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세계문학대전집 33 체홉단편집희곡집 중에서...<6호실>
김미경
<6호실>을 읽고 마음이 막막하다. 어떻게 인생이 이토록 허무할 수 있단 말인가, 삶의 향락이란 게 오직 독서였던 한 사람에게 인생의 마무리 모습은 그토록 처참한 몰골이어야 했나? 젊어서부터 의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환자 병치료와 회복에 온전한 관심을 가졌더라면 그의 노후가 그렇게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또한 친구 우체국장과의 진정한 우정을 쌓지 못해 왔음에 대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친구의 역할이 마지막에 가장 결정적인 한 방이었기 때문이다. 절망이라는 깊은 병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안드레이를 미하일이 진정 휴양의 기회로 이끌었더라면 서로에게 깊은 우정이 쌓이고 부활의 행복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하일은 오히려 병든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 건강할 때 쌓는 진정한 우정이 아플 때 어떻게 작용하게 될 지까지 고려해 볼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다.
나아가 이반 드미트리치 역시 삶의 문제를 건강하게 얼마든지 해결해 갈 수 있는 사람인데 갇히게 되어 젊음과 재능을 6호실에서 평생 썩혀야 했음에 안타깝기만 하다. 이반 드미트리치의 살아 있음을 발견해 준 사람 역시 안드레이 에피므이치였다. 이 둘의 만남은 위험하지만 그럼에도 살아 있음을 서로에게 느끼게 해주는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6호실>을 완독하고 한없는 슬픔이 밀려오는 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도 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며 누구도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다. 물론 그 유형은 다르고 갇힘의 공간이 비록 병원은 아닐지라도 심리적인 감옥 안에 갇힌 무수한 사람들의 아픔을 통감하게 된다. 나아가 이런 아픔을 모두 알고 있는 신께서 한없는 자애와 사랑으로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시려고 다양한 천사들을 보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건 아니건 분명한 것은 구원에 대한 갈망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이다.
아주 긴 시간 동안 병원에 누워본 사람들은 이 책을 읽고 공감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이 세상의 건강한 사람들의 편견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들의 편견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지 명확한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평화, 마음의 평화를 갖고 희망적으로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가 그 분별의 기준이 될 것 같다. 작품 안에서도 이반 드리트리치도 피해망상으로 불안해 하였고, 안드레이 에피므이치도 절망 상태로 평화를 잃었다.
그런데 이들에게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갇히는 병동이 아니라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모를 리 없다. 옆에서 꾸준히 진심으로 간호하고 사랑할 때 어떤 병도 호전되리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갇힐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렇게 전심으로 사랑하고 돌볼 여유가 바쁜 현대인에게 없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이들에게 신앙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 역시 견디기 힘든 문제 상황 앞에서 무릎 꿇고 기도할 대상이 있었기에 병동에 갇히지 않을 수 있었다고 고백한다. 10대 시절의 죽음과 무서운 폭력 앞에서의 공포와 20대 시절 노동 현장에서의 살인적인 고통을 뛰어 넘을 수 있었던 힘은 신앙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힘든 문제 상황은 많이 오고 있지만 신은 그때그때 천사를 보내 주시거나 헤아릴 수 없는 깊은 사랑으로 생명력을 회복시켜 준다.
<6호실>을 만나게 되어 반갑고 고맙고 기쁘다. 투르게네프나 솔제니친 등의 작품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심연의 고통이 계속 마음을 잡아끌고 있다. 현실에서 앞으로 필자의 삶에서 뿐 아니라 주변에 함께 하는 소중한 사람들에게서 공감하게 되겠지만 이제 비로소 그 고통으로부터 절망으로부터 거리를 유지하며 그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 악수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할 여유가 생길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체홉은 필자에게 생의 깊은 이면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 주었고 한 계단 높은 곳으로 나를 이끌어 주었다. 이 모든 것을 알고 이끄신 분께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이다. (2014. 3.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