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 토지 1부 와닿은 구절 메모

2015. 1. 9. 오후 7:06:42

글자

토지 1부 2권

21쪽 : “사람이 존엄하다는 것을 용이놈은 잘 알고 있지요. 그놈이 글을 배웠더라면 시인이 되었을 게고 말을 타고 창을 들었으면 앞장섰을 게고 부모 묘소에 벌초를 할 때마다 머리카락에까지 울음이 맺히고 여인을 보석으로 생각하는, 그렇지요. 복 많은 이 땅의 농부요”

(치수가 준구에게 용이를 소개하는 말)

63쪽 : 용이는 스스로 외톨이가 되어 좀체 친구들하고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76쪽 : 결국 십 년 이십 년 세월 동안 윤씨 부인은 어느 편에도 기울 수 없는 저울의 추가 되어 살아왔었다. 치수의 눈을 피하여 환이를 도망가게 하면서도 피신처까지는 마련치 못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121쪽 : 귀녀는 그렇다. 귀녀는 신성한 처녀성을 한 사나이에게 바치기 위하여 목욕재계를 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자수당 미륵불에게 뜨거운 소망을 기원하기 위하여. 음란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 거짓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 살인도 이 여자에게는 죄가 아니었다. 오로지 소망을 들어달라는 다짐만이 간절했을 뿐이다.

130쪽 : “흥, 언제는 제집한테 미쳐서 내 눈에 피눈물 나게 허더니만 이자는 일에 미쳤고나. 제집한테 미친 유가 아니고나! 이거는 머 열 첩 둔 것보다 더하네 더해!”

(강청댁이 용이를 두고 한 말)

...치수, 수동, 강포수... 사냥 시작..

306쪽 : 총성이 산을 울렸다. 울림이 그냥 울리고 있는데 선불을 맞은 산돼지는 산등성이를 향해 방향을 돌리고 창과 같은, 꾸부러진 이빨이 달려오는 것이다. 무심히 서 있던 치수는 땅에 엎드렸다. 그것은 순간이었다. 눈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참사였다. 핏자국을 남겨놓고 산돼지는 간 곳이 없고 비명이 난 곳으로 달려갔을 때 수동이의 찢겨진 바지 사이에서 분수같이 피가 치솟고 있었다. (선불 맞히다:섣불리 건드려 화근을 만들다)

 

토지 1부 3권 : 26쪽

어떤 포수가 사냥 길에 노루를 만났다. 포수를 보고도 노루는 도망을 가지 않았다. 슬프게 쳐다보는 노루에게 망설임 없이 총을 들이대는데 노루는 두 발을 들고 흔들어 보였다. 그것은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시늉인 것 같았다. 이상하게 여긴 포수가 자세히 살펴보니 노루는 새끼를 낳고 있는 중이었고 그러나 욕심 많은 포수는 그예 총을 놓아 노루를 잡았다. 노루를 떠메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집 앞 채마밭에 또 한 마리의 노루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포수는 재수 좋은 날이라 생각하며 그 노루도 거꾸러뜨렸다. 신이 난 포수는 마누라를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웬일이냐? 마당에도 노루 한 마리가 우뚝 서 있었다. 포수는 화약을 급히 재어 그 노루마저 쏘아 거꾸러뜨렸다. 그러나 채마밭에 노루로 보였던 것은 그의 마누라였고 마당에 노루로 보였던 것은 그의 자식이었다.

222쪽: 들에 곡식은 만수판인데 금년에는 묵을 사램이 없일 기라 하더란다.

 

토지 1부 4권

73쪽 : 어느 새 햇빛은 맥 빠진 것처럼 엷어졌다. 한 뭉치 내려앉았던 구름이 미심쩍더라니, 찌푸린 잿빛 구름 속으로 해가 숨어버린다. 간신히 구름을 뚫은 햇빛이 비비적거리듯 둔하게 들판을 비춰준다. 바람이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었다. 검푸르게 자라난 벼가 이리저리 미친 것처럼 나부댄다. 숲의 나뭇잎들이 희끄무레한 뒷 잎을 뒤집어 보이며 방향을 잡지 못한 바람에 시달리며 흔들린다. 한줄기 소나기가 뿌릴 모양이다.

135쪽 : 병수는 대숲 속에 난 오솔길 초입에서 오른편으로 걸음을 꺾는다. 그곳은 길이 아니었고 바로 대숲 속이지만 담장이 연이어져 대나무는 드문드문하고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곳이다. 마른 댓잎이 발밑에서 와삭와삭 바스라지는 소리를 낸다. 담장을 따라 한참을 가던 병수는 걸음을 멈춘다. 얼굴에 부드럽고 약간은 장난스러운 미소가 다시 지나간다. 담장 가까이로 행복해진 얼굴을 가져간다. 담벽 흙이 좀 허물어진 곳에 돌과 돌을 맞물린 사이에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나 있다. 그 구멍에 한쪽 눈을 바싹 갖다 댄다. 한쪽 눈에 비친 곳은 별당 뜨락이다. 해당화 잎이 아랫도리를 가렸으나 별당 전부가 보인다. 마루가 있고 마루 안쪽에 방이 있고 마루 곁에 있는 툇마루가 달린 큰 방이 서희의 거실이다.....중략.... 용수철같이 튀면서 돌아섰다. 노기에 찬 길상의 눈이 쏘아보고 있었다......“와 이런 짓을 하시오?” “너, 너무 이뻐서.”..... 병수에 비하면 거인같이 키가 큰 길상이 어두운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사색이 되었던 병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고 그 핏기는 얼굴에서 목덜미까지, 봄을 알기에는 아직 부드럽고 연약한 살갗이 해당화꽃빛으로 물든다......병수는 흐느껴 운다.

224쪽 : ‘지가 우찌 내 맘을 알기고, 화냥기는 어디 지한테 있었나? 나한테 있었지. 지가 울고 내리가지 않았이믄 오히려 내가 낫을 놓고 덤비들었을 긴데.’.....

‘책임도 질 수 없임서 우찌 내가 지 신세를 망칠 수 있단 말고, 나를 원망하고 나를 죽일 놈이라 생각하는 편이 낫지.’

349쪽: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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