 배경은 요한복음 11장 38~44절이다.

예수님께서 비통해 하며 무덤으로 가셨다.

그분은 돌을 치우라고 했다.

삶과 죽음의 만남을 가로막는 돌을 치우라고 했다.

마르타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만류했다.

그분은 믿기만 하면 삶의 향기가 가득하리라는 희망을 이야기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을 치웠다.

그분은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확신에 찬 청원을 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라자로를 나오게 한다.

그리고 그를 풀어 주게 한다.

죽은 라자로를 나오게 하고 풀어 주게 한다는 것이 기발한 발상이다.

죽음이란 가둬놓고 묶어 놓은 결과니까.


이 그림을 지배하는 것은 예수님이지만

그분의 모습에는 의기양양함이 없다.

라자로를 일으켜 세우는 그분의 손에는 힘이 느껴지지만

그분의 얼굴에는 슬픈 그림자가 드리어져 있다.

라자로의 소생으로 최고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발을 맨발로 그렸나 보다.


라자로는 예수님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도 없다.

단지 생명의 기운만 약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의 표정을 보면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하소연하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생을 임종의 관점으로 거꾸로 해석하는 것이 렘브란트의 매력 아닌가?

라자로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두 여인을 예로 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왼편에는 마르타가 어둠 속에서

두 손 모아 정숙하게 기도하고 있고,

그분의 오른편에는 마리아가 빛을 받으며

팔을 벌려 라자로의 부활을 받아들이고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를 왼편과 오른편,

어둠과 빛,

손을 모음과 팔을 벌림이란 소재로 대조를 이루게 하는 것도

그의 탁월한 발상이다.


또 마르타 쪽에 어울리지 않게 걸려 있는 칼과 활도 특이한 발상이다.

칼과 활은 무엇인가?

남을 죽이는 무기들이다.

남을 죽이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도 죽는다.

우리를 암흑 속에 묻히게 한다.

그래서 그는 칼과 활을 어둠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게 했나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빛의 중앙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마리아이다.

팔을 벌려 부활을 받아들이는 마리아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부활의 빛을 전한다.

결국 부활은 자기폐쇄가 아니라 자기개방을 통해 이루어짐을

그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 아닌가?  

 

댓글 15

  • 2009년 9월 22일 오전 9:08

    고흐가 영향받은 렘브란트의 그림

  • 2009년 9월 22일 오후 5:10

    라자로가.....마더 테레사수녀님같으...^^;;;;;...

  • 2009년 9월 22일 오후 5:12

    그림 설명이 없나보다.....예수님 옆에 있는 흐릿한 영상은 무엇일까...오른쪽 붉은그림의 정체는....얼굴이 가장 빛나는 여인은 마르타겠지...?....성화가..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음을 아니,,궁금하다..무엇하나 그냥 그려졌을 리가 없을텐데...^^*

  • 2009년 9월 22일 오후 8:08

    저 라자로는 정말 미라같은 죽은 송장의 모습인데... 어쩜 저리도 표현을 잘했을까?

  • 2009년 9월 22일 오후 9:57

    어~설명이...띵~~ㅋㅋ 볼수록 궁금??

  • 2009년 9월 23일 오전 1:35

    그 환한 밝은 빛을 받고 있는 여자가 마리아였군요....칼과 화살도 궁금했었는데...성경다시한번 읽어 보렵니다.^^

  • 2009년 9월 23일 오전 7:22

    요한복음 '라자로를 살리시다'에 보면,,무덤 앞에서 돌을 치우라셨을 때,,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냄새가 난다며 만류한 것이 마르타이지요..동굴 앞에서는 마리아가 언급되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기에,,가장 놀라며, 그래서 가장 밝게 그려진 것이 마르타인줄 알았는데...그 마르타가..저 흐릿한 영상이었던 말야?...흠..역시,,성화는 해설을 들어야 해...

  • 2009년 9월 23일 오전 7:26

    이콘을 보는 방법..에 썼듯이,,나는 그림의 '밝기'를 젤 먼저 보는데,,마리아의 얼굴이,,주님의 팔보다 더 밝은 것 같아서,,왜그랬을까,,했더니...'부활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상징'이었구나.....

  • 2009년 9월 23일 오전 7:32

    그렇더라도..왜,,부활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의 상징을....라자로의 부활을 누구보다 기뻐했을 마르타로 삼았을까..?.....라자로가 부활하는 순간에 왜 마르타가 어둠속에...연관이 있든없든,, 칼과 활 옆에 있게 했을까...껑충껑충 뛰어도 모자랄 마르타를.....다른 사람으로 상징했어도 좋았으련만.....그러고보면,,마르타는..사람들에게 '좋은메시지'를 강하게 주기 위한 이름인가,,싶다...

  • 2009년 9월 23일 오전 8:53

    오잉? 그러네...나도 당근 마르타구나 했었는데...

  • 2009년 9월 23일 오전 8:53

    39 예수께서 "돌을 치우시오" 하고 말씀하시자 죽은 이의 동기 마르타가 "주님,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 하고 여쭈었다

  • 2009년 9월 23일 오전 8:53

    이렇게 성서속에서는 사건당시 주님옆에 있던 자매는 마르타였는데...

  • 2009년 9월 23일 오전 8:58

    그니깐 말야...그러니..성경 속의 인물..이라기보다는,,'상징의 이름'이 아닌가 싶어...

  • 2009년 9월 23일 오전 10:03

    마르타가 주님이라고 믿기는 했었지만...설마 죽은 이를 살리시는 분일까라는 의심이 있었나보네요..그걸 암시하는건 아닐까요..마리아처럼 순수하게 믿고 받아들이는 이들이 부활을 받아들인다 이런 의미로 생각하렵니다....제가 생각한 마르타는 지극히 현실적이니까요.^^

  • 2009년 9월 23일 오후 10:52

    이콘이 비슷하더라도 해석내용에 따라 느껴지는 관점이 달라지네~~어둠속에 있어서 죄인인줄~ㅋㅋ 해설은 꼭 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