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냥꾼의 수기(투르게네프)

2014. 1. 25. 오후 11:40:52

글자
 투르게네프 <사냥꾼의 수기>를 만나고                                                김미경

  눈물이 흐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을 만난 것이 감사해서 잠시 울었다. 러시아 자연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리고 그 시절에 이토록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다니 놀랍다. 특히 <시치그로프 군(郡)의 햄릿> 작품을 읽으며 한없이 눈물이 나오고 말았다. 사나이가 소피아를 사랑하여 결혼한 이야기를 읽으며 공감을 많이 했다. 특히 착하고 영리하고 말수가 적고 따뜻한 여자 소피아 이야기를 읽을 때 동질감을 느꼈다. 특히 본인조차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작은 상처가 피를 흘리고 있다는 표현에서 마음 안의 아픔의 끈을 질기게 잡아 당겨 책 속으로 품고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가끔 소피아도 날개를 퍼덕여 신선한 대기 속에서 햇살을 듬뿍 받으며 마음껏 활개를 쳐보기도 했던 모양’이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소피아에 대한 동질감과 사랑의 마음에 눈물이 앞을 가려 더 이상 읽어내려 갈 수가 없었다. 죽음조차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지 못했다는 말을 읽으면서 죽음이 왔을 때의 자세를 생각하게 된다.

<체르토프하노프와 네도취스킨, 체르토프하노프의 최후> 두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사람간의 관계가 끊어지면 죽음이 온다는 사실이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비결이 바로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그리고 자존감은 관계 안에서 회복될 때 비로소 생명이 되고 삶의 원동력이 되겠구나 싶었다. 존재를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마음이 얼마나 필요할지 생각하였고 말조심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한 동안 거리낌 없이 말하고 상처 주던 날들이 아프게 마음을 찌르고 지나갔다. 가장 가까이에 체르토프하노프 같은 사람이 존재한다면 조용히 다가가 관심의 범위를 조금만 더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려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봉사하고 돕는 가운데 형성된 존재감이 얼마나 힘을 주는지 알려주고 싶다.

<밀회>를 읽으면서 소녀의 삶을 자칫 사랑의 노예로 볼 수도 있으나 실은 소녀는 자신의 주체성을 발휘할 힘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그럼에도 그 소녀는 그 나이에 사랑을 나눌 대상이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다. 그리고 부모가 정해준 결혼을 하기 전에 자유연애를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도 다행한 일이다. 사냥꾼이 다가갔을 때 소녀가 나무 뒤로 숨는 장면을 읽으면서 놀란 토끼를 연상하게 되었다.

<시골의사>는 너무나 안타까운 죽음이다. 죽음 앞에서 그나마 붙든 사랑이 존재했음에 감사할 일이다. 환자가 의사를 사랑하는 일은 있을 법한 일이다. 실제로 가장 몸과 마음이 약해진 상태에서 건강한 의사는 사랑의 대상이 가능성이 크다. 죽음 앞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이 세상과의 마지막 씨름을 바라보는 존재 역시 의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렉산드라 안드레예브나’와 시골 의사의 사랑은 ‘생에 대한 의지’를 보여준 예라고 하겠다. 만약 아직 미혼인 내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아마도 이 처녀처럼 가장 사랑하는 사람 한 명을 선택하여 작별인사를 할 것 같다. 그 인사는 이 세상 전체와의 마지막 인사이기도 할 것이다.

*** 앞으로 소설을 쓴다면 투르게네프 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 섬세한 지각력을 본받고 싶다. 인물 인생에 깊은 통찰과 사랑이 깃든 이야기들, 대자연에 대한 경외심, 노인, 고아, 과부에 대한 깊은 관심, 지위가 높은 이들에 대한 비판의식.. 모두 본받고 싶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일반도서 게시판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