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왜 내가 사제에게 고해해야 하는가?"
이 물음은 하느님의 은총을 분배하는 교회의 역활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또 구원신앙의 위기를 드러낸다. 그 위기는 바로 교회
안에서 교회를 통해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공적인 손길이 내게서
사적으로 나아가는 하느느님의 손길과 구별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와 교회를 서로 별개로 여겨선 안된다.
교회란 " 시간 속에 계속 살아계신 그리스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해서 행하고 있다 . 예수님은 교회와 교회의 성사를 통해서
일하신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손길은 표징과 말씀안에서
우리 눈에 드러난다.
그런데 사람인 우리들이 사적이고 개인적인 신심으로 이 같은
성사를 대체하는 잘못을 저질러선 안 된다. 개인적인 기도, 기도 중에
개인적으로 용서를 청함, 회심을 위한 내 각오가 성사를 대신 할 수는
없다. 그것들은 성사를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일 뿐이다.
혼자힘으로 잘못을 씻고 하느님께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성경 말씀에도
완전히 어긋난다.
구약시대에도 사람들은 " 사적" 으로 하느님과 화해할 수는 없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그를 대신할 속죄의 희생제물을 사제를 통해 주님께
가져감으로써 용서받았다. 구약의 여러 가지 제사는 신약의 희생제사
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산의 희생제사는 우리에게 구원과 죄의 용서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부활하신 분이 구원의 첫 열매인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하는
전권을 주시면서, 우리가 그분의 구원의 선물의 몫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드러내 주섰다.
" 아무도 고해하러 오지 않는다 해도 고해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제가 바로 하느님의 참을성 있는 자비심의 증거이며 모범이다. 하느님의
자비는 사람을 기다리고, 모든이에게 지치지 않고 화해와 치유와
평화를 제안한다.
카플란 필러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