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평소 성호를 그으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합니다. 오늘은 성삼위의 하느님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날마다 우리가 고백하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사랑을 삶으로 실천할 것을 다짐하면서 미사를 봉헌합시다.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당신께서 사랑과 용서의 주님이심을 전하신다. 곧 주님께서는 자비하고 너그러우신 분으로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신 분이시다(제1독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 신자들에게 기뻐하고 서로 격려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당부하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이름으로 편지를 끝낸다(제2독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주시고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당신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사람들에게 전해진다(복음).
하루에 몇 번이나 십자 성호를 긋는지 세어 본 적이 있는지요?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수록 십자 성호를 긋는 횟수가 많아집니다. 기도할 때뿐만 아니라 일을 할 때에도 성호를 그으며 시작하고 마칩니다. 초대 교회 때부터 형식은 조금 달랐지만 십자 성호를 긋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 안에 새기는 행위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며 그분 사랑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한순간 한순간 십자가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삼위일체이신 그 사랑의 하느님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겠다는 다짐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삼위일체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어 자신은 무(無)가 되어서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자신을 비우심으로써 성부와 하나가 되신 것이 삼위일체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호를 그으며 주님을 초대하는 것은 주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비우고 없애 대상이신 삼위일체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3에다가 1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삼에다가 1을 곱해서 다시 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삼위일체를 고백합니다. 그때마다 성삼위이신 그분과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하면 어느덧 ‘나’는 없어지고 ‘사랑’이신 그분만 남습니다. 내가 온통 사랑하는 존재가 될 때 내가 날마다 수없이 바치는 ‘성호경’은 나를 통해 완성됩니다.
십자 성호를 긋는 것은 십자가의 은총을 우리 안에 새기는 행위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며 그분 사랑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한순간 한순간 십자가의 은총으로 힘을 얻어 삼위일체이신 그 사랑의 하느님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살겠다는 다짐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삼위일체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어 자신은 무(無)가 되어서 대상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온전히 자신을 비우심으로써 성부와 하나가 되신 것이 삼위일체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호를 그으며 주님을 초대하는 것은 주님을 손님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비우고 없애 대상이신 삼위일체 주님과 하나 되는 것입니다. 3에다가 1을 더하는 것이 아니라 삼에다가 1을 곱해서 다시 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 성호를 그으며 하루에도 수없이 삼위일체를 고백합니다. 그때마다 성삼위이신 그분과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하면 어느덧 ‘나’는 없어지고 ‘사랑’이신 그분만 남습니다. 내가 온통 사랑하는 존재가 될 때 내가 날마다 수없이 바치는 ‘성호경’은 나를 통해 완성됩니다.
