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유혹
산드로 보티첼리(1445~1510, 이탈리아)는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신비로운 화가이다.
금세공으로 시작해 필리포 리피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견습생활을 했던 그는 신화를 소재로 한 알레고리와
종교적인 상징이 가득 담긴 신비로운 작품들을 창조했다.
그가 그린 “그리스도의 유혹”은 마태오 복음 4,1-11을 소재로 했다.
예수님께서는 악마에게 유혹을 받으신다.
첫 번째 유혹은 상단 왼쪽의 장면이다.
수도복을 입은 유혹자가 그분께 다가와 돌을 가리키며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하고 말한다.
이에 예수님께서 유혹자에게 손짓하며 말씀하신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
그런데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님을 통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예수님은 세 천사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
두 번째 유혹은 성전 꼭대기에서 이루어진다.
성전 꼭대기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다.
성전 꼭대기는 하느님 꼭대기란 말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혹자는 성경말씀을 인용해 예수님을 유혹한다.
성경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유혹자는 말한다.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지 않소?
그분께서는 너를 위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리라.
행여 네 발이 돌에 치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이에 예수님께서는 유혹자에게 냉정하게 응수한다.
“성경에 이렇게도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
그래서 예수님의 손짓이 마냥 차갑게 느껴진다.
세 번째 유혹은 상단 오른쪽의 산꼭대기에서 이루어진다.
악마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들의 발아래에는 바다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가 있고 성전이 있으며,
식스투스 4세 교황이 지은 성령병원이 있다.
악마는 말한다.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그러자 예수님은 단호히 거절한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그래서 예수님은 악마를 쫓아내고 있다.
악마는 수도복을 벗어버리고 허공에 몸을 던진다.
그리고 천사들이 다가와 식탁을 차리고 성찬을 준비한다.
이 성찬의 식탁이 바로 중앙의 번제의식과 연결된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그림의 중앙에는 제단이 있고, 제단에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그리고 대사제는 시종이 봉헌하는 어린양의 피를 나뭇가지로 적시고 있다.
이제 대사제는 피의 반은 제단에 뿌리고, 피의 반은 사람들에게 뿌릴 것이다.
이로서 백성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것이다.
그런데 어린양의 피를 봉헌하는 시종이 바로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기의 피를 봉헌하고 있다.
이는 새롭고 영원한 계약을 맺는 예수님의 피요,
죄를 사하여 주려고 인류를 위하여 흘릴 구원의 피다.
그래서 시종은 순결을 상징하는 눈처럼 빛나는 하얀 옷을 입고 있는가 보다.
그분은 세상의 죄를 깨끗이 없애주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니까.
그런데 대사제가 삼중 관을 쓰고 있다.
또 대사제 주변에는 교황가문의 문장 상징인 금빛 참나무 잎으로 장식된
감청색 외투를 입고 있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구약의 대사제가 지금의 교황이요,
또 아론의 자손들이 지금의 교황의 가족들임을 암시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예수님 주변에는 다수의 고위 성직자들이 있다.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사람들이 사제요,
붉은 옷에 붉은 모자를 쓴 사람이 추기경과 주교다.
이것은 예수님의 희생제사가 사제들을 통해
지금 이루어지고 있음을 예시하는 것 아닌가?
또한 오른쪽 하단에 한 여인은 머리에 나무다발을 이고 있고,
한 아이는 포도송이를 가득 안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그 여인은 푸른색 겉옷과 흰색 속옷을 입고 있지 않은가?
희생제사는 한 여인의 순결로 봉헌되어 하늘에까지 닿는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여인은 화가가 즐겨 그린 성모님과도 같고
미의 여신 베누스와도 닮았다.
또 한 아이의 포도봉헌은 포도주가
예수님의 피로 변하는 성체성사의 예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왼쪽 뒤쪽에서 머리에 닭 두 마리를 이고
제단으로 달려오는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10년 전에 그린 “베툴리아로 귀환하는 유디트”의 시녀 모습과 같다.
단지 머리에 이고 있는 물체가 홀로페르네스가 아닌
닭 두 마리라는 사실이 다를 뿐이다.
‘귀환’과 ‘닭’이 의미하는 것은 회개이다.
그래서 제단의 끝에 사도 베드로가 요한과 함께 하늘을 쳐다보며
고개를 내밀고 있는 것이다.
성체성사의 전제조건은 회개이니까.
그렇다면 왜 화가는 악마의 유혹을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와 연결시켰을까?
악마의 유혹은 무엇인가?
하느님을 내 삶에서 떼어놓는 것이다.
하느님 없이 내 뜻대로 사는 것이다.
이것이 원죄요, 하느님의 뜻을 거역한 아담의 죄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희생 제사를 통해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자
당신의 목숨까지 바치신다.
하느님 뜻대로 당신 피를 봉헌하신다.
이것이 하느님과 하나 되는 삶이다.
그럴 때 악마는 우리에게서 떠난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는 것은 성찬뿐이다.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것인가?
아니면 성찬의 잔치에 머물 것인가?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것이다.
[출처] 그리스도의 유혹 - 산드로 보티첼리|작성자 그림 읽어주는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