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톨스토이)

2014. 1. 18. 오후 3:45:12

글자

 [문학모임 4차:부활]                        

                                       사랑을 일깨우는 자가 되자

불광중 사서 김미경

  부활! 이 낱말 앞에서 잠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해마다 부활절을 맞이하며 서로 부활을 축하해준다. 이는 서로의 내면에 있는 사랑을 일깨우는 행위이다. 진정한 부활은 인간 안에서의 내적 변화를 뛰어 넘는다. 왜냐하면 부활은 그리스도의 죽음 이후에 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부활의 전제조건은 ‘죽음’이다. 이 세상의 삶에서 나와 너의 관계에서 죽음이 없이 부활은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작가는 인물들을 통해 어떤 변화를 희망했을까? 러시아 사회 구조의 부당함이나 모순 등을 지주와 농민을 통해 읽을 수 있다. 아울러 정치의 부패함을 수용소에 갇힌 정치범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작가가 추구하는 유토피아는 무엇이었을까? 러시아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한 내면세계를 가졌을지 짐작이 간다. 수용소 내부에서 오가는 대화들이 상당부분 의식이 깨어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다. 오히려 공작이나 귀족들의 대화는 마치 굳어버린 시멘트 같다. 특히 네흘류도프 누나와 매형 그리고 코르자킨 등의 인물됨은 우리나라 고집스러운 어르신의 예를 보는 것 같다.

  네흘류도프가 위선을 끊고 내부의 거룩하고 참다운 자기와의 만남을 꿈꾸는 모습에 공감이 간다. 타락의 밑바닥에서도 사람은 달라질 수 있다. 그 변화의 힘은 바로 사랑이라고 톨스토이는 말한다. 아울러 카추샤를 새사람으로 만들고자 하는 게 아니고 자신을 새 사람으로 만들려 한다는 네흘류도프의 말에서 진정한 변화를 갈망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카추샤의 경우도 비슷하다. 어린 나이에 임신을 하여 비참한 인생길에 들어선 후로 줄곧 낙망하지 않고 생존력을 갖고 살았다는 것이 위대하다. 아울러 네흘류도프에 대한 사랑이 깊어 그가 희망하는 것을 무엇이나 자기도 모르게 어김없이 실행하였다는 표현은 공감이 간다. 진심으로 사랑하면 상대방이 희망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도 실행하는 법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왔다. 그냥 사랑의 부름에 응답만 하는 게 아니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기꺼이 사랑을 위해 침묵으로 희생하는 그 마음에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인물들은 자신끼리만 사랑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에서 놀랍다. 네흘류도프는 카추샤만을 위해 산 게 아니라 카추샤 주변의 갇힌 자들을 위한 연민과 감동을 담고 있었다. 카추샤 역시 오직 네흘류도프 한 사람만을 위해 목숨을 건 게 아니라 본인이 수감된 공간에서의 새로운 만남들을 통해 인생의 후반전을 새롭게 가꿔나간다. 이 모습들이 아름답다. 작가는 인물들이 삶을 사랑하여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결론을 지어 주었다. 다만 사회제도적인 모순 부분에서 호흡이 거칠어지긴 했지만 인물의 가치관은 상당히 긍정적인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럼에도 네흘류도프가 카추샤의 선택을 존중하고 떠나오는 장면은 쓸쓸하다.

  작가가 정말 그리고 싶었던 것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다. 수용소에서 처절함과 끈끈한 인간관계 그리고 생존의지, 사회 구조적인 모순과 부조리 이런 걸 그리고 싶어했을 거라고 믿는다. 톨스토이가 바로 옆에 있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작가님, 인생이 변화되는 진실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았을 때임을 깨달으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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