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윤동주
여기저기서 단풍잎 같은 슬픈 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무 가지 우에 하늘이 펼쳐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보려면 눈섭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씃어 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골--- 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이 어린다. 소년은 황홀히 눈을 감어 본다. 그래도 맑은 강물은 흘러 사랑처럼 슬픈 얼골--아름다운 순이의 얼골은 어린다.
<1939> 출처 : 윤동주 시집 8쪽 (세명문화사 간행, 1993)
귀뚜라미와 나와
윤동주
귀뚜라미와 나와
잔디밭에서 이야기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아무개도 아르켜 주지 말고
우리 둘만 알자고 약속했다.
귀뚤귀뚤
귀뚤귀뚤
귀뚜라미와 나와
달 밝은 밤에 이야기했다.
<1938년으로 추정> 출처 : 윤동주 시집 136쪽 (세명문화사 간행, 199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