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2014. 2. 24. 오후 6:04:39

글자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억압 속의 자유

김미경

 

생존을 위한 사투이다. 10년 25년 감옥살이가 마치 고무줄처럼 늘어난다. 슈호프의 끈질긴 생명력이 마음을 움직인다. 아울러 동료애의 실현과 주어진 과업에 대한 신나는 일처리 등은 비록 수용소이지만 일반 사회와 다를 바 없이 아름답다. 성경을 들고 사는 알료샤 역시 삶의 한 방편이다. 그러나 알료샤의 삶이 보편화되기 어려운 까닭은 그의 신앙으로 먹을 게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먼저 먹어야 산다. 영적인 기쁨과 영적 배부름에 대한 갈망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들은 육의 배부름과 육의 휴식이 먼저다.

‘이반 데니소비치(슈호프)’에게 주어진 하루가 이렇게 길진대 우리 삶의 하루는 어떠한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사투를 벌일 필요도 없이 이미 주어진 따뜻한 방과 자유로운 시간, 매일 일용할 충분한 양식과 직장 그리고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반에 비하면 부족한 것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본인의 지나친 갈망으로 인해 한없이 결핍되어 살아가곤 한다.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언제든지 대중교통이 모셔다 준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어딘 두 발로 걸어가 만날 수가 있다. 인터넷까지 연결되어 세계 곳곳의 소식을 다 알 수가 있다. 공공도서관에 가면 얼마든지 시대를 초월한 사상과 지혜를 만날 수 있다. 또한 영화를 통해 상상의 세계도 실감나게 오갈 수 있다. 나와 너의 깊은 만남을 위해 인내하고 견디며 기다리는 세월도 오히려 달콤하기까지 하다.

작품 속 배경과 상대적인 풍요로움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깨닫는다. 이제 이 풍족한 자유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 것일까? 매일 다가오는 삶의 이면을 볼 수 있다면 이 책을 만난 보람이 될까? 멋진 인생을 가꾸는 일... 극한 속에서도 지킬 도리를 아는 작품 속의 추린, 슈호프, 알료샤 등처럼 살아가는 일일까? 앞으로 주어진 삶에 불평거리가 모두 사라질 것 같다. 완벽한 자유, 지금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무엇을 선택하든 모두 자율 의지에 의한 것이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매어 있지 않으니 말이다. 가족도 짝사랑하는 사람도 직장도 학업도 몸도 마음도 온전히 평화롭고 자유롭다. 내일 문학모임에 나가는 일조차도 선택의 자유이고 만남도 자유이다.

솔제니친에게 묻고 싶다. “작가님, 강제노동수용소 생활을 8년 하시면서 작가님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무엇이었어요? 극한의 삶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갈 의미가 있었을 거 같은데요.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동력이 크셨나요? 물리와 수학을 전공하셨는데도 글을 쓰실 생각을 하셔서 놀라워요. 작가님은 체제 비판적인 삶을 통해 정체되지 않고 흐르는 물처럼 생동감 있게 살아가셨을 걸로 믿는데요. 그 원동력이 무엇이었나요? 얼마 전 러시아인 여섯 명을 아주 가까이서 관찰한 적이 있어요. 그들은 무척 점잖았어요. 정적으로 보였고요. 무언가 엄청난 깊이와 무게를 한 사람 한 사람 이면에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작가님도 그러셨나요? 작가님의 마음에 파란 바다가 담겨 계셨나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의지는 어느 만큼이었나요? 작품 전체를 읽고 나서도 감정은 무척 절제되어 느껴지지 않더군요. 놀랍기만 했어요. 6.25때 저희 아버지 형무소 생활을 상상할 계기가 되어 소름 끼쳤어요. 하지만 갇힌 자들에 대한 긍정적 의미를 갖고 있기에 저에게 이 작품은 좋은 영향을 주었어요. 감사해요. 솔제니친 작가님” 끝. (2014.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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