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마리아 사람 - 야코포 바사노

2009. 9. 27. 오후 10:27:08

글자

야코포 바사노(1510/15~1592, 이탈리아)는 후기 르네상스 시대의 베네치아파 화가이다.

그는 화가의 아들로 태어났고, 그의 네 아들도 모두 화가였다.

이 그림은 루카 복음서 10장 29~37절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 이야기’ 가 배경이고,

이야기의 근본 취지는 누가 이웃인지 알려 주는 데 있다.


이 그림의 등장인물은 네 사람이다.

그중 두 사람은 전면에 크게 묘사되었고,

나머지 두 사람은 후면에 작게 뒷모습만 그려졌다.

크게 그려진 두 사람이 바로 중심인물이다.

한 사람은 강도를 만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강도를 만난 사람은 알몸이다.

그는 모든 것을 빼앗겼다.

머리와 발에는 피를 멎게 하기 위해 응급처치로 천을 두르고 있다.

그런데 그가 빛을 가장 많이 받고 있지 않은가?

이것은 상처 입은 사람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님임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

그래서 그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처럼 알몸에 수건만을 걸치고 있다.

그리고 머리에 쓴 천의 모양도 가시관처럼 보인다.


강도를 당한 사람을 부축하는 사람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다.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은 서로 적대관계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강도를 만난 유다인을 도운 것이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한 것이다.

그래서 이 사마라아인을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옷 색깔 역시 사랑과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색이다.

그는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리는 제자처럼

강도를 당한 사람을 정성스럽게 모시고 있다.

그는 이제 상처 입은 사람을 자기 거처에 모실 작정이다.

그런데 왜 그의 허리에는 단검이 있을까?

이는 원수관계였던 유다인을 칼로서가 아니라 사랑으로 응하는

그의 행동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 아닐까?

이로써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예수님의 참 이웃이 된 것 아닌가?


그러나 그의 동족인 다른 두 사람은 그를 지나쳐 가버린다.

그 두 사람은 가장 거룩해야 할 사제와 레위인이다.

그 중 한명은 두루마리 성경을 품에 안고 있지 않은가?

성경을 품에 간직하고 있기만 한 그의 행동을 화가는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제와 레위인은 이슬처럼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그들의 옷 색깔 역시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색이다.


한편, 후각이 발달된 개 두 마리가 강도를 당한 사람의 피를 핥고 있고,

노새 한 마리가 그를 실어 나르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피를 빨아 먹는 개가 유다인이고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는 노새가 이방인임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그래서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쳐지나간 유다인은 이슬처럼 사라지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이웃이 되어 준 이방인이 새로운 교회의 주인이 됨을

암시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일까?

세례 때 쓰는 기름병이 눈에 띄게 놓여 있다.

기름은 상처를 싸매 주기도 하고,

구원의 상징이기도 하니까. 

댓글 3

  • 2009년 9월 28일 오전 9:36

    내 이웃의 도움을 외면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갈고닦고...해야할듯..

  • 2009년 9월 28일 오후 1:04

    강도 당한 이가 수난당한 예수님같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그리고 붉은 옷을 입은 이는 요한 같기도 하고...

  • 2009년 9월 28일 오후 7:09

    "이것은 상처 입은 사람이 바로 우리 곁에 계시는 예수님임을 말해주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