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램브란트. 1630. 판넬. 유화. 96.2 x 81.5cm,
로스엔젤레스 미술 박물관 소장
누구나 자기의 작품 중에서 꼭 간직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렘브란트(1606~1669)는 그가 20대 초반에 그린 “라자로의 부활” 을
거의 일생동안 간직하고 살았다.
이 그림의 배경은 요한복음 11장 38~44절이다.
예수님께서 비통해 하며 무덤으로 가셨다.
그분은 돌을 치우라고 했다.
삶과 죽음의 만남을 가로막는 돌을 치우라고 했다.
마르타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고 만류했다.
그분은 믿기만 하면 삶의 향기가 가득하리라는 희망을 이야기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돌을 치웠다.
그분은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확신에 찬 청원을 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라자로를 나오게 한다.
그리고 그를 풀어 주게 한다.
죽은 라자로를 나오게 하고 풀어 주게 한다는 것이 기발한 발상이다.
죽음이란 가둬놓고 묶어 놓은 결과니까.
이 그림을 지배하는 것은 예수님이지만
그분의 모습에는 의기양양함이 없다.
라자로를 일으켜 세우는 그분의 손에는 힘이 느껴지지만
그분의 얼굴에는 슬픈 그림자가 드리어져 있다.
라자로의 소생으로 최고의회는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했으니까.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발을 맨발로 그렸나 보다.
라자로는 예수님을 알아채지 못한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도 없다.
단지 생명의 기운만 약간 맴돌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그의 표정을 보면 사는 게 왜 이리 힘드냐고 하소연하는 것 같다.
이제 그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 같다.
소생을 임종의 관점으로 거꾸로 해석하는 것이 렘브란트의 매력 아닌가?
라자로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다.
새로운 삶으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다시 무덤 속으로 들어갈 것인가?
재미있는 것은 그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있는 두 여인을 예로 든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왼편에는 마르타가 어둠 속에서
두 손 모아 정숙하게 기도하고 있고,
그분의 오른편에는 마리아가 빛을 받으며
팔을 벌려 라자로의 부활을 받아들이고 있다.
마르타와 마리아를 왼편과 오른편,
어둠과 빛,
손을 모음과 팔을 벌림이란 소재로 대조를 이루게 하는 것도
그의 탁월한 발상이다.
또 마르타 쪽에 어울리지 않게 걸려 있는 칼과 활도 특이한 발상이다.
칼과 활은 무엇인가?
남을 죽이는 무기들이다.
남을 죽이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도 죽는다.
우리를 암흑 속에 묻히게 한다.
그래서 그는 칼과 활을 어둠 속에서 유난히 돋보이게 했나보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빛의 중앙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마리아이다.
팔을 벌려 부활을 받아들이는 마리아가 이 그림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그녀는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부활의 빛을 전한다.
결국 부활은 자기폐쇄가 아니라 자기개방을 통해 이루어짐을
그는 우리에게 말하는 것 아닌가?
[출처] 라자로의 부활 - 렘브란트|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