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도스토옙스키)

2014. 1. 30. 오후 7:15:46

글자

 도스토옙스키의 <가난한 사람들> 문학모임 준비를 위해 쓴 글

  진정한 소통방식에 대한 고찰

불광중 사서 김미경

편지는 사랑을 이어주는 끈이다. 그러나 사랑 자체는 아니다. 편지를 수백 수천 통 주고 받은 것보다 단 한두 시간 진심으로 만나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마까르 제부쉬낀이 바르바라를 향해 삶을 긴 문장으로 표현하고 진심을 다해 사랑을 나타냈지만 그건 손바닥이다. 손등은 드러내지 않고 한 부분만 보인 것이다. 편지는 얼마든지 조작될 수도 있다. 마음 안에 악마와 천사가 다툼하여도 편지는 천사만 나타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둘의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편지가 아닌 곁에 있는 행동이 있었어야 했다. 함께 호흡하고 손잡고 위하는 삶만이 영원한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 서로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라면 편지로 몇 년을 이어진다한들 반드시 그 관계는 끝날 위기에 처하게 되어  있다. 편지는 사랑을 이어줄 뿐 사랑 자체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바르바라는 병든 몸이다.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 와중에 편지는 열정적으로 주고받는다. 차라리 그 열정으로 일을 하였더라면 둘의 관계는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바르바라가 비꼬프 씨를 선택하는 것으로 결말지어진 소설이 다소 억지스러웠지만 작가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어쩌면 편지라는 소통방식은 결코 진실한 만남이 될 수 없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작품속으로 들어갈 수만 있다면 바르바라에게 편지로 소통하는 걸 멈추라고 말하고 싶다. 편지 소통의 한계를 누구보다 뼈아프게 체험한 사람으로서 편지는 사랑을 키우기보다 오해를 키우는 방식임을 널리 알리고 싶다.

마까르 제부쉬낀도 나름대로 열심히 사는 사람일테지. 그러니 책도 읽고 무언가 삶의 의욕을 채워줄 연인으로 바브바라를 선택해 편지를 주고받았을 터이다. 그런데 40대 중후반을 바라보는 나이로 어린 처녀 바르바라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를 자각했어야 할 것이다. 편지를 보내면서 사랑타령을 할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먼저 추스르고 건강을 되찾은 후 바르바라가 건강할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배려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그녀를 사랑한다면 그녀를 자유롭게 해 주었어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의 편지로 그녀를 옭아맨 것은 그의 욕심이라고 본다.

도스토옙스키를 작가로 키웠을 처참한 수용소 생활은 극한을 통해 신을 만나거나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는 체험이었을 것이다. 단지 병상 생활 한두 달만 해도 인간은 자신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 어두운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볼 자세를 취한다. 그런데 4년이라는 긴 세월을 감옥에서 비인간적으로 갇혀 지냈다는 것은 이미 그는 존재의 가장 중심과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신앙인의 입장에서 보면 ‘지성소’라는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공간에 의식이 닿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하늘로 통하는 통로가 열렸을 수도 있고, 인간의 영혼을 꿰뚫는 ‘영혼방사선’ 같은 걸 체험했을 수도 있겠다.

20대 중반에 만난 <가난한 사람들>은 가슴 설레며 읽던 사랑소설이었다. 그런데 40대 중반을 넘어 만난 이 작품은 사랑소설이 아니라 어쩌면 인간의 탐욕소설은 아닌가 싶은 생각이 앞선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둘은 편지를 주고 받는다. 하지만 편지라는 소통방식 자체가 현실적으로 가까이 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선을 넘는 은밀한 소통방식이다. 그 이면에는 이룰 수 없는 탐욕이 존재하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결국 선택하는 것은 결별이다. 이별을 뛰어넘는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우리들 역시 요즘 SNS가 발달하여 여러 방식으로 소통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다. 등잔을 이불 속에 두지 않는 것처럼 둘의 소통이 아무리 은밀하고 달콤하여도 반드시 드러난다. 세상에 밝혀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본인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세상에 공표할 수도 있는 일이다. 즉 편지나 SNS는 관계의 지속성에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혹자는 진정한 소통은 눈을 바라보는 직접 대면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직접 소통만큼 관계를 결속하는 것도 드물다. 그럼에도 필자는 침묵소통이 주는 놀라운 결속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침묵 소통은 진실하지 않으면 계속될 수 없다. 침묵 중에 진실로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사랑하는 마음 위에 신의 은총과 축복도 함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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